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8년 07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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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809쪽 | 1272g | 160*230*40mm |
ISBN13 | 9788949704807 |
ISBN10 | 8949704803 |
발행일 | 2008년 07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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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809쪽 | 1272g | 160*230*40mm |
ISBN13 | 9788949704807 |
ISBN10 | 8949704803 |
제1권 클레이오 Kleio 전설시대의 동서 항쟁· 13 리디아의 옛 역사· 15 크로이소스와 솔론· 24 크로이소스와 아드라스토스· 29 크로이소스와 신탁· 32 크로이소스와 그리스· 37 크로이소스와 키루스의 대결· 48 메디아의 역사와 키루스의 성장· 65 페르시아?메디아로부터 벗어나 패권을 장악· 79 페르시아의 풍속· 84 소아시아의 그리스 여러 도시· 89 리디아의 반란과 그 진압· 94 하르파고스의 소아시아 정복· 99 바빌론 정복· 107 바빌론의 국토와 풍습· 115 마사게타이 원정· 120 제2권 에우테르페 Euterpe 이집트의 국토· 128 이집트의 풍습· 145 이집트의 생활 양식· 166 이집트의 역사· 175 피라미드 시대의 여러 왕들· 191 에티오피아인의 이집트 지배, 12인의 왕, 미궁에 대하여· 198 프사메티코스의 통치와 그의 후계자· 207 아마시스· 212 제3권 탈레이아 Thaleia 캄비세스의 이집트 공략· 222 에티오피아인과 암몬인에 대한 원정과 그 좌절· 231 캄비세스의 어지러운 마음· 238 사모스와 스파르타의 항쟁· 244 캄비세스의 죽음과 다레이오스의 등극· 256 왕국을 징세구(徵稅區)로 구분· 273 인타프레네스와 오로이테스· 286 데모케데스 이야기· 293 다레이오스의 사모스 공략· 298 바빌론의 반란과 진압· 304 제4권 멜포메네 Melpomene 스키타이 원정· 310 스키타이의 고대사· 312 스키타이 북방 여러 민족· 318 세계의 형태와 구조· 326 스키타이의 하천· 331 스키타이의 풍습· 336 다레이오스의 원정· 348 리비아 공격의 이전 역사· 372 키레네 식민의 유래· 379 리비아· 384 바르케 점령· 397 제5권 테르프시코레 Terpsichore 트라키아 및 마케도니아 공략· 400 히스티아이오스와 아리스타고라스· 409 스파르타의 정세-클레오메네스와 도리에우스· 417 아리스타고라스, 스파르타의 지원요청· 421 수사에 이르는 ‘왕도’· 424 페이시스트라토스의 흥망· 425 클레이스테네스와 이사고라스· 430 클레오메네스· 435 아테네와 아이기나· 436 코린토스인의 독재반대 연설· 442 시게이온의 싸움· 448 사르데스의 파괴· 450 키프로스의 배반과 그 진압· 453 이오니아인의 패배, 아리스타고라스의 죽음· 457 제6권 에라토 Erato 히스티아이오스의 활약· 461 에게해와 헬레스폰토스 연안 도시 공략· 472 마르도니오스의 그리스 본토 공략· 477 타소스의 굴복· 479 스파르타의 정정(政情)· 480 아이기나와 아테네의 싸움· 498 페르시아 원정군, 여러 섬을 거쳐 마라톤에 이르다· 502 마라톤 전투· 506 밀티아데스의 일· 520 제7권 폴림니아 Polymnia 크세르크세스의 원정 준비· 527 원정군의 출발· 541 헬레스폰토스 도착과 바다를 건너다· 552 원정군의 병력 점검· 559 트라키아에서 테살리아까지· 576 아테네와 스파르타· 586 첩자와 사절 파견· 593 테르모필라이로의 진군· 609 테르모필라이 전투· 621 제8권 우라니아 Urania 아르테미시온 해전· 640 아테네 점령과 그리스의 해전 준비· 648 살라미스 해전· 660 크세르크세스의 퇴각· 679 마르도니오스의 아테네 교섭· 692 제9권 칼리오페 Calliope 마르도니오스의 아티카 침공과 철수· 704 플라타이아 포진· 712 플라타이아 전투· 720 미칼레 전투· 745 크세르크세스의 빗나간 사랑· 753 그리스군의 세스토스 공략· 756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 출생에 대하여· 761 명문의 자손· 766 역사 탐구 활동· 768 여행과 저작· 774 《역사》의 구성· 775 《역사》의 서술 방법· 778 《역사》의 테마· 783 《역사》의 저작 특징· 788 역사의 아버지 유래· 792 헤로도토스 평가와 업적· 796 [부록]그리스의 도량형 1. 길이 단위· 804 2. 넓이 단위· 805 3. 부피 단위· 805 4. 무게 단위· 806 |
