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처럼 암컷의 수가 극도로 적고, 수컷이 많은 것은 당황스럽다. 상황이 정반대라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수컷은 소수라도 많은 난자를 수정시키기에 충분한 정자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동물들은 생리와 환경 조건이 허락하는 한, 보통 하나의 시공간에 되도록 많은 세대를 집어넣는다. 그러나 꿀벌은 다르다. …… 적극적인 양육 태도를 보이는 동물들은 일반적으로 자손을 적게 낳는다. 자손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경우에 따라 자손이 성적으로 성숙할 때까지 보호가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세심하게 보호를 받은 자손은 환경의 영향에 방치된 자손들보다 더 안전하게 개체군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다. 보통 한배에 새끼를 하나 내지 둘 낳는 커다란 포유류가 이런 특성을 지닌다.
(2장 “불멸의 여정” 중)
세계적으로 모든 현화식물의 80퍼센트가 곤충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지는데, 이들 중 약 85퍼센트가 꿀벌의 도움을 받는다. 과일나무의 경우는 약 90퍼센트의 꽃이 꿀벌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꿀벌이 수분을 돕는 현화식물은 약 17만 종에 이른다. 이 중 꿀벌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즉 꿀벌의 방문이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현화식물은 약 4만 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의 바다가 단 아홉 종의 꿀벌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는 한 종의 꿀벌이 모든 수분을 책임지고 있다. …… 꿀벌과 식물의 이러한 극단적인 수적 불균형은 매우 놀랍다. 이는 꿀벌의 생태가 경쟁자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성공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동물계의 글로벌화이며 독과점인 것이다.
(3장 “성공 모델” 중)
꿀벌은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특정한 향기를 한 번 접하면 그 향기를 오랫동안 기억하여 다른 향기와 구별하는데 적중률이 거의 90퍼센트에 이른다. 이것은 화학적으로 순수한 향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성분이 섞여 있는 향기에도 적용된다. …… 꿀벌의 학습 능력과 후각 및 시각적인 자극을 구별하는 능력은 매우 뛰어나서 실제 실험에서도 꿀벌의 인지능력이 하등 척추동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심지어 생물학적인 의미가 불분명한 추상적인 ‘지적’ 능력도 발견된다. 가령 비행 도중에 신체가 이리저리 흔들릴 때에도 공간에 위치한 특정한 패턴의 ‘방향정위’를 지각할 수 있다. 또한 ‘오른쪽’과 ‘왼쪽’, ‘대칭’과 ‘비대칭’, ‘동일’과 ‘비동일’등의 추상적인 개념쌍을 이해 할 줄 아는 것으로 나타났다.
(4장 “꿀벌의 지식” 중)
로열젤리는 유모벌의 머리에 있는 하인두샘과 큰턱샘에서 분비된다. …… 유모벌은 로열젤리를 만드는 샘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꽃가루를 먹어야 한다. 로열젤리를 생산하지 않는 일벌의 몸에서는 이런 샘이 퇴화된다. 그러나 퇴화된 후 필요에 따라 다시금 활성화될 수도 있다. 이런 현상 역시 초개체 꿀벌 군락과 그 구성원들이 보유한 뛰어난 유연성을 보여준다. 꿀벌의 유충은 유모벌이 생산한 로열젤리만 먹으며 자란다. 맞춤영양식으로 양육되는 셈인데, 이러한 행동은 포유류에게서도 발견된다. 포유류라는 이름도 그런 행동에서 유래하지 않았는가! 꿀벌은 엄마가 생산한 ‘엄마젖’을 대신하여 자매들이 생산한 ‘자매젖’, 즉 로열젤리를 먹고 자란다.
(6장 “꿀벌 군락의 맞춤먹이 . 로열젤리” 중)
벌집은 꿀벌 군락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벌집은 군락의 물질, 에너지, 정보 전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벌집은 유기체가 적응해야 하는 고전적인 의미의 환경이 아니라, 꿀벌이 스스로 구축한 환경으로서 다른 신체 기관과 동일한 꿀벌 군락의 일부이다. …… 벌집 방의 위쪽 가장자리는 두툼하게 마감된다. 꿀벌은 이런 두툼한 부분 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이 부분은 어두운 벌집에서 꿀벌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너무 어두워 시각적인 신호가 투입될 수 없는 벌통에서 벌들의 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벌집에 확산되는 미세한 진동이다. …… 꿀이 채워져 있어도 진동 신호가 전달되는 데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현상은 벌집에서 진동 전달 시스템이 발달하도록 하는 토대를 제공했을 것이다. 벌집에서 가장 잘 전달되는 230 ~270헤르츠의 주파수대는 꼬리춤을 출 때 발생하는 짧은 진동 주파수와 일치한다. 꿀벌은 벌집 건축의 미세한 부분까지 조절하여 벌집에 그들의 통신망을 구축함으로써 자신들의 통신 주파수를 가장 잘 전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7장 “벌집의 구조와 기능” 중)
인간은 주어진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인 길을 걸었다. 꿀벌도 마찬가지다. 꿀벌의 경우 어쩌면 인간뢺다 더 철저하게 그 길을 걸었다. 인간은 주거 공간의 기후를 점점 더 세련되게 조절함으로써 자신의 주변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주어진 자연으로부터 독립하였다. …… 유충 방에 열적외선 카메라를 들이대면, 유독 뚜껑이 덮여 있는 유충 방에서만 가슴 부분에서 열을 뿜는 ‘뜨거운’ 벌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벌은 뚜껑 아래에 있는 번데기에게 열을 전달한다. …… 난방벌이 빈방에서 머무는 시간 내내 최고의 난방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 최대 5분까지 휴식이 끼어들고, 이때 난방벌의 체온은 최대 섭씨 5도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간다. 특정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자동 조절 시스템에서도 그와 같은 메커니즘을 볼 수 있다.
(8장 “부화되는 지혜” 중)
초개체는 위계적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꿀벌의 집단적인 행동은 지방분권적으로 이루어진다. 각각의 벌은 스스로를 위해서만 결정을 내린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각각의 벌들은 결정이 내려진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그 결과 군락에서 작은 부분적 변화들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런 작은 변화들이 다른 벌을 자극하고, 이 벌은 다시 새로운 작은 상황에 입각하여 그들 편에 서서 결정을 내린다. 그런 많은 작은 결정들이 모여 꿀벌 군락에서 관찰할 수 있는 ‘커다란’ 행동으로 나타난다. 분봉, 벌집, 건축, 벌집 활용, 벌집 주변 탐색 등은 초개체의 ‘커다란’ 행동 양식들이다.…… 제한된 능력을 가진 작은 구성 요소들이 다른 구성 요소들을 비롯한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각각의 미세한 행동을 통해 창발적인 커다란 패턴에 이르는 것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10장 “완성된 원” 중)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