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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1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08쪽 | 153*224*30mm
ISBN13 9788936802233
ISBN10 8936802232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옛 우물
2. 저 언덕
3. 비어 있는 들
4. 저녁의 게임
5. 유년의 뜰
6. 동경
7. 중국인 거리
8. 인어
9. 순례자의 노래
10. 새벽별
11. 파로호
12. 여성적 정체성을 향하여 - 김혜순
13. 미학의 정점(오정희 소설) - 임순만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할머니는 과장된 노기로 목청을 높였다. 할먼니의, 어머니에 대한 말투에는 언제나 면목없어하는 듯한 아첨기가 있었고, 어머니 역시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속이 쉬이 꺼져서 그래요. 보리밥이 무슨 맥이 있나요. 한참 먹을 나인데...아무거나 집어먹어 속을 채워야죠. 어머니가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은 흡사 술주정 같기도, 푸념 같기도 했다.
--- p. 183
추억이란 물속에서 건져낸 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물속에서 갖가지 빛깔로 아름답던 것들도 물에서 건져내면 평범한 무늬와 결을 내보이며 삭막하게 말라가는 하나의 돌일뿐. 우리가 종내 무덤속의 흰뼈로 남듯, 돌에게 찬란한 무늬를 입히는 것은 물과 시간의 흐름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종종 이즈음에도 옛날 우물과 금빛 잉어의 꿈을 꾼다.
--- p.39
그가 죽고 내 안의 무엇인가가 죽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 저녁쌀을 씻다가 문득 눈을 들어 어두워지는 숲이나 낙조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물에 떨어진 한 방울 피의 사소한 풀림처럼 습관 속에 은은히 녹아 있는 그의 존재와 부재, 원근법이 모범적으로 구사된 그림의, 점점 멀어져가는 풍경의 끝, 시야 밖으로 사라진 까마득한 소실점으로 그는 존재한다. 지금의 나는 지나간 나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가끔 행복하고 가끔 불행감을 느낀다.
--- p. 37

회원리뷰 (8건) 리뷰 총점8.9

혜택 및 유의사항?
옛 우물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e****5 | 2021.02.2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독서하는 동안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질의 깊이와 높이가 있다는 말이다. 요즘 스토리 위주로 글을 쓰는 젊은 작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성도 높은 소설이다. 문장 표현과 구성이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다. 작가에 대한 존경심에, 나는 절대로 이런 소설가는 될 수 없을 거라는 이른 단념을 하게 한다. 이런 좋은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리뷰제목

독서하는 동안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질의 깊이와 높이가 있다는 말이다.

요즘 스토리 위주로 글을 쓰는 젊은 작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성도 높은 소설이다. 문장 표현과 구성이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다. 작가에 대한 존경심에, 나는 절대로 이런 소설가는 될 수 없을 거라는 이른 단념을 하게 한다. 이런 좋은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독자로서의 즐거움과 삶에서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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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옛우물'을 읽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2010.08.3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작은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만성 편두통과 임신 중의 변비로 인한 치질에 시달리는 '나'는 마흔다섯 살의 생일 아침에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생경함을 느낀다.   '나'는 종종 전에 살던 '작은 집'에 가 창 아래로 보이는 연당집을 말없이 내려다본다. '나'의 남편은 '작은 집'을 팔자고 주장하지만 '나'는 집을 팔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연당집의 바보가;
리뷰제목

작은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만성 편두통과 임신 중의 변비로 인한 치질에 시달리는 '나'는 마흔다섯 살의 생일 아침에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생경함을 느낀다.

 

'나'는 종종 전에 살던 '작은 집'에 가 창 아래로 보이는 연당집을 말없이 내려다본다. '나'의 남편은 '작은 집'을 팔자고 주장하지만 '나'는 집을 팔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연당집의 바보가 울타리를 허물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일종의 향수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당집은 헐리고 있다. 옛우물은 메워지고, '나'는  마흔 다섯이라는 나이를 먹었다. '나'도 언젠간 죽어갈 것이다. 인간이란 것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가. 

