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03년 0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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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958쪽 | 1526g | 158*233*40mm |
ISBN13 | 9788937406720 |
ISBN10 | 8937406721 |
출간일 | 2003년 0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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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958쪽 | 1526g | 158*233*40mm |
ISBN13 | 9788937406720 |
ISBN10 | 8937406721 |
박목월 시인은 초년엔 '박영종'이란 본명으로 훌륭한 동시의 세계를 펼쳤다면, 말년의 박목월 시인은 훌륭한 종교시의 세계를 펼쳤다. 시인의 『청록집』『산도화』『난. 기타』『첨담』『경상도의 가랑잎』『무순』『크고 부드러운 손』등과 같은 시집의 시와 미수록작들을 모아놓았다. 전무후무할, 박목월의 시의 정본(定本)이다. |
머리말 일러두기 작품 해설 / 이남호 작가 연보 1. 청록집 임 / 윤사월 / 삼월 / 청노루 / 갑사댕기 / (...) 2. 산도화 구강산 1 / 구강산 2 / 한석산 / 선도산하 / 달 / (...) 3. 난. 기타 야반음 / 심상 / 사향가 / 하관 / 생일음 / (...) 4. 청담 가정 / 밥상 앞에서 / 영탄조 / 겨울장미 / 방문 / (...) 5. 경상도의 가랑잎 벽 / 난초잎새 / 운석 / 낙서 / 춘분 / (...) 6. 무순 한계 / 빈컵 / 양극 / 틈서리 / 복도 끝에서 / (...) 7. 크고 부드러운 손 거리에서 / 자리를 들고 / 오른편 / 순금의 열쇠 / 감람나무 / (...) 8. 미수록작 기차속 / 숲 / 소(宵)의 호수바람 / 구월풍경 / 달은 마술사 / 송년송 / (...) |
1. 인연을 건너는 갈밭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 박목월, 「이별가」
죽은 동생이 저편 강기슭에서 소리치고 있다. 무언가 보이기는 하는데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다. 답답하다. 저편에 동생이 있지만 이편에 있는 사람은 그리로 갈 수 없다. 저편은 저편이고 이편은 이편이다. 이게 자연의 법칙이다. 시인은 바람에 불려서 이편으로 오는 소리 때문에 애가 단다. “뭐락카노”라는 사투리에 섞여 있는 애달픈 정서는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편 사람의 슬픔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오직 바람만이 이편과 저편을 넘나들 수 있다. 사람은 바람이 될 수 없으니 결국 바람에 소리를 실어 보낼 수밖에 없다.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저편으로 가지만 동생이 이 소리를 들었을 리 만무하다. 이편은 이편이고 저편은 저편이기 때문이다.
“뭐락카노”라는 시인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진다. 애가 다니 소리만 커질 수밖에 없다. 동아줄은 이미 삭아 내렸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저편에 있는 저 사람이 저렇게 보이는데 동생이 어떻게 죽었다고 생각하겠는가? 동생을 부르는 시인의 목소리가 커진다. 저편의 동생이 대답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바람에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인다. 이리로 오라는 것 같기도 하고, 저리로 가라는 것 같기도 하다. 시인은 “오냐, 오냐, 오냐”라고 대답한다. 들리지 않아도 대답은 해야 한다. 그래야 저편의 동생이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이편이 포기하면 저편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편이 안 되면 저편에 가서라도 만나야 한다. 그러니 동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이라는 시구는 동생의 죽음을 대하는 시인의 이런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갈밭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이다. 갈밭을 건넌 동생은 이리로 올 수 없고, 갈밭을 건너지 않은 형은 저리로 갈 수 없다. 그런데 ‘인연’이라는 고리가 여전히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다. 인연이 바람이 되어 갈밭을 건넌다. 이승에 부는 바람이 저승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다. 형이 쐬는 바람은 그러므로 저승의 바람이다. 동생의 숨결이 묻은 바람이라고 해도 좋다. 그래서 바람이 부는 한 동생과의 인연은 끝나지 않는다. 바람이 그칠 리 없으니 동생과의 인연 또한 끊어질 수 없다. 말 그대로 인연은 바람처럼
이곳과 저곳을 왕래한다.
박목월의 「이별가」는 이처럼 이별의 노래가 아니다. 그가 부르는 ‘이별 노래’는 인연이 끝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노래이다. 저편 강기슭에 있는 동생의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이리로 온다. 이편 강기슭에 있는 형의 목소리는 바람에 날려서 저편으로 간다. 그러니 이승이 아니면 저승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 확신에 가까운 이 마음으로 시인은 이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썩어서 동앗밧줄은 삭아 내리는” 상황에서도 시인은 저편에서 들려오는 동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를 반복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라. 들리지 않아도 그는 끊임없이 “뭐락카노”를 외친다. 소리가 곧 바람이고, 바람이 불어야 갈밭을 건너 저편으로 가는 뱃길이 만들어진다.
