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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7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47쪽 | 516g | 153*224*30mm
ISBN13 9788932013442
ISBN10 893201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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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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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아파트 단지 뒤쪽으로부터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아침이슬이 깔린 호수공원을 걸었다. 기분이 상쾌하고 몸이 가뿐한 것이 아마 신발이 편해서일 것이다. 그 신발에 알 수 없는 탄력과 온기가 있다고 생각하며 J는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들이 더 자라면 아들과 함께 걷게 되겠지만 지금은 혼자라는 게 나쁘지 않았다.
--- p.153
삶을 지속하기 위해 육체는 늘 보살핌을 받는다. 인간의 삶이 육체가 있을 때까지만 존재한다는 데에 육체의 권능이 있었다. 아무리 멋진 정신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육체가 죽어버리면 하는 수 없이 멋 부리기를 끝내야 한다. 고통의 수식은 정신이 아니라 육체에 속한 세계의 규칙에서 비롯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위안 없는 생으로부터 잠깐씩 벗어나게 해주었던 꿈의 행방을 잃은 것에 새삼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딸은 오해했다.
--- p.233
사과 역시 자기들끼리 닿아 있는 부분에서부터 썩기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 가까이 닿을수록 더욱 많은 욕망이 생기고 결국 속으로부터 썩어 문드러지는 모양이 사람의 집착과 비슷했다. 갈색으로 썩은 부분을 도려내봤지만 살이 깊게 팬 사과들은 제 모양이 아니었다.
--- 본문 중에서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은혜가 간 뒤 얼마 되지 않아서 딸기를 사가지고 그 애의 아파트에 찾아갔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주 많은 딸기를 갖고 갔었어요. 딸기 따위는 너무 흔하고 하찮아서 훔칠 이유가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만나지는 못했죠. 그 집은 불이 다 꺼져 있었고 사람의 기척이 없이 조용했거든요. 마음이 답답해져서 그곳 옥상에 올라가 잠시 바람을 쐰 다음 집에 돌아와 김치를 마저 담갔고, 그러고 나서 아래층 화단에 김칫독을 묻었을 뿐이에요. 그런 다음에요? 오래오래 손을 씻고 저녁밥을 먹고 나서 베란다에 널었던 빨래를 걷었지요. 국을 끓이려고 남겨두었던 마지막 배추 한 통을 칼로 가르다가 갑자기 어지러워져서 신문지 위로 쓰러졌던 겁니다. 왜 믿지 못하죠?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텅 비고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채로 기억을 놓쳐버리는 일이 전에도 종종 있었다고 말했잖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그들이 저를 둘러싸고 있었지요. 그들이 대체 무슨 상상을 했는지 아세요? 제가 은혜의 목구멍을 딸기로 막아버린 뒤 온몸을 딸기로 짓이겨 아파트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렸고, 그런 다음 집에 돌아와서 잠들어 있는 그의 배를 마치 배추통처럼 칼로 갈라 김칫거리를 절이듯 소금을 뿌려 구덩이에 던져넣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어째서 그런 상상을 하죠? 은혜와 그가 실종된 것이 제 잘못이라도 되나요? 그리고 전에 함께 산 적이 있는 전기 기술자의 행방이 저하고 무슨 상관이죠? 길 건너 고층 아파트의 시멘트 골조 사이에서 그의 시신이 부패된 채 발견되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저는 공사 현장 근처를 산책했을 뿐이에요. 군대에서 죽은 대학생, 그리고 소식을 알 수 없는 사진 작가와 방역 회사 인부,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것까지 어째서 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 pp.18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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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었던 한 전래 동화에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등장했었다. 작가와 독자의 직접 소통인 셈이다.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가 말한다.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해줄까. 무서운 얘기를 할까 아니면 우스운 얘기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슬픈 이야기로 할까. 아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대답한다. 무섭고도 우습고도 슬픈 이야기! 그래서 할아버지는 무서운 도깨비가 우습게도 똥간에 빠지는 슬픈 이야기를 해주었다던가 하는 줄거리이다. 소설을 쓰는 중에 가끔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떄 나는 실컷 웃으면서 읽고, 다 읽은 뒤에는 어쩐지 슬퍼지며, 그 웃음과 슬픔이 만든 좁은 틈 속에 내던져진 채로 불현듯 무서움을 느끼는 그런 소설을 쓰려고 했다.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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