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8년 1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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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00쪽 | 535g | 153*215*30mm |
ISBN13 | 9788990220882 |
ISBN10 | 8990220882 |
발행일 | 2008년 1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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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00쪽 | 535g | 153*215*30mm |
ISBN13 | 9788990220882 |
ISBN10 | 8990220882 |
1부 금성의 태양면 통과 2부 천연두 파티 3부 자유와 사유재산 4부 존재의 거대한 사슬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
"흑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실험은 실재했다"는 글을 읽으면서도 왜이리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이라서?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책을 읽는동안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 있었던, 고귀하게 길러졌지만 자신도 노예일 뿐이었던 옥타비안과 다르게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처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갔다는 것이었다. 실제 자신의 신분이 공주이긴 했지만 "흑인도 고등교육을 통해 백인과 같은 지적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 대상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보스턴의 저택에서 비싼 드레스를 입은 화려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공주의 신분에 맞는 대접을 받는 모습은, 그녀가 지적이고 교양이 높은 사람으로 보여질수록 나는 옥타비안이 겪는 내적 갈등과 고통에 그녀에게는 동정심마저 가질 수가 없었다. 물론 천연두 파티에서 희생된 그때부터 그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긴 했지만 크게 다르게 느껴지진 않았다.
옥타비안과 그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리어진다. 03-01이 주로 두 사람의 실험을 맡고 있는데 다른 이들이 숫자로 불리어지는 이 상황이 오히려 그들이 실험대상으로 보여지게도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름이 아닌 숫자로 그 사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독자들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라 나중에는 이 숫자가 누구를 말하는지 기억나지 않아 옥타비안이 훗날 과거를 회상하며 쓴 이 글에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지지 않았다면 앞에 설명된 문장을 찾아보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뱅글리안 석학협회'의 리처드 샤프가 이 실험에 동참하게 되었을 때 실험의 명제는 바뀐다. 이때부터 옥타비안과 그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는 자신이 실험자들에게 속한 사유재산으로, 실험대상으로 처지가 바뀐다. 하인들이 하던 일을 자신들이 맡아서 하게 되고 신분에 맞는 옷이 주어지며 맡은 일을 해내지 못하면 채찍을 맞는 옥타비안은 육체적인 고통은 있을지언정 그때부터 그는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다. 다른 곳으로 팔려가기 전까지 옥타비안과 카시오페이아의 의지처가 되어 주었던 보노와 더불어 옥타비안은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옥타비안이 세상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에 부딪치며 자신이 배운 것들이 흑인으로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을 보고 절망했을까. 자신의 처지를 더 잘 알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한 답변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이 실험대상이 아닌 진짜 인감임을 느꼈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재능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땅을 파는 단순한 노동일지라도 그는 여기에서 자유를 느낀다. 그동안 옥타비안이 배웠던 교육들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 적이 있다면 아마도 트레퓨시스 박사와 함께 탈출했을 때일 것이다. 전략적으로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실험자의 손에서 멀리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이것이 옥타비안이 세상에서 배운 생존방식이요, 자신의 의지로 행한 일이었다.
흑인의 시선으로 노예제도를 바라본다는 것이 괜찮았다. 하지만 늘 승자에 의해 쓰여진 글들을 통해 실상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흑인들이 겪었던 노예제도를 그 안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은 좋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더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없는 걸림돌이 된 것 같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고 모든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늘 수동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옥타비안을 보면서, 결국엔 실험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독자들까지도 옥타비안과 같이 의지가 묶여버린 듯 감정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없었고 억압된 삶에 짓눌린 사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야에서 보고 느끼고 행한 것들을 넘어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때만이 옥타비안은 물론 독자들도 이 문제를 제대로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진 시선으로 본 것이 아닌 제 3자의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글을 썼다면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랬다면 지루하지 않게 독자들을 이끌어 갔을 테니 말이다.
오바마라는 흑인 대통령이 미국에 최초로 탄생한 올 겨울 이 소설은 내게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흑인이 동물 실험의 대상처럼 키워졌다니! 도대체 어떤 소설인지 궁금했다.