“오냐, 오냐, 오냐.”라는 말 역시 “뭐락카노”라는 시어와 다르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갈밭을 건너기 위해 시인이 내는 소리들이다. 그 소리들이 실제로 갈밭을 건너가는지 아닌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소리로 갈밭을 건너려는 형의 그 마음이다. 소리가 바람이 되어 갈밭을 건널 거라는 형의 그 마음 때문에 동생은 저편에서 형을 계속 부르고 있다. 시인의 이 마음을 죽은 이에 대한 집착이라고는 말하지 말자. 시인은 저승으로 가는 소리를, 바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 소리가, 그리고 그 바람이 우리의 인연을 잇게 할 것이라고 시인은 믿고 싶을 뿐이다. 죽은 이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바람의 상상력과 맞물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로 승화되고 있는 셈이다.
2. 죽은 아비를 향한 간절한 애도
아베요 아베요
내 눈이 티눈인 걸
아베도 알지러요.
등잔불도 없는 제사상에
축문이 당한기요.
눌러 눌러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가이소.
윤사월 보리고개
아베도 알지러요.
간고등어 한 손이믄
아베 소원 풀어드리련만
저승길 배고플라요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묵고 가이소.
여보게 만술(萬術) 아비
니 정성이 엄첩다.
이승 저승 다 다녀도
인정보다 귀한 것 있을락꼬.
망령(亡靈)도 응감(應感)하여, 되돌아가는 저승길에
니 정성 느껴느껴 세상에는 굵은 밤이슬이 온다.
- 박목월, 「만술 아비의 축문(祝文)」
아버지 제삿날이다. 까막눈(티눈) 아들이 차린 제사상에는 축문(祝文) 하나 올라 있지 않다. 글자 아는 이들에게 써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들은 아비를 향한 정성스런 마음을 중시한다. 글자를 모르는데 굳이 축문을 쓸 이유가 무언가? 정성만 들이면 되지 않는가? “등잔불도 없는 제사상에” 축문은 없어도 정성만은 누구 못지않게 불어넣어 상을 차렸다. “눌러 눌러/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가이소.”라는 말에 죽은 아비를 대하는 아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 때는 “윤사월 보릿고개”다. 언제 어떻게 죽어나갈지 모르는 시절이다. 그런 와중에도 아들은 저승에 있는 아비를 잊지 않는다. 죽어 귀신이 되어 떠돌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아들은 소금에 밥이나마 눌러 눌러 그릇에 담는다. 아들이라고 아비에게 딱 부러지는 제사상을 차려주고 싶지 않을까? 평생을 고생하며 살다가 저승으로 간 아비다. 이승에서 서럽게 살던 아비가 저승에 가서까지 굶는 건 너무 서러운 일이 아닌가
“간고등어 한 손이믄/ 아베 소원 풀어 들리련만” 아들은 그럴 수가 없다.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처럼 사람 마음을 애타게 하는 게 있을까? 간고등어 하나에 아비는 소원을 이루고 아들은 마음이 풀릴 텐데, 그걸 제사상에 올리는 일이 참 힘들기만 하다. 정성 문제가 아니다. 정성으로 따지면 이 아들만한 이가 어디 있겠는가? “저승길 배고플라요.”라는 시구에 아들의 진정이 나와 있다. 저승길은 산 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길이다. 보이지 않는 곳을 터벅터벅 걸을 아비를 걱정하며 아들은 “소금에 밥이나마 막이 묵고 묵고 가이소”라고 간절하게 이야기한다. 죽은 아비라고 이 간절함을 모를까? 진실한 마음은 언제가 통하기 마련이다. 이쪽과 저쪽으로 갈라져 있다고 해도 진심은 항상 진심을 부른다. 가난한 아들은 그 진심으로 가난한 아비를 부른다. 아들이라고 달리 해줄 게 없고, 아비라고 달리 바라는 게 없다. 그저 마음이 서로 통할 뿐이다.
아들은 지금 만술 아비가 되었다. 자식을 둔 아비의 마음으로 그는 죽은 아비를 생각한다. 자식을 향한 아비 마음이야 언제나 똑같다. 소금에 밥이나마 아들이 배불리 먹었는지 아비는 늘 궁금하다. 누군가 만술 아비가 제사상을 앞에 두고 하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간고등어 하나 장만하지 못하고 아비 제사상을 차린 만술 아비의 탄식을 들은 모양이다. “여보게 만술 아비/ 니 정성이 엄첩다.”라는 말이 2연에 첫 문장으로 나온다. ‘엄첩다’는 ‘대견하다’는 뜻이다. 무엇이 그리 대견한 걸까? “이승 저승 다 다녀도/ 인정보다 귀할 것 있을라꼬.”에 그 해답이 나와 있다. 이승에서 통하는 마음이 저승에서도 통한다는 것일까? 인정은 인정을 부른다. 인정은 영혼까지도 강하게 한다. 아비의 영혼이다. 아들이 행하는 조그만 대접에도 아비는 기쁜 마음을 내보일 수밖에 없다. 죽은 아비는 아들을 통해 지금 이곳을 살고 있다. 몸은 이곳에 없어도 마음만은 이곳에 있다.
