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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호 열차

503호 열차

허혜란 글 / 오승민 그림 | 샘터 | 2016년 10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2 리뷰 30건 | 판매지수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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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0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04쪽 | 334g | 220*200*20mm
ISBN13 9788946419285
ISBN10 8946419288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확인 중
인증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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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경찰이 마당에서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 아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바라보았어요.
“사샤! 세상 돌아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네 나이, 열두 살.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야. 네 생각과 네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어. 강해져야 해, 알았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아빠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 「어디로 가는 걸까?」

“기다려, 안톤. 다른 것들도 만들어 줄게.”
나는 안톤의 새끼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었습니다. 안톤이 다시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어요.
해님이가 뜨개질하는 것들이 안톤의 몸을 아주 따뜻하게 덮어 줘서 안톤의 병이 싹 나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할머니를 덮어 주고, 우리 모두를 덮어 주고. 그래서 아픈 사람들 다 낫고 더 이상 춥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열차를 통째로 덮어서 아름다운 땅에 우리를 내려 주면 정말 좋겠어요. --- 「해님이 엄마가 아기를 낳았어요」

할머니는 숫자를 세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나도 함께 세어요. 가만히 보니까 다른 이들도 함께 숫자를 세고 숨을 쉬면서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어요. “아고야! 이럴 때 아를 나면 어쩔까” 하고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리고 “굶어 죽고, 아파 죽고, 추워 죽는 이 칸에 새 생명이 나온다” 하며 감격하는 목소리도 있어요.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어느 순간,
“응야! 응야…….”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열차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 「해님이 엄마가 아기를 낳았어요」

군인들은 몇 마디 말을 던지고 안톤을 빼앗아 들고 갑니다. 전염병이 생길 수 있으니 자기들이 처리하겠다는 거예요. 갑자기 해님이 엄마가 비명을 질렀어요.
“도대체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야! 도대체!”
언제나 조용하던 해님이 엄마가 딴사람이 되었어요. 가슴을 뜯으며 소리를 질렀어요.
“우리는 짐승이 아니야! 죄인이 아니야! 노예도 아니야! 제발 내 아기를 돌려줘, 흐흑!”
해님이 엄마의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이 거세게 흔들렸어요. 열차 안은 술렁거렸어요. 참았던 한숨과 울음소리들이 다시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어요.
아아, 해님이 엄마 말대로 저들은 안톤을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걸까요? 그리고 우리 모두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걸까요? 왜요? 수많은 이들의 묻는 소리를 싣고 열차는 한결같은 대답을 내뱉으며 흘러갑니다.
철커덕, 철컥, 철커덕 철컥……. --- 「눈을 떠, 제발!」

아, 그것들은 씨앗입니다. 각각의 꾸러미에 작은 글자가 조목조목 적혀 있어요.
벼, 밀, 보리, 배추, 무, 상추, 열무, 호박…….
삼촌은 한동안 그것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정성껏 꽁꽁 싸매었어요. 한 톨도 흘리지 않도록요. 나도 내 손에 들린 씨앗 봉지를 열어 보았습니다. ‘무궁화꽃’이라고 적혀 있어요.
할머니는 삼촌과 내 손을 굳게 잡았습니다.
“그것이 생명이여! 그것이 희망이고. 그것이 내일이지.”
“네! 어머니!”
삼촌은 단단히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조선 사람이야. 조선 사람들은 이 씨앗을 다루는 특별한 능력이 있단다.” --- 「삼촌과 레나 누나의 결혼식」

“우거덕 우거덕 파도친다. 에헤야 뿌려라…….”
누군가 목소리를 냅니다. 아아, 우리 삼촌이에요. 주먹을 굳게 쥔 채 음정도 박자도 틀린 목소리로 우렁우렁 소리쳐 불러요. 한 사람, 두 사람 목소리가 합쳐지기 시작합니다.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다 먹고 와삭와삭 자라나네. 와삭와삭 자라나네…….” --- 「드디어 열차에서 내리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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