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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Ro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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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Ro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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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85g | 128*188*20mm
ISBN13 9788973813711
ISBN10 8973813714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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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두오모에, 너랑 오르고 싶어. 그때 나는 평소에 없는 용기를 끌어모아 말했다. 나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하는 사랑의 고백이었으므로. 피렌체의 두오모에는 꼭 이사람과 같이 오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좋아, 십년뒤 오월..... 내내, 쥰세이와 함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인생은 다른 곳에서 시작됐지만, 반드시 같은 장소에서 끝날 것이라고.

아가타 쥰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 눈동자도, 그 목소리도, 불현듯 고독의 그림자가 어리는 그 웃음진 얼굴도. 만약 어딘가에서 쥰세이가 죽는다면 나는 아마 알 수 있으리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두 번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더라도...
--- p...
정상이 가까워지자, 신선한 바깥 바람 냄새가 났다. 한 계단씩, 하늘로 다가간다. 하늘로, 그리고 과거로. 미래는 이 과거의 끝에서나 찾을 수 있다. 조그맣게 숨을 들이쉬고, 나는 정상에 올라섰다. 빛 속으로. 평화롭고 조용한 피렌체 거리의 저녁 하늘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적갈색 지붕들. 빽빽한 , 거의 빈틈없는.

' 아아, 시원한 바람. '

나는 바람에게로 얼굴을 내밀 듯, 음미하였다. 피렌체의, 두오모 정상으로 부는 바람을. 모두들,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털썩 다리를 쭉 뻗고 앉아, 기둥에 기대어, 혹은 책을 베개 삼고 누워. 대리석 기둥에는 여기 저기 낙서가 적혀 있었다. 날짜, 이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나는 그것을 보고 미소짓는 자신을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벽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적갈색 지붕들 너머, 저 멀리로 완만한 구릉이 보인다.

교회의 첨탑, 빨래가 널려 있는 창. 올라온 계단의 정 반대쪽, 도시의 반대편이 내려다보이는 장소까지 걸어갔을 때, 내 눈이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사람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약간 비스듬하게, 그러나 거의 등이 똑바로 보이는 위치에서, 나는 그 사람이 쥰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설마,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저 등은 쥰세이의 등이다. 틀림없다. 쥰세이의 등이다.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그 자리에 선 채로, 나는 쥰세이를 보았다. 자그마한 몸집에, 꼿꼿한 자세,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어도 전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리운 쥰세이.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지 않았다. 믿어도 좋을지, 그것을 망설였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쥰세이가 그 쥰세이라고, 약속한 대로 내 생일에 이 곳에 와 주었다고, 믿어도 좋은 것인지. 믿어도 좋은가, 하지만 결심하기에 앞서 나는 걷고 있었다.

'쥰세이'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고 고백하듯,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그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돌아본 쥰세이의, 기억 속보다 야윈 볼.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피렌체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두오모의 꼭대기에서 . 부드러운 저녁 햇살 속에서.
--- p. 240-242
'일본에서는 말이죠.'
나는 말했다.
'봄은 출발의 계절이에요. 만남과 헤어짐의, 그리고 출발의.'
마치 우리가 9월을 그렇게 느끼는 것처럼, 이라고 덧붙이자, 마빈은 내 말뜻을 이해하고, '봄이? 재미있군' 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나 미국에서나, 입학과 신학기는 9월이다. 긴긴 여름 휴가가 끝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모두들 자기 생활을 시작한다.
'그거 아주 동양적이군.'
마빈은 사려 깊은 표정으로 말했다.
'식물의 사이클하고 같잖아.'
'그래요. 재밌죠?'
--- p.231
우리는 둘 다 열아홉 살이었고,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야만적인 사랑을 했다. 야만적인, 자신의 전 존재로 서로에게 부딪치는, 과거도 미래도 미련없이 내던지는. 쥰세이는 내가 처음으로 섹스를 한 남자는 아니었지만, 이런 식의 표현이 허용된다면, 진심으로 몸을 허락한 - 모든 것을 허락한 - 첫 남자다. 처음이고, 그리고 유일한.

어디를 가든 함께였다. 따로 떨어져 있어도 함께였다.

