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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탐한 사무라이

: 상투 잡은 선비, 상투 자른 사무라이

리뷰 총점9.7 리뷰 3건 | 판매지수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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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6년 09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500쪽 | 733g | 152*225*20mm
ISBN13 9791159000201
ISBN10 11590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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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조선과 일본, 출발은 같았으나 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까?

비슷한 시기에 근대화의 여정에 나섰으나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해 식민지로 전락하는 운명으로 엇갈렸다. 106년 전, 조선은 전쟁도 하지 않고 그렇게 나라를 빼앗겼다. 이 책은 ‘조선은 왜 그렇게 당했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하여 조선과 일본의 근대사를 비교 분석한 탐구적 역사 여행의 결과물이다. 지은이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조선의 개항 유적지인 강화도, 초량왜관은 물론 일본의 개항 유적지, 메이지유신 사적지를 수십 차례 현지답사와 고증을 거쳐 조선과 일본의 상반된 근대사를 복원했다. 또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150년간의 한·일 근대사 추적을 통해 지난 역사의 치열한 반성 없이는 다시 일고 있는 동아시아의 격랑 속에서 국가의 자존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머리글

1장 조선을 탐한 조슈 사무라이

900번을 찍어 넘어뜨린 조선
한 마을에서 자란 침탈의 주역들
조선을 탐한 조슈 사무라이
기라성처럼 쏟아진 근대화의 주역들
신국神國의 이데올로그 요시다 쇼인
주유천하 끝에 만난 구로후네
다이로 아베 마사히로의 결단
요시다 쇼인, 구로후네 현장에 서다
유신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페리 제독
페리가 일본으로 먼저 간 이유
개항 시기만큼 벌어진 한·일 근대화의 격차
요시다 쇼인, 마침내 밀항을 시도하다
군국주의 맹아를 키운 운명의 회항
쇼인 사상의 중독성
무덤에서 불러낸 구스노키 마사시게
맹자에 빠지다
쇼카손주쿠에 몰려든 제자들
천출에서 총리로 비상한 두 사나이
요시다 쇼인, 반역을 모의하다
무사시의 들판에 뿌려진 원념

2장 회천回天의 기수, 다카스키 신사쿠

사이후이死而後已
다카스키 신사쿠의 성지, 시모노세키
쇼카손주쿠에 입문한 두 사무라이
에도 유학과 요시다 쇼인의 처형
이이 나오스케 암살과 정국의 반전
미국으로 간 가쓰 가이슈와 후쿠자와 유키치
존왕양이와 공무합체파의 충돌
폭풍을 비켜가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모리 가문의 천도
초망굴기로 일어선 기병대
두 천민 재상이 꽃피운 요시다 쇼인의 유훈
조슈 파이브, 영국으로 가다
‘8.18 정변’과 조슈의 몰락
변란은 끝이 없고
시모노세키전쟁과 신사쿠의 활약
막부의 조슈 정벌과 기병대 해산 위기
이토 히로부미의 결단
마침내 회천의 거병
뒤늦게 합류한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라 고고로의 귀환
오무라 마스지로의 등장
‘4경전쟁’의 발발
사카모토 료마의 참전과 고쿠라 공략
봄꽃 아래 지다
‘가이텐’의 종말

3장 사무라이 정신의 고향, 가고시마

이부스키 한·일 정상회담의 여운
일본의 천손강림 신화와 조선과의 진한 인연
기미가요와 히노마루의 고향
반란의 수괴가 된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에 헌정된 땅
무뎃포의 무모함을 자각
일본을 구한 무라타 소총과 조선이 외면한 개틀링 기관포
전설이 된 사쓰마 사무라이
시대를 앞서 간 영주 시마즈 나리아키라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
중앙 정치 무대에 등장한 사쓰마 번
테라다야의 비극과 과격파 사무라이의 괴멸
나마무기 사건과 사쓰마의 자각
정국의 주역으로 복귀한 사이고 다카모리
사카모토 료마의 기발한 제안
삿쵸동맹의 결성
스스로 물러난 쇼군
막부군의 마지막 저항
타오르기 시작한 정한론의 불꽃
초량왜관에 밀려오는 격랑의 물결
정한론의 불을 지핀 사이고 다카모리
힘없이 말만 쏟아내다 되풀이한 비극

