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하게나마 미지근한 공기가 서서히 퍼져 흘렀다. 그리 따뜻한 것은 아니었지만, 손을 높이 들어 통풍구 근처에 대면, 확실히 따뜻한 느낌이 전해졌다. 난 두 손을 들어 올린 다음 손바닥으로 양쪽 뺨을 지그시 눌러 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죽어 가는 동물이 내뱉은 마지막 숨결 같아.”
제이슨이 말했다.
그 순간, 내가 제이슨에게 왜 바보처럼 굴었는지 깨달았다. 녀석이 나를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어제까지 내가 녀석보다 한두 단계 앞서 있었다. 인기도 더 있고, 더 똑똑하고, 더 근육질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폐쇄된 학교에서는 제이슨 녀석이 앞서고 있었다. 사람들이 녀석에 대해 나쁘게 생각한 모든 점들이 지금은 이로운 점이 되어 있었다.
--- p.114
크리스타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위대한 갯츠비》였다. 작고 얇은 책이었다. 잠시 뒤 크리스타는 커다란 스키 장갑을 낀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데 집중했다. 가슴 가까이로 무릎을 끌어당기고 두 발을 포개 놓은 자세였다. 작고 하얀 끈 없는 스니커즈를 신고서.
가만히 쳐다보았다. 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순간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크리스타의 표정, 두 발을 포개 놓은 모양새……. 이제껏 내가 본 모습 중에서 최고로 아름다웠다. 나는 완전히 반해 버렸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파도에 쓸려 나간 적이 있었다. 몸이 뒤집어지고 짠물을 내뱉으며 물 밖으로 나왔을 때 어지러워 방향 감각도 잃고 허둥대던 기억, 다시 파도가 밀려왔을 때 제대로 서 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니까 내 심정이 바로 그랬다. 짠물을 뱉어 내고 있지만 않을 뿐,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중략)
그 순간 크리스타가 고개를 서서히 들어올렸다. 나를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크리스타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 안 돼.”
크리스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도 창밖을 내다보았다. 다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 pp.199~200
하루가 서서히 흘러갔다. 일찍 어두워진 만큼, 아침이 오려면 한참 남아 있었다. 며칠 동안 우리는 다 함께 모여서 커다랗게 둘러앉아 끼니를 때웠다. 소리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꺼내지 않았고, 소리도 종적을 감춘 듯했다. 이제 우리는 무겁고 우울한 고요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두셋씩 어울려 저녁 식사를 때웠다.
“눈 내리는 속도가 느려졌어.”
엘리야가 창가에서 자리로 돌아오며 말했다.
정말 그랬다. 눈은 하루 종일 변덕을 부리며 내렸고, 그 누구도 그런 눈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만 몇 시간도 안 되어 다시 맹렬하게 퍼부어 댔기 때문이었다. 둘째, 아주 작은 눈송이 하나도 결국 눈은 눈이었다. 티끌만 한 눈송이라도 계속 내리면 우리 머리 위로 쌓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설령 언젠가 눈이 멈추고, 날씨가 풀린다고 해도, 눈이 녹으면 건물 붕괴를 독촉할 뿐이었다.
아홉 시가 가까워지자, 건물 안도 밖도 칠흑처럼 어두웠다. 눈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중략) 나는 가브리엘 대천사에게 기도를 올렸다. 할 수만 있다면, 가브리엘 대천사에게 트럼펫을 내려놓고 삽을 들고 우리를 위해 지붕의 눈을 쓸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 pp.249~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