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8년 05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170쪽 | 268g | 132*223*20mm |
ISBN13 | 9788937461804 |
ISBN10 | 8937461803 |
발행일 | 2008년 05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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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70쪽 | 268g | 132*223*20mm |
ISBN13 | 9788937461804 |
ISBN10 | 8937461803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0년 후 - 하인리히 뵐의 후기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주인공인 카타리나 블룸은 아름답고 행실이 단정하며 블로르나 부부의 가사관리사로서 성실히 일한 덕분에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벌써 아파트까지 마련했다.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카타리나 블룸은 일간지 <차이퉁>의 기자 퇴트게스를 총으로 쏘아 살해한다. 이 책은 카타리나 블룸이 뫼딩 경사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범죄를 담담히 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살인 사건을 다룬 책인데도 불구하고 사건의 결말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 그녀가 퇴트게스를 죽여야만 했는지 그녀에게 벌어진 나흘간의 일들을 마치 보고서처럼 거리감 있는 문체로 전달한다. 이러한 문체의 의도적 사용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과장과 왜곡을 일삼는 황색 언론에 대한 작가 하인리히 뵐의 비판으로 읽힌다. 소설 속에서 일간지 <차이퉁>은 확인되지도 않은 내용으로 삼류 소설 같은 기사를 쓰지만, 카타리나의 살인 사건에 접근하는 본 소설의 문체는 사건에 대한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내내 견지하고 있다.
나흘 전, 카타리나 블룸은 댄스파티에서 루트비히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파티가 끝나자 그녀는 괴텐을 집으로 데리고 가고, 괴텐은 자신이 실은 은행강도범이며 경찰에 쫓기고 있는 신세라고 고백한다. 그녀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아파트 비밀 통로를 괴텐에게 알려주며 그가 도망칠 수 있도록 비밀통로로 내보낸다. 한편 경찰은 이미 댄스파티에서부터 괴텐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가 카타리나 블룸의 아파트에서 좀처럼 나오질 않자 블룸의 아파트를 급습한다. 괴텐의 행적이 묘연하여 경찰은 블룸을 심문하기 위해 연행한다. 연행되는 블룸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주민들과 기자들 사이에서 블룸의 머리와 옷차림은 헝클어지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그녀의 표정도 일그러진다. 사진 기자들은 속수무책인 블룸의 모습을 마구 사진 찍어 언론에 내보낸다.
연행된 블룸이 경찰에게 털어놓은 내용들은 언론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고 왜곡되어 자극적인 기사로 내보내진다. <차이퉁>이 확인되지도 않은 정보들을 기정사실화하여 보도하고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을 교묘한 방식으로 ‘악마의 편집’을 하자, 어느새 카타리나 블룸은 경찰의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확실한 ‘강도의 내연녀’, ‘은행 강도의 공모자’, ‘남자에 환장해서 수치를 모르는 마녀’,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상식적인 언론도 있었으나 문제는 대중들이 그런 ‘심심한’ 언론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이퉁을 읽고, 차이퉁이 흔드는 대로 휘둘린다.
예를 들어 <움샤우>지에는 열 줄 정도의 기사가 났고 물론 사진도 실리지 않았으며 전혀 결함 없는 사람이 불운하게 사건에 연루되었노라 보도했다고 한다. 그녀가 블룸에게 가져다준 오려 낸 신문 기사 열다섯 장은 카타리나를 전혀 위로하지 못했고, 그녀는 그저 이렇게 묻기만 했다고 한다. “대체 누가 이걸 읽겠어요?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차이퉁>을 읽거든요!”
p.68
단 나흘 만에 카타리나 블룸의 인격은 살해당했다. <차이퉁>의 기자 퇴트게스는 카타리나 블룸의 인성 개차반이던 그녀의 전남편을 만나 그의 편파적이고 악의적인 인터뷰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한다. 또 큰 병을 앓아 요양원에 있는 블룸의 어머니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데 그 충격으로 블룸의 어머니는 죽게 된다. 이제 <차이퉁>의 보도에 선동된 시민들은 한밤중에 블룸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음란한 말을 퍼부어 댔고 블룸의 집에는 그녀를 저주하는 편지와 쪽지가 남겨졌다. 아파트 건축사에서는 그녀로 인해 아파트 단지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면서 손해배상청구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블룸은 퇴트게스를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하고, 퇴트게스는 블룸에게 ‘섹스나 한 탕 하자’고 말하고, 그 말에 블룸은 퇴트게스에게 총을 쏘았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회원분들과 몇 가지의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 카타리나 블룸이 괴텐을 사랑한 것처럼, 나도 살인범(범죄자)을 사랑할 수 있을까?
회원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살인범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누구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삶을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삶을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사랑’을 하게 되면 그런 허물까지도 감싸 안게 된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에서도 범죄자인 자식을 여전히 사랑하고는 한다, 카타리나 블룸도 살인범이지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 등의 의견이 많아서 바로 설득되었다...!