4장 오늘도 소나무는 자란다

김종필의 명연설
한국, ‘갸쿠텐’의 시작
조선 민중의 좌절과 극복
데지마를 활용했던 일본, 하멜을 쫓아낸 조선
별단풍설서와 해국도지
중체서용, 화혼양재 그리고 동도서기론
일본의 행운과 조선의 불운
‘통치하지 않는 왕’의 부활
국운을 건 러일전쟁 도발
병사들의 피로 조달한 전쟁 국채
일본이 러일전쟁을 벌인 이유
조선 침탈을 강력 후원했던 영국과 미국
오늘도 소나무는 자란다

· 책을 쓰고 나서
· 주요 인물 소개
· 고종(조선)과 메이지(일본) 시대 연표

저자 소개 (1명)

만든이 코멘트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안녕하세요. 이책의 저자 입니다.
2016-09-13
'조선은 왜 망했는가'하는 것은 근대사의 가장 큰 의문입니다. 2010년 경술국치 100주년을 분기점으로 이에대한 관심이 촉발되었고, 저도 그 무렵에 뜻있는 분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파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학습 과정에서 들었던 조선 망국의 적나라한 실상이 정작 책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조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일반의 정서, 실증사학과 문헌학 중심의 학계 풍토 때문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수치를 모르는 민족이 어떻게 자긍심을 북돋울수 있을까요. 이제 어둠의 역사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성취를 이룩한 지금이 그런 수치를 되돌아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수치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묵혔던 상처를 이제는 햇빛에 드러내야 합니다. 묵힌 상처는 더욱 곪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 책이 그런 계기를 제공해 주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국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일본은 봉건제 사회에서 벗어나 근대화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수만 명의 사무라이들이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투쟁에 목숨을 던졌다. 서구 열강의 외세 공략에 앞서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투쟁하며 수백 년간 누적된 갈등과 모순을 정리하고 자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시시志士’라고 하는 초야의 이름 없는 사무라이들이 근대화를 향한 열정으로 목숨을 던졌고, 그 죽음으로 나라는 살았다. 당시 일본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진동陣東과 같은 지사들이 넘쳐났다.
반면에 조선은 그와 같은 치열한 내부적 갈등과 혁신의 몸부림이 상대적으로 매우 약했다. 망국에 즈음해서야 초야의 선비들이 의병 봉기를 통해 일어섰으나 이미 국운은 기울었다. 그렇게 나라는 망했고, 윤곡尹穀과 같은 선비들의 순사가 잇따라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으나 나라는 구하지 못했다. 일본의 사무라이와 조선의 선비들은 목숨을 걸고자 했던 동기가 달랐고, 결정적으로는 죽음을 선택한 시점에서 한 세대의 차이가 있었다. 바로 그 차이가 국운을 갈랐다. 매천梅泉은 바로 이 점을 통절히 여겨 겨우 윤곡에 머물러 배운 자의 의리를 다하는 것에 그칠 뿐이요, 진동에 이르러 나라를 구하지 못했음을 한탄하며 순사했다.
광복 후 약 20년의 혼란기를 거친 뒤, 일본의 메이지유신보다 100여 년이 늦은 1960년대 후반에 와서야 한국은 산업화의 장정에 올랐다. ‘잘 살아보세’라는 목표에 대한 처절한 헌신은 메이지유신의 치열함을 능가했고, 40여 년의 절치부심 끝에 마침내 국운 상승의 기운에서 일본을 눌렀다. 그러면 된 것인가? 이제 한국은 일본을 극복한 것인가. --- pp.6-7

조선을 탐한 조슈 사무라이
막부 말기 일본에는 약 260개의 번(藩. 도쿠가와 막부시대 1만 석 이상의 영지를 보유했던 봉건 영주의 직할령)이 있었다고 하는데, 조슈 번이 어떻게 한 시대를 뒤흔들 정도로 수많은 인재를 동시에 배출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불과 다다미 여덟 장의 초라한 시골 학숙이 분화구가 되어 폭발적으로 인재를 쏟아낼 수 있었을까? 이 시골 학숙(쇼카손주쿠)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쳤기에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막부 체제를 타도하고 천황국가를 건설한 주역이 되었을까? 그들의 칼끝은 왜 조선을 겨누었을까. --- p.35