<헤로도토스 역사>
책 읽기 계획에 없던 책이었다. < 정치사상사 -헤로도토스에서 현재까지>(앨런 라이언 저 / 남경태·이광일 옮김 / 문학동네 2017) 늘 읽어볼 요량으로 작은 제목에 헤로도토스가 궁금해 먼저 읽어 두자는 의미에서 접하게 되었다. 역사의 아버지라는데….
영화 300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기원전 479년 치러진 페르시아전쟁사를 서술한 책인데, 크게 기원전 499년부터 기록한 6장까지 예비단계와 9장까지 기록한 세세한 전쟁 묘사와 그 후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제목 1장 클레이오, 2장 에우테르페, 3장 탈레이아등, 각 장의 제목이 생뚱해서 찾아보니 그리스 신화 중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9명의 뮤즈 이름에서 따왔다. 이는 저자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후 알렉산드리아 후배들이 각 장의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온갖 세세한 이야기를 남겼지만 정작 본인의 집안이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남긴 게 없다. 다만 지금까지 후세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금의 터키 에게해 해변 할리카르나소스 명문가 출신으로 484~425를 살면서 당시 문명권으로는 전 세계라 부를만한 넓은 지역을 여행하며 직접 보거나 들은 이야기를 모아 동서 분쟁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페르시아 전쟁사를 기록한 「역사」를 남겼다. 여행의 범위는 당시 이동 수단으로 볼 때 불가능할 정도로 넓은데, 동으로는 바빌론(이란) 끝, 북으로는 스키티아(우크라이나), 남으로는 이집트 시에네(아스완), 서로는 리비아, 이탈리아까지 이른다. 직접 다 다녔다고 하기엔 너무 넓은데 역사의 아버지는 직접 연구하고 조사했다고 한다.
"인간 세계에서 일어난 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망각되기 마련이다. 그리스인이나 이방인이 이룩한 위대하고 놀라운 갖가지 업적, 특히 무엇 때문에 서로 싸우게 되었는가에 대한 사정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갈 것이다. 이 책은 할리카르나소스 출신인 헤로도토스가 이 망각을 염려하여 자신이 직접 연구·조사한 것을 적은 것이다." ( <역사> 첫 시작 부분 13쪽)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책 장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역자의 문제라기보다 (의례 고전은 어려운 한자어와 형용사와 조사의 남발로 번역되기 일쑤인데 쉬운 생활 단어와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없을 정도로 잘 옮긴듯함) 수없이 많이 나오는 ~데스 ~토스 ~테스로 끝나는 인물의 이름에 더하여 옛 지명들마저 생소한 게 원인이다. 머리와 눈이 ~데스~토스~테스에 익숙해질 수 없는 게 계속 나오는 새로운 인물과 지명, 책의 두께와 더해져 덮고 싶은 기회를 어쩌면 엿봤을지도 모른다. 전공자나 고대 서양사에 꾸준한 독서가가 아니고서는 느린 게 맞는것인데. 참고용으로 있는 앞뒤에 붙은 당시 고대 지도를 펼쳤다, 덮었다 하며 지구본까지 옆에 두고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당시 지도를 복사해서 편하게 볼 머리를 왜 못 썼는지…. 책이 두꺼워 손목이 아프다.
