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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 도시와 건축을 성찰하다

리뷰 총점8.8 리뷰 15건 | 판매지수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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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6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494g | 140*220*20mm
ISBN13 9788971997505
ISBN10 8971997508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건축가 승효상, 우리 도시 건축의 무늬를 성찰하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는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 철학을 토대로 이 땅의 ‘바른’ 도시와 건축 짓기를 강조하며 ‘파주출판도시’, ‘노무현 대통령 묘역’, ‘웰콤시티’, ‘수졸당’ 등을 설계해온 건축가 승효상이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 직무를 마친 직후 출간하는 책이다.

이 책은 승효상의 도시건축론을 담고 있다. 그는 우리 도시가 권력과 자본을 위한 기념비적 건축과 천편일률의 마스터플랜에 오랫동안 집착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펙터클의 건축은 우리에게 허망함만을 안겨주기에, 이제는 좁은 골목길, 작고 낡은 건물, 자연이 만든 삶터,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공영역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장소들이, 도시민의 삶을 기억하며 도시민을 화합으로 이끄는 ‘공공성’을 지닌 공간이기 때문이다. 좋은 건축가는 ‘공공성’을 담보한 건축으로 성찰하는 공유도시를 만들며, 이렇게 구축된 도시는 시민을 연대하게 하며 행복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오래된 거리와 빛바랜 건물 같은 ‘보이지 않는 건축’을 만나고, 모이고 떠들며 나누고 관계하는 많은 사람들의 틈에서 ‘움직이는 도시’를 발견할 것이다.

“건축에서 공간이 본질인 것처럼, 도시에서도 보다 중요한 것은 결코 몇 낱 기념비적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들로 둘러싸인 공공영역이다. 이 또한 보이는 물체가 아니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도시는 그 애환과 열정을 담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면서 존속하게 된다.
단일 건축이나 기념비가 갖는 상징적 가치보다는 그 주변에 담겨서 면면이 내려오는 일상의 이야기가 더욱 가치 있고, 시설물이나 건축물의 외형에 대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관계가 더 중요하며, 도시와 건축은 완성된 결과물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 끊임없이 진화하고 지속되는 데 더욱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런 도시는 기억으로 남아 통합된다.”
-본문에서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머리에 … 4
1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자 … 8
2 한 건축가의 죽음 … 16
3 “당신은 히로시마” … 26
4 마스터플랜의 망령 … 34
5 내 친구의 서울은 어디인가 … 43
6 ‘보이지 않는 도시들’ … 52
7 메가시티가 아닌 메타시티, 인문의 도시 … 59
8 터무니 없는 도시, 터무니없는 사회 … 68
9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리고 헤테로토피아 … 76
10 성찰적 풍경 … 84
11 세월호의 국가, 그네들의 정부 그리고 우리들의 도시 … 94
12 침묵의 도시 … 102
13 ‘스펙터클의 사회’, 그 보이지 않는 폭력 … 113
14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 … 120
15 ‘불란서 미니 이층집’과 ‘마당 깊은 집’ … 128
16 집의 이름, 인문정신의 출발점 … 136
17 동네 없는 주소 … 145
18 이 시대 우리의 건축 그리고 그 문화 풍경 … 153
19 건축과 장소, 그리고 시간 … 161
20 우리는 위로받고 싶다 … 171
21 ‘포촘킨파사드’와 도시의 속살 … 178
22 건축은 부동산이 아니다 … 186
23 ‘박조 건축’의 기억 … 194
24 이 집은 당신 집이 아닙니다 … 202
25 ‘빈자의 미학’을 재론하며 … 210
26 “그리하여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도 위험한 존재인 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졌다” … 218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건축가는 자기 집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고유 직능으로 한다. 그 직능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사색과 성찰을 수반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객관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자」중에서

마스터플랜의 허망함을 아는 해외 선진도시는 이미 다른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게 아니라 주민과 함께 필요한 작은 부분을 개선하고 기다리며 변화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형식, 시간이 걸리지만 시행착오 없는 이 지혜로운 방식을 침술적 방법이라고 이름했다. 도시는 완성되는 게 아니라 생물체처럼 늘 변하고 진화한다는 이치를 터득한 이 도시침술은 예산도 많이 들지 않지만, 무엇보다 과정이 민주적이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개발이 아니라 재생이라는 지금 시대의 가치와 부합한다.
---「4 마스터플랜의 망령」중에서

