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22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국제수학연합(IMU, 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 ‘국제수학자연맹’이라고도 불린다)이 주최하는 필즈상 수상식이 열렸다. 회장 안에는 상을 수여할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와 세계에서 활약하는 4,000명이 넘는 수학자들로 가득 찼다.
필즈상은 4년에 한 번 수학계에서 뛰어난 공적을 쌓은 수학자 몇 명에게만 주는 수학계 최고의 영예로운 상으로, 수상자가 적다는 점에서 노벨상 이상으로 권위가 있다. 이 해의 필즈상은 푸앵카레 추측의 해법을 제시한 수학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시 IMU 총재인 존 볼 박사(John Ball, 옥스퍼드 대학 교수)가 수상자를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나타나자 객석은 그를 큰 박수로 맞이했다. 박사는 잠시 회장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말문을 열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출신의 그리고리 야코브레비치 페렐만(Grigory Yakovlevich Perelman) 박사에게 필즈상을 수여합니다.”
총재의 말과 동시에 긴 수염을 기른 남성의 얼굴 사진이 단상 스크린에 떠올랐다. 세기의 난제라는 푸앵카레 추측을 푼 40세의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 박사였다. 회장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학계에 일어난 ‘100년에 한 번 나올 기적’을 기리며 기쁨을 함께 나누는 박수였다.
하지만 곧이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존 볼 박사가 말을 이었다.
“심히 유감스럽게도 페렐만 박사는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존 볼 박사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회장에는 어설픈 박수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곧 멎었다. 어처구니없게도 페렐만 박사는 필즈상 메달과 상금 수여를 거부하고 회장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푸앵카레 추측을 풀려고 애쓴 수학자들은 특히 충격이 컸다. 30년 넘게 푸앵카레 추측을 연구한 미국의 볼프강 하켄(Wolfgang Haken) 박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4년에 한 번 주는 필즈상을 거부한 수학자는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국제수학에 믿을 수 없는 타격을 주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일부러 한 행동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이 일로 페렐만은 온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상을 거부한 속마음은 물론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사는지 매우 흥미롭다.”
“러시아 은둔자 ‘수학의 노벨상’ 거부, 학회를 조롱하다.”(미국, 〈USA 투데이〉)
“가난한 수학자가 상금 100만 달러를 거절했다.”(러시아, 〈프라우다〉)
“페렐만은 확실히 흥미롭다. 하지만 다른 천재 수학자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프랑스, 〈인터내셔널 트리뷴〉)
전 세계 미디어가 앞 다투어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세기의 난제라는 푸앵카레 추측을 푼 위업도 위업이지만 뉴스의 초점은 온통 페렐만 박사의 특이한 외모와 수수께끼 같은 성격, 그리고 난제 해석에 걸린 100만 달러(약 14억 원)나 되는 엄청난 상금에 쏠렸다.
2000년, 미국의 사설연구기관인 클레이 수학연구소(Clay Mathematics Institute, CMI)는 일곱 가지 미해결 문제를 모은 ‘밀레니엄 현상금 문제(millenium prize problems)’를 발표하였는데 푸앵카레 추측도 이 중 하나였다. 이때 클레이 연구소는 문제를 해결한 사람에게 수학계에 공헌한 점을 인정해 100만 달러의 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필즈상 수상을 거부한 페렐만 박사가 이 상금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당시 클레이 수학연구소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고, 당사자인 페렐만 박사의 행방조차도 알 수 없었다. 유일한 소식이라야 “페렐만 박사는 수학계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숲에서 취미인 버섯 따기를 즐기고 있다.”는 기묘한 소문뿐이었다.
과거 70년 동안 겨우 44면 밖에 받지 못한 수학계 최고의 영예인 필즈 메달. 메달 앞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옆면에는 수상자의 이름이 새겨진다. 하지만 이번 메달은 사상 처음으로 갈 곳을 잃어버렸다. --- ‘에필로그’ 중에서
“우주가 어떤 형태든 그것은 최대 여덟 종류의 조각으로 이루어진다.”는 서스턴의 기화학 추측이 증명되었다. 그것은 동시에 “우주에 두른 밧줄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면 우주는 둥글다고 말할 수 있다.”는 그 유명한 푸앵카레 추측이 증명된 것이기도 했다.