역사의 아버지는 페르시아 전쟁사 기록이라는 길을 고속도로로 간 게 아니라 샛길이 많은 국도를 돌고 돌아간다. 전쟁 예비단계라 할 만한 1~6장까지 각 지역의 풍습과 생활상 사람 관계를 기록한 샛길이 많다. 이 부분이 오히려 지루함을 덜고 책을 덮지 못하게 재미가 있었다. 지루하다 느낄 때면 아래와 같이 옆길로 샜다가 다시 돌아온다.
" 그중에서도 가장 그럴듯하다고 내가 생각하는 풍습은(중략)…. 마을에서는 저마다 매년 1회 다음과 같은 행사를 한다. 시집갈 나이가 된 아가씨들을 모두 모아 한곳으로 데리고 가서 그 둘레를 많은 남자가 둘러싼다. 그러면 호출인이 아가씨를 한 사람씩 세워서 판다. 우선 그중에서 가장 기량이 좋은 아가씨부터 시작하는데, 이 아가씨가 좋은 값으로 팔리면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기량이 좋은... (중략) 아가씨들은 결혼을 위해 팔리는 것이다. 신부를 맞이할 적령기가 된 바빌론의 청년 중에서도 유복한 사람은 서로 값을 올려서 기량이 가장 좋은 아가씨를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서민 계급의 적령자는 기량이 좋다는 것 등에는 상관하지 않고, 돈을 받고 오히려 미운 아가씨를 얻는 것이 통례이다. (중략) 비록 자기 딸이라도 자기가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시집보내는 일은 금지되어 있다. 또 딸을 산 남자도 반드시 그 아가씨를 아내로 삼는다고 하는 보증인을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데리고 갈 수가 있다. 당사자끼리 잘 안 될 때에는 남자가 지참금을 돌려주는 것이 관습이다. 그리고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도 원한다면 아가씨를 살 수가 있다." (118쪽 바빌론 풍습을 소개한 옆길, 이성의 발전이 낮았던 고대, 헤로도토스마저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는)
" 무리 살이 하는 성질을 가진 물고기는 하천에서는 그다지 자리지 않고 호소에서 주로 사는데, 그 생태는 다음과 같다. 이들 물고기는 교미기가 되면 떼를 지어 바다로 헤엄쳐 나간다. 수컷이 맨 앞에 서서 이리(? 물고기 수컷의 배 속에 있는 흰 정액 덩어리)를 뿌리면서 앞으로 나가면서 뒤를 따르는 암컷이 그것을 삼켜서 수태한다. 바다에서 수태가 끝나면 고기들은 각기 살던 곳을 향하여 강을 올라간다. 그러나 선두에 서는 것은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다. 떼를 이루어 선두에선 암컷들은 앞서 수컷이 한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 즉, 좁쌀만 한 알을 조금씩 뿌리고 가면 뒤를 따르는 수컷이 그것을 삼킨다. 이 좁쌀 크기의 알 하나하나는 물고기인데 삼켜지지 않고 남은 알만이 자라나 물고기가 되는 것이다.