건축가들이지만 도시에서 정작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건축이 아니라 그곳의 생생한 삶이다. 그들은 현대의 첨단 건축이 즐비한 강남을 피해 강북의 골목길 풍경에 탐닉한다. 통행 기능만 있는 직선이 아니라 지형과 경사를 따라 불규칙하게 조직된 서울의 골목길에서 그들은 건축의 지혜와 영감을 얻는 것이다.
---「5 내 친구의 서울은 어디인가」중에서

오래 산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서로 달리 살던 사람들이 결혼하여 한 공간에 같이 살면서 그 공간의 규칙에 따르다 보면, 습관과 생각도 바뀌어서 결국 얼굴까지 닮게 된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이 산간벽지의 암자나 수도원을 굳이 찾는 이유가 그 작고 검박한 공간이 자신을 번뇌에서 구제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 오래 걸리고 더디지만 건축은 우리를 바꾼다. 즉 이런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면 좋은 삶이 되고, 나쁜 건축에서는 나쁘게 된다는 것. 이게 맞는다면, 건축을 통해 인간을 조작하는 일도 가능할 게다. 그래서 옛날부터 절대권력을 가진 자가 건축을 통해 대중의 심리와 행동을 조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고대에는 신전과 피라미드 등을 지어 민심을 장악했고, 이후 궁전이나 기념탑 같은 건축물도 절대권력의 영광을 칭송하게 하는 도구로 지어졌다.
---「14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중에서

어쩌면 이런 포촘킨파사드가 우리가 사는 현대도시의 전형적 모습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강남의 대로들을 가보라. 대로변에 즐비한 고층 건물의 화려한 파사드, 그 위에 명멸하는 네온사인과 불빛……. 욕망의 풍경이 만드는 환상으로 우리는 그 꺼풀 뒤의 실제 풍경을 쉽게 잊고 만다. 그러나 뒷길에만 들어가면 앞의 소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질박한 풍경이 전개된다. 집 장수들이 만든 주택과 거친 입면의 소형 건물, 그 사이의 좁은 길……. 사실은 이런 속살의 풍경이 이 도시의 진실인데도 질박함이 싫다 하여, 주요 가로변은 죄다 근린상업지구로 지정하고 고층의 상업 빌딩으로 가렸다. 우리가 살고 걷는 거의 모든 대로가 그러하니, 어쩌면 완벽한 포촘킨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게다. 겉살과 속살이 다른 도시, 우리는 그래서 늘 떠도는 삶을 사는가
---「21 ‘포촘킨파사드’와 도시의 속살」중에서

건축에 시간의 때가 묻어 윤기가 날 때, 그때의 건축이 가장 아름답다고 나는 즐겨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남루했어도, 거주인의 삶을 덧대어 인문의 향기가 배어나는 건축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경이롭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거주인이 시간과 더불어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물론, 건축이 거주인에 의해 완성된다고 해서 건축가의 책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는 모름지기 그 건축이 담아야 하는 시간을 재는 지혜를, 그 풍경의 변화를 짐작하는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그런 건축가가 만드는 건축이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나기 마련이며, 그렇지 못하면 시간을 견디지 못해 소멸되거나 우리 환경의 일부가 되기 위한 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그래서 애초에 건강한 건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24 이 집은 당신 집이 아닙니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기념비적 건축으로 가득 찬 거대 도시를 비판하다

세종시 공무원 자살, 세월호, 메르스……. 벌써 잊힌 듯하지만, 사회 도처에서 그처럼 터무니없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자본·권력에 집중하는 사회와 분열하는 시민, 파행을 거듭하는 정부. 건축가 승효상은 이러한 불행이 지난 시대 잘못 만든 건축에서 비롯한 것이라 본다. 인간은 건축 안에서 살 수밖에 없기에, 건축은 삶을 조직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쁜 건축으로 구축한 도시에 사는 시민은 나쁜 삶을 살게 된다. 다원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저자에게 나쁜 도시란 계급적인 도시다. 거주지를 계층별로 분류하고, 명령을 전하고 통제하기 쉬운 거리를 구성하고, 권력자의 구미에 맞는 거대 건축과 상징물을 랜드마크로 삼은 도시가 그러하다. 총독관저 터에 지은 폐쇄적인 청와대, 고위층의 압력으로 제멋대로 설계를 바꾸어 건축한 국회의사당, 땅의 기억을 깡그리 지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정체불명의 외래어를 조합한 이름을 지닌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 우리 도시는 거대한 규모와 화려한 장식으로 시민을 압도하는 스펙터클 건축에 오랫동안 몰두해왔고, 그로 인해 지금의 불행을 떠안았다.