 

헐리는 연당집을 보면서 '나'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것은 연당집의 울타리를 허물면서 바보가 때때로 느끼는 불안감과 같은 종류의 것이리라. '나'가 한때 사랑했던 '그'의 부재로 인한 혼란과 고통을 느끼는 것도 '나' 자신이지만, '그'와의 여행에서 결국은 돌아서야 했던 것 역시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나'는 추억과 회상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나'로 인해 사라진 것, 다른 것에 의해 사라진 '나'를 끝없이 꺼내어볼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의 부고란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한 '나'는 가장 먼저 거울에 조각조각 균열된 자신의 얼굴을 본다. 이 행동은 일상생활에서 '그'의 죽음이 그 일상에 어떤 균열을 가져옴을 뜻한다. 이때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오랜 세월 길들여진 관습과 관행이 한순간에 깨진 얼굴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거울이나 물위로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습관을 갖게 된다. 또 이미 죽어버린 '그'의 전화번호를 헛되이 누르곤 한다. 아직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나'가 어릴 적 소문으로 떠돌았던 금빛잉어는 환상의 존재였다. 그 누구보다도 금빛잉어의 존재를 믿었던 정옥은 결국 우물에 빠져죽고 그 옛 우물도 메워진다. 정옥은 현실을 떠나 금빛잉어의 세계로 간 것이다.

 

옛 우물의 바닥을 아무리 긁어내도 금빛잉어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 있다고 믿을 뿐이었다. 결코 포착되지 않을 삶의 본질을 인간은 끝없이 희구할 수 밖에 없다. '나'가 죽어버린 '그'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것처럼.

 

