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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빛의 호위

조해진 | 창비 | 2017년 02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49건 | 판매지수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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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376g | 145*210*20mm
ISBN13 9788936437459
ISBN10 8936437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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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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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하는 존재들을 이야기하다
도서1팀 김유리 (asalighter@yes24.com)
2017-03-29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다. 몇 개의 휴대전화번호들을, 사랑하는 이의 생일을, 즐거워하며 함께 나누어먹던 음식을, 꼭 껴안아주며 축하의 말을 던지는 시간을 기억함으로써 자신을 구축한다. 허나 동시에 무언가를 빠르게 망각함으로써 온전해지기도 한다. 헤어진 이와의 기념일을, 처음 만나 걷던 어느 길목을, 서로 주고받던 연서들, 헤어지던 순간 떨었던 입술들과 공기를 지워버린다. 이렇게 기억과 망각을 반복하며 인간은 무수한 삶의 통로를 지나간다. 그곳에는 선택적으로 남은 기억들, 혹은 지워버릴 수 없어서 덮어놓고 꺼내지 않은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어느 것은 기억하고 싶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괴롭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발생한 돌연변이들이 인간을 전진하게 한다.

조해진의 소설은 이 ‘전진’에 관해 이야기한다. 불행히도 방향성은 없다. 『빛의 호위』 에 실린 단편소설 속의 인물들은 정처 없이 헤매거나 떠돈다. 그들은 세상에서 소외되고 잊혀지는 존재다. 일생에 가족을 가져보지 못한 일용직 노동자, 기초수급대상자가 되어버린 전직 대학강사,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들어간 사람, 고아가 되어버린 아이...... 그들은 유실물보관소에 놓인 유실물처럼 유한한 시간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처리시각을 기다리듯 방치되어 있다. 주인이 찾지 않으면 무의미한 그들은 이방인일뿐.

자신의 근원조차 알 수 없는 그들은 세계에서 도주하거나 자신을 그 속으로 편입하려 발버둥치지 않는다. “개인은 세계에 앞서고, 세계는 우리의 상상을 억압할 수 없”기에. 오히려 조해진의 인물들은 자기 내부의 결핍을 고집스레 마주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생(生)을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는 가난과 고독 끝에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된 권은과 3년 간 지하 창고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했던 알마 마이어의 깊은 내흔을 「빛의 호위」 속에서 함께 더듬는다. 작가 특유의 타자-소외를 다루는 관찰자적 시선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불행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로 너무나 닮았음을 선명히 보여준다.

도저히 개인이 해결 불가능한 폐허에서의 일상은 잔인하기 그지 없다. 때때로 「산책자의 행복」의 홍미영처럼 “미치도록 살고 싶어”라고 절규하기도 하고, 「문주」의 문주처럼 “버린 건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 건 바로 ‘그들’이다. 답장 없는 홍미영에게 계속 “살아 있다는 감각”을 전달하는 메이린(「산책자의 행복」), 절망에 빠져있던 나를 꺼낸 안젤라(「번역의 시작」), 아픈 동생을 살게 하는 죽은 언니(「잘 가, 언니」), 역사의 폭력에 희생당한 안수 리를 기다린 한나(「동쪽 伯의 숲」)에게서 연대를 발견한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삶의 이유가 되어준다. 객관적 세계 앞에서 더없이 남루한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찾아 가고, 읽히지 않을 편지를 보낸다. 비록 자신들을 짓밟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지언정 부재로서 남기 위해 절실히 타인을 기억해낸다.

결국 9편의 단편소설들은 인간은 단지 기억하는 존재가 아닌 기억해내는 존재임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얄팍하게 접혀 있던 빛”으로 서서히 비추어낸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끄집어내고, 부재의 흔적을 존재함으로 점점 바꿔간다. 이윽고 암순응이 찾아오고 우리 눈에는 여태껏 보지 못했던 타자가, 그들의 가느다랗고 연약한 연대가 보일 것이다. “살아 있고,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는 건 이제 소설을 덮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생존자고, 생존자는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빛의 호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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