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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양장 ] 열린책들 세계문학-021이동
리뷰 총점9.1 리뷰 222건 | 판매지수 27,852
베스트
소설/시/희곡 91위 | 국내도서 top20 10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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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9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83쪽 | 528g | 128*188*30mm
ISBN13 9788932909349
ISBN10 8932909342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작품으로,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조르바는 실존 인물로서,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힌두교도들은 '구루(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의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고 포도주가 되는 것이 물리적, 화학적인 변화라면,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은 바로 '메토이소노'인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바로 이 책에서 조르바의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투쟁을 통해 '삶의 메토이소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 소개 (2명)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이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콜린 윌슨
카잔차키스처럼 나에게 감동을 준 이는 내 생애에 없다. 그의 작품은 깊고, 지니는 가치는 이중적이다. 이 세상에서 그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생산하고 갔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카잔차키스야말로 나보다 백번은 더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를 잃었다.
알베르 카뮈
부드럽고 정교하면서도 강하고 극적인 힘을 보여 주는, 의심할 여지 없이 높은 예술적 경지에 도달한 작품이다.
토마스 만
엄청난 집중력과 흥미진진함 속에서 단숨에 읽고야 말았다. 그의 작품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마음을 심난하게 만드는 한편,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감동을 준다.
마르탬 뒤 가르
카잔차키스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이다.
존 스타인벡

회원리뷰 (222건) 리뷰 총점9.1

혜택 및 유의사항?
고전독서회 9월 모임(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눈* | 2022.04.16 | 추천10 | 댓글2 리뷰제목
고전독서회에서 지난 해 9월에 읽은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9년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영화주제가로 그리고 영화로 먼저 만났고,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처음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의 반은 음악과 영화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http://blog.yes24.com/docu;
리뷰제목

고전독서회에서 지난 해 9월에 읽은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9년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영화주제가로 그리고 영화로 먼저 만났고,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처음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의 반은 음악과 영화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6346670). 오랜만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으면서도 화자와 조르바의 인간성에 천착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의 역사를 개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역사는 기원전 2,700년경부터 기원전 1,450년까지 이야기의 무대인 크레타 섬에 존재했던 미노아 문명으로부터 시작될 정도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북동부에서 기원전 1,600년경에 시작한 미케아문명으로 연결되어 기원전 1,100년 무렵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북쪽으로부터 도리안인이 침입해오는 시기로 기원전 800년 무렵까지는 그리스 역사의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9세기 무렵 도시국가들이 성립하면서 그리스 문명은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고대 그리스 시기를 맞습니다. 특히 기원전 323년부터 고전기 그리스의 심장부가 로마제국에 병합된 기원전 146년까지의 기간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로마제국에 병합되었다고 해도 그리스는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자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어 동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지금의 이스탄불)를 수도로 하는 비잔틴제국으로 존속하는 동안 그리스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제4차 십자군전쟁(1204년)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들어선 서유럽인의 라틴제국이 57년간 지배한 끝에 들어선 그리스인 후계국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1453년 오스만제국이 침략해오면서 비잔틴제국이 멸망하고 그리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1830년에 이르러서야 독립을 얻어 그리스 왕국이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일제 식민지배 시기의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있다고 보아 독후감에 반영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해외로 이주하는 행동파, 떠나지 못고 눌러앉아 현실에 안주하면서도 자유로운 삶을 무한 동경하는 나약한 지식인, 그리고 압제에 눌려 살아가는 기층민들. 특히 기층민들은 정신이 타락하고 폭력성이 슬며시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조르바는 그것을 내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 악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악마를 죽이는 일,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삶을 얻는 길이고, 나약한 지식신인 화자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날 모임에서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1. 주인공은 불교를 공부합니다. 불교와 조르바는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주인공은 붓다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붓다는커녕 불교가 무엇인가도 모르는 듯합니다. 초면의 조르바가 화자에게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을 보고 철자법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안 하시겠지? 물레방안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거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조르바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화자는 불교경전을 필사하면서 붓다의 이치를 얻고자 합니다. 한편으로는 붓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화자가 추구하는 목표는 “붓다에서 벗어나고 모든 형이상학적인 근심인 언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84쪽)”이라는 과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화자는 궁극적으로 ‘붓다가 그 최후의 인간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붓다에겐 스스로를 비운 ‘순수한’ 영혼이 있다. 붓다의 내부는 공허하며 그 자신이 바로 공(空)이다.”라는 깨우침을 얻습니다. 그리고 ‘네 육신을 비워라, 네 정신을 비워라, 네 가슴을 비워라’라고 외칩니다. ‘호쾌하고 농탕한 사나이 조르바는, 떠도는 인간 카잔차키스가 한동안 쉬어가고 싶어했던 구원의 오아시스였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화자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전형을 고르바로부터 발견하였다는 생각입니다.

