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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없는 예수 교회

: 교회 힐링 메시지

리뷰 총점7.6 리뷰 19건 | 판매지수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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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8년 1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537g | 152*225*20mm
ISBN13 9788934932680
ISBN10 893493268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우리 시대의 참 지식인, 한완상 박사의 교회 힐링 메시지!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역사적 예수의 체취와 숨결, 그리고 그분의 꿈



베스트셀러 『민중과 지식인』에 이은 한완상 박사의 또 하나의 역작으로 교회의 승리주의적 태도, 물량주의, 배타적 독선에 경종을 울리고 한국교회에 겸허한 자기반성을 촉구하고 세상 속의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좌표를 제시한 책이다.

종교적 선민의식과 종파주의를 초월했던 예수의 모습을 바탕으로 한국 교회가 배워야 할 평화적 저항, 익살스러움, 날카로움, 통쾌함, 당혹스러움, 탄성을 발하게 하는 해학적 감동, 신앙의 역설을 애정 어린 질책과 함께 절제된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양적 팽창 속에서 지속되어온 반지성적 풍토와 기복적 신앙, 경직되고 불투명한 교회운영과 권위주의적 교회 구조, 예수의 삶이 증발되어버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천박한 이기주의를 치료할 해법을 제시한다.

밖으로 굽으시는 하나님의 팔, 우아한 패배의 원리, 실패와 자기 부인의 십자가 정신, 자기 비움과 남 채움의 원리 등 끊임없이 자기 속에서 충동하는 탐욕과 독선의 힘을 비워내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체득해야 할 삶의 방식을 제시한 이 책을 통해 인간적인 체취가 묻어나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 새롭게 조명해보고 한국 교회의 일그러진 교회상을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줄 힐링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프롤로그_한국 교회여, 우아하고 멋지게 지는 법을 체득하라

참회하는 마음으로 쓴 수난절 편지

I. 팔이 밖으로 굽으시는 하나님

01_내 삶에 오신 예수님
02_팔이 밖으로 굽으시는 하나님
03_평화의 도시에 평화는 없었다
04_개마고원에서의 꿈

II. 아, 기독교인임이 부끄럽구나

05_사회를 치유하는 소셜 닥터Social Doctor
06_유배지 같은 현대사회에서
07_종교는 비우고 사랑은 채우고
08_아, 기독교인임이 부끄럽구나

III. 예수 없는 예수 교회

09_왜 한국 교회는 버림받고 있나
10_예수 없는 예수 교회의 신앙고백
11_예수 이름으로 예수를 괴롭히는 교회
12_무덤은 버리고 역사는 채우고
13_껍데기 신앙은 가라

IV. 신앙, 그 감동의 역설

14_사랑은 지면서 이기는 힘
15_스스로 지우신 하나님
16_누가 하나님나라의 주인인가
17_해학과 저항의 예수

V. 우아한 패배, 참 평화의 길

18_우아한 패배, 참 평화의 길
19_멋지게 지신 예수님
20_사랑은 동사요, 하나님도 동사다
21_십자가, 그 멋진 패배의 미학

에필로그_기억과 회상의 힘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한국에 있습니다. 주요 개신교 교파마다 세계 제일의 교회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터에, 한국 기독교를 ‘개독교’라 폄하하고 개신교 성직자를 ‘먹사’로 희화하는 오늘의 현실을 보고 크리스천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안티 기독교의 온갖 비난과 질책은 한국 개신교회를 향한 이 시대 ‘돌들의 외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역행하는 교회가 불러일으킨 자업자득의 결과 같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분노하기에 앞서, 왜 한국 교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진솔한 자기반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pp.6-7

