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해석하는 거대 담론
불함문화의 불함이란, 광명, 하늘, 하늘신(天神 : 하느님)을 뜻하는 고어로서, 육당이 조선민족의 기원을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단군의 나라에 두고, 그 상고시대의 문화적 특징을 천신 사상(天神思想)이라 할 수 있는 ‘불함문화’로 명명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함문화는 단군조선의 개창자(開創者)인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天神)의 아들 환웅천왕(桓雄天王)의 자손이라는 단군신화, 즉 천손강림(天孫降臨)신화를 바탕에 깔고 있으며, 이 신화를 뿌리로 하는 불함문화가 퍼져 고대 중국과 일본의 문화를 형성했고, 나아가 유라시아 전역에 퍼졌다는 거대한 가설이 불함문화론의 내용이다.
● 「불함문화」는 인류 3대 문화권 중 하나이며 그 중심은 조선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은 육당(六堂) 최남선이 1927년 ≪조선급조선민족(朝鮮及朝鮮民族 : 조선과 조선민족)≫(경성, 조선사상통신사) 제1집에 발표한 논문이다. 최남선은 ≪불함문화론≫에서 민족의 단군신화를 현대 인류학의 세계 문명론 계보에 처음으로 등재시켰다. 원저작은 1925년에 탈고한 것으로 되어 있고, 저작의 동기는 일본지식인들, 특히 동양사학자들을 겨냥하여 한국 민족문화의 시원(始源) 및 분포 상황을 논한 것이므로 일문(日文)으로 작성되었다.
80년 전의 계몽학자가 박학함과 치밀함으로 풀어쓴
조선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불함문화론은 육당 개인의 순수창작은 아니고 1910년대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통해 만났던 수많은 국학계(國學界)의 선배, 동지들에게서 영감과 지식을 얻었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신채호(申采浩 : 1880~1936년), 박은식(朴殷埴 : 1859~1925년), 김교헌(金敎獻 : 1868~1923년), 유근(柳瑾 : 1861~1921년), 나철(羅喆 : 1863~1916년), 윤세복(尹世復 : 1881~1960년), 권덕규(權悳奎 : 1891~1949년), 정인보(鄭寅普 : 1892~1950) 등 대종교(大倧敎) 중심의 민족주의자들이 제공한 단군조선 담론들이 불함문화론 형성의 밑거름이 되었고, ― ≪고조선인(古朝鮮人)의 지나연해(支那沿海) 식민지≫(1915)와 ≪계고차존(稽古箚存)≫(1918), ≪조선역사통속강화개제(朝鮮歷史通俗講話開題)≫(1922) 등 논문참조. ― 여기에 육당 특유의 신학문을 통한 섬세하고 집요한 연구 분석 등이 가미되어 당대의 최신 인문학 분석기법인 비교종교학, 비교언어학, 비교신화학, 인류학, 역사학, 문자학, 금석학(金石學), 지리학 등이 동원된 참신한 내용의 논문이 탄생한 것이다.
● 18장의 내용에 담긴 세계사적 구도
불함문화론은 총 18장의 항목을 설정하여 저자 자신의 웅대한 세계사적 구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우선 제1장 「동방문화의 연원」에서는 조선 역사의 출발점을 인문의 기원인 단군 연구에 둠을 밝히고 단군이야말로 조선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요, 지극히 중요한 동양학의 초석이라는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제2장 「백산(白山)과 천자(天子)」는 앞서 제기했던 백산의 백(白)이 조선의 ‘?’의 대응어로서 ‘?’은 고대로부터 태양을 부르는 성스러운 말이었고, 하늘(天)과 하느님(神)을 상징하는 천신(天神)의 의미로 사용되어왔음을 밝히고 있다.
제3장 「일본의 ?산」과 제4장 「백산白山의 음운적 변전」에서는 일본 내에서의 ?산의 자취들을 추적하고 있는데,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지리역사학과 3개월 청강의 교육밖에 안 받은 육당이 천재적인 독학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듯 종횡무진 일본 전역의 지리와 역사를 넘나들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제4장에서는 ?산의 총수격이 한국의 백두산이며, 그 옛 이름이 불함(不咸_)임을 처음으로 밝히며 ‘?’이 울(ur)의 각운(脚韻)을 취한 예로 묘향산과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 오대산의 풍로, 지리산의 반야 등을 꼽았다.
제5장 「금강산은 작가라산,차크라산」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산의 하나로 금강산을 들고 이에 대한 집중분석을 행한다.
제6장 「태산부군(泰山府君)과 대인(大人)」에서는 중국에서 ?산과 불함산과 대갈산 및 대감산의 증거들을 찾으려 하며, 산동 지역의 명산이자 중국 오악(五嶽) 신앙의 메카요, 핵심이 되는 태산(泰山)을 샅샅이 파헤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육당의 역사적 시각으로는 태산 근방이 자리한 제(齊)와 노(魯)의 땅을 동이족(東夷族)의 원주지로 보고 있음을 들 수 있다.