도시의 속살, 도시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밝히다

그렇다면 어떤 건축을 지향해야 하는가. 민주적인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 승효상은 우리 주변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오래된 건물, 낡은 창살, 정형화되지 않은 골목길, 시민이 자유롭게 오가는 빈터와 마당. 이들은 우리 도시의 속살이다. 높은 빌딩과 호화로운 네온사인 뒤편에 숨은, 시간의 때가 묻은 삶터가 진정 아름답고 정직한 도시 풍경이다.

이뿐이 아니다. 우리 땅은 산을 품고 있다. 도시 내부에 산을 품은 곳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서울은 내산(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과 이를 둘러싸는 외산(북한산, 용마산, 관악산, 덕양산), 그 사이를 흘러나가는 물줄기가 고유한 지리를 만든다. 승효상은 서울의 랜드마크는 산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서양도시를 흉내 내느라 흉측한 랜드마크를 세워 조잡하고 부조화한 풍경을 만들었지만, 산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인공의 랜드마크와는 달라서, 서울은 언제든 회복할 수 있는 원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마당은 또 어떤가. 일본의 마당은 감상만을 위한 공간이며, 중국 사합원의 마당은 위계적 질서를 강조하는 공간이다. 중동 지방에 많은 중정은 혹독한 기후 때문에 만든 거주 장치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당은 어린이들이 놀면 놀이터요, 노동을 하면 일터다. 승효상은 제사, 축제, 결혼식, 장례식 등 어떤 목적도 충실히 수행하는 공간이 마당이라고 말한다. 마당이 비어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행할 수 있고, 모든 일이 끝나면 고요히 사유하게 하는 공간인 마당은 평면적인 서양의 광장보다 훨씬 민주적이다.

연대하는 공유도시를 위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

승효상은 왜 그러한 공간을 강조하는가. 그가 직시한 이 사회가 너무도 몰염치하고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독선과 전제, 이기와 편향, 분열과 파편으로 가득한 사회는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는 개개인은 힘이 없으니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대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공유도시이며, 이러한 도시는 공공성을 지닌 건축을 통해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건축은 삶을 조직하고 도시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건축가는 건축주를 위해 일하는 동시에 사회와 시민을 위해서도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주가 사유 재산으로 개인의 집을 짓는다 해도, 그 집이 행인과 이웃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좋은 건축은 집주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이익도 지켜주어야 한다. 따라서 건축주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상충할 때, 먼저 공공의 편에서 건축주를 설득하는 것이 건축가의 의무다. 만약 그 설득이 유효하지 못하면 어찌해야 할까. 승효상은, 바른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금전적 보상이 아무리 크다 해도 유혹에서 벗어나 마땅히 그 일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건축가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며, 건축의 공공성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제 메가시티(거대도시)가 아닌 메타시티(성찰도시)를 꿈꾸어야 한다.

이 책의 특징

1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 승효상이 쓴 ‘도시’론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는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로서 우리 도시 건축의 실태와 상황을 2년간 면밀히 살펴본 승효상이 퇴임 직후 출간하는 책으로, ‘도시’를 주제로 한 첫 책이다. 그간 서울시 건축 정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한 만큼, 승효상의 도시론은 현실적이되 희망적이다. 이 책은 그가 우리 도시를 새로이 설계하며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충실히 담고 있으며, 실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직접 목격한 총괄건축가이기에 가능한 통찰이 담겨 있다.