예수를 열심히 믿는 신자일수록 그들의 하나님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옛날 유대종교에 열성이었던 신자들처럼 말입니다. 종교적 선민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들의 하나님을 배타적인 신으로 믿고 싶어 합니다. 과연 우리 하나님은 그 팔이 안으로만 굽으실까요? 온갖 사이비 종파주의자들이 굴을 파거나 숨어 살면서 종파적 이기주의를 극대화하는 것도, 그들의 하나님이 종파적 신이기에 그 팔은 항상 안으로만 굽는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p.41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마 16:24). 여기에서 ‘자기부정’과 ‘십자가 지기’는 같은 뜻의 말씀을 두 번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부정은 자기 비움과 같습니다. 자기 비움은 끊임없이 자기 속에서 충동하는 탐욕과 독선의 힘을 비워내는 일입니다. 십자가 지기는 자기 지움을 뜻합니다. 영어로 ‘cross out’은 지워 없앤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자기 탐욕과 독선을 지워 없애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예수따르미가 지켜야 할 기본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걸어가신 길이 이러할진대, 예수의 이름으로 자기를 지워 보려는 모든 노력을 단지 그것이 교회 테두리 밖에서 이뤄진다는 이유로 정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종교적 독선주의, 배타주의, 이기주의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언뜻 보기에 예수따르기에는 자기 패배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온갖 탐욕의 경쟁에서 스스로 지기를 자청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따르미의 상징으로 십자가보다 두 번 지우는 결단의 상징인 ×가 더 적절한 듯합니다. 실제로 십자가를 질 때 생기는 십자가의 모습도 이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새로운 기독교 상징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pp.217-218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야말로 우아하게 지면서 마침내 모두 함께 이길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새로운 삶, 멋있게 짐으로써 함께 이기는 새로운 삶의 가치를 오늘날 개신교 지도층이 가장 이해를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은 한국이나 구미에서나 크게 다를 바 없어 더욱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그 원인은 주로 물리적, 물질적 힘에 의한 승리, 그에 따른 평화를 오랫동안 숭배해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이나 한국에서 교회 지도자의 주류는 승리주의 가치를 기독교 본연의 가치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적 기반이 강한 교회이기에, 힘을 통한 승리와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교회일수록 역사적 예수 운동의 원래 의도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교인일수록 예수의 삶과는 동떨어진 삶을 정상적인 크리스천의 삶인 양 착각하는 듯합니다. 하기야 성서도 이 문제를 언급하는 데 일관성이 부족한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pp.252-253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한국 교회는 왜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있는가?

“예수 없는 껍데기 교회로 성장할수록
예수님의 질책과 세상의 모멸적 비난은 더 매서워질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대부분 한국에 있을 정도로 급성장한 한국 교회가 정작 우리나라에서 불신과 모멸과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은 단지 교인수의 감소에서 찾는 위기가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면에서의 위기이다. 그것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우리의 ‘믿사오니’ 열정과, 예수의 삶을 올곧게 닮아가는 ‘따르오니’의 삶 사이의 간격, 그 멀어진 간격으로 말미암는다. 한완상 박사는 사회학자로서의 노련한 안목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시대 교회가 앓고 있는 중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치료할 해법을 모색한다. 『민중과 지식인』이 한국 사회에 던진 화두를 던졌다면, 이 책은 한국 교계에 던지는 또 하나의 화두이다. 목회자 없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시작한 새길교회에서 틈틈이 전했던 메시지 가운데 이 시대에 필요한 주제들을 모아 전면 수정하여 엮은 책으로, 수많은 책들 가운데 처음으로 인세를 받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새롭게 조명되고 해석되어야 할 역사적 예수

사회과학자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병은 겉으로 드러난 환부를 치료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배후에 자리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즉 역사적 예수에 대한 몰이해, 내지 이해 부족에 있다. 그 대표적인 증후를 ‘사도신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했다는 것과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당했다는 사실 외에는 그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 일용할 양식의 문제, 빚진 자를 탕감하는 문제, 탐욕과 독선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문제 등 이 땅의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셨던 예수, 밑바닥 인생의 억울한 고통을 함께 나누시고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당했던 그 당시 씨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나사렛 예수에 대한 외면은 결국 예수의 구체적 삶이 증발되어버린 신조와 신앙고백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양적 팽창 속에서 지속되어온 반지성적 풍토와 기복적 신앙, 경직되고 불투명한 교회운영과 권위주의적 교회 구조, 천박한 이기주의와 개교회주의를 치료할 해법은 다름 아닌 역사적 예수의 회복에 있다고 본다.