1904년, 20세기 ‘지의 거인’ 푸앵카레가 낳은 난제는 그의 예언대로 꿈에서도 예상치 못한 미지의 세계로 수학자를 인도했다. 수많은 인생을 희롱했고, 사람들에게 수학의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깨닫게 했다.
그리고 그 증명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막을 내렸다.
이쯤에서 소박한 의문이 생기는 분도 있을 것이다.
왜 페렐만 박사일까? 페렐만 박사가 세기의 난제를 최종적으로 푼 해결자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페렐만 박사에게 수학 교수직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야코브 엘리어쉬버그 박사는 페렐만 박사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 생각하면 페렐만 박사가 스탠퍼드 교수직을 거절한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2년에 미국 유학을 결정한 것도 단순히 학업을 위해 연구 환경을 바꾼다는 동기는 절대로 아니었다고 엘리어쉬버그 박사는 생각한다.
“페렐만이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러시아로 돌아간 것은 단지 문제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교수라는 지위는 수학에만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학생도 지도해야 하고 잡다한 업무도 처리해야 하는 등 수학 연구 외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수학 연구만 하고 싶다면 대학에 남아서는 안 됩니다.
애초에 미국으로 건너온 것도 당시 뉴욕에 있던 그로모프 박사와 치거 박사, 그리고 해밀턴 박사가 난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인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가 미국으로 온 지 3년이 되었을 때는 이미 러시아에서 살기 위한 자금을 충분히 모았을 것입니다. 미국의 만안 지역, 특히 버클리 주변은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보통 장학생 수입으로는 저축 같은 건 못 합니다. 그러나 그는 검소했기 때문에 저축도 할 수 있었고, 당시 러시아에 있던 가족에게 돈까지 부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미국으로 온 목적은 모두 달성한 것입니다.”
브루스 클라이너 박사는 페렐만 박사가 난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배경을 ‘푸앵카레 추측에 응용할 수 있는 수학적 테크닉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페렐만 박사가 폭넓은 분야에서 수학의 지식을 익힐 수 있었던 보기 드문 ‘만능선수’라는 점도 인정한다.
“수학자 중에서 두 분야 이상에서 커다란 공헌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두 분야 이상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새로운 사고를 재구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페렐만은 가령 장대높이뛰기와 100미터 달리기, 넓이뛰기와 포환던지기, 그 모든 중목에서 금메달을 딸 능력이 있는 육상선수와 같습니다. 그런 종목에서는 서로 다른 근력과 정신력, 다른 훈련이 필요합니다. 근력 선수는 바벨을 들어올리기 위해 근육을 단련하는데, 그것은 마라톤 주자와 같은 지구력 선수에게 필요한 근육과는 다릅니다. 페렐만처럼 동떨어진 분야를 동시에 이룰 능력이 있고, 게다가 그 수준이 매우 높은 경우는 몹시 드뭅니다.”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의 미하일 그로모프 박사는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난제를 해결한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에는 과거의 자료가 너무 적어서 어렵다고 말한다.
“100년에 한 번 일어나는 기적을 설명하기란 실로 어렵습니다. 어쩌면 페렐만의 경우 고독을 이겨 낸 것이 성공의 이유일지 모릅니다. 고독 속에서 연구하는 것은 일상 세계를 살면서 동시에 어지러운 수학 세계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인간성을 딱 둘로 나눠야 하는 힘든 싸움입니다. 페렐만은 그것을 끝까지 견뎌낸 것입니다.”
그로모프 박사는 세기의 난제를 해결한 것과 필즈상을 거부한 것은 표리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는 불필요한 일은 철저히 버리고, 자신을 사회에서 완전히 차단시켜 문제에만 집중했습니다. 그의 순수성이 7년 동안 고독한 연구를 가능하게 했고, 동시에 필즈상을 거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업적을 평가할 때 순수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수학, 예술, 과학, 어디든 타락이 생기면 소멸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도 논리의 순수성이 일정 수준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붕괴할 것입니다. 의식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수학은 순수성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학문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무너지면 수학은 불가능합니다.”
---‘제7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