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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괴

사랑의 파괴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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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70쪽 | 317g | 103*182*20mm
ISBN13 9788932904382
ISBN10 8932904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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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엘레나는 정말이지 빼어나게 예뻤다. 교양과 멋과 재치가 그윽한 이탈리아 인의 기품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아메리카 본토인들의 혈통에 어우러져 있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희생제와 그 밖에 놀라운 야만 행위들에 깃들인 야성적 서정과 더불어. 순진하기 짝이 없던 나는 그런 면에 더욱 집착했다. 아름다운 그 애의 눈빛에는 아메리카 본토인들이 화살 끝에 바르던 쿠라레독과 라파엘로의 성모 마리아가 공존하고 있었다.

엘레나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느날 학교 운동장에서 나는 한번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입 안에서 맴돌던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을 누를 길이 없었다.

"내가 너무나 예뻐서 난 너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어."
"그러 말을 한두 번 들어본 게 아냐."
그 애는 관심 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하지만 내 말은 진짜야."
(...)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야?"
그 애는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나는 그 애가 최악의 것을 요구해 주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운동장을 스무 바퀴 돌아 봐. 쉬지 말고 달려서 말이야."
그 정도는 내가 보기에 대수롭지 않은 요구였다. 나는 즉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자동차처럼 기쁨에 겨워 뛰고 또 뛰었다. 열 바퀴째가 되자 내 열광은 잦아들었다. 엘레나가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것, 게다가 그 이유가 어떤 우스꽝스러운 종족이 다가가 말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내 기쁨은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나는 속임수를 쓰기에는 너무나도 충직했으므로(다시 말해서 어리석었으므로) 충실히 약속을 지켰다. 그런 다음 에레나와 그 남자 애 앞으로 갔다.
"나 뛰었어."
"뭐라고?" 엘레나는 오만하게 반문했다.
"운동장을 스무 바퀴 돌았다고."
"아, 깜빡 잊었네. 다시 뛰어 봐. 난 못 봤거든."
나는 즉시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 애는 조금 전보다도 더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를 멈출 수 없었다. 내 열정은 걸음걸음을 자신을 표현하는 고상한 방법을 찾아냈다. 바라던 결과를 얻을 수 없자 더욱 열정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뛰었어."
"좋아." 그 애는 내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다시 스무 바퀴를 돌아."
그 애도 그 우스꽝스러운 종족도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달렸다. 사랑 때문에 달린다는 처음의 도취감을 잃지 않은 채 달리고 또 달렸다. 기침이 몸속을 채우는 게 느껴졌다. 더 괴로운 것은 내게 천식 증세가 있다는 말을 엘레나에게 한 적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천식이 어떤 병인지 그 애가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그 애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때 그 애는 처음으로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떤가?

그러니까 그 애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알면서 내게 그런 명령을 했던 것이다. 예순 바퀴를 돈 다음 나는 내 사랑 앞으로 갔다.
"다시 뛰어."
"내가 전에 했던 말 생각나니?" 나는 힘없이 물었다.
"무슨 말?"
"내게 천식 증세가 있다는 것 말이야."
"내가 그 생각도 못하고 너한테 뛰라고 한 것 같니?"
그애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pp 12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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