신앙, 그 감동의 역설

종교적 선민의식과 종파주의를 초월하신 예수, 그에게서 한국 교회가 제대로 배워야 할 평화적 저항, 익살스러움, 날카로움, 통쾌함, 당혹스러움, 탄성을 발하게 하는 해학적 감동, 그리고 신앙의 역설을 애정 어린 질책과 함께 절제된 언어로 풀어냈다. 구약의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 누가 자기의 어머니요 가족인지를 말한 예수의 이야기,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등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예들을 통해 하나님의 팔이 어떻게 ‘밖으로’ 굽으셨는지를 보여주고, 이를 통해 그동안 줄곧 안으로만 굽었던 한국 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확인케 한다. 지면서도 이기는 우아한 패배의 원리, 승리의 십자가가 아니라 실패와 자기 부인의 십자가 정신, 자기 비움과 남 채움의 원리 등은 끊임없이 자기 속에서 충동하는 탐욕과 독선의 힘을 비워내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체득해야 할 삶의 방식이자 우리에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촉구하는 우리 시대의 ‘불온한 발언’이기도 하다.

사회를 치료하는 소셜 닥터, 그 지난했던 길

이 책은 한완상 박사가 신앙을 갖게 된 과정, 부모님에 대한 기억, 고등학교 2학년 때 신학자와 의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야기, 대학생 시절 절친했던 친구의 어이없는 죽음, 학보병으로 입대해 겪은 군대 이야기, 김대중대란음모사건으로 받았던 고문, 망명생활 이야기, 끝내 자식의 복직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 등 개인적인 라이프스토리를 많이 담고 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에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맞은 해방과 곧이어 터진 6.25 전쟁, 가난과 질병의 고통으로 점철된 그 시기를 지나 암울했던 현대사의 격랑을 헤쳐 나오는 동안 그는 어느덧 ‘사회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한 시대의 구조적 불의와 씨름했던 지난 70여 년 동안 교수, 수인, 부총리, 위원장, 적십자 총재, 대학교 총장 등 다양한 직책을 경험해보았지만, 그 경험을 관통하는 것은 ‘희망의 힘’이었다고 회고한다. 그 삶의 행간들에는 힘의 논리로 작동되는 ‘평화 지키기’보다 나눔과 비움을 통해 세워지는 ‘평화 만들기’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삶의 이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

회원리뷰 (19건) 리뷰 총점7.6

혜택 및 유의사항?
신앙 치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가*강 | 2011.05.2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도덕문제). 철수가 부모님 심부름으로 콩나물을 사러 가게로 가고 있었는데, 길가의 버스정류장에서 길을 잃어 버리신듯 안절부절하시는 할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른 행동일까요? (   )(1) 부모님의 심부름이 급하므로 그냥 지나간다.(2) 할머니께 무엇이 필요하신지 물어보고 길을 알려드린다.(3) 콩나물 살 돈을 할머니에게 주고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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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문제). 철수가 부모님 심부름으로 콩나물을 사러 가게로 가고 있었는데, 길가의 버스정류장에서 길을 잃어 버리신듯 안절부절하시는 할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른 행동일까요? (   )