모든 것을 얘기했다. 어릴 때 일, 부모님, 우리 집에서 일했던 가정부, 우리는 각기 뉴욕과 밀라노라는 멀고도 먼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줄곧 서로를 찾고 있었다고 확신했고, 고독했노라고도 말했다. 그래서 가령 쥰세이가 어떤 얘기를 하든 - 중국인 가정부 이야기, 그녀한테 배웠다는 구슬픈 자장가, 뉴욕의 일본인 학교 이야기, 컵 스카우트와 보이 스카우트 이야기,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 화가인 할아버지, 열두 살 때, 혼자서 미국을 횡단하여 로스앤젤레스까지 여행한 일 - , 나는 마치 내 일처럼 들었고, 고스란히 기억에 새겨 넣었다.
--- p.98
용서 받은 내가 여기에 있다.

'마빈.'

사랑해요, 라고 나는 말했다. 마빈은 앞을 향한 채, '설마! 정말이야?'라고 장난 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한손으로 내볼을 살며시 만졌다.

'아오이는 나의 조이아(기쁨)야.'

이성적이기는 해도 마음이 담긴 목소리였다. 갑자기 마빈이 더없이 소중한 존재인듯한 기분이 솟구치고, 나는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 p.143
여기는, 오늘,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활짝 열려있는 창문과, 거기로 내려다보이는 밀라노 거리, 작업대에 널려 있는 공구 하나하나와, 빨갛고 조그만 체라 조각. 오늘, 5월25일에, 여기는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다. -약속해 줄거야? 그렇게 말한 것은 나였다. -피렌체의 두오모에, 너랑 오르고 싶어. 같이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 어디에 살든, 우리는 같이 있고, 그 곳에서 같이 떠날 거라고. 피크닉처럼.

-피렌체의 두오모? 밀라노가 아니고? 이상하다는 듯 묻는 쥰세이에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피렌체의 두오모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두오모니까. 그렇게 먼 앞날의 약속을, 쥰세이가 기억하고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알베르토' 그런데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줄곧.
--- p.234-235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이 도시에서의 온화한 생활, 그런데 나한테는 모든 것이 소설 속의 얘기처럼 여겨진다. 용감한 우등생이었던 다니엘라가-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함께 메렌다를 우물거렸던 다니엘라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자 이번에는 사랑스런 딸까지 낳았다는 것 모두가, 왠지 수조속에서 일어난 일들 같았다.바로 눈앞에 있는 데도 손으로는 만질 수 없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저 멀리 떨어진 장소.
--- p.148
어떤 사랑에든 희망과 절망이 있고, 애정과 증오가 있고, 오해와 이해가 있고, 포용과 배척이 있듯, 그 모든 양극이 한 데 어우러져야 온전한 사랑이듯, 아가타 준세이와 아오이의 이야기가 한데 얽혀 하나의 사랑 이야기가 완성되는 독특한 소설.
--- p.264
-약속해줄거야?
그렇게 말한 건 나였다.
-피렌체의 두오모에 너랑 오르고 싶어.
같이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어디에 살든, 우리는 같이 있고, 그 곳에서 같이 떠날 거라고. 피크닉처럼.
-피렌체의 두오모? 밀라노가 아니고?
이상하다는 듯 묻는 쥰세이에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피렌체의 두오모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두오모니까.
그렇게 먼 앞날의 약속을, 쥰세이가 기억하고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그러나 거의 등이 똑바로 보이는 위치에서, 나는 그 사람이 쥰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설마,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저 등은 쥰세이의 등이다. 틀림없다. 쥰세이의 등이다.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그 자리에 선 채로, 나는 쥰세이를 보았다. 자그마한 몸집에, 꼿꼿한 자세,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어도 전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리운 쥰세이.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지 않았다. 믿어도 좋을지, 그것을 망설였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쥰세이가 그 쥰세이라고, 약속한 대로 내 생일에 이 곳에 와주었다고, 믿어도 좋은 것인지.
--- p.241
아가타 쥰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 눈동자도, 그 목소리도,
불현듯 고독의 그림자가 어리는 그 웃음진 얼굴도,
만약 어딘가에서 쥰세이가 죽는다면, 나는 아마 알 수 있으리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어도 ….
--- p.5
아가타 준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 눈동자도, 그 목소리도, 불현듯 고독의 그림자가 어리는 그 웃음진 얼굴도, 만약 어딘가에 준세이가 죽는다면, 나는 아마 알 수 있으리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두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어도...
--- p.
서른 살 생일 축하해. 쥰세이가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미소, 잊고 있었다. 이 사람의 미소는, 이렇게도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오리라곤 생각 안 했어. 쥰세이의 목소리는, 오히려 난감하다는 듯이 들렸다. 이미 그런 약속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라고 말했을 때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절대로 오지 않을 라고 생각했어. 라고 말했을 때도. 행복하게? 잘 모를 소리였다. 벌써 잊고 있다. 마빈도, 밀라노도, 어떤 이야기 속의 일처럼 멀다. 그런데 와 주었어. 쥰세이가 말했다. 쥰세이가 말을 하면 할수록,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쥰이를 난감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어째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 p.244
사람이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 밖에 없는 것이란다..

