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9년 05월 25일 |
---|---|
쪽수, 무게, 크기 | 476쪽 | 546g | 140*210*30mm |
ISBN13 | 9788954608046 |
ISBN10 | 8954608043 |
발행일 | 2009년 05월 25일 |
---|---|
쪽수, 무게, 크기 | 476쪽 | 546g | 140*210*30mm |
ISBN13 | 9788954608046 |
ISBN10 | 8954608043 |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 은 그 해 읽은 소설 중 최고였습니다. 따스하고 감동적이면서도 들척지근하지 않은 이야기,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바로 와닿는 묘사, 그리고 건조하면서도 묘하게 감성적인 문체까지 모두 마음에 쏙 들었지요. 그 마커스 주삭의 책이라는데, 뭘 더 묻고 따지겠습니까. 읽어 봐야겠다 싶었지요.
이 책이 '책도둑' 의 후속이 아니라 전작이라는 사실은 책을 다 읽고 역자 후기를 읽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그 말을 들으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도둑' 이 이 책보다 뒤에 쓰였다면, 마커스 주삭은 퇴보가 아니라 발전을 했다는 이야기니까요.
'메신저' 는 여러 모로 '책도둑' 에 한참 못 미치는 작품입니다. 가장 큰 단점은 과도한 작위성입니다. 너무나 작위적인 이야기여서, 등장 인물들은 도무지 진짜처럼 보이지를 않습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위해서 충실하게 움직이는 도구들에 불과하지요. 그렇다 보니 감정 이입이 쉽지 않고, 나름대로 미스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뒷일을 조마조마하며 궁금해할 기분도 별로 들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어쩐지 버석버석한 느낌이에요.
어느 평범한 청년에게 갑자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그에게 카드를 보내 오는데, 거기에는 모르는 사람들의 주소와 이름들이 적혀 있지요. 호기심이 생긴 주인공이 그들을 찾아가 보면, 그들은 무언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다소 목표 의식이 희박한 게 문제긴 하지만 사실 아주 좋은 사람인 주인공은 결국 그들을 위해 할 일을 하게 되지요.
이러한 기본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죠. 저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서로 관련이 없는 십수명에게 뭔가 문제가 있고, 그들의 이름이 카드에 적혀 주인공에게 배달되고, 주인공은 그들을 위해 귀신같이 맞춤형 도움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카드를 보내 온 누군가는 주인공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알고 있고요. 절대자가 카드를 보낸 것이 아닌 이상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의아함은 결말 부분에서 제대로 증명이 되지요. 내 어렴풋이 그럴 줄 알고 있었다, 이런 기막힌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결말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흰 색으로 적겠습니다. 읽고 싶으시면 긁어서 보세요.
작가가 전면에 등장해서, "넌 사실 내 책 속의 인물이다, 너를 통해 평범한 사람도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이제 내 책은 끝나지만 넌 계속 살아다오." 이런 소리를 하는 건 너무나 촌스럽습니다. 이 비슷한 장면을 '소피의 세계' 에서 처음 봤을 때는 기분 좋은 충격이었지만, '소피의 세계' 는 실존에 관해 질문하는 철학 소설이었으니 존재의 의의를 의심케 하는 그런 구조가 아주 잘 어울렸죠. 이 소설과는 경우가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피소드 중 몇 개는 대단히 감동적입니다. 어느 가난한 미혼모와 아이스크림 이야기, 그리고 마브의 이야기는 비록 작위적인 것이라도 눈물이 핑 돌 만큼 작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주삭 특유의 표현력은 이 작품에서도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지요.
"조용히, 마브가 운다.
두 손이 해체되어 운전대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눈물이 얼굴을 움켜쥐고 있다. 버티다가 마침내 머뭇머뭇 목 쪽으로 미끄러진다."
이런 묘사를 할 수 있는 작가는 정말 드뭅니다. 인물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단어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그 절박함이 손에 잡힐 것 같지요.