(1) 부모님의 심부름이 급하므로 그냥 지나간다.
(2) 할머니께 무엇이 필요하신지 물어보고 길을 알려드린다.
(3) 콩나물 살 돈을 할머니에게 주고 집으로 돌아간다. 
(4) 남의 일이니 관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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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여러 다른 이유로 여러 다른 답을 달수도 있겠지만,  학교에서 도덕시간에 받는 테스트라면 (2)번으로 답을 다는 것이 점수를 받는 길일 것이다. 도덕 시험점수가 100점이라도 나오면, 사람들은 자기가 도덕적으로 100점인 사람인것 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현대를 살아가는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도 마치 이런류의 사람과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자신들이 교회의 신조와 교리를 받아들이고 믿었으므로, 할 것 다했다고 생각하고 구원받았다고 안도하며 산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거기까지가 그들이 생각하는 신앙이라는 것이다. 
‘현대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개독교’라는 말이 나도는 작금의 시대에 더욱 중대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시급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책의 저자인 한완상씨는 이러한 현상을 아주 무서운 말로 꼬집었고, 그것이 바로 책의 제목이 되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47,47절)” 라는 구절이 있다. 이미 구약시대때부터 교회당안에 하나님이 없을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말씀이다. 
저자는 이렇게 교회의 모습이 빈강냉이처럼 된 이유를 첫번째로 기독교의 왜곡된 역사에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세월 기독교가 제도화되면서 왜곡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화 작업이 진척되어 일정한 교리와 교조의 틀이 굳어지면서 예수의 참뜻을 따르기가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야 할 예수의 말씀은 증발되고, 대신 교리는 더욱 체계화되고 강조되었고, 따라서 기독교의 신앙은 갈릴리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실천적 결단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교리의 절대수용을 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로교회에서 예배시간이 되면 생각없이 외우는 사도신경은 이러한 교리화 작업을 충실히 이행해온 교회 모습의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의 일거수일투족이 구원사와 구속사의 시각에서만 해석되고 강조되는 것은, 잘못하면 ‘은총(은혜)만으로’라는 게으른 신앙생활, 윤리없는 한국교회와 개신교신자를 양산할수 있다고 하면서, 부활하신 예수의 능력만을 소중하게 강조하는 사도바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한다. 
예수없는 교회가 되어가는 한국기독교의 책임은 신앙인들 각자에게도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신앙적인 치매가 걸려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억력상실이나 치매에 걸리면 남을 알아보지 못한다. 남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자기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사람관계를 파괴시키고, 자아의 정체성을 파괴시키는 무서운 질병임에 틀림이 없다. 분명한 자기정체성은 성숙한 인간의 조건이고 사람이 사람다운 존엄을 갖게 하는데, 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의 참 뜻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마치 신앙적 치매에 빠져 버린 것과 똑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역사와 성경속에서 보여주신 사랑과 정의의 체험을 잊지 말고 자신의 상황에서 실천하는 것이, 참 신앙인의 모습이지만, 그 뜻은 사라져버리고, 교회는 이 세상에서의 현실적 삶과 죽어서 천국을 보장해주고 는 방편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그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양산되어 온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신앙적 치매에 걸린 신앙인들의 적나라한 모습인 것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신랄한 비판에 귀를 기울여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위로서의 구원이냐, 은혜로서의 구원이냐의 싸움을 걸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초점이 ‘예수의 마음’에 가 있는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의 하루하루의 삶의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단지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의 수용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뼈속 깊이 체감한다면 지금이라도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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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따르미와 예수믿으미는 어떻게 다른지, 진정한 믿음은 어떤지 보여주는 책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이*****기 | 2009.10.28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십일조에 대해서 소설가이자 목사이기도 한 조성기 씨가 십일조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고 그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의 저자는 십일조의 유래 중 성경에서의 유래라는 내용에서 기독교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일 바친 아브라함의 행위를 십일조의 기초로 잡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준 것은 소산의 10분의 1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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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에 대해서 소설가이자 목사이기도 한 조성기 씨가 십일조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고 그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의 저자는 십일조의 유래 중 성경에서의 유래라는 내용에서 기독교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일 바친 아브라함의 행위를 십일조의 기초로 잡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준 것은 소산의 10분의 1이 아니라 전리품의 10분의 1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전리품의 10분의 1은 모세 오경의 전통적인 십일조 개념에 포함될 수 없다고 한다.


그 책의 저자인 조성기는 신약에서도 무서운 책망의 말씀에서 십일조를 다하더라도 사랑은 버렸다고 하는 말씀에서 십일조의 긍정을 찾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십일조는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기가 어려움에도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가 성장 최고의 논리에 근거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저 교회 건물이 커지고 신도 수가 많은 것이 자랑이 되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 안에서 제대로 믿는 신도가 많아야 하고 양보다 질을 추구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십일조를 설사 낸다고 해도 특별회계를 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던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를 위해서 써야할 것이다. 그 십일조로 교회를 짓는 일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바라던 일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부총리를 역임한 바 있고 장로인 저자 한완상이 쓴 이 책의 제목부터 특이하다. 예수 없는 예수 교회라니. 하지만 맞는 말이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면 갈 곳이 없다고 서럽게 울지 않겠는가. 생전에 머리 둘 곳조차 없던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 번 서럽게 하는 한국 교회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교회인지 반성해야 한다.


기독교가 교리와 율법, 제도와 관행에 매여 있어 은총과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바람직한 종교는 신자의 실존적 고뇌를 덜어주고,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면서도, 역사와 사회구조를 보다 맑고 밝게 변화시키는 용기와 결단으로 인도합니다. 개인의 평안과 공동체의 평화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기 위해서 종교는 항상 자기반성과 개혁으로 사람들을 인도해야 합니다(104쪽).