연당집이 허물어지고 '나'는 지난 과거를 부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작은 집'에서 나와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나'는 나무를 끌어안는다.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를 가슴속에서 떠나보내고, 연당집을 잊고, '작은 집'을 팔 것이다. 그저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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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들의 사라짐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k***h | 2003.02.2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옛날 한 옛날 어느 각시가 우물에 빠뜨린 금비녀가 금빛잉어가 되어 깊은 우물 바닥에 살고 있었다. 물맛이 뒤집혀 우물을 쳐내어보니 깊은 바닥엔 누가 버린지 모를 쇠스랑과 장화짝들, 쓰레기들만 가득할 뿐 기다리던 금빛잉어는 나오지 않았다. 금빛잉어는 맑은 물이 솟아오르는 어느 구멍으로 숨어버렸을 것이라고 순하게 마음을 달랠 수 있던, 가난하지만 있는 그대로 나였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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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 옛날 어느 각시가 우물에 빠뜨린 금비녀가 금빛잉어가 되어 깊은 우물 바닥에 살고 있었다. 물맛이 뒤집혀 우물을 쳐내어보니 깊은 바닥엔 누가 버린지 모를 쇠스랑과 장화짝들, 쓰레기들만 가득할 뿐 기다리던 금빛잉어는 나오지 않았다. 금빛잉어는 맑은 물이 솟아오르는 어느 구멍으로 숨어버렸을 것이라고 순하게 마음을 달랠 수 있던, 가난하지만 있는 그대로 나였던 어린 시절. 보이지 않는 존재를 부인하지 않고 금빛잉어를 계속 꿈꿀 수 있던 지나간 순수한 시절. 그 시절 금빛잉어를 꿈꾸던 주인공은 지금은 어느 지방도시에서 만성적인 편두통과 임신중의 변비로 인한 치질에 시달리는 중년의 주부로, 남편이 낚아온 생선들의 배를 가르며 잉어는 고여있는 썪은 물에 산다는 것을 알아버린 여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끔 물내리는 것을 잊어 변기 속에 천진하게 제모양을 지니고 잠겨있는 똥 외에는 어린 날을 떠올리게 할 것 없는 남편과 그대로만 살아간다면 적당한 연금과 적당한 편의를 누리며 평안한 노후를 보낼 미래가 약속되어 있는 그런 삶을 말이다. 남편의 똥에 대한 그녀의 표현이 재밌다. "천진하게 제 모양을 지니고 물에 잠겨 있는 똥을 볼때 커다란, 늙어가는 그의 속에 변치 않는 모습으로 씨앗처럼 깊이 잠들어 있는 작은 그를, 똥을 누고 나서 자신이 눈 똥을 신기하고 이상해하는 눈길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린아이, 유년의 가난한 흔적을 본다." '옛우물'은 그런 주인공의 현재의 삶과 어린 시절, 지나간 사랑이야기, 연당집의 바보 이야기, 혼자만의 공간으로 은밀하게 사용하고 있는 서민아파트 이야기를 축으로 하여 우물처럼 깊숙한 기억의 공간에 저장되어 있던, 이제는 희미해진 익숙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지옥까지라도, 빛과 소리와 어둠의 끝까지라도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남자 '그'가 죽은 후 가끔 그가 사용하던 번호로 아무도 받지 않는 수화음을 울려본다. 이제는 시야 밖으로 사라진 까마득한 소실점으로만 존재하는 그를 떠올리며 가끔 자신의 공인된 늙음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가 존재함으로 나도 존재하고 그가 죽음으로써 내 안의 무언가도 죽었다고 느낄 수 있는 지독한 연애의 대상이 없는 삶은 그냥 생활이다. 가끔 행복하다고 느끼고 가끔은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리하여 꿈에서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한없이 깊은 옛우물의 속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본다. 우물은 무엇이든 다 담아둘 수 있는, 끝을 모르는 깊숙한 기억의 공간이다. 팔지 않고 남겨둔 값싼 서민아파트에서 그녀는 혼자만의 공간을 즐기고 가난했으나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더워지는 기억이 있던 그 때를 누렇게 변색된 벽지에서, 떨어져 내리는 부엌의 타일에서, 뒤퉁맞게 튀어나와 있는 못자욱에서 확인하곤 하는 것이다. 이 아파트 또한 속깊은 우물처럼, 희미해져가는 익숙함이 가득 고여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아파트를 팔지 못하고 자꾸만 서성이는 게다.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이백년도 넘었다는 연당집은 흐르는 세월에 재처럼 삭아가고 있는 퇴락한 기와집이다. 곧 깨끗이 헐리고 가든이 들어설 것이라는 그 연당집에 그녀는 이상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연당집의 마지막 자손이라는 바보는 집을 헐기 위해 공사를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오래된 나무울타리들을 뽑아내며 분주하다. 이백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우뚝하게 서 있던 연당집은 그 시간들이 잉태해 낸 지나간 기억들, 시간들, 추억들을 가득 품고 있는 하나의 상징물이다. 그 상징물을 제 손으로 헐고 있는 연당집의 후손이 바보로 묘사된 것은 피로하고 권태로운 지금의 우리가 있기 전, 순수하고 무언가에 온통 빠져들 수 있고, 마음을 줄 수 있고 홀랑 빠져버릴 수 있었던 그 기억들을 제 스스로 헐어내고 잊어가는 지금의 나, 지금의 우리에 대한 씁쓸한 자책이다. 익숙한 것들의 사라짐이 남보다 아쉬운 그녀는 옛우물 속 금빛잉어를 찾는 마음으로 그렇게 연당집의 주위를 맴돌았던 모양이다. 추억은 어쩌면 물 속에서 건져올린 돌같은 것인지 모른다고 그녀는 말한다. 물 속에서 갖가지 빛깔로 아름답던 것들도 물에서 건져지면 평범한 무늬와 결을 내보이며 삭막하게 말라가는 하나의 돌일 뿐. 돌에게 찬란한 무늬를 입히는 것은 물과 시간의 흐름일 뿐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우물과 금빛잉어의 꿈을 꾸는 그녀는 언젠가는 금빛잉어가 되었던 금비녀로, 금비녀를 빠뜨린 그 옛날의 각시로 거슬러 올라가 사라져 가는 익숙함들을 붙들고 너울너울 옛우물 속 맑은 물을 헤치고 다닐지 모르겠다. 아쉬운 기억들과 익숙함들이 휘발되어 희미해져 버리기 전 깊은 옛우물의 뚜껑을 꼬옥 덮어두어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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