누군가의 가슴속

비 냄새 나는 싸늘한 공기를 들이키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누구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 가슴속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누가 있는 것일까. 쥰세이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 p.211
마빈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들, 그 순간순간의 포도주. 읽으면서 나는 도쿄를 밀어낸다. 가슴 깊은 어둠속에서..

눈을감고 가는 숨을 내쉰다. 코르크마개를 다시 병에 담고 뚜껑을 꼭 닫아 선반에 올려놓는다. 아가타 쥰세이는 과거다. 어깨까지 닿는 머리칼도. 단정한 콧날도, 나를 지긋이 쳐다보는 투켱한 눈도. 나는 물을 마시고, 부엌의 불을 껐다. 그리고 마빈이 잠자고 있는 침실로 돌아간다.
--- p.107
나는 쥰세이의 얘기를 듣는 게 좋았다. 강변 길에서, 기념 강당 앞 돌계단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도중에 있는 찻집에서, 우리들의 방에서. 쥰세이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누구한테든, 당황하리만큼 열정을 기울여 얘기했다. 항상 상대방을 이해시키려 했고, 그 이상으로 이해받고 싶어했다. 그리고, 얘기를 너무 많이 했다 싶으면 갑자기 입을 꾹 다물어 버리곤 했다. 말로서는 다 할 수 없다는 듯. 그리고 느닷없이 나를 꼭 껴안곤 했다. 나는 쥰세이를, 헤어진 쌍둥이를 사랑하듯 사랑했다. 아무런 분별도 없이.
--- p.98-99
'과거 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 보낼 수 없다.'

'냉정과 열정 사이' 파란 책 中 에서...쥰세이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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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냉정과 열정의 중간이란 건 컨트롤하기 어려운 것이죠. 아오이처럼 냉정하려 해도 열정에 이끌리고, 반대로 열정적으로 살아가야지 하면서도 냉정이 윙윙대는 파리처럼 떠도는 거죠. 누군가를 잊을 수 없다는 것도 그래요.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만남이 있겠지만, 잊을 수 없는 것은 잊을 수가 없죠.

츠지 히토나리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지만, 잊으려고 절대 하지 않아요. 나는 카타르시스라는 말을 무척 싫어하는데, 순간적으로 위로받거나 정화되지 못한 일로 치부해버리는 것 같아서 싫어하죠. 전부 있었던 일로 기억해두고 싶어요. 대부분의 연애에서 항상 행복하다는 사람은 극소수로, 대개의 사람들은 그렇게 냉정과 열정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살고 있죠. 쥰세이도 아오이도, 그리고 내 소설도 최후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식으로 자신과 싸우죠. 냉정이 이길지, 열정이 이길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요. 쓰는 사람 입장에서 아무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냉정이 이기게 하고 싶지 않고, 열정이 이기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죠. 그렇다고 열정이 대승을 거둘 수도 없어요. 열정만이 아닌, 냉정만이 아닌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격정의 이동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츠지 히토나리 사람은 누구나 다 돌아가고픈 사람을 찾고 있고, 그것이 연애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연애소설이란 게 끝도 없이 이어지겠지만, 우리들이 쓰려고 한 것은 돌아가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만나고 싶었다고 말을 하기 위해 계속 방황하는 사람들의 소설이 아닐까요? 그리고 사랑이나 연애라는 것도 어느 선까지 가면 믿기 힘든 커다란 벽에 부딪히게 되고, 그것으로 그 벽을 몇 번씩 넘어가지만, 그 넘어가려 하는 힘은 열정과 냉정의 사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 월간 <다빈치>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대담 중에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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