2 승효상, 건축을 통해 사회를 직시하다
승효상은 건축이라는 특정 분야만을 매개로 도시를 단순하게 보여주거나 일방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세태를 관찰하고 사회를 분석하며 성찰한 결과를 토대로 우리 도시 건축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도시와 건축을 이해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과거와 미래를 만날 수 있다. 승효상은 정부의 행태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우리의 과오를 직설적으로 지적하면서, 공공성을 지닌 건축으로 구축한 성찰적인 공유도시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3 ‘빈자의 미학’을 되새기며 내세운 새로운 키워드, 건축의 ‘공공성’
20여 년 전 승효상이 자신의 건축 개념으로 선언한 ‘빈자의 미학’은, 가난하고자 하는 이를 위한 건축을 말한다. 절제하며 검박한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한 건축론이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에서 승효상은 우리 사회가 20여 년 전보다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하며, ‘빈자의 미학을’ 되새긴다. 여전히 가짐보다 쓰임, 더함보다 나눔, 채움보다 비움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건축의 ‘공공성’을 단도직입적으로 강조한다. 좋은 건축가는 건축주뿐 아니라 그 건축과 더불어 사는 모든 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빈자의 미학』이 바른 건축을 하기 위한 자기 선언이었다면,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는 바른 건축을 통해 좋은 사회를 구축하겠다는 자기 성찰적 테제이며 공유도시를 지향하겠다는 승효상의 시민과의 약속이다.

4 승효상의 ‘장소’와 만나다
승효상은 베네치아, 베를린, 파리, 한양도성, 병산서원 등 국내외의 다채로운 공간을 소개한다. 반면교사로 삼고자 설명하는 공간도 있지만, 건축적 의미와 역사적 가치를 지닌 동시에 그 자체로 아름다워 소개하는 건축과 도시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는 우리 도시에 대한 뼈아픈 성찰로 괴로운 한편 직접 찾아가고픈 공간을 향한 열망으로 긴 여운이 느낄 것이다.

회원리뷰 (15건) 리뷰 총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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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22-06] 승효상, 건축의 공공성에 대해 생각하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w******f | 2022.01.30 | 추천20 | 댓글10 리뷰제목
좋은 도시와 나쁜 도시   오래 산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서로 달리 살던 사람들이 결혼하여 한 공간에 같이 살면서 그 공간의 규칙에 따르다 보면, 습관과 생각도 바뀌어서 결국 얼굴까지 닮게 된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이 산간벽지의 암자나 수도원을 굳이 찾는 이유가 그 작고 검박한 공간이 자신을 번뇌에서 구제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 오래 걸리고 더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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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도시와 나쁜 도시

 

오래 산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서로 달리 살던 사람들이 결혼하여 한 공간에 같이 살면서 그 공간의 규칙에 따르다 보면, 습관과 생각도 바뀌어서 결국 얼굴까지 닮게 된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이 산간벽지의 암자나 수도원을 굳이 찾는 이유가 그 작고 검박한 공간이 자신을 번뇌에서 구제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 오래 걸리고 더디지만 건축은 우리를 바꾼다. 즉 이런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면 좋은 삶이 되고, 나쁜 건축에서는 나쁘게 된다는 것. 이게 맞는다면, 건축을 통해 인간을 조작하는 일도 가능할 게다. 그래서 옛날부터 절대권력을 가진 자가 건축을 통해 대중의 심리와 행동을 조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고대에는 신전과 피라미드 등을 지어 민심을 장악했고, 이후 궁전이나 기념탑 같은 건축물도 절대권력의 영광을 칭송하게 하는 도구로 지어졌다. [p. 121]

 

이런 말들을 보면, ‘건축 만능주의’라는 평가해도 할 말이 없다. 만약 저자의 말이 맞는다면, 나쁜 건축으로 이루어진 도시(이하 ‘나쁜 도시’)에 사는 시민은 나쁜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도시가 나쁜 도시일까? 여기에는 가치판단이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정’을 지향한다면, 나쁜 도시가 어떤 형태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나쁜 도시는 거주지를 계층별로 분류하고, 명령을 전하고 통제하기 쉬운 거리를 구성하고, 권력자의 구미에 맞는 거대 건축과 상징물을 랜드마크로 삼은 도시가 아닐까?

반대로 좋은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건축가들이지만 도시에서 정작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건축이 아니라 그곳의 생생한 삶이다. 그들은 현대의 첨단 건축이 즐비한 강남을 피해 강북의 골목길 풍경에 탐닉한다. 통행 기능만 있는 직선이 아니라 지형과 경사를 따라 불규칙하게 조직된 서울의 골목길에서 그들은 건축의 지혜와 영감을 얻는 것이다.