 

2. 소설 중에서 뱀처럼 사는 것과 새처럼 사는 것을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뱀처럼 살기를 원하시나요?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94쪽)”이라는 대목에서 나온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뱀은 조르바를, 새는 화자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아프리카의 민속을 끌어와 조르바의 본성을 설명하려 했는지 의문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의 머리를 장식한 뱀을 비롯하여 라오콘에 등장하는 바다뱀 등을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고, 그리스에 전해진 초기 기독교의 성서에 나오는 뱀도 인간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악마와도 같은 존재인데 말입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뱀에 관한 서사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대목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화자 자신이 허울뿐인 지식인이라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생각에서 나온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새들은 골이 비어있는 것은 아니라 하늘을 비상하기 위하여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뼛속이 비어있다는 점을 작가가 놓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카잔차키스는 23살이던 1906년 소설 <뱀과 백합>을 썼습니다. 공원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화가의 일기 형식으로 인 소설입니다. 처음엔 단순하고 솔직하게 여인과의 사랑에 탐닉하던 주인공은 점차 육체적 쾌락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지고한 것을 갈망하게 됩니다. 고뇌 끝에 주인공은 하나의 공에서 다른 공으로 이행해 가는 우주적 힘에 이끌려 죽음을 선택합니다.(열린책들에서 <향연 외>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뱀과 같은 혹은 새와 같은 삶의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양쪽을 모두 선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뱀은 대지의 의미를 느낄 수 있으나 하늘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며, 새는 넓은 세상을 알지만 대지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니, 이는 숲에 들면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며, 숲에서 멀어지면 숲은 보되 나무를 보지 못함과 같다 하겠습니다. 숲과 나무를 한꺼번에 볼 수는 없는 노릇이나 뱀이나 새가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 살면 족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카잔차키스가 변진섭이 노래한 <새들처럼>을 알았더라면 이런 비유를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면 / 나도 따라 날아 가고싶어 / 파란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 나도 따라 가고 싶어’라고 한 후렴구는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이었을 터이니 말입니다.

 

3. 카잔차키스는 지족을 자유로운 상태로 보는 것 같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지족을 논의의 주제로 삼은 것은 알릴레오에서였던가 봅니다. 이 이야기에서 화자는 지족을 구하려 했다기 보다는 붓다의 경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고심한 듯합니다. 지족의 의미는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의미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말과 상통하는데 만족할 줄 알면 욕심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로움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족하는 삶을 강조할 때 요나라의 성인 허유세이(許由洗耳)의 고사를 이야기합니다. 요나라 왕이 성인 허유를 불러 왕위를 물려줄 뜻을 밝히자, 허유는 이를 고사하고 물러나왔다고 합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못들을 것을 들었다 하여 강물에 귀를 씼었다는 것입니다. 허유로부터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은 친구 소보는 허유가 귀를 씻어 더럽혀진 강물을 소가 마실까봐 상류로 끌고 가서 마시도록 했다고 하니 그 친구에 그 친구였던 모양입니다. 허유는 집에 머물면서 지족하는 삶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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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도서]그리스인 조르바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E**Y | 2022.04.1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도서]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도서 구입이 가능해  잠시 짬이 나 YES24의 도서를 훑어 보던 중 무엇인가 눈에 딱 꽂혀 저희 팀원 분께 바로 구매요청을 부탁드렸습니다. 작가가 어린시절 굉장한 영향을 준 작가이기 때문에 도서가 오자마자 근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표지부터 바로보며 눈으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눈에 담으며 읽기 시작했;
리뷰제목

[도서]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도서 구입이 가능해 

잠시 짬이 나 YES24의 도서를 훑어 보던 중 무엇인가 눈에 딱 꽂혀 저희 팀원 분께

바로 구매요청을 부탁드렸습니다. 작가가 어린시절 굉장한 영향을 준 작가이기 때문에

도서가 오자마자 근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표지부터 바로보며 눈으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눈에 담으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잘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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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독서회 9월 모임(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눈* | 2022.04.09 | 추천10 | 댓글4 리뷰제목
고전독서회에서 지난 해 9월에 읽은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9년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영화주제가로 그리고 영화로 먼저 만났고,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처음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의 반은 음악과 영화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http://blog.yes24.com/docu;
리뷰제목