이 소설은 미국독립 전쟁 당시 흑인 소년 옥타비안과 그의 어머니가 백인 연구자들에 의해 실험용으로 길러지던 상황을 소재로 하고 있다. 처음 이 소설의 홍보 문구를 보면서 과연 그게 사실인가,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 읽어가면서도 어느 정도 가상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프리카 공주고 자신과 어머니만 이름이 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숫자로 불리는 상황, 심지어 자신이 먹은 양과 자신의 똥의 무게까지 재야하는 상황 등은 모두 황당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음의 소설 구절을 보면 사실 우리는 어느 정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만 사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성장 환경을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특수함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모든 아이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이처럼 옥타비안 역시 자신의 성장 환경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점차 자신의 환경에 의문을 품게 된다. 같은 흑인이면서 비참한 하인의 처지인 보노는 그에게 세상으로 열린 유일한 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급변하는 미국의 정세 역시 옥타비안을 우물 안 개구리로 그냥 놔두지 않는다. 후원인이었던 첼소프 박사의 죽음으로 그 조카가 대신 백작이 되어 그 실험실인 저택을 방문하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시작된다. 젊은 백작과 어머니의 연애사건과 파국은 그 둘에게 다시는 행복한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가혹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 장면에서 나는 숨조차 쉬지 못한 채 그 어두운 밤의 비극에 빠져들었다. 나중에 어머니가 영국에서 흑인 노예가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뼈속 깊은 통탄에 빠진 모습은 내 마음까지 찢어지게 아프게 했다.
석학협회는 새로운 후원자를 찾고 흑인이 과학과 예술을 습득하는 능력 면에서 백인과 대등한지 연구하던 상황에서 흑인의 저능함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만다. 이 상황에서 천연두 파티가 벌어진다. ‘천연두 파티’는 실제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행해진 일이지만 그 재체 엄청난 비극성과 위험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결국 천연두 파티는 썩을 대로 썩은 미국 백인 사회의 상처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 상처는 결국 멀쩡한 사람들마저 고름에 차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어머니를 잃은 상처는 소년을 성인으로 성장하게 한다. 소설은 이후 다양한 기법으로 소년의 상처와 복잡한 내면을 전달한다. 소년이 피맺힌 한으로 썼을 편지는 차마 표현하지 못해 수없이 지운 흔적과 함께 제시되고, 보고서 형식, 편지 형식 등에 의해 사건의 전말이 전달된다. 이후 3부는 옥타비안의 목소리를 버리고 외부 관찰자인 한 백인 군인의 편지에 의해 그 모습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이를 통해 좀더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현실을 응시할 수 있으며, 한편 옥타비안이 겪었을 상황과 그 내면을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적극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사회에서 보편이라고 하는 것, 일반적이고 하는 것, 과학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의문을 품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인종 문제 역시 우리도 차별의 문제로, 자유의 문제로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옥타비안이 슬픔을 힘으로 해서 어떻게 세상과 맞서 나갈지 2부가 기대된다.
백인과 흑인. 색깔의 희고 검은 차이지만 단순한 그 차이가 역사 속에서 내가 느끼기에 억울해 보이는 일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아직도 그런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고 나는 평소 생각해왔다. 바로 그러한 미묘한 차이로 자신을 우월하다고 믿은 미국인들은 흑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실험을 한다. 실재했던 역사를 바탕으로 이 소설은 쓰여지고 있다.
옥타비안이 살고 있는 이상한 집안의 이야기가 옥타비안의 입을 통해서 먼저 이야기되고 있다. 그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옥타비안이 사는 저택은 거기서 일어나는 일마저도 괴상해 보인다. 사실 그 저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소설을 보는 독자들은 대충이지만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집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불안하고 겁이 나는 이야기들이었다. 어느새 옥타비안의 처지에서 상황을 보고 느끼며 동화되게 하는 흡인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조금은 천천히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 느린 속도 속에서 보여진 교육실험이 쉬지않고 진행되는 전개는 손 뗄 수 없이 즐겁게 했다.
그리고 또한 나는 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옥타비안이 소풍을 가서 놀이를 하던 그 날을 말하며 “혼자 라틴어를 중얼거리며 보내던 수많은 날엔 느낄 수 없었던 건강과 활력이(본문 p.29)” 있었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놀이를 하는 그 순간에도 학자들은 실험과 그 실험을 위한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 비인간적인 실험, 그것을 보고 있는 나조차도 인간에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날 옥타비안의 자세처럼 네 발 달린 동물보다도 못할 것 같다.
왜 그들은 자신의 실험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자신의 머리들은 그런 곳에 써야만 했을까? 옥타비안이 우연히 민병대에 가게 된 그 우연이 문득문득 다행이라고 여기기도 많이 여겼지만 탈출한 옥타비안이 다시 잡혔을 때 한 장이라도 더 빨리 넘기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검은 반역자 옥타비안의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 책은 재미도 있지만 의미도 깊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