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이 되는 날 아침, 나는 날이 바짝 선 가위 앞에 앉아야 했다. 아침 내내 숫돌에 무뎌진 날을 갈리며 풀벌레처럼 울던 가위의 민날은 시퍼렇게 되살아나 입을 꾹 다문 채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위의 두 민날이 내 정수리 위에서 서로 교차하며 머리카락 끝을 앙칼지게 자르는 순간, 나는 추운 날 오줌을 쏟아 낸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 p.5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가슴으로 느낀 것은 예닐곱 살 때였다. 그 때만 해도 태성이발소에는 내 또래 사내아이들이 아버지 손을 붙잡고 왔다. 아이들은 제 아버지 앞에서 머리를 깎았고, 아버지들은 마치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치르는 양 엄숙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 이발소 낡은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 한글 쓰기나 수학 학습지 따위를 풀던 나는 크는 것을 확인해 줄 아버지가 없어 영영 어른이 되지 못할까 봐 겁났다. --- p.11
매독이 악을 쓰며 밀어뜨리고 닥치는 대로 발로 걷어차도 나는 내 손아귀에 있는 손목을 놓지 않았다. 나는 미친개를 물어뜯는 단단히 미친 개였다. 엄마 나, 단단해진 것 맞나요? 나는 속목이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릴수록 더 다부지게 파고들었다. 매독은 발길질을 하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를 손목에 매단 채 잡아끌면서 온갖 욕을 퍼부었다. “이 개새끼!” --- pp.50~52
그런데 일호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바로 그 순간에, 느닷없이 17년 동안 부재했던 일호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햇빛이 거리를 환하게 비추기 시작하던 여름날 아침” 손님 맞을 채비를 하다가 “갑작스레 이발소 문을 열고 거리로” 나온 뒤, 그 길로 먼 여행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김해원의 『열일곱 살의 털』은 이상한 작품이다. 우선 제목이 흥미롭다. 털, 이라니…. 어떤 털을 말하는 것인가, 하고 주위 눈치를 보며 몰래 작품을 읽게 만든다. 난 또, 뭐라고, 머리털을 말하는 거였군, 흥미가 덜해지는 순간, 기구한 머리털 이야기의 재미가 시작된다. 심사위원들은 일단 집중력에 감탄했다. 머리카락 이야기 하나만으로 소설을 끝까지 밀고 간 작품이 있었던가요· 없었죠! 그러나 집중력뿐이었다면 소설은 ‘머리카락의 문화사’ 같은 논문으로 변질되고 말았을 것이다. 집중력에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평범해 보이지만 독창적인 캐릭터, 은근한 유머가 더해지자 독특한 작품이 탄생했다. 문장 역시 평범해 보이지만 정확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깨뜨리지 않는다. 남자아이들의 이야기를 힘 있게 그려낸 것은 근래 보기 드물었던 특별한 재능이라 할 만하다. 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카락 이야기에 온 머리를 집중하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머리카락 이야기가 과한 부분이 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이야기의 설득력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의 매력을 망가뜨리지는 않았다. 『열일곱 살의 털』을 이상한 작품이라고 표현한 것은,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작품인데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문제아도, 장애인도 아니다. 평범한 아이다. 눈물날 만큼 감동적인 이야기도 없으며, 대단한 모험을 겪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다. 소설 읽는 맛이 살아 있다. 요즘처럼 버라이어티한 세상에서 이런 장점이 오히려 새롭게 느껴진다. 새로워 보이지 않지만 새로운 작품, 『열일곱 살의 털』을 대상으로 뽑게 됐다. 심사위원들은 쉽게 마음을 모았다. 여담이지만, 심사위원들은 『열일곱 살의 털』을 대상으로 뽑은 후 한참 동안 각자의 털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누구나 자신의 털 이야기가 하고 싶어질 것이다. 오정희·박상률·김중혁 (제6회 사계절문학상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