품목정보
발행일 | 2002년 07월 01일 |
---|---|
쪽수, 무게, 크기 | 347쪽 | 516g | 153*224*30mm |
ISBN13 | 9788932013442 |
ISBN10 | 8932013446 |
발행일 | 2002년 07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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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7쪽 | 516g | 153*224*30mm |
ISBN13 | 9788932013442 |
ISBN10 | 8932013446 |
1. 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 2.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 3. 상속 4. 딸기 도둑 5. 내가 살았던 집 6. 태양의 서커스 7. 아내의 상자 해설 - 연기하는 유전자의 무의식에 대하여/김동식 작가의 말 |
어떤 글을 읽고 그 글이 수록된 책이 뭔가 찾다가
이 책이라는 걸 알고 샀는데
그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를 이젠 모르겠네
아마도 다시 읽다보면 떠오를테니
어쩔 수 없이 다 읽어야겠네
지금 읽으려고 찍어놓은 책들 중엔
후순위인데
그 글이 기억은 안 나도 강렬했다는 것만 기억이 나서
이 글을 쓰는 지금 갑자기 너무도 읽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일을...해야하기에...
아오 일 좀 안하고 싶다 진짜
일을 안 할 때는 커피를 안 마시니 일이 없으면 자기 바쁘고...
너무도 서글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새의 선물>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20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
작가 은희경은 우리가 서로 다른 곳에서부터 출발하지만 사실 누구나 똑같은 패턴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말한다. 날고 기어도 죽음만은 피할 수는 없는 숙명처럼 만인이 아는 진리가 아니라,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의 틈에서 허우적대는 그 기구한 운명을 말이다. <상속>에서 막상 아버지가 남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식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조차 흐릿하다. 의식의 기억조차 남기지 못한 아버지가 그들에게 유일하게 남긴 것이 있다면 감춰진 아버지의 삶도 어느 누구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보여지는 아버지는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거두었지만 육체의 보살핌이 끝나자 쓸쓸하고 허무하게 끝나는 진짜 아버지가 거기에 있었다.
자의식을 통한 냉소적인 관찰이 돋보이는 이 단편소설들은 삶의 필연적인 상처를 조용히 위로한다. 남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사는 것은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의 고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자고 한다.
바로 이 한 문장 때문에 영화 '시'의 리뷰도 쓰게 됐고, 이 책의 리뷰도 쓰게 됐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게 마련인 것 같다.
영화 '시' 리뷰: 쉽게 씌어진 시
아버지는 S병원 검진 때에 혼자 CT 촬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구르는 통 안에서 똥을 누어 버린 게 너무 수치스러워 그후 정기 검진을 석 달이나 빼먹었다는 거였다(127쪽).
엄마는 유독 병원에 가는 걸 싫어하신다.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받으러 가실 때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시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검사를 하러 가는 걸 싫어하시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당뇨가 있는 엄마가 검사 전 하루를 금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엄마는 그것 때문에 병원 가기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려면 일주일 전부터 불안해하고 우울해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를 달랬다. "난 싫어. 꼭 무덤 속에 들어가는 것 같단 말야." 엄마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그리고 내가 아는 누구보다 당당했던 사람이 무덤 속 들어가는 것 같아 CT 촬영을 하기 싫다는 게, 나로서는 참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바로 이 문장을 읽고, '아,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싶었다.
나는 내가 엄마를 매우 잘 알고, 엄마에게 썩 괜찮은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CT 촬영은 평생을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초로의 남자에게도 두려운 일이었던 거다. 구르는 통 안에서 똥을 누어 버릴 만큼. 왜 난 그걸 이해하지 못했던 걸까? 엄마의 두려움, 불안, 초조함 같은 거. 인간의 '이해'란 이다지도 유한하고 나약한 것이다. 내 이해와 사랑은 딱 그 정도 수준이었던 것이다. 깊은 반성.
은희경은 항상 이런 식이다. 그래서 부담스러운데 그래서 좋다.
내가 한국 소설가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내 나이 서른 즈음이었는데(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와 관련된 포스팅도 한 번 해봐야겠다), 그 즈음 내가 처음으로 읽었던 작품이 바로 은희경이었다.『새의 선물』.
은희경은 적어도 내게는 다른 여성 작가들과는 구분되는 특별함이 있다. 그걸 콕 짚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매우 상투적인 것 같으면서도 아주 유니크하다.
다른 작가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야기를 할 때 조차 은희경의 작품은 아주 미묘할 만큼씩 차이가 난다. 그게 대상이나 사람을 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견지한 것인지, 아니면 담담하지만 견고한 문체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호두처럼 단단해보이는 그녀 자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내게는 그렇다.
은희경의 작품을 읽다 보면 뭐랄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전신 거울을 맞대고 있는 기분이다. 무척 당황스럽지만 나의 외면과 내면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혹은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많은 생각과 감정들. 그로 인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직면하고 난 뒤의 개운함을 고려한다면 결국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많은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얻는 건 없지만 가득 찼던 걸 비울 수 있게 되는. 조금은 더 가벼워지는 느낌.
암튼 내가 보는 은희경은 이런 사람이다. 어느 순간에도 울지 않을 것 같은 냉철함과 결연함, 이성적 사유, 쉽게 타인의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 가벼워지기보다는 그 순간 자체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선을 가진 작가. 질식할 것 같은 그 순간에도 끝까지 직시하는 사람, 사람들이 쌓아온 가치를 일순간에 전복시킬 수 있는 사람, 집착하지 않고 사유하는 사람.