음악을 듣는 것처럼 교회를 다니는 것도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이 오늘날 교회에서 대접을 받는지 의문스럽다. 헌금 명부를 보면서 그 명단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과연 목사들은 그 생각을 해보았는지 묻고 싶다.


주요 개신교 교파마다 세계 제일의 교회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터에, 한국 기독교를 ‘개독교’라 폄하하고 개신교 성직자를 ‘먹사’로 희화하는 오늘의 현실을 보고 크리스천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안티 기독교의 온갖 비난과 질책은 한국 개신교회를 향한 이 시대 ‘돌들의 외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역행하는 교회가 불러일으킨 자업자득의 결과 같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분노하기에 앞서, 왜 한국 교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진솔한 자기반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6-7쪽 저자의 머리말에서). 저자의 주장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한국의 예수 교회에는 예수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예수를 알고 예수를 따르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예수따르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리와 신조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는 사람(예수믿으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교적 선민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들의 하나님을 배타적인 신으로 믿고 싶어 합니다. 과연 우리 하나님은 그 팔이 안으로만 굽으실까요? 온갖 사이비 종파주의자들이 굴을 파거나 숨어 살면서 종파적 이기주의를 극대화하는 것도, 그들의 하나님이 종파적 신이기에 그 팔은 항상 안으로만 굽는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41쪽). 그래서 제대로 믿지 못하면 선민의식만 강해지고 문자주의만 강해져서 무조건 나만 옳고 타인은 싫다고 하게 되는 것이리라.


강제로 땅을 빼앗긴 아픔, 자기들 지역에 들어와 좋은 언덕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 정착 마을이 주는 아픔, 소수 유대인 정착촌의 안전을 위해 인위적인 장벽이 위압적으로 설치되어 팔레스타인 주민의 자유이동을 제한하는 데서 오는 아픔. 이런 삼고三苦의 현실을 직접 목도하면서 저의 가슴은 조용히 떨리고 있었습니다(54쪽). 과연 어떤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2천 년이나 세월이 지난 뒤에 이게 내 땅이다, 그것도 누가 나에게 그 땅을 가지라고 했다는 말을 한다고 하면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은 뭐라고 하겠는가. 바로 이것이 팔레스타인의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만 옳다고 했지만 이제는 현실을 제대로 보고 그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사랑을 명사가 아닌 동사라고 생각해 온 나로서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우리도 명사로 살지 말고 사랑의 동사로 살자고 하면서 더 나아가 예수가 바로 동사라고 한다. 사랑이 명사가 되면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사랑하라고 하게 된다. 사랑받으려면 먼저 남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중요하고 그것이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동사가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일지 이승헌은 깨달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한다. 불교에서 소승불교가 대승불교보다 못하다고 배운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그래도 종교가 필요하다. 나는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종교를 가지라고 한다. 종교인은 겸손과 죄의식이 있다는 점에서 비종교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자신을 100점짜리라고 생각하니 겸손이 없다. 반면 종교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80점이라고 생각하고 하느님이든 어떤 분이든 절대자는 100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겸손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죄의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믿지 않는 사람은 죄의식이 별로 없다. 나보다 더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 이 세상에 많은데 왜 내가 조금 죄를 짓고도 죄의식을 가져야 하느냐면서 오히려 기고만장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그래도 죄에 대해 회개를 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죄를 덜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종교가 없는 사람은 종교를 가져야 하고 종교를 가진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믿으미가 아닌 따르미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복적인 무당을 믿는 종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나만 옳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수단으로 회계사가 직업이고 회사에 가면 글쟁이고 집에 오면 종교인이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깨달은 분들의 사례로 부처, 공자, 예수, 석가, 노자, 장자 등을 들 수 있다. 나도 깨달으면 그런 경지로 갈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따라서 인류는 형제인 것이다. 자연도 인간과 동일하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종교 때문에 싸울 일은 없다고 본다. 너와 내가 형제인데 왜 싸우는가.