많은 길들이 지난날 재개발의 광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서울에는 여전히 많은 골목길이 있다. 미로의 도시라면 모로코의 페스가 단연 앞선다. 1,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도시를 안내자 없이 갔다가는 길을 잃기 마련인데, 길이 이 도시를 지탱하는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 어떤 길은 몸을 비틀어야 지나갈 수 있는 60~70센티미터 정도의 좁은 폭이어서, 심리적으로 압박을 느끼는 보행자는 그 길에서 그저 속히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의 골목길은 대략 2~3미터 폭 우리 신체 크기에 딱 적합하여 페스의 답답한 길보다 훨씬 편안하고 밝다. 더구나 경사지인 까닭에 공간 변화가 무쌍할 수밖에 없어, 서울의 골목길을 걷는 것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 [pp. 44~45]

 

규격화된 공산품 같은 아파트나 화려한 네온사인을 뽐내는 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보다 오래된 건물, 낡은 창살, 정형화되지 않은 골목길, 시민이 자유롭게 오가는 빈터와 마당이 있는 ‘강북’이 더 좋은 도시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도시를 소개하는 책자에는 그 도시의 상징적 시설물이 등장하게 마련이지만, 사실 이것들은 그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의 일상과 괴리가 있다. 실제로 나는 서울의 남산타워에 올라간 적이 없으며 서울숲에도 간 적 없고, 고궁을 찾는 일은 몇 년에 한 번쯤일 뿐이고, 시내에 즐비한 고층빌딩에서도 살아본 적이 없다. 서울을 안내하는 책자마다 그려져 있는 이런 풍경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1923~1985)의 말을 빌리면 허무한 환영일 뿐이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사용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빈터나 길가에 도시의 본질이 있다는 것, 그는 이를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라고 했다. [pp. 54~55]

 

 

건축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가

 

건축가는 자기 집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고유 직능으로 한다. 그 직능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사색과 성찰을 수반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객관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p. 9~10]

 

다시 말해, 저자가 생각하는 건축가는 킹 비더(King Vidor, 1894~1982) 감독의 영화 <마천루(The Fountainhead)>(1949)에 나오는 신념에 찬 건축가 하워드 로크 같은 이다. 따라서 승효상에 있어

건축가는 건축주를 위해 일하는 동시에 사회와 시민을 위해서도 일해야 바른 직능을 지닌 이다. 왜냐하면, 건축주가 자기 재산으로 개인의 집을 짓는다 해도 길 가는 행인이나 옆집 사람도 그 집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건축은 집주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이익도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건축주는 그 건축의 사용권만 가질 뿐, 소유권은 사회가 갖는 게 맞다. 건축이 목표하는 바는 단순한 부동산의 뛰어넘는 공공성의 가치라는 것인데, 이는 바로 건축이 지녀야 할 윤리를 뜻한다. [pp. 204~206]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건축에 시간의 때가 묻어 윤기가 날 때, 그때의 건축이 가장 아름답다고 나는 즐겨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남루했어도, 거주인의 삶을 덧대어 인문의 향기가 배어나는 건축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경이롭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거주인이 시간과 더불어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물론, 건축이 거주인에 의해 완성된다고 해서 건축가의 책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는 모름지기 그 건축이 담아야 하는 시간을 재는 지혜를, 그 풍경의 변화를 짐작하는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그런 건축가가 만드는 건축이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나기 마련이며, 그렇지 못하면 시간을 견디지 못해 소멸되거나 우리 환경의 일부가 되기 위한 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그래서 애초에 건강한 건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p. 203]

 

 

공공성을 지닌 건축, 공유도시

 

만약 내가 사는 도시가 ‘나쁜 도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할까?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또 다른 ‘나쁜 도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는 나폴레옹 3세 당시 오스만 남작이 추진한 파리 개조 사업(1853~1870)처럼 마스터플랜에 의한 상의하달(上意下達) 방식의 개조밖에 이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아름다운 파리를 만든 파리 개조 사업도 시민들의 폭동과 시위의 장소를 제거하겠다는 목적에서 진행되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뻔하다.

심지어 마스터플랜에 의한 도시개조는 그 자체로 이미 시대에 뒤처졌다.