고전독서회에서 지난 해 9월에 읽은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9년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영화주제가로 그리고 영화로 먼저 만났고,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처음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의 반은 음악과 영화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6346670). 오랜만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으면서도 화자와 조르바의 인간성에 천착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의 역사를 개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역사는 기원전 2,700년경부터 기원전 1,450년까지 이야기의 무대인 크레타 섬에 존재했던 미노아 문명으로부터 시작될 정도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북동부에서 기원전 1,600년경에 시작한 미케아문명으로 연결되어 기원전 1,100년 무렵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북쪽으로부터 도리안인이 침입해오는 시기로 기원전 800년 무렵까지는 그리스 역사의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9세기 무렵 도시국가들이 성립하면서 그리스 문명은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고대 그리스 시기를 맞습니다. 특히 기원전 323년부터 고전기 그리스의 심장부가 로마제국에 병합된 기원전 146년까지의 기간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로마제국에 병합되었다고 해도 그리스는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자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어 동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지금의 이스탄불)를 수도로 하는 비잔틴제국으로 존속하는 동안 그리스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제4차 십자군전쟁(1204년)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들어선 서유럽인의 라틴제국이 57년간 지배한 끝에 들어선 그리스인 후계국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1453년 오스만제국이 침략해오면서 비잔틴제국이 멸망하고 그리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1830년에 이르러서야 독립을 얻어 그리스 왕국이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일제 식민지배 시기의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있다고 보아 독후감에 반영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해외로 이주하는 행동파, 떠나지 못고 눌러앉아 현실에 안주하면서도 자유로운 삶을 무한 동경하는 나약한 지식인, 그리고 압제에 눌려 살아가는 기층민들. 특히 기층민들은 정신이 타락하고 폭력성이 슬며시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조르바는 그것을 내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 악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악마를 죽이는 일,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삶을 얻는 길이고, 나약한 지식신인 화자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어제 모임에서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1. 주인공은 불교를 공부합니다. 불교와 조르바는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주인공은 붓다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붓다는커녕 불교가 무엇인가도 모르는 듯합니다. 초면의 조르바가 화자에게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을 보고 철자법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안 하시겠지? 물레방안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거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조르바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화자는 불교경전을 필사하면서 붓다의 이치를 얻고자 합니다. 한편으로는 붓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화자가 추구하는 목표는 “붓다에서 벗어나고 모든 형이상학적인 근심인 언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84쪽)”이라는 과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화자는 궁극적으로 ‘붓다가 그 최후의 인간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붓다에겐 스스로를 비운 ‘순수한’ 영혼이 있다. 붓다의 내부는 공허하며 그 자신이 바로 공(空)이다.”라는 깨우침을 얻습니다. 그리고 ‘네 육신을 비워라, 네 정신을 비워라, 네 가슴을 비워라’라고 외칩니다. ‘호쾌하고 농탕한 사나이 조르바는, 떠도는 인간 카잔차키스가 한동안 쉬어가고 싶어했던 구원의 오아시스였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화자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전형을 고르바로부터 발견하였다는 생각입니다.

 

2. 소설 중에서 뱀처럼 사는 것과 새처럼 사는 것을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뱀처럼 살기를 원하시나요?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94쪽)”이라는 대목에서 나온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뱀은 조르바를, 새는 화자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아프리카의 민속을 끌어와 조르바의 본성을 설명하려 했는지 의문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의 머리를 장식한 뱀을 비롯하여 라오콘에 등장하는 바다뱀 등을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고, 그리스에 전해진 초기 기독교의 성서에 나오는 뱀도 인간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악마와도 같은 존재인데 말입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뱀에 관한 서사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대목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화자 자신이 허울뿐인 지식인이라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생각에서 나온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새들은 골이 비어있는 것은 아니라 하늘을 비상하기 위하여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뼛속이 비어있다는 점을 작가가 놓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카잔차키스는 23살이던 1906년 소설 <뱀과 백합>을 썼습니다. 공원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화가의 일기 형식으로 인 소설입니다. 처음엔 단순하고 솔직하게 여인과의 사랑에 탐닉하던 주인공은 점차 육체적 쾌락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지고한 것을 갈망하게 됩니다. 고뇌 끝에 주인공은 하나의 공에서 다른 공으로 이행해 가는 우주적 힘에 이끌려 죽음을 선택합니다.(열린책들에서 <향연 외>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뱀과 같은 혹은 새와 같은 삶의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양쪽을 모두 선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뱀은 대지의 의미를 느낄 수 있으나 하늘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며, 새는 넓은 세상을 알지만 대지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니, 이는 숲에 들면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며, 숲에서 멀어지면 숲은 보되 나무를 보지 못함과 같다 하겠습니다. 숲과 나무를 한꺼번에 볼 수는 없는 노릇이나 뱀이나 새가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 살면 족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카잔차키스가 변진섭이 노래한 <새들처럼>을 알았더라면 이런 비유를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면 / 나도 따라 날아 가고싶어 / 파란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 나도 따라 가고 싶어’라고 한 후렴구는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이었을 터이니 말입니다.

 

3. 카잔차키스는 지족을 자유로운 상태로 보는 것 같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지족을 논의의 주제로 삼은 것은 알릴레오에서였던가 봅니다. 이 이야기에서 화자는 지족을 구하려 했다기 보다는 붓다의 경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고심한 듯합니다. 지족의 의미는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의미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말과 상통하는데 만족할 줄 알면 욕심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로움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댓글 4 10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0

한줄평 (142건)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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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5점
추천합니다.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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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 2022.04.24
구매 평점4점
읽어보기 좋은 책인것 같습니다. 추천하구요 삶에 대해 다시한번 뒤돌아 보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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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E**Y | 2022.04.14
평점5점
삶을 의식하는 순간 심장은 힘차게 고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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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 | 20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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