복음서란 가장 일찍 기록된 마가복음도 기원 70년 후에 씌어진 것이며 요한복음도 서기 100년경에 씌어진 것으로, 그때쯤에는 예수가 신격화되어서 그 말씀과 행동이 절대적인 것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는 어렵지 않게 출구를 찾았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은 사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라기보다 이 복음서를 쓴 기자가 자기의 신앙고백을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동환에게 새로운 전망을 안겨주었다(김형수가 쓴 문익환 평전이란 책의 322쪽).


나는 기독교 경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요한복음 14장 6절의 내용 중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중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는 구절이며 이를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인용한 김형수의 책에서는 앞의 내용도 예수의 말씀이라기보다 복음서 기자의 자기고백 정도로 나와 있지만, 나는 앞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보고 뒤의 내용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를 공인한 이후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조건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며,  이로 인하여 개신교가 앞으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유럽의 어느 곳처럼 황폐화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성장주의, 배타주의, 문자주의 등은 원래의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쳤던 내용이 아니라 권력을 잡은 정단(나는 이단의 반대로 이런 말을 쓰고 있다.)들이 만든 교리에서 발생한 것이다. 깨달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할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깨달은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혹시나 목회를 한다면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꿈 중의 하나이다. 종교가 그 원래의 뜻을 발현하여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는 것’처럼 위로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미 다른 종교가 깊이 뿌리 내려 그곳 사람들의 가치 속에 스며들어 있는 지역에서, 수천 명의 한국 대형교회 신자들이 몰려다니며 그들을 개종시키려려고 하는 행위는 종교적 교만의 수준을 넘어 종교적 폭력에 가까울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까? 특히 회교 근본주의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곳에서 기독교 선교(예수 선교가 아닌) 행위를 하는 것은 신판 십자군 전쟁을 하자고 무모하게 덤비는 것과 다를 바 없음을 모른다는 말입니까?(61쪽)


무릇 여행이란 자기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고 조용히 그러나 깊이 반성해 보는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여행은 값진 인생 경험입니다. 여행에서 자기 성찰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여행의 참 맛과 멋을 모르는 사람이지요. 인생을 하나의 여행으로 본다면, 사람다운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새롭게 깨닫고 배우면서 앞날을 더 밝고 맑게 만들어갈 줄 압니다(63쪽).


험한 세상에서 갖은 곤욕과 수모 그리고 가난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겪고 살았으나 어린이의 순진한 마음으로 이 괴로운 세상을 끝까지 아름답게 바라보며 살다가 죽은 시인 천상병 씨가 생각납니다. 그의 시 귀천은 어린이의 마음을 투명하고 가슴 시리게 전달해줍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시에서 하늘을 하나님나라로 바꿔서 다시 읽어 보십시오. 어른이 되어도 아이로 돌아갔던 천상병 시인은 이제 하나님나라의 주인이 되었습니다(232-233쪽).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야말로 우아하게 지면서 마침내 모두 함께 이길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새로운 삶, 멋있게 짐으로써 함께 이기는 새로운 삶의 가치를 오늘날 개신교 지도층이 가장 이해를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은 한국이나 구미에서나 크게 다를 바 없어 더욱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그 원인은 주로 물리적, 물질적 힘에 의한 승리, 그에 따른 평화를 오랫동안 숭배해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이나 한국에서 교회 지도자의 주류는 승리주의 가치를 기독교 본연의 가치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적 기반이 강한 교회이기에, 힘을 통한 승리와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교회일수록 역사적 예수 운동의 원래 의도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교인일수록 예수의 삶과는 동떨어진 삶을 정상적인 크리스천의 삶인 양 착각하는 듯합니다. 하기야 성서도 이 문제를 언급하는 데 일관성이 부족한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252-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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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없는 예수교회 비판 내용 평점2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뇽*마 | 2009.02.02 | 추천14 | 댓글2 리뷰제목
  한국 교회가 지금보다 사회로부터 비판받고 신용을 잃은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핍박받는 것은 어제오늘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였던 예수님조차도 세상으로부터의 핍박으로 인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니까요. 교회가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교회가 받는 비판은 지금보다 더욱 심해질 것이고 이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
리뷰제목