마스터플랜의 허망함을 아는 해외 선진도시는 이미 다른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게 아니라 주민과 함께 필요한 작은 부분을 개선하고 기다리며 변화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형식, 시간이 걸리지만 시행착오 없는 이 지혜로운 방식을 침술적 방법이라고 이름했다. 도시는 완성되는 게 아니라 생물체처럼 늘 변하고 진화한다는 이치를 터득한 이 도시침술은 예산도 많이 들지 않지만, 무엇보다 과정이 민주적이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개발이 아니라 재생이라는 지금 시대의 가치와 부합한다. [pp. 40~42]

 

재생’은 건축가 김면이 <파리, 에스파스(PARIS, ESPACE)>에서 말한 것처럼 과거를, 오래된 것을 부정하고 지워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유휴(遊休) 공간’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쓰임새가 다한 건물이나 장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도록 고민해 온 문제이다. 질문을 던지고 타인과 생각을 나누며 그 결과물을 공유하려는 국민성이 있는 그들은, 쓰임이 다한 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다 함께 고민하면서 그 방안으로 예술품이나 문화재의 전시를 계획하곤 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파리의 낡은 옛 병원들을 박물관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또 도시 안에 남아 있는 커다란 창고 및 교역장, 다리의 하부 공간, 옛 주택과 궁전 등을 사들인 뒤 박물관으로 바꾸어, 교육의 장으로서 사회에 환원한다. 역사성이 있는 공간들을 없애지 않고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 ‘도시의 기억’을 이어 가는 것이다.1)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하나하나의 개인은 힘이 없으니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대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공유도시이며, 이러한 도시는 공공성을 지닌 건축을 통해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책,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는 건축에 대한 지식을 넓혀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적 시각으로 건축을 보는 법을 알려주는 책인 셈이다.

 

1) 김면, <파리, 에스파스(PARIS, ESPACE)>, (허밍버드, 2014), p.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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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_니나킴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s***y | 2021.08.19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입시를 할 때 건축에 관한 책을 많이 읽으려 했다. 그때당시 필자에게 건축이란 막연히 하고싶은, 되고싶은 이상향에 가까웠기 때문에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읽고 경험하는 것 밖에 없었다. 어렵더라도 건축 인문학 책을 읽었으며 그 중 감명깊게 본 책이 승효상 건축가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이다. 승효상 건축가가 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아니다.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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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를 할 때 건축에 관한 책을 많이 읽으려 했다.

그때당시 필자에게 건축이란 막연히 하고싶은, 되고싶은 이상향에 가까웠기 때문에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읽고 경험하는 것 밖에 없었다.

어렵더라도 건축 인문학 책을 읽었으며 그 중 감명깊게 본 책이

승효상 건축가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이다.

승효상 건축가가 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아니다.

가장 유명하다는 빈자의 미학이었다.

그때당시 건축을 하지 않더라도 많이 읽었기에 꿋꿋히 읽어내려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 책과 다르게 고등학생 때 읽었던 승효상 건축가의 책은 더욱 구체적인 도시를

제안하는 인상을 주었기에 흥미로웠다.

 

건축은 인문학이라 주장하는 승효상 건축가는 사회가 굉장히 폭력적이기에

힘이 없는 개인은 연대하여 공유도시를 구축해야한다고 말한다.

또한 공유도시가 되려면 공공성을 지닌 건축을 해야하며

이런 공공건축이 확대되어야 하나 거대도시가 되면 안되고 성찰도시를 꿈꿔야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공공건축에 반문을 한다.

공유도시의 형태는 과연 공공건축뿐인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공공건축에 의미가 있을까?

 

그 당시에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시간과 힘을 소요하였다.

하지만 그만큼 건축에 대한 정이 커지고 건축학도의 길을 걸어야 겠다고 생각한 책이다.

 

아직도 필자에겐 꿈과 희망과도 비슷하다.

적어도 건축은 삶을 배워야한다는 의미를 알기에. 

 

 

 

"건축가의 직능은 새로운 상황과 만나면서 시작되는 일이며

새로운 건축주를 만나고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사용자와 만나며

새 땅과 만난다.

이때 경계 안에 머물기만 한다면 건축가라는 소임을 파기하는 일과 같다.