바다에 나갈 때의 물고기를 잡아서 보면 머리 부분 왼쪽에 찰과상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강을 올라서 되돌아가는 것들은 오른쪽에 상처가 있다. 왜 이런 상처가 나느냐 하면, 물고기는 바다로 내려갈 때나 강을 올라서 돌아갈 때도, 왼쪽 물가를 따라 될 수 있는 대로 물가에 접근하여 닿을 정도로 헤엄을 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의 흐름 때문에 길을 잃지 않으려는 조심 때문인지도 모른다."(174쪽 이집트 해안지역의 먹거리 기록. 자연 관찰 책인 듯)
" 트라우소이족의 풍습은 다른 트라키아인과 대체로 같은데 아이가 태어났을 때와 사람이 죽었을 때 아래와 같은 행동을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은 그 아이 주위에 둘러앉아 인간에게 일어나는 온갖 불행을 모두 헤아리고 이 아이도 태어난 이상 이와 같은 수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면서 탄식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었을 때는 수많은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더없는 행복의 경지로 들어간 것이라고 해서 기쁨 속에 땅에 묻는 것이다. 다음으로 크레스토나이오이족 북쪽에 사는 부족의 풍속은 아래와 같다. 여기에서는 사내가 모두 많은 아내를 거느린다. 그런데 남편이 죽으면 어느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아내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또 죽은 사내의 친구들도 이 일에 끼어든다. 그리고 거기에서 뽑히는 영예를 얻은 여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부족민으로부터 찬양을 받고,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족의 손에 의해 남편의 묘 위에서 인후가 째여져 남편과 함께 매장된다. 한편 남은 아내들은 자신들의 불운을 탄식한다-그녀들에게 이처럼 치욕적인 일은 없는 것이다." (405쪽. 트라키아인 풍습)
이 같은 고대 풍습은 현대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는 일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는 부족민을 이루며 모든 사물에 정신이 있다고 여기는 샤머니즘을 생각할 때 당연할지 모른다. 초기 로마제국도 허용했던 다신교의 여러 민족은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가 받아들인 유일신 그리스도교를 국교화 이후, 강요되고 서서히 몰락했다, 다양한 민족의 풍성한 지적, 정신적 문화유산이 사라진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역사의 아버지는 샛길을 정말 세세하게 기록했다. 2장 이집트의 생생한 기록은 현재 연구에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6장부터는 직접적인 전쟁을 기록하는데 샛길이 없다. 유명한 마라톤 전투, 영화 300의 이야기인 테르모필아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이 기록되어 있다. 지루할 틈 없는 생생한 기록이다.
페르시아 전쟁사를 알고자 한다면 헤로도토스 후배인 두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역사는 전쟁사로만 혹은 지배자의 기록으로만 볼 수 없다. 헤로도토스가 남긴 「역사」는 당시 사람들의 기록이다. 이집트의 상세한 기록으로 따로 떼어서 본다면 민속학이기도 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가능한 한 직접 조사하거나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목격하거나 목격자로부터 정보를 얻은 후 기술하였다. 원칙은 단 하나, 무조건 기록한다는 것. 수없이 기술되어 있는 신화와 전설이 창작이라고 생각할 때, 어찌 보면 헤로도토스는 역사가가 아닐지 모른다. 요컨대 헤로도토스는 자세한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위대한 여행가며 지리학자며 과학자며 통계학자였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시시콜콜 오지 부족까지 풍습과 종교를 다 기록한 헤로도토스가 유대인 부족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는 게 이상한 점이다. 성경의 기록과 헤로도토스의 조사 영역으로 본다면 직접이던, 간접이던 충분히 서술되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다. 떠돌이 유랑생활을 하던 부족이라 만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성경에 구약은 그 후에 만들어진 허구란 말인가.
지금껏 인류사에 수없이 많은 책이 나왔고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부터 오늘날은 하루에도 수천 권씩 인쇄 될 것이다. 고전의 가치는 활자로 된 인류사에서 지금껏 살아남은 책이다. 구전이 아닌, 신화와 전설의 운문이 아닌, 직접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기초한 최초의 산문체. 헤로도토스가 남긴 <역사>다. 우리가 역사로만 국한되어 바라보지 않는다면 당시 이성이 아직 낮았던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을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한 현대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한 살인과 폭력의 전쟁사와 종교를 보며 이성이 성숙한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평화와 인권에 보호받고 있는지도 깨닫게 된다.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여행 블로거. 추천한다. 고전 읽기에 깃발을 하나 꽂으며...
#헤로도토스
#역사
#MUHAK
헤로도토스의 역사.
한마디로 마음이 풍요로와 지는 책입니다.
몇 년 전에서부터 읽고 싶다고 생각을 했지만, 늘 생각만 하고 읽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단 구매를 해 놓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고대 시대의 방대한 지리,종교,역사 등의 내용을 잘 정리해 놓았다는게, 참 대단히 존경스러웠습니다.