마음이 있는 자리가 곧 영혼이 살고 있는 자리다. 정성에 응감(應感)한 망령이 왜 이 세상에 “굵은 밤이슬”로 오겠는가? 어차피 되돌아가야 할 저승길이다. 이승으로 돌아오는 찰나가 지나면 영혼은 어김없이 저승길로 돌아가야 한다. 이승에 남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영혼은 잘 알고 있다. 아들이 제사상에 올린 밥 한 그릇을 먹고 아비는 울면서 길을 떠난다. 간고등어 하나 못 올린 아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들린다. 간고등어가 뭐라고 아들이 저리 탄식을 하는가? “니 정성 느껴느껴” 아비는 눈물을 흘린다. 아들에게 물려준 거라고는 가난밖에 없다. 아비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이 가난은 왜 이리 끈덕지게 들러붙어 있는 것인지. 하필이면 보릿고개에 제삿날이 닿아 아비는 아들에게 그저 미안하기만 하다. 아들이 주는 소금에 밥이나마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아비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얼굴로 저승길을 걸어간다.
제사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갈등을 겪고 있는 요즘이다. ‘정성’이라는 말로 그런 사람들이 겪는 갈등을 갈무리할 수는 없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게 조상을 향한 예의를 버린 거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집안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제사가 의무가 되면 의무를 진 사람은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제 신세를 탓할 수밖에 없다. 이 시에서 아들이 아비에게 행하는 정성은 사실 밥 한 그릇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런저런 음식을 장만하고, 축문을 써서 올리고, 가족들이 쭉 늘어서 절을 올려야만 정성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밥 한 그릇에 그득그득 정성을 담아 만술 아비는 죽은 아비를 기린다. 그것이면 되지 않았는가? 죽은 아비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차려놓고 정성스레 절을 올리면 영혼 또한 응감하지 않겠는가? 죽은 자를 위한 애도는 곧 산 자들을 위한 의식이기도 하다. 망령이 응감해서 이 세상에 내리는 “굵은 밤이슬”은 진심과 진심이 만났을 때 펼쳐지는 ‘기적’을 에둘러 보여준다. 아비와 아들은 그렇게 이승과 저승에서 하나로 묶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두산출판사(우한용 외)국어 1학년 1학기, 비상교육(조동길 외)> 1학년 1학기 국어에 실린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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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새알 산새알
박목월
물새는
물새라서 바닷가 바위틈에
알을 낳는다.
보얗게 하얀
물새알.
산새는
산새라서 잎수풀 둥지 안에
알을 낳는다.
알락달락 얼룩진
산새알.
물새알은
간간하고 짭조름한
미역 냄새
바람 냄새.
산새알은
달콤하고 향긋한
풀꽃 냄새
이슬 냄새.
물새알은
물새알이라서
날갯죽지 하얀
물새가 된다.
산새알은
산새알이라서
머리꼭지에 빨간 댕기를 드린
산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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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연 생각 : 청록파 시인(박목월, 박두진, 조지훈)들!
학창 시절에 열심히 외운 친숙한 이름들입니다.
시에는 청록파, 생명파, 시문학파, 해외문학파 등
그리고 동인지에는 창조파, 폐허파, 백조파 등
그 시절에는 왜 그리 파가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많은 유파 중에서 가장 친숙하게 느껴진 것이 청록파이고,
그 분들 중에서도 박목월 시인이 가장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초기에 동시로 출발했고,
상대적으로 시어가 쉽고 포근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대표작인 <나그네>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명시이기도 하고요.
연이 두 개씩 짝을 이루고
비교적 짧은 행으로 운율을 만들면서
평범한 듯하면서도 군더더기가 거의 없이 단정한 이 시는
말없이 제 자리를 지키는 자연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학창 시절에 내가 구입한 유일한 시집이 『산새알 물새알』이었습니다.
보라색 표지로 되어 있던 이 시집이 아직도 떠오르는군요.
(시의 제목은 「물새알 산새알」인데
그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목은 『산새알 물새알』이군요.
이렇게 시와 시집의 제목이 다른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산에서 산새알도 보았고,
물에서 물새알도 보았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새알을 보던 그 시절의 모든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행복한 회상에 잠겼답니다.
* 박목월(1916~1978) : 시인. 본명은 영종. 경북 경주에서 태어남.
대구 계성 중학교 2학년이던 1933년에 <어린이>에 동시가 특선에 입상하고,
1939년 <문장>에 시가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함.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하며, 3인시집 <청록집>을 펴냄.
순수한 자연의 모습과 향토적 정서를 노래한 시를 씀.
시집 <산도화>, <난, 기타>, <청담>, <무순> 등이 있고,
동시집 <박영종 동시집>, <초록별>, <산새알 물새알> 등을 펴냄.
* 자료 출처 : 2010학년도 중학교 1학년학생들이 배우는
<두산 출판사>, <비상교육> 등의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감상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