또한 건축공부는 삶에 관련된 것을 배워야 하며

건축을 굳이 어느 장르에 포함시킨다면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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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시티에서 메타시티로 전환하자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J**e | 2021.02.2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2016년에 출판된 책이고, 주로 신문에 연재한 것으로 책을 엮었기 때문에 당시 시사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정권의 성격과 연관된 것이 있고, 특히 당시 정권이 다시 권위주의 정권으로 향하고 있는 시기여서 이 책에서는 권위에 대한 반대의 의견이 많다.     주제는 마스터플랜에 대한 반대이다. 구획을 정해 놓고, 권위적으로 찍어 눌러 도시를 설계하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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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에 출판된 책이고, 주로 신문에 연재한 것으로 책을 엮었기 때문에 당시 시사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정권의 성격과 연관된 것이 있고, 특히 당시 정권이 다시 권위주의 정권으로 향하고 있는 시기여서 이 책에서는 권위에 대한 반대의 의견이 많다. 

 

 주제는 마스터플랜에 대한 반대이다. 구획을 정해 놓고, 권위적으로 찍어 눌러 도시를 설계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 챕터에서 반대의 의견을 내고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세워진 "프루이트아이고"란 아파트단지이다. 모더니즘의 시대 정신으로 각각의 구역을 공간과 기능으로 분리하였다. 하지만 실패했다. 세탁과 육아를 맡는 공동의 공간이 황폐화되었으며, 인종과 계급으로 분리된 곳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결국 폐기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마스트플랜에 대한 도시가 언급된다. 대표적으로 분당신도시가 소개된다. 아이러니하게 나는 이글을 분당 신도시 한가운데 정도에서 쓰고 있다. 건축가의 말대로 부동산은 성공하였다. 그래서 아직 폐기되지 않고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국가 주도의 도시계획이 이런 위험함을 가지고 설계된다. 여기서 건축가가 제안하는 형태는 메타시티이다. Top-Down 방식이 아니고, Bottom-Up 방식이고, 다양한 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형태이다. 

 

 도시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시에나의 그림이 소개된다. 나는 시에나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반 정도는 성곽안의 호텔에서 있었으며, 반정도는 시에나 외곽의 호텔에서 있었다. 그래서 도시라는 것이 성안과 성밖이 분리되고, 성안을 기본적으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가 확장되면서 성벽은 헐어지고 도시는 메가시티로 성장한다. 서울을 포함한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하다. 이때도 도시를 주거,상업,공업 지역으로 분류하고, 길을 대로,중로,소로로 서열화한다. 그리고 도심, 부도심으로 계급에 메겨진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다원적 민주주의의 도시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연대하고, 개인의 자유가 있고, 속도와 효율보다는 관계와 과정이 중요한 메타폴리스를 제안하고 있다. 

 

 한국에 가장 중요한 도시가 서울이다. 서울은 크기도 하지만,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서울은 다른 외국의 도시와 비슷하게 외형적으로 엄청난 인구를 가지고 있는 메트로폴리스이다. 하지만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서울은 다른 지형을 가지고 있다. 한강을 가운데에 두고 있고, 여러 산을 가지고 있다. 다른 도시들이 평지에 넓게 퍼져 있지만, 서울은 많은 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특성있는 도시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으로 특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울은 600년 수도이다. 그래서 온갖 기억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모조리 지우는 개발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유지하는 재생의 방법이 맞다. 이것이 서울을 메타폴리스로 갈 수 있게 할 것이다. 

 

 한편으로 죽음의 기억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동료였던 이종호 건축가에 대한 죽음. 스승이었던 김수근 건축가의 뛰어난 삶과 안타까운 요절. 위대한 철학가 발터 벤야민의 묘역. 위대한 건축가 르 코브뤼지에와 아내의 묘역. 살면서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매우 가치있는 일이다. 

 

 저자의 여러 건축물이 나오는데, 역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수졸당인가 보다. 그리고 판교에 청고당이라는 것이 소개되는데, 한번 찾아보와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감자창고를 한번 검색해 보았는데, 추사의 정신이 잘 표현된 좋은 건축물이라고 생각된다. 

 

  승효상 건축가는 처음에는 경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경계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한 가운데서 익숙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마지막에는 다시 빈자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그가 새로 일을 시작할 때의 건축주와의 갈등을 다시 새기고, 처음 마음먹은 대로 자신의 철학인 빈자의 미학으로 원칙대로 일할 것이라고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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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과 글에 매료되어 단숨에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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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 2019.10.23
평점5점
건축의 공공성을 잃이버린 우리시대에 공공이 무었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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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G***y | 2019.04.23
구매 평점4점
건축과 삶, 그리고 함께 존재하는 철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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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2***c | 201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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