1. 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
말더듬이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는, 눈이 녹아 질척질척한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건.
소읍에서 나름 유지의 아들로 살다가 도시로 와 술집 작부가 된 엄마, 손님의 아이를 낙태하는 엄마를 목도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은?
은희경의 장점 중 하나는 남성 화자든 여성 화자든 너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소년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서술하는데, 그 자체로 매우 감정이입이 잘 된다. 사용하는 언어라던가, 사유라던가, 감정이라던가, 행동이라던가... 그 모든 것들이 매우 자연스럽다.
단 하루 내렸던 눈이 녹아 길거리는 온통 질척거렸다(37쪽).
2.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오히려 모범생처럼 착실하게 잘 살아왔는데 세상은 자꾸 배신을 한다. 뭐가 문제인 걸까?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가지고 커온 여성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을 둘러싼 누군가를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여성들이여, 이제라도 스스로 미몽에서 깨어나길. 한 번 치인 덫에서도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고, 학습이라는 것도 충분히 다시 할 수 있으니깐. 그렇다면 특정 사건에 대한 반응도 지금과는 다른 패턴으로 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말이다.
어렸을 때는 너무 어른스러워서 아무도 귀여워하지 않았어요. 거꾸로 지금은 나이 든 어른이 애같이 유치하고 덜떨어졌대요. (중략) 어른같은 애나 애 같은 어른이나 징그럽기나 하지 누가 좋아하겠어요?(77쪽)
3. 상속
가족들에게 마저도 철저하게 오해받은 한 남자 이야기. 인생이란 게 그런 거 같다. 자기도, 타인도 철저히 오해하다가 이해를 할 때쯤 죽음을 맞게 되는 것. 혹 죽음을 통해 이해하게 되는 것.
'그'라는 지시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모호해서 문장 읽기가 중단될 때가 종종 있었다. 의도적으로 혼란을 주려고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름 대신 약자를 쓴 것과 더불어 작품 읽기의 재미를 반감시킨 부분.
실제로 그는 가족들에게 피해와 이익 양쪽에서 거의 아무 것도 남긴 것이 없었다(152쪽).
N은 그들이 고독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만약 N이 달라진 게 있다면 고독을 무시하거나 이기려 들지 않고 자신의 천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153쪽).
4. 딸기 도둑
딸기는 쉽게 무른다. 아주 작은 상처에도. 상처에 유난히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단지 딸기 같은 인간인 것이다. 유독 단단한 겉껍질을 타고 나지 못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나?
스스로 견고한 껍질을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이런 이야기... 참 안타까우면서도... 뭐랄까? 뒷끝이 개운치가 않다. 타인의 선한 의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 본인이 상처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같은 건 할 수 없는 걸까?
그의 중요한 입버릇인 '저 새끼들 다 죽여야 돼'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고발 프로그램인데 시작하기 전 탁자 위에 물 한 잔과 담배를 준비하고 볼륨을 크게 높여놓고 자신의 흥분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일어난 돼지들이 꿀꿀이죽을 기다리는 것처럼 즐겁기만 합니다. 그가 뇌물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히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가 원조교제를 욕하는 것 역시 자기가 해보지 못한 재미있는 짓을 하는 녀석들이 꽤 많다는 데 약이 올라서이고, 환경 문제에 흥분하는 것도 사촌 중에 그린벨트 지역에 땅을 사두고 개발 제한이 풀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탓이고, 사기 사건에 펄쩍 뛰는 이유는 자기보다 머리 좋고 배포 큰 놈들이 많다는 데 대한 질투 때문입니다(186-187쪽).
5. 내가 살았던 집
이 작품은 거의 3-4번 읽은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은희경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데, 따지고 보면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여성 삼대의 이야기라던가, 햄스터나 딸의 생리 시작 등의 적절한 배치 등등... 굳이 뭐라고 설명하긴 힘든데, 은희경뿐 아니라 국내 작가들의 단편 작품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작품 중 하나이다. 적어도 나에겐.
열흘쯤 지난 후에 상자를 뜯어보니 사과는 반나마 썩어 있었다. 썩은 것을 골라내면서 그녀는 사과 역시 자기들끼리 닿아 있는 부분에서부터 썩기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 가까이 닿을수록 더욱 많은 욕망이 생기고 결국 속으로부터 썩어 문드러지는 모양이 사람의 집착과 비슷했다(216쪽).
6. 태양의 서커스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다지 크게 인상 깊은 작품은 아니다.
뚱뚱한 여자? 그 여자는 외로웠을 뿐이다. 사람들은 이따금 슬프고 화가 나고 우울한데 이유는 의외로 하나일지도 모른다. 고독말이다. 이유를 안다고 해서 고독이 없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그것이 고독이라는 걸 아는 편이 약간 나을 것 같다(273쪽).
7. 아내의 상자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부류의 글은 굳이 은희경이 아니더라도 다른 여성 작가들이 많이 생산해내는 글이다. 다만 화자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점이 다를 뿐. 그 점에 의의를 둘 수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그동안 생산됐던 이야기들에 약간의 변형만 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나이의 여성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점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이젠 '인형의 집'을 스스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작품 생산의 영역 역시 집밖으로 눈을 돌렸으면 하고.
신도시에는 길이 없어요. 덩치가 큰 건물에 다 가로막혀 있어요. 신발을 신고 산책이나 하려고 나갔다가도 길이 다 끊어져 있어서 그냥 돌아와버려요. 찻길밖에 없어요(2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