'메신저'는 다소 실망스럽지만, 여전히 주삭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요. '책도둑' 은 이런 실망감도 다섯 권 분량 정도는 용서해 줄 만한 위력을 가진 책이었거든요. 특히 '책도둑' 이후의 작품들이 좀 더 많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역자는 계속해서 정영목이었으면 좋겠고요.
참으로 유쾌하고 희망찬 이야기이다.
빈민가의 판잣집에 월세를 살며, 택시운전을 하는,
이틀에 한번 꼴로 친구들과 카드 게임을 하는
어쩌면 별 볼일 없고, 비전도 없는 19살의 에드.
우연히 은행 강도를 잡게 되고,
그로 인해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메시지를 받게 된다.
네 장의 에이스 카드로부터 온 메시지는
에드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것도 아주 따뜻하게...
메신저의 역할을 아주 멋지게, 성공적으로 완수한
에드에게서 나는 행복을 느꼈고, 희망을 보았다.
이 작가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앞선 ‘책도둑’의
리젤과 이번 책의 에드는 작가의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기분 좋은 친구들인 것 같다.
그들은 가난하고 비전 없는 삶이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사명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까지
희망의 바이러스를 전해준다.
삭막하고 치열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다면 ‘마커스 주삭’의 책을 읽어보길
권해본다.
그는 책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야. 사람이 문제야.”
어떤 현실에서건 그의 주인공들이 이처럼 따뜻한 삶을
살아가는 건 우리에게 이런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함이 아닐까.
“내 이름이 에드 케네디다. 열아홉살, 법적 연령 미달의 택시 운전사다. 도시를 둘러싼 이런 변두리 지역에서 흔히 보게 되는 그저 그런 애들 가운데 하나다. 별 장래성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그런 애들 말이다. 그 외에, 필요 이상으로 책을 많이 읽고, 섹스와 세금 계산은 정말 엉망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 또한 나와 같이 종종 무기력함에 시달리곤 한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무기력함을 공유하다보면 자신의 무기력한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에드의 절친들, 마브와 리치 그리고 오드리라는 사각 편대, 이 네 명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동료 의식은 바로 그러한 무기력함의 공유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어느 날 함께 들른 은행에서 강도를 만나고, 그 강도를 쫓아가 잡고 난 이후 네 명 중 에드의 삶에는 분명한 변화가 생긴다. 택시를 모는 일을 하는 변두리 지역의 한심한 스무살 청년으로, 엄마와도 사이가 좋지 않고 오랜 시간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조차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친구들과 카드나 치며 시간을 보내던 에드가 드디어 무기력한 자신을 뒤로 한 채 무기력한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는 선택받은 자의 역할을 떠안게 된 것이다.
“... 왜 세상이 못 듣는 거지? ... 관심이 없기 때문이야... 뭘 하라고 선택을 받아? ... 관심을 가지라고.
”
그렇게 에드는 자신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를 해석하고, 그 메시지를 당사자에게 전달하며 동시에 메시지가 요구하는 변화를 직접 시행하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묵묵히(는 아니다. 제대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면 린치를 당하기도 하니까) 수행한다. 매 맞는 아내를 구하고, 헝클어진 형제애를 다독이며, 소외받은 이웃들을 성당으로 모으고, 묵묵히 트렉을 달리는 소녀를 응원하는 것이다.
“내가 그런 건 네가 평범함의 전형이기 때문이야... 너 같은 녀석이 일어서서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할 수 있을 거 아냐. 모두가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 아냐...”
그리고 결국 이 모든 메시지가 허약하기 그지없고 무력하기 그지없는 에드라는 소설 속 인물을 통해 구현됨으로써, 움직이지 않는 우리들 모두는 약간의 힐난을 감수해야 한다. 에드처럼 별볼일 없는 청년이 할 수 있는 것을 왜 당신은 하지 못하는 것이지, 하며 부추기는 것이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인 <책도둑>과 마찬가지로 나름 계몽적이면서 조금은 밋밋하기도 하지만, 우리들 삶의 핵심을 비껴가지 않는 작가의 관심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꽤 유효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