제7장 「신선도의 태반」에서는 중국인의 과거 동방민족에 대한 칭호와 태산과의 관계를 논하면서 동이의 이(夷) 자에 대한 문자학적 접근과 분석을 중국 고전 ≪산해경≫의 대인국(大人國)설화와 비교하며 동방의 대인(大人)이란 원래 태산 지역의 대갈인(Taigr人)이었다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
제8장 「??리와 텡그리와 천구(天狗)」에서는 앞장에서 조선? 중국의 ?산이 대갈(Taigr)과 텡그리(tengri)의 이름과 뜻도 함께 지니고 있음을 고찰한 데 이어, 일본의 경우를 추리, 고찰하고 있다.
제9장 「히코와 다카」에서는 일본 신대(神代)의 구심점인 다카마노하라(高天原)의 의미가 한국과 중국 및 여러 나라의 건국신화와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 주목하고, 일본 신격(神格)에 붙는 ‘히코’란 용어가 ‘?’의 일본어 형태임을 밝히는 동시에, 그 파생어로서 여신을 표현하는 ‘히루메’와 ‘히메’가 한국어 ‘할미’와 ‘할머이’와 어원을 같이한다고 추정했다.
제10장 「조선 신도(神道)의 대계(大系_」에서는 불함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사용한 ‘?’과 ‘대갈’, ‘대감’, ‘텡그리’, ‘부군’, ‘불’ 등이 모두 하늘과 하늘신(天神)을 나타내는 종교적 숭앙의 대상어임을 주목하고, 그 용어들을 사용했던 광범위한 지역의 고대 선주민들이 종교와 정치가 일치된 일대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추찰한 뒤 이름 하여 한국의 ?문화(불함문화 : 천신도天神道), 중국의 신선도(神仙道), 일본의 수신도(隨神道)라 하였다.
제11장 「건국설화상의 천天과 단군(壇君)」에서는 조선의 고대사, 특히 건국신화의 주인공들인 단군과 부루, 주몽, 혁거세, 알지, 주일, 청예, 수로 등의 이야기에 나오는 ‘?’의 원형 등을 분석하고, 특히 단군과 천군(天君), 당굴, 텡굴, 텡그리 등이 같은 어원임을 얘기하며, 단군이 고대에 ‘?’을 표상으로 하는 텡그리(천신) 문화권의 제정일치적 샤먼군장이었음을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제12장 「불함문화의 계통」에서는 세계사의 잊혀진 큰 부분인 불함문화, 즉 단군문화가 현재1925년 당시 샤머니즘과 샤먼이란 원시신앙의 양태로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을 개탄하며 아주 중요한 발언을 토해낸다.
제13장 「불함문화의 세계적 투영」에서 육당은 불함문화가 인류문명사의 영아기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함으로써 기존의 인도 유럽 문명과 중국 문명과의 차별성을 뚜렷이 했다. 즉 세계문명사의 가장 이른 횃불이 바로 불함문화라는 것이다.
제14장 「지나(支那)문화의 동이소(東夷素) 또는 불함소(不咸素)」에서는 평소 중국 고대문화의 핵심 사상이라 믿고 있던 천제(天祭)와 천자(天子) 사상 및 천(天)에 관한 모든 이론과 실제가 전부 동이족 문화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육당 특유의 해박한 전고(典故) 실력과 풍부한 고문헌 자료의 내용 등을 총동원하여 증명해 보이고 있다.
제15장 「복희씨(伏羲氏)와 제(帝) 요순(堯舜)」에서는 중국 고대 문화의 첫 창조자인 복희(伏羲)나 신농(神農)을 황(皇)으로 보고, 첫 정치적 지배자였던 요(堯)와 순(舜)을 제(帝)로 보면서 이들 모두 태양의 덕을 갖추고 농업의 임무를 주로 맡아온 점으로 미루어 ?의 대신격(大神格)인 동이계(東夷系)의 단군들로 보았음을 고찰하여 문헌적, 언어학적, 금석학적, 신화학적 증명을 시도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불함문화적 요소들을 중국 고전에서 발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16장 「몽골(蒙古)의 악박(鄂博)과 만주(滿洲)의 신간(神杆)」에서는 서두에 불함문화권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문화적 비중을 가장 크게 설명하면서, 불함문화의 중요한 큰 특징으로 몽골의 오보(돌무더기)와 만주의 신간(神杆), 즉 솟대를 꼽으면서 오보는 조선의 당산(堂山)과 조탑(造塔), 일본의 우부에 비유했고 만주의 당자堂子로 비유했다.
제17장 「조선과 일본과의 제사상의 일치」에서는 일본을 조선 다음으로 한 국토와 한 민족을 계승하는 고국(古國)으로 보고, 종교문화인 불함문화를 통해 두 나라 제사예식의 공통점을 분석하고 있다.
제18장 「불함문화권과 그 설자(楔子)」는 불함문화론의 대미(大尾)이다. 육당은 스스로 이 논문을 ‘소루(疏漏)한 고찰’이라 자평하며 그간의 논지를 총정리한다. 즉 ? 중시의 문화가 어떻게 광범위에 걸쳐 깊은 근저를 지니고 존재해왔던가를 대략 살펴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육당은 결론적으로 중국과 인도 문화의 본질을 남방계 문화로 보고 불함문화는 북방계 문화로 생각했으며, 본질적으로 ?에 조응되고 대갈에 보호되어 그들의 현실적 이념적 일체 생활의 안정과 만족을 얻는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