개항 시기만큼 벌어진 한 ? 일 근대화의 격차
조선이 1876년 2월에 일본과「강화도조약」을 체결한 뒤 서구 열강과 본격적인 수교에 나선 것은 미국(1882년 5월)과의「조미수호통상조약」이 시작이었다. 그 후 영국·독일(1883년 11월), 이탈리아(1884년 6월), 러시아(1885년 10월)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주목할 점은 일본이 수교를 위한 화친 조약을 선행하고 3∼4년의 시간이 흐른 뒤 통상(무역) 조약을 체결한데 비해, 조선은 수교와 통상 조약을 동시에 체결했다는 사실이다. 일찍 문을 연 일본은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단계적으로 시장을 열면서 시행착오를 교정해 나갔지만, 출발이 늦었던 조선은 그와 같은 시행착오를 교정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조선과 일본의 개국(수교) 시점 자체도 22년(일본 1854년 : 미국 - 조선 1876년 : 일본)의 격차가 있지만, 서구 열강을 대상으로 한 실질적인 개항(통상)을 따지면 그 격차는 24년(일본 1858년 : 미국 - 조선 1882년 : 미국)으로 벌어진다. 이 기간에 일본은 근대화를 위한 국체 변경(왕정복고)과 국가 제도의 개혁(폐번치현 :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을 거의 마무리했고, 조선은 이 24년간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일본에 합병됐다. --- pp.84-85

회천의 기수, 다카스키 신사쿠
다카스키 신사쿠는 요시다 쇼인이 남긴 4명의 수제자 중 마지막까지 남아서 유신 대업의 초석을 깔았다. 특히 사무라이 시대에서 근대 제국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내부적 무력 충돌 과정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일본제국이 군군주의로 나아가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오늘날 한·일 간에 빚어지고 있는 야스쿠니 문제를 비롯한 역사적인 갈등의 씨앗을 뿌린 당사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천출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수하로 발탁하여 메이지유신의 주역으로 키웠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더 받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우상화의 극단이 야마구치에 잔재로 남아 있다. --- p.254

조선 민중의 좌절과 극복
1907년 제3차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내정권을 완전히 장악한 일제는 아전들의 징세권을 박탈하고 과세대장을 새로 작성하여 직접 징수에 나섰다. 은결의 병폐가 근절되면서 세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1905년 216만원이던 지세 수입이 1910년에는 3배 가까운 600만원으로 급증하였다. 국고의 거의 절반이 탐관오리들의 뒷주머니를 채우는데 들어갔다는 사실이 통계로 입증된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합병으로 나라가 망한 이후에 일어났다. 일제는 합병에 대한 조선 민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합병 당시 체납세액을 일괄 탕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은결’을 통해 부를 축적하다가 일제의 직접 징수로 치부의 길이 막혀 있던 지방 수령들은 이 사실을 숨기고 마지막 쥐어짜기에 나섰다. 일제 관리가 새로 부임하기 직전의 과도기를 노린 탐관오리들의 체납세액 착복이 숱하게 일어났다. 나라가 망했는데도 개인적인 치부에만 급급했다. 비숍여사가 한탄했던 관리들의 부패상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근대화에 대한 미몽 이전에 조선은 스스로의 부패로 무너졌다. --- pp. 387-389

정한론의 불을 지핀 사이고 다카모리
메이지 정부에서 정한론이 조정 공론으로 거론된 것은 1873년 6월에 열린 조정 회의가 처음이었다. 정한론이 조정에서 공론화된 1873년 8월에 사이고 다카모리는 조정 공경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절은 반드시 폭살당할 것이다. …… 내란을 바라는 마음을 외국으로 돌려 국가를 흥하게 하는 책략 ……’ 운운으로 정한론을 설득했다. 공리(公理)와 예법을 중시하는 조선 조정이 외국 사신을 폭살할 것이라는 주장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지만, 초량왜관의 약조제찰비 명문이 그대로 살아 있다면 폭살을 유도할 수는 있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자신의 몸을 던져 조선 조정을 자극하여 어떻게든 개전(開戰)의 빌미를 만들어 오겠다는 것이었다. --- p.360