2. 언론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성폭력 문제를 보도하는 뉴스를 볼 때 불쾌함을 느낀 적이 많다. 성폭력 피해자가 어떤 성폭력을 겪었는지에 대한 지나치게 자세한(불필요한) 묘사, 선정적인 느낌을 받게 하는 그림 자료의 사용 등. 언론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회원분들의 생각을 물었다. 이미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누구나 파괴력 강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1인 언론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를 한정짓기가 사실상 어렵고 또 실제적으로 무용하다는 의견들이 있었다(결국 다들 그 선을 가뿐히 넘어가버릴 것이니까). 과거엔 언론이 기자들의 일이었기에 기자들의 보도윤리만 생각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모든 시민들이 곧 기자인 세상이라 결국 모든 사람들의 윤리의식 문제로 확장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부제처럼 카타리나 블룸이 당한 일은 엄연한 폭력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이 전쟁터에서 블룸처럼 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또한 <차이퉁>의 논조에 선동당하며 조용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블룸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요즘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신을 지키켜 제대로 살기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김연수 옮김, 민음사),1974』는 조작과 거짓이 한 인간을 어떤 식으로 몰아가 끝내 추락시킬 수 있는지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제목에 덧붙여진 부제는 주인공이 겪어낼 기승전결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견한다. 작가가 ‘모토’라 칭한 서두의 단서에는 구체적인 이름(빌트지)이 등장하는데 이 세 가지 전제조건을 통해서 작품을 읽어내고 통찰하고, 문제 해결은 다른 차원에 놓더라도 진실에 닿기를 요청한다. 언제나 동시대인의 문제와 현실 인식을 화두로 삼았던 하인리히 뵐은 “우리 눈에 비치는 현실이 폐허라면, 그것을 냉철히 응시하고 묘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다.”라며 모순과 부조리를 향해 목소리를 냈고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학교에서 교재로 읽히며 영화화되기도 했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그렇다면 지금 현실은 어떤가, 미래를 낙관하거나 가늠해 볼 때 하나의 씁쓸한 표본을 제시한다.
“그자들이 이 아가씨를 끝장내고 말 거야. 경찰이 안 그러면 <차이퉁>이 그럴 거예요. <차이퉁>이 그녀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 사람들이 그럴 거고요.”(p.45)라는 문장이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는 현실을 상기시킨다. 블룸을 알고 있는 블로르나 부부는 신문 1면을 장식한 그녀의 기사에 분노를 표하는 동시에 정확히 간파한다. 카타리나 블룸이 지키고, 이루어내고 싶었던 꿈과 희망은 물론 살아있는 자가 마땅히 보장받을 ‘시간’ 또한 빼앗긴 게 현실이다. 카니발 시즌, 댄스 파티에 참석했던 카타리나 블룸은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난 이후 강도 용의자였던 그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언론에 완전히 노출된다. 경찰과 신문이 카타리나에게 가하는 태도와 행동과 말은 의도된 오류를 증폭시키는 일방향으로만 속도를 낸다. 이미 거의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결국 한계에 이르고 만다. “내내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닐 거야.’ 하고요. 그렇지만 난 잘 알고 있었어요. 그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요.”(p.151) 누가 비상(飛上) 하고 싶었던 카타리나, 유년의 불행과 매정했던 편견에 굴복하지 않고 용기 내었던 그녀에게서 갑자기 날개를 빼앗고 끝내 추락하게 만들었나.
소설은 스물일곱 살의 이혼녀 카타리나 블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명예를 잃어버리는 과정에 만연했던 폭력과 속수무책으로 감당해야 했던 고통, 이 고통이 불러일으킨 폭력의 귀결까지 부조리한 연쇄 과정을 그린다.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사실만을 전달하는 듯 보이지만 단어는 본래의 의미를 쉽게 왜곡하고 필요에 맞게 변조하며(p.32), 오히려 직업인으로서 도우려는 선의였다 포장(p.114)하면서도 문제의식이라고는 없다. 말이 내포한 진실이 곧이곧대로 수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침묵을 택하기도 한다.(p.120) 소설은 이처럼 언어를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때 일어나는 문제를 때론 위트 있게, 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미 작가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53)>에서 반쪽 진리를 담은 주교의 어휘나 고위 장교들의 빈약한 어휘에 주목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뵐이 독일의 죄의식을 작품으로 구현한 작가였으나 절망에 유쾌함을, 처절한 자기반성과 애교를, 신랄함과 장난기를 함께 묶은 작가였다고 평했다. 또한 그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작가가 되었으나, 언제까지나 여전히 약자들의 형제요, 그들 중 하나였다며 ‘보통사람’이라는 명칭을 추가한다.(작가의 얼굴,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문학동네 p.300)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이름을 대체할 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전속력으로 질주해오는 이름들이, 사건들이 있기에 1974년 출간된 이 “소설” 또는 작가의 주장대로 “이야기”는 다분히 현재적이며 첨예한 쟁점으로 독자를 각성시킨다. 행동하는 지성이었던 하인리히 뵐의 작지만 강렬한 소설을 추천한다.
이 순간에야 비로소 카타리나는 이틀 치 <차이퉁>을 핸드백에서 꺼내 보고, 국가가(이렇게 그녀는 표현했다.) 이런 오욕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고 그녀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지 물었다.(p.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