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을 예찬한다
소유하지 않으면 불행도 없을 것이다. 왜 물질의 노예로 살다가 산더미처럼 쌓인 쓸모없는 재산에 짓눌려 죽으려 하는가? 가구가 별로 없는 작은 집에 산다고 반드시 슬프거나 우울해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집을 아주 밝고 아주 활기찬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행복을 만드는 것은 공간도, 가구도, 소유한 물건도 아니다. 모든 것은 집을 소유한 사람의 기질과 열의, 에너지에 달려 있다. 행복은 건강한 몸으로 일구는 가볍고 근심 없는 인생, 싸구려 물건이 주는 쾌락을 따르지 않고 사회적 제약에서 최대한 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온다. ---「걱정을 줄이다」중에서
생각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전기나 중력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늘 뭔가 생각할 거리, 풀어야 할 문제가 있으면 신경계가 피로해지고 결국은 병에 걸린다. 작은 집에 살기로 선택하면 경제적으로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생에 대한 신중한 태도와 모든 분야에서 겸허한 태도를 되찾게 된다. 그것은 곰곰이 생각하기 위해, 나 자신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는 균형 잡힌 소박한 삶의 방식을 회복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된다는 뜻이다. ---「활기를 더하다」중에서
큰 공간에 살수록, 당연히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더 많은 유지비, 더 많은 정비, 더 많은 작업 등등. 우리는 필요라는 개념을 쾌락이라는 개념과 더는 구별하지 못한다. 미디어와 광고는 우리에게 따라가야 할 길, 즉 ‘대중적인’ 행복의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이 표준적인 가치들을 퍼뜨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외모는 이런저런 이상적 아름다움에 도달해야 하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사랑을 찾아야 하며, 특정한 물건들(스마트폰, 광파 오븐, 로봇 청소기)을 소유해야 시대에 뒤처진 고지식한 사람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이 강요된 전형에 대항할 무기인 자신만의 특색을 잊어버린 것은 이미 그 시스템에 빠져 거기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행복은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 中(72쪽)
아이들에게도 혼자서 책을 읽고, 놀고, 하루 동안 겪은 감정들을 ‘소화할’ 자기만의 구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회는 고독을 장려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도리어 고독을 불행한 것,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고쳐야만 하는 병으로 왜곡한다. 하지만 고독이 없다면, 고독을 체험하기 위한 자기만의 장소가 없다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이르기는 불가능하다. ---「고독이라는 미덕」중에서
3.6미터 곱하기 3.6미터 넓이에 바다가 내다보이는 르코르뷔지에의 오두막(아내에게 준 선물)은 프랑스에서 작은 건축의 모범이 되는 건물 중 하나이다. 이 유명한 건축가는 매년 이곳에서 한 달 동안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커다란 집이 줄 수 없는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발견했다. 이 작디작은 집은 그에게 아마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고, 오늘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떻게 하면 사회가 제시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단순한 장소로 되돌아가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서는 오직 본질이 우선한다. ---「고독을 사랑한 사람들」중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로, 큰 집보다 작은 집에서 단순하게 생활하는 편이 훨씬 더 쉽다. 초조함, 혼돈, 신경증 등 우리를 현재의 순간과 갈라놓는 장애물들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로 소소한 일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미건조한 일상의 권태는 완전히 새롭고 유쾌한 기분으로 탈바꿈한다. 작은 공간에서 삶으로써 타인에게, 자기 자신에게, 현재의 순간에도 더 충실한 자신이 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더 강렬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이사, 삶의 변화」중에서
쓰보니와는 서양식 정원처럼 거닐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눈으로 보기 위해 존재하는 정원이다. 산책도 좋지만 진짜 거닐어야 할 곳은 자신의 내면이다. 작은 정원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 제곱미터의 녹색 공간이면, 그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아주 멀리 떠나기에 충분하다. 그뿐만 아니라 물을 주고 정원을 돌보면서 명상을 할 때와 다름없는 깊은 침묵에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는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 자연을 돌보는 데 몰두하는 일이 한없는 기쁨을 준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원을 응시하는 일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욕구가 된다. 그것은 생명의 움직임 속에서 영원을 응시하는 것과 같다.
---「집 안에 나만의 작은 정원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