평소에 고전과 그리스, 로마 시대 때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 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과연 어느 누가 이렇게 기록할 수 있을까 싶고, 이렇게 좋은 책을 왜 이제서야 읽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하나의 훌륭한 보물 같은 책을 읽었다는 마음에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2002년 이었다. 축구도 재미있었지만 몽테뉴에 빠져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헤로도토스를 처음 알게 된 건 바로 몽테뉴의 에세이를 통해서였다. 그의 시골집 책상에는 항상 헤로도토스가 놓여 있었고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이 책을 읽으며 안정을 찾았다는 글을 읽으며 헤로도토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헤로도토스를 처음 읽을때의 기억이 난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과 지명들의 끊없는 나열, 본문보다 더 어려운 주석 그리고 느려터진 스토리전개 등. 특히 뭔가 일이 생길만하면 갑자기 그 사람의 조상을 훓는다던지 하는 식으로 도저히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구성이 너무 어려웠다. 만약 중간 이후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면서 흥미있어지지 않았다면 끝까지 읽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10년만에 이 책을 다시 집어든 건 작년에 읽었던 '로마인 이야기'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무려 9개월간에 걸쳐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중해 연안 지도에 꽤 익숙해졌다는 점도 있고 역사란 그런 것이기 마련이지만 두 책 사이에 많은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책을 두번째 볼때는 처음 볼때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이게 마련이다.
이번엔 '헤로도토스' 특유의 '스토리 전개 멈추고 부연설명하기'가 매우 즐거웠다. 덕분에 에디오피아 인들의 문화와 관습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었고, 흑해 연안 유라시아 지역의 스키타이족등 유목 민족에 대한 묘사도 흥미있었다. 헤로도토스가 스키타이를 묘사하며 북쪽으로 점점 더 올라가다가 마지막 우랄 산맥을 언급할 땐 그가 알지 못했던 그 산맥 너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써의 알 수 없는 짜릿함도 느꼈다.
무엇보다 당시 여러 지중해 연안에 살고 있던 여러 민족의 묘사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이집트에 관한 것이었다. 이집트가 그리스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제우스나 아테네 등 그리스 대부분의 신들이 실은 이집트로부터 수입된 것 이라는 사실이 이채로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헤로도토스'를 설명할 때 '테르모필라이 전투' 와 '살라미스 해전'을 들고 있다. 페르시아 전쟁의 정점이자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전투를 과소평가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 저자의 그리스 편향적 자세는 아쉽게 느껴진다.
페르시아가 키루스에서 시작해 캄비세스, 다레이오스, 크세르크세스등의 황제로 이어가며 이룩했던 광대한 제국의 건설 과정과 그 결과는 절대로 과소평가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왕 헤로도토스가 그리스 편향적 면에서 기술했으니 아시아 편향적 관점에서 이야기 하자면, 에디오피아로부터 이집트를 거쳐 바빌론과 흑해 연안의 국가들을 평정하고 아라비아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한 후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무려 5백만의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의 심장이자 유럽의 심장이었던 아테네로 쳐들어가 정복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당하고 사는데 익숙한 아시아 인으로써 무한한 자부심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독서노트 -
■ 사람의 일생을 70년이라 하고 그 70년을 날로 환산하면, 윤달을 제외해도 2만 5200일이 됩니다. 사계절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도록 1년걸러 1개월씩 덧붙이면 70년간에 35개월이 더 늘어나고, 이것을 날로 환산하면 1050일이 됩니다. 그러면 이 70년은 2만 6250일이 되는데, 그 가운데 하루라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크로이소스 왕이시여, 인간의 생애는 모두 이처럼 우연한 것입니다.
■ 페르시아에서 가장 치욕적인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돈을 빌리는 것이다. 돈을 빌리게 되면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한 피리 부는 사나이가 바다 속의 물고기를 향해 피리를 불면 물고기들이 육지로 올라오리라 생각하고 피리를 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자, 그물을 던져 많은 물고기를 잡아 육지로 끌어올리고는 물고기들이 퍼덕거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만 춤춰. 내가 피리를 불 때는 나와 춤추지 않았던 주제에.”
