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퍼니아 아줌마는 정오가 되어서야 우리를 깨웠다. 아버지는 잠을 푹자지 못한 상태에선 어떤 것도 배울 수 없다며 우리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우린 칼퍼니아 아줌마의 명령에 따라 앞마당으로 나갔다. 머디 아줌마의 밀짚모자가 얇은 얼음 속에 박혀 있었다. 호박반지 속에 있는 파리를 연상시켰다. 우린 원예용 가위를 흙 속에서 찾아냈다. 뒷마당으로 가보니 머디 아줌마가 얼어붙은 철쭉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가위 가져왔어요. 정말이지 안된 일이에요.'
뒤돌아보는 머디 아줌마의 얼굴 위로 친근한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난 항상 작은 집을 윈했단다, 젬 핀치. 하느님께서 철쭉꽃을 심을 더 넓은 땅을 주신 거야!'
--- p.113
우리는 길모퉁이에 있는 전신주에 다달았다. 딜은 저 굵직한 전신주를 껴안고 래들리 집을 바라다보며 얼마나 오랫동안 호기심을 키웠었던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오빠와 함께 이곳을 지나쳤던가. 나는 생애 두 번째로 래들리 집 대문으로 들어가서 현관계단까지 올라갔다. 그의 손이 문고리를 더듬고는 부드럽게 내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 p.406
오빠와 내가 더 어렸을 때 우리의 활동범위는 남쪽 동네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가 이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부 래들리를 귀찮게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 되어버렸고 점점 메이컴의 상업지역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그때 우린 두보스 할머니 집 앞을 지나쳐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일 마일 정도를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그 할머니와 그다지 맞닥뜨릴 일이 없었지만 앞으론 더 많아질 거라고 오빠는 말했다.
두보스 할머니는 집 안 일을 돌봐주는 흑인 소녀는 두고 혼자 살았다. 그집은 우리집 쪽에서 두 집 건너 있었는데 가파른 계단과 좁은 통로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너무 늙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와 윌체어에서 지내고 있었다.
--- 202001/03/17 (haruki01)
열 세살을 맞이한 오빠는 그해부터 달라져갔다. 변덕스럽고 가끔은 우울해보여서 그전처럼 오빠와 어울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오빠의 식욕은 놀라울 정도로 왕성해졌고 내게하는 말이란 고작 귀찮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 뿐이였다.
--- p.168
'아니야, 사람은 다 배우면서 알아가는 거야.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아는 건 아니라구. 월터도 자기가 하는 일은 잘 알아. 밖에 나가서 아빠를 도와야 하기 때문에 못 하는 것뿐이지.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오빠, 난 사람들은 모두 한 종류 뿐이라고 생각해.'
오빠는 몸을 돌려 베개에 펀치를 먹이곤 머리를 편하게 기댔다. 오빠는 차츰 우울해졌고 나는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오빠의 눈썹이 한데로 모이고, 입술은 가는 선이 되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도 네 나이 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오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걸까? 그들이 모두 동등하다면 왜 고의적으로 서로 경멸할까? 스카웃, 난 이제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아. 난 왜 부 래들리가 집 안에만 틀어박힌 채 살아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단지 그 안에 머물고 싶기 때문일거야.'
--- p. 329-330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머디 아줌마 옆에 앉았다. 숙녀들께선 왜 길 하나를 건너오는 데도 모자까지 써야 하는지 궁금해 하면서......부인들 여럿이 모여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그녀들에게선 종잡을 수 없는 염려와 어딘가에 숨겨진 확고부동한 욕구들로 가득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p.333
그들을 성숙시킨 사건의 열쇠는 검둥이라는 이유만으로 강간범으로 몰린 흑인 톰 로빈슨을 그들의 아버지가 변호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로빈슨의 결백을 명백하게 증명했는데도 배심원들은 결국 유죄라고 결정한다. 뿌리깊은 인종적 편견을 지켜본 젬은 눈물을 흘리며 인종 편견 타파를 맹세한다. 이 소설 속에서의 또하나의 재미는 속세와 단절하고 사는 이웃에 대한 미스터리에 있다. 그 미스터리의 주인공 부 래들리는 그 아버지의 양보 없는 종교성과 그 집안 자존심의 희생자로서 점차적으로 그 시대 사회 구조적 편견의 희생양이 되어 어른을 무서워하는 어린아이 성향으로 변해간다.
--- p.12
그 아저씬 그렇게 행동하도록 되어 있어. 그분이 반대신문을... 그 전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어, 그 아저씨... 그 사람들은 그가 세운 증인이었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핀치 아저씨는 그 늙은 이웰과 마옐라를 신문할 때도 그렇게 하진 않았어. 그런데 그 사람은 항상 얘야 어쩌구 하면서 반말로 빈정대고, 그가 대답하고 나면 배심원들을 휘둘러봤단 말이야. 그래 딜. 어찌됐던 그건 톰이 검둥이기 때문이야. 난 그런 거 상관 안 해. 그건 옳지 않아, 누구든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어. 그것이 나를 구역질나게 하는 거야.
--- p.287
'광대 말이야, 난 세상에서 웃기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도 없어. 그러니까 서커스단에 들어가서 실컷 웃어버릴 거야.'
'넌 취소하게 될걸.'
오빠가 말을 받았다.
'광대들은 슬퍼. 사람들은 바로 그걸 보고 웃는 거야.'
--- p.313
고모는 나의 옷차림에 대해선 거의 광적이다시피 했다. 치마를 입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반바지는 숙녀되기를 포기하는 것이고, 밤낮 그런 바지만 입으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될 거라고 못박았다. 그리고 내가 태어났을 때 고모가 준 진주박힌 목걸이를 하고 소꿉장난이나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품행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난 아버지의 고독한 생애에 한줄기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바지차림으로도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고모는 그렇게 되려면 태양 빛과 같은 행동을 해야만 할 것이라고 하며 나는 잘 태어났지만 해가 갈수록 못되게 자란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 식으로 내 감정을 아프게 한다면 나는 고모를 영원히 싫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아버지와 의논했다.
--- p.125
결국 톰 로빈슨과 부 래들리라는 소외된 이웃은 아이들에게 진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즉, '앵무새'는 두 이웃의 기쁨과 양심을 상징하고 있다.
'집에까지 같이 가주겠니?'
그는 나즈막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어린아이의 음성이었다.
--- 머리말,---p.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