오늘도 소나무는 자란다
요시다 쇼인은 ‘지성으로 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至誠而不動者未之有也)’는 말을 제일의 수신훈(修身訓)으로 제자들에게 강조했다. 메이지유신에 진력했던 다카스키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를 비롯한 수제자들이 늘 가슴에 담아 두고 있던 말이 이것이었다. 메이지유신 150주년(2018년)을 앞두고 이 말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여기에 인생을 건 또 한 명의 사나이가 있다. 2015년 11월 1일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3년 반 만에 개최됐다.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2000년대 들어 가장 오랜 공백 끝에 개최된 회의였다. 이 회담을 앞두고 언론에는 세 사람의 캐릭터에 대한 흥미 있는 분석 기사가 실렸다. 그중에 좌우명과 존경하는 인물을 비교한 표가 실려 있었는데, 아베 신조 총리의 좌우명은 ‘지성(至誠)’, 존경하는 인물은 ‘요시다 쇼인’이었다.
소나무는 오늘도 자란다
--- pp.452-453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정한론의 원조 ‘요시다 쇼인’에서 우경화의 기수 아베 신조까지,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는 왜 모두 한곳에서 나왔는가?
150년간 묻혀 있던 한·일 근대사의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사무라이와 선비, 세상을 만나다
- 바깥세상으로 창은 열었으나 열린 방향이 달랐다


지은이가 한·일 근대사 150년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수도가 함락된 전쟁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조선이 전쟁도 없이 망했던 사건(한일합병)에 주목하면서부터다. ‘조선은 왜 망했는가?’에서 시작된 물음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이어졌고, 메이지유신 사적지를 따라가며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 여정을 비교 분석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지금까지 그 어떤 역사서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울림으로 다가온다.
비슷한 시기에 근대화에 나섰던 조선과 일본의 대응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시선은 매우 직선적이고 거침이 없다. 근대화의 격랑 앞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외세에 의지하다 국권을 빼앗긴 고종 한 사람만을 망국의 암군(暗君)으로 매도하기 보다는, 상투를 틀고 앉아 근대화의 격랑을 등진 선비들을 무능한 식자(識者)로 비판한다. 반면에 상투를 자르고 근대화에 목숨을 걸었던 사무라이와 일본의 성공 원인을 정밀 분석했다. 조선 관리들의 부패상과 일본 사무라이들의 근대화를 향한 헌신, 서구제국을 향해 창을 활짝 열었던 일본과 오직 중국으로만 열린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다 나라를 보전하지 못했던 조선의 대비는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혹여 보는 이에 따라서는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했던 조선 민중과 선비들의 저항의 역사를 폄하하는 것 아닌가 하여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은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굴욕적인 망국의 역사와 함께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알아야만 잘못된 역사의 단추를 제대로 끼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그늘진 역사를 드러내 놓고 처절한 반성이 동반되었을 때 또다시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이끄는 대로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 발자취를 따라 깊게 들어가 보면, 분명 보이는 것과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조선을 삼킨 조슈 사무라이
- 정한론의 원조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본영 ‘쇼카손주쿠’


역사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 사람을 돌아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내부적 요인보다 기어코 조선을 삼키려고 했던 그들의 동기가 역사적 진실을 더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을 안고 지은이가 첫발을 디딘 곳은 일본 야마구치(山口) 현 변방에 있는 ‘하기(萩)’라는 도시다.
그렇게 찾아간 하기의 조그만 시골 학숙 ‘쇼카손주쿠(松下村塾)’는 일본 근대화 추적의 출발점이었다. 그곳에서 한일합병 주역들의 면면을 조사하다가 당시 일본 총리(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라 다로), 조선공사(이노우에 가오루, 미우라 고로), 조선통감(이토 히로부미, 소네 아라스케, 데라우치 마사다케), 조선주차군사령관(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총독(데라우치 마사다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등 핵심 인물들이 모두 조슈 번(야마구치 현) 도읍지 하기에 있는 쇼카손주쿠에서 동문수학한 문도들이었고, 그들을 키운 이데올로그는 불과 서른에 생을 마감한 백면서생 ‘요시다 쇼인’이었음을 확인한다. 또한 지은이는 치밀한 탐방과 추적 조사를 통해 조선 침략의 핵심적 역할을 한 조슈 인맥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 ‘다카스키 신사쿠’라는 젊은 사무라이이고, 그가 바로 야스쿠니의 망령을 창조한 군국주의의 원령이라는 사실을 생생한 현장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우연의 일치일까? 지은이가 현지답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5년 후인 2016년에 ‘쇼카손주쿠’와 사무라이 마을 ‘조카마치’는 근대화 산업혁명이라는 포장지를 쓰고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유적지 23곳 중 하나로 등재되었다. 쇼카손주쿠는 정한론의 원조로 지목된 요시다 쇼인이 만든 학숙으로 메이지유신의 주역을 길러낸 곳이고, 일본의 산업혁명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점에서 150년 전 군국주의 망령이 어른거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은이는 5년 전 답사기에서 이러한 일본의 속셈을 이미 경고했는데, 우려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났다.