■ 인간의 운명은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어서 돌고 돌아서 같은 자에게 계속해서 행운을 베풀지는 않는다. – 크로이소스
■ 그리스인은 계절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한 해 걸러 한 번씩 윤달을 삽입하는데, 이집트인은 1년을 12개월, 30일을 한 달로 하고 여기에 5일을 덧붙임으로써 계절이 역과 일치하여 규칙적으로 순환하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용감히 싸운 민족에 대해서는, 세소스트리스는 언제나 자신과 조국의 이름, 그리고 자신의 무력으로 그 민족을 정복하게 된 내력을 기록한 기념비를 그 나라에 세웠다. 또한 전투도 하지 않고 쉽게 정복한 나라에슨 앞의 경우와 똑 같은 사항과 더불어 여자의 성기를 기념비에 새겨 넣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 나라의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용기가 없었음을 나타내려 했던 것이다.
■ 세소스트리스왕은 국토를 전 이집트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같은 넓이의 네모형 토지로 나누어 주고, 그에 따라 매년 공물을 바치게 하여 나라의 재정을 확보했다 한다. 강의 침식에 의해 소유지의 일부를 잃은 자가 있을 경우에는, 해당인은 왕 앞에 출두하여 그것을 보고하고 왕은 사람을 보내 토지의 감소분을 측정케 한 후 그에 합당한 납세율로 공물을 바치게 했다. 생각건데 기하학은 이러한 동기에서 발명되어 뒤에 그리스에 건너오게 된 것 같다. 한편 그리스인은 해시계, 해시계의 바늘, 또한 하루의 12분법 등을 바빌론인으로부터 배웠다.
■ 아마시스가 소장하고 있던 무수한 재보 가운데 발을 닦는 데 사용하는 황금제 대야가 있었다. 아마시스 자신도 배석자도 모두 언제나 이 대야로 발을 씻고 있었는데, 아마시스는 이 대야를 녹여 이것으로 신상을 만들게 하여 도시의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장소에 세워 놓게 했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은 이 신상에 참배하고 이것을 크게 숭상했다. 시민들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아마시스는 이집트인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이 숭상하고 있는 신상은 실은 전에 그들이 그 안에 토하거나 소변을 보거나 발을 집어넣고 닦던 대야로 만든 것이라고 그 진상을 밝히고, 이어서 자신도 이 발 닦는 대야의 경우와 똑같이 전에는 일개 평민이었지만 이제는 어쨌든 그들의 왕이 되었으니 자신을 존경하라고 명했다.
■ 태양신은 그 광선이 화살로 비유되어 사수로 간주되고 있었다.
■ 이렇게 하여 히스타스페스의 아들 다레이오스는 왕위에 올랐다. 아시아의 여러 민족은 처음에는 키루스에 의해, 뒤에는 캄비세스에 의해 평정되었던 아라비아인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레이오스에게 복속하게 되었다. 아라비아인은 일찍이 페르시아에 예속되지 않고 캄비세스의 이집트 원정시 그곳을 통과하는 데 편의를 봐주어 페르시아의 우방이 되어 있었다.
■ 페르시아인은 다레이오스는 장사꾼, 캄비세스는 폭군, 키루스는 아버지였다고 말하고 있다.
■ 인도인의 국토 동쪽은 사막을 이루고 있는바, 우리가 다소라도 확실한 지식을 갖고 있는 한에서는 아시아에 사는 인류 중에서 가장 동쪽에 사는 민족이다. 인도의 동쪽은 사막인 까닭에 아무도 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인도에는 그 열매에서 털을 뽑는 야생 나무도 있다.(목화) 그런데 이 털은 그 겉모습도 질도 양에서 취한 털보다 우수하다. 인도인은 이 나무의 열매로 만든 의류를 입고 있다.