  한국 교회가 지금보다 사회로부터 비판받고 신용을 잃은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핍박받는 것은 어제오늘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였던 예수님조차도 세상으로부터의 핍박으로 인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니까요. 교회가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교회가 받는 비판은 지금보다 더욱 심해질 것이고 이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이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없는 예수교회’는 한국 교회가 현 상황을 직시하고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습니다. 책 전반에 흐르는 주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천 년 전 이 세상에 오셨던 ‘역사적 예수’를 재조명하고 그를 본받는 ‘예수따르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 예수는 사랑의 화신입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모든 것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본받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품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논조는 얼핏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던 챕터별로 보던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비판하려고 하는 이유는 저자가 기독교인으로서 이 책을 집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 때 기독교에 대해서 잘못 이해할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유일신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교리는 무엇입니까? 인간들이 수 세기에 걸쳐 성령의 조명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 중 가장 기본이 되며 공통이 되는 것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것은 진리라고 누구나 믿는 사실이 교리입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시는 이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진리에 가까운지는 판단해야 하고 그 내용들을 가르쳐 전파해야 합니다. 그 잣대는 물론 성경이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분별력입니다.

  ‘예수없는 예수교회’는 분명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동안 저지른 잘못들을 회개해야 하고 역사적 예수, 인간 예수를 본받아야 된다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신격화된 그리스도에 치중하지 말고 실물 예수에 주목하자고 하며 그리스도와 예수를 분리한 한국교회를 꾸짖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교회는 분명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그리스도와 예수를 분리하고 있습니다. 39페이지를 보면 ‘이같이 스스로를 비우고 종이 되어 남을 섬기셨기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역사적 예수가 그리스도로 높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신격화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책을 잘 보다보면 예수님이 우리의 친한 스승, 친한 벗으로 묘사되고 ‘~’주의자 등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스승으로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기 위해 오신 사회변혁가가 아닙니다. 단지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서라면 왜 굳이 예수님이어야 합니까? 부처나 공자한테서 배워도 됩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어머니의 사랑에서 배워도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들의 구원자로서 오셨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멀기에 그 분을 통하여 다시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오셨습니다. 저자는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151페이지 참조) 15챕터를 봅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는 말씀을 해석하고 있는데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고 분명히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길은 밟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에 실물 예수의 행적이 나와 있지 않다고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은 나름 창의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저자가 예수님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발상입니다. 저자는 ‘흑암의 세계에 빛을 던지사 병마를 쫓아내시고, 부당한 차별의 장벽을 허무시며, 꼴찌와 지극히 작은 자들도 주인이 되는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시다가’라는 대목을 끼워넣자고 말합니다. 사도신경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외아들입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에게서부터 성령으로 나신 분입니다. 전능하시고 천지를 만드신 분께서는 저자가 말한 행적들 쯤이야 한 말씀만으로 이루어내실 수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이란 대목에 저자가 말한 부분은 자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기로 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의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저자의 이 발상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별개의 존재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듯 합니다. 39페이지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결코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이 책에는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른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구약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 진노하시는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인간 예수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우리는 사랑이신 바로 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용어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4장 8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둘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품고 있는 마음,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행동들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매를 들고 심판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구약에서 우리가 흔히 느끼는 진노하시는 하나님, 질투하시는 하나님도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잘못된 구원관입니다. 저자는 착한 행실로서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흔히 천주교에서 말하는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갈릴리 예수를 닮는 길만이 인류가 구원받는 진리의 길임을 믿습니다.(25p)

    사마리아인처럼 착하게 살아야 영생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100p)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구원을 받아 영생을 이르는 거룩한 존재입니다.(288p)

이와 같은 구원관을 주장하는 근거로 고린도전서 13장을 들고 있습니다. 바로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한 절 한 절이 모두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문맥 아래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물론 사랑이 으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요. 그런데 저자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무시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취하는 자세는 사랑이고 인간이 취해야 할 자세는 믿음입니다. ‘예수믿으미’가 먼저이고 ‘예수따르미’는 그 다음입니다. 이 시대에 이 둘 사이가 균형을 잃었고 진정한 ‘예수따르미’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순서가 뒤바뀌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따르미’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믿으미'가 되었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함이지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건 뭐 서평이 아니라 저자가 말한 ‘종교적 독선주의’로 이 책을 비판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이 기독교 서적으로 나왔기에 용기내어 이 글을 썼음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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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구입해서 지금 다시 보는 책,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이 사태속에 예수님의 말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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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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