150년 전 일본이 다시 돌아온다
- 아베 신조는 사무라이의 부활과 패권 국가를 꿈꾸는 가케무샤인가?


조슈와 사쓰마의 젊은 사무라이들이 메이지유신을 이끌었으며, 그들의 사무라이 정신이 오늘날의 일본 정치인들에게 까지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이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다. 특히 우경화의 기수를 자임하며 폭주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150년 전 메이지유신 주도 세력의 본산이었던 쇼카손주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도 그의 가계와 사상적 편력을 추적하여 밝혀내고 있다.
실제로 하기에 있는 쇼인신사에 가면 신사 경내에 요시다 쇼인을 존경하던 메이지시대 야마구치 출신 고위 인사들이 바친 석등이 줄지어 서 있다.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노우에 가오루, 가쓰라 다로, 기도 다카요시, 노기 마레스케, 데라우치 마사다케 등 메이지시대를 주름잡은 쟁쟁한 인물과 함께 아베 총리의 외고조부인 오오시마 요시마사의 석등이 서 있다. 쇼인신사의 현판 글씨는 기시 노부스케(아베 총리 외조부)의 작품이고, 1968년 메이지유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사토 총리(아베 총리 외종조부)가 세운 기념비가 웅장하게 서 있다. 아베 총리는 쇼카손주쿠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이쯤 되면 아무리 일본 근대사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총리의 DNA는 그렇게 형성됐다.
아베 총리를 필두로 일본의 우익 세력은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한 통절한 반성은커녕, ‘일본은 왜 패배했는가’에 대한 처절한 자아비판을 통해 패권 국가로의 부활을 꿈꾸며 국제무대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이 책의 흐름이 조선 망국의 시점까지로 한정되어 있지만, 우리는 지은이의 글을 통해서 일본이 새로 일어설 때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군국주의의 부활을 우려하지만, 일본이 그런 모습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군국주의자의 초상을 지우고 훨씬 더 세련되고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강력한 동맹국’의 손을 잡고 국제무대에 당당히 복귀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미래에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까?
최근의 한·중?일 3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100여 년 전 조선 망국을 불러왔던 당시의 데자뷰처럼 전개되고 있다. 당시 일본이 국운을 건 전쟁까지 도발하며 한반도에서 몰아냈던 러시아를 21세기 패권 국가를 지향하는 지금의 중국으로 대체하면 상황은 복사판처럼 똑같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현재의 한·중?일 관계가 150년 전의 그때와 너무나 닮아 있음에 소름이 돋을 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만 기억하자. 100년 전 근대화의 흐름을 타지 못해 망국의 굴욕을 당했던 그때의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치열한 논쟁과 처절한 반성을 통해서 철저하게 미래를 대비하는 것, 그것만이 동아시아의 격랑 속에서 국가의 자존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회원리뷰 (3건) 리뷰 총점9.7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일본역사의 근원은 800여년 전 겐가문과 헤이가문의 전쟁이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가****오 | 2018.02.02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요시다 쇼인, 다카스기 신사쿠 등의 고향인 조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상적 근원이자 도쿠가와 막부때 부터는 정치적으로 입지가 약해졌다.에도막부를 중심으로 지방분권 형식의 연방제를 하면서 시모노세키 주변의 항구를 통하여 사쓰마, 이즈, 조슈 등이 세계사회의 흐름을 제일 먼저 캐치했다. 이로서 막부를 타토하고 천황제를 부활시킬려는 조슈가 사쓰마-이즈 연합에 의해 고초;
리뷰제목
요시다 쇼인, 다카스기 신사쿠 등의 고향인 조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상적 근원이자 도쿠가와 막부때 부터는 정치적으로 입지가 약해졌다.
에도막부를 중심으로 지방분권 형식의 연방제를 하면서 시모노세키 주변의 항구를 통하여 사쓰마, 이즈, 조슈 등이 세계사회의 흐름을 제일 먼저 캐치했다.
이로서 막부를 타토하고 천황제를 부활시킬려는 조슈가 사쓰마-이즈 연합에 의해 고초를 겪었다가 힘을 키우면서 사쓰마-조슈의 연합을 통해 에도막부를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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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탐한 사무라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h****m | 2017.05.24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충실한 내용,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일본을 이해하기에도 좋은 책이고(정치 및 군사, 역사면에서)또 구한말과 유사한 국제정세에서한국의 지사들이 생각해 볼 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취재가 충실해서 일본 메이지 유신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충분히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다.특히 가슴에 큰 뜻을 품은20대 청년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이 책의 기조에 동의를 하든 하;
리뷰제목