■ 겁이 많고 다른 짐승의 먹이가 되는 그런 생물은 끝없이 잡아먹혀도 전멸되지 않도록 모두 번식력이 강하게 창조하고, 사납고 해악을 끼치는 그런 짐승은 그 번식력을 약하게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하는 믿음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
■ 우리가 무장한 모습을 보았을 때는 그들도 자연히 그들 자신이 우리와 대등하고 출신 성분도 똑같다고 생각했을 것이지만, 우리가 무기 대신 채찍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우리의 노예임을 깨닫고는 저항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 이란계 사회에서 컵은 사제 계급, 전쟁용 도끼는 무사 계급, 쟁기의 멍에는 농민 계급을 상징했던 것이다.
■ 스키타이 민족의 자위 방법 : 그들을 공격하는 자는 한 사람도 살아 돌아갈 수 없고, 그들이 충돌을 피하려 들면 어느 누구도 그들을 사로잡을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도시도 성채도 짓지 않고, 어느 곳을 가든 끌고 다니는 수레 안에서 거주하며, 말 위에서 활과 화살을 갖고 전투를 벌이고, 생활은 농경이 아니라 가축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민족을 맞아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으며 접근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 페르시아 놈들아, 네놈들이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든지, 쥐가 되어 땅속으로 숨든지, 아니면 개구리가 되어 호수 속으로 뛰어들지 않는 한, 반드시 이 화살에 꿰뚫려 무사히 귀국하지 못할 것이다.
■ 트라키아 : 문신을 새겨 넣은 자는 고귀한 태생으로 여겨지고, 문신이 없는 자는 비천한 출신으로 간주된다. 노동을 하지 않는 자를 가장 훌륭한 인간으로 여기고, 토지를 경작하는 자를 제일 하찮게 생각한다. 전쟁과 약탈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가장 훌륭한 생활 방식으로 존중한다.
■ 누구든 최초로 아이를 건네 받은 자가 아이를 땅에 내던져 죽이기로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는데, 라브다가 아기를 안고 와 건넬 때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신의 섭리였는지 건네 받은 자를 향해 아기가 방긋 웃었다오. 그 남자는 그것을 보고 왠지 가여운 생각이 들어 차마 아이를 죽일 수가 없어서 다른 남자에게 아이를 건네고 말았소. 그리고 그 남자도 다시 옆에 있는 자에게 아이를 건네, 그렇게 하여 마침내 열 명 모두 차례로 아이를 안아 보게 되었지만, 누구 한 사람 아이를 죽일 수가 없었소.
■ 스파르타의 클레오메네스 한 사람조차 속이지 못했던 아리스타고라스가 3만 명의 아테네인을 상대로 하여 성공한 것을 보면, 한 사람을 속이기보다 다수의 인간을 기만하는 쪽이 보다 용이함을 알 수 있다.
■ 이리하여 사르데스 시는 화재로 온통 불타 없어지고 말았는데, 이때 시내에 있었던 그 땅의 씨족신 키베베의 신전도 동시에 불타 버리고 말았다. 그 후 페르시아군이 그리스의 신전을 불태워 버렸을 때, 언제나 구실로 내세웠던 것은 바로 이 사건이었다.
■ 왕은 그 보고를 들었을 때, 이오니아인에 대해서는 머지않아 그들이 반란에 따른 대가를 치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지만, 아테네인에 대해서는 그들은 어떤 자들인가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답을 듣자, 왕은 활을 집어 들고 화살을 잰 다음 하늘을 향해 쏘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제우스여, 아테네인에게 보복할 것을 제게 허락하소서.” 다레이오스는 이렇게 말한 후 이번에는 하인 중 한 명에게 식사 시중을 들 때마다 왕을 향해 “전하, 아테네인을 잊지 마소서” 하고 세번씩 말하라고 명했다는 것이다.
■ 히스티아이오스여, 일의 진상은 이렇소. 구두는 그대가 만들었고 아리스타고라스는 그걸 단지 신기만 했을 뿐이오.
