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명의 소년 무사들이 그리는 ‘고구려판 해리포터’
엘리트 무사 국선랑과 최정예 무사집단 조의선인
국가의 존망과 궁극의 경지를 놓고 펼치는 도전과 모험의 기록
자생과 공생의 길을 찾아 떠난 고구려의 무사들과
안시성을 둘러싼 대당 전쟁의 역사
모름지기 역사란 승리와 성공의 기록이다. 하지만 세상에 어찌 이긴 자들만 있고 성공한 자들만 있겠는가. 역경의 도정에서 성공의 다디단 열매를 맛보지 못한 채 사라져간 사람이 숱할 것이고,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패배와 실패의 길을 택한 사람도 숱할 것이다. 웬일인지 나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그런 자들의 서글픈 운명에 마음이 끌린다. 고구려에 마음이 끌린 것도 그 때문이리라. _「머리말」 중에서
■■□ 700년 고구려 역사의 장엄한 결말이 우리에게 남긴 것
“왜 고구려는 역사의 승자로 기억되고 있는가!”
중국의 통일국가인 수나라, 당나라와 대립한 고구려의 역사적 의의를 교과서는 ‘외세에 대항한 민족의 방파제’라고 기술하고 있다. 고구려가 없었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일찌감치 중원의 역사에 흡수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일부 사학자들과 외국의 학계에서는 고구려가 수당과 벌인 전쟁을 두고 ‘동북아 패권쟁탈전’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족의 방파제였든, 중원을 노린 정복국가였든 고구려는 14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한민족의 기개와 웅지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기억되고 있다. 고구려 패망 이후 우리의 역사적 무대는 한반도와 간도 일대로 제한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철도부설권을 중국과 맞바꾸면서 간도마저 잃고 말았다. 고구려를 향한 향수는 비운의 근대사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위로이자 위안이기도 하다.
소설가 정지아가 새롭게 펴낸 역사판타지소설 『고구려 국선랑 을지소』(전2권)는 수당의 끈질긴 도전을 물리치고도 결국에는 내부 분열로 고구려가 자멸의 길로 들어섰던, 우리 역사의 가장 안타까운 장면 속에서 전개된다. 국운이 쇠퇴해가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각각 다른 출신의 여덟 국선랑이 분열을 넘어 화합을 도모해가며 인간의 완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쓸쓸함과 비장함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모든 것이 스러진 가운데에도 자생공생(自生共生)의 정신을 완성한 주인공 을지소에게서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 내재되어 있는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동북아의 역사적 분기점에서 펼쳐지는 일곱 소년의 무협 성장기
“인간의 길을 찾아 떠난 승리의 기록!”
고구려의 엘리트 무사 교육기관인 국선학당에 모인 여덟 명의 소년소녀들은 제각각 선대(先代)로부터 내려진 사명을 띠고 있다. 영류왕의 후손인 태자 환권은 왕권강화에 힘이 될 비급을 훔치는 것이 목적이고, 고구려 정계의 실력자인 연기춘의 두 아들인 연일우와 연일복은 태자를 보필하는 동시에 감시하는 목적을 띠고 있다. 돌궐 추장의 후손인 흑무는 패망한 조국을 부활시키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국선학당으로 왔고, 관나부의 귀족가문 출신인 우레미강은 입신을, 노예 출신인 나부는 생존을 위해 국선학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소녀인 연이련은 훗날 아버지인 연개소문의 세력에 보탬이 되기 위해 국선랑이 되었다. 여기에 아무런 욕심도 목적도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국선랑에 합류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주인공이며 을지문덕의 손자인 을지소다.
이 여덟 명의 국선랑은 선대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면서도 운명적으로 결합한다. 그리고 국선랑의 정신을 익히고 무술 수련 과정에서 고난을 함께하는 동안 차츰 끈끈한 우정으로 연결된다. 이들 여덟 명의 국선랑이 보이는 대립과 갈등은 당대 고구려 사회가 안고 있던 정치적 분열의 축소판인 반면, 이들이 화합해가는 과정은 고구려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자 해법이다.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 왕권강화를 위해 당과 거래를 하려고 했던 태자 환권이 마음을 고쳐먹으면서 여덟 명의 국선랑은 전혀 예기치 못한 모험 속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리고 일곱 개의 관문을 거치는 동안 국선랑들은 진정으로 고구려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깨닫는다.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기만 한 을지소는 위기 때마다 일취월장한 무공을 선보이며 차츰 영웅의 면모를 갖추어간다…….
이 소설은 고구려 말기 권력자들의 이전투구 속에서 선대의 도발과 대립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여덟 명의 국선랑(태자 환권이 당에 볼모로 잡혀가면서 국선랑 동지는 일곱 명이 된다)을 통해 ‘자생공생’이라는 고구려의 정신이 계승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완성된 인간을 찾아 떠난 소년들의 성장기이자,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고구려 후예들에게 계승된 정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 우리 역사를 무대로 한 청소년 판타지
“만만치 않은 내공의 작가가 선보이는 새로운 시도”
저자 정지아는 1990년에 『빨치산의 딸』(실천문학사)을 출간하며 문단에 데뷔한 중견작가다. 작가는 「노동해방문학」 활동을 하며 공안당국에 수배되는 고초를 겪었고,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부모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빨치산의 딸』은 판매금지 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오랜 침묵을 깨고 펴낸 소설집 『행복』(2004, 창작과비평)을 통해 개개인에 각인되어 있는 역사적 모순을 추적했던 그는 2008년에 펴낸 소설집 『봄빛』(창작과비평)에서 삶과 인간에 대한 보다 깊고 넓어진 사유로 완숙한 경지를 드러냈다.
그동안 역사와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온 본격문학(순수문학)의 작가가 ‘역사판타지소설’이라는 장르문학 계열의 작품을 펴낸 것은 무척 이례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문학이 대중적 아이콘과 키워드를 수용하기 시작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창이 넓어지면서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는 차츰 모호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발표된 이 작품이 어쩌면 우리 문학계에서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수준 높은 장르문학이 탄생하게 만드는 초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표된 판타지소설은 설령 소재를 우리의 역사나 설화에서 빌려오더라도 그 배경이나 주인공의 외모, 생김새, 이름 등은 모두 서양의 중세에서 차용하고 있으며, 소설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들도 인터넷 세대의 기호에 편승해왔기에 소설의 ‘국적’을 두고 논란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의 역사의식이라는 바탕 위에 정제된 언어로 채색된 토종 장르문학 『고구려 국선랑 을지소』의 출현이 더욱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