충실한 내용,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


일본을 이해하기에도 좋은 책이고(정치 및 군사, 역사면에서)

또 구한말과 유사한 국제정세에서

한국의 지사들이 생각해 볼 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


취재가 충실해서 일본 메이지 유신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충분히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다.


특히 가슴에 큰 뜻을 품은

20대 청년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의 기조에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사회의 주축이 될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책을 통해

사고력을 확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별을 하나 뺄까하는 생각도 했는데, 다소 부정확한 인용 때문이었다.

나가시노 전투나 세키가하라 전투 등...(나가시노 전투 주체는 신겐이 아니라 그 후계자이다. 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출전한 건 시마즈 요시히로가 맞지만, 참전을 반대하고 본국에 남아 사태를 대비한 것은 시마즈 요시히사로 알려져 있다....

책 마지막 인용 및 부록에서는 제대로 나와있는데, 본문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별 다섯 개가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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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을 고증하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j**k | 2017.03.16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얼마나 많은 피와 고통을 통해 진행되었는가를 철저한 고증과 역사적 사료분석을 통해 소개한 책입니다.요시다 쇼인과 그의 제자들이 미약한 사숙 형태로 시작한 결사체가 어떻게 자신들의 번을 장악하고 나아가 막부를 꺽고 일본 전체를 거머쥐게 되는지 흥미진진한 필체와 풍부한 자료를 통해 펼쳐 보입니다. 요시다 쇼인을 비롯한 제자들 대부분은 유신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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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얼마나 많은 피와 고통을 통해 진행되었는가를 철저한 고증과 역사적 사료분석을 통해 소개한 책입니다.

요시다 쇼인과 그의 제자들이 미약한 사숙 형태로 시작한 결사체가 어떻게 자신들의 번을 장악하고 나아가 막부를 꺽고 일본 전체를 거머쥐게 되는지 흥미진진한 필체와 풍부한 자료를 통해 펼쳐 보입니다. 요시다 쇼인을 비롯한 제자들 대부분은 유신 과정에서 산화했습니다. 즉 권력을 잡기 위함이 아닌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 스스로의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우리는 조선이 일본에 병탄당한 사실에 울분 만 토할 뿐 조선의 백성과 지배층이 서세동점의 요동치는 세계사 속에서 치열한 생존의지가 있었는지, 실력을 키우기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였는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무심합니다. 

일본 역시 한일합병 50년 전에는 조선과 똑같은 처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외부에 적 앞에 분열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왔으나 이제는 그 수명이 다한 전통과 구습을 과감히 떨쳐버리는데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변화하려 하지 않는 존재는 개인이나 국가나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새롭게 개정된 이 책은 일본 근대사에 관심있는 독자들 사이에는 굉장히 유명한 책인데 안타깝게도 일반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일본이라면 색안경 부터 쓰고 바라보는 사회 풍조가 만연해 있기에 일본사 역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허나 일본사, 특히 근대사는 지금의 우리가 능히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유용한 사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일본에 대한 비판에 앞서 우리 자신부터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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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7건) 한줄평 총점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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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그때 우리는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일본엔 우글거렸던 신사쿠 같은 인물이 우린 왜 한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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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 | 2022.02.19
평점4점
생각보다 잘 읽히는 책. 배울 점이 많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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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 | 2019.12.28
구매 평점5점
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얼마나 치열하고 살벌했는지... 정신이 번쩍나게 하는 책입니다.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작**무 |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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