■ 모든 수목 가운데서 소나무만이 일단 베어지면 다시는 싹을 틔우지 못하고 완전히 고사해 버린다고 말했다.
■ 나는 부왕을 비롯한 페르시아 국민들을 대신하여, 우리와 부왕에 대해 수많은 부정 행위를 저질러 온 아테네를 점령하여 불태워 버리기까지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오.
■ 동물 중에서 신의 번개에 맞아 죽는 것은 오직 눈에 띄게 큰 것들뿐으로, 신께서는 그렇게 해서 그들이 지나치게 우쭐거리지 않도록 하십니다.
■ 저는 계략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모든 예측키 어려운 사태를 고려하면서 소심하게 행동하고, 실행에 있어서는 대담무쌍하게 행동하는 자야말로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제우스신이시여, 그리스를 파멸시킬 의향이시라면 어찌 페르시아인의 모습을 하시고 이름도 바꾸어 크세르크세스라 하신 채 세상의 모든 인간을 끌고 오셨습니까? 당신이시라면 그러한 수고를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바라는 대로 하실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 다나에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페르세우스가 벨로스의 아들 케페우스를 방문해 그의 딸 안드로메다를 아내로 맞아들인 후 거기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나 페르세스라 이름지었는데, 그는 이 자식을 그 땅에 남겨 두었다. 케페우스에게는 남자 자식이 없었기 때문인데, 페르시아인이라는 호칭은 이 페르세스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 즉 노예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계시지만, 자유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경험한 일이 없으시기 때문에 그것이 단지 아니면 쓴지 모르고 계십니다. 그러나 각하께서도 일단 자유의 맛을 알게 되신다면, 자유를 위해서는 창뿐만 아니라 손도끼라도 들고 싸워야 한다고 우리에게 권하게 되실 것입니다.
■ 만일 인간이 모두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의 불행과 교환하고자 각각의 불행을 들고 모였을 경우, 다른 사람의 불행을 자세히 검토한 후에는 반드시 누구나 가져온 자신의 불행을 흔연히 그대로 갖고 돌아가리라는 것이다.
■ 인간인 한 불운을 모르고 행운만 지니고 태어나는 자는 한 사람도 없으며, 또한 권세가 있는 자일수록 더 큰 불행을 겪게 마련이오. 그러므로 지금 침입해 온 자도 인간인 한 반드시 그의 커다란 기대에 합당한 실망을 맛보게 될 것이오.
■ 그런데 그리스군은 나라마다 각각의 지휘관을 받들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신망이 높고 또한 전군의 지휘를 맡고 있었던 자는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였다.
■ 여행자여, 가서 스파르타인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들의 명을 수행하고 여기에 누워 있다고.
■ 펠라스고이인이 현재의 그리스(헬라스) 땅을 점유하고 있을 때에는 아테네인도 펠라스고이인으로서 크라나오이인이라 불리었다. 뒤이어 케크롭스 왕의 시대에는 케크로피다이(케크롭스 일족)라 불리다가 에레크테우스가 왕위를 계승하기에 이르러 아테네인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 에레크테우스가 여신 아테네에 의해 양육되었기 때문 – 나아가 크수토스의 아들 이온이 아테네의 군사령관이 되었을 때 그 이름을 따 이오니아인으로 불리게 됐던 것이다.
■ 이국의 친구여, 신이 정해 놓은 일은 인간의 손으로는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소. 페르시아인 중에도 지금 내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아는 자가 적지 않소.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필연’의 힘에 속박되어 정해진 대로 따라가는 데 불과하오. 우리의 경고가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휘관도 그것을 믿지 않으니 말이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여러 가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힘이 없기 때문에 실행할 수 없는 것만큼 비참한 고통은 없소.
■ 부드러운 땅에서는 부드러운 인간이 나오듯이, 훌륭한 작물과 전쟁에 강한 남자는 그러한 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페르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키루스에 미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키루스 앞을 물러 나와 비옥한 땅을 일구며 타국에 예속해서 사느니보다 척박한 땅에 살며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길을 택하기로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