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종차별이 당연했던 시대, 업무규칙 가운데 유색인 화장실이 어디인지 알아두어야 했던 시대,
전시 상황에서 미국의 우주항공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가운데 '백인'과 '남성'의 그림자속에 가려졌던 초기 '나사'의 흑인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
책의 내용은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 같아 읽기 전 많은 기대를 했었다. 실제 그 당시의 흑인 여성들이 '흑인' 또는 '여성'이라는 편견과 싸우면서도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능력을 극대화 해온 이야기는 무척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다만 지나친 사실 위주의 이야기 전개는 지겹고 읽어내리기 힘든 점이 많았다. 항공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진행되는 이야기다 보니 어느 정도의 지식적인 설명은 감안한다 치더라도 지나치게 자세한 항공기의 기종 설명이라던가 원리에 대한 설명은 몇번이나 책을 덮게 만들었다.(이북으로 읽었으므로 휴대폰 액정화면을 닫았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그동안 접해 보지 못한 하나의 '역사서'와 같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기 나사의 백인 여자들도 거의 인정받기 힘든 시대에 여자라는 점, 흑인이라는 점 등 온갖 불리한 조건과 편견과 맞서 싸운다는게 어떤일인지 짐작하기도 힘들다.
비행기가 전쟁에 미치는 영향력이 컸기에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비행기 생산을 늘릴것을 지시하며 미국의 항공기 산업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남자는 전쟁터로 여자들은 여러 산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손이 부족한 NACA(나사의 전신 기구)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똑똑한 흑인 여자들을 계산을 위한 컴퓨터로 고용하게 된다. 당시 대학을 졸업한 흑인들이 가질수 있는 최고의 직업은 교사였다. 그러나 아주 낮은 봉급과 근무환경의 열악함은 세탁일과 같은 업무를 보조적으로 해야만 생계를 꾸릴수 있을 정도였다. 랭글리의 비행장은 교사 연봉의 두배를 제시했기에 도로시와 같은 많은 흑인 여자들이 랭글리에 취업하게 된다. 경제력있는 직업을 갖기 힘든 흑인 사회에서 나름 고소득을 보장하는 일자리였던 셈이다.
당시의 흑인들의 지위는 독일 전쟁 포로들보다 못한 정도였다. 흑인들을 거부하는 식당에서 독일 포로들은 아무 문제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고, 흑인 군인이 탄 기차칸 좌석 옆에는 백인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런 차별은 NACA안에서도 공공연했다. 식당에서는 유색인 표지판이 있는 구역에서만 식사가 가능했고, 화장실 또한 멀리 떨어진 유색인 전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눈에 보이는 차별이 짙게 깔린 이곳에서 같은 능력을 가졌어도 백인보다 뒤쳐지고, 남자보다 뒤쳐져야 했던 그 시절 오로지 이들은 전문성과 실력을 무기삼아 편견을 물리쳐야하는 외로운 길을 걸어야 했다. 물론 흑인남자들은 더 공격적이고 더 노골적인 인종 차별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엔지니어의 지위를 얻은 받면, 흑인 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엔지니어의 직위를 얻지 못하고 보조원의 자리에만 머무를수 밖에 없었다. 미국사회에 인종차별은 꽤 심각한 문제였겠지만 아마도 성차별은 훨씬 더 미국 사회 내부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는지 모른다. 마치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처럼 말이다. 여자가 관리직에 오를수 없었던 것은 감히 남자들이 여자상사에게 보고하는게 있을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고, 중요한 회의에 여자 직원은 출입할 수 없었던 점을 설명한 부분들이 그러한 차별을 뒷받침 한다.
물론 현재에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은 존재한다. 분명 개인의 능력으로만 한계를 극복하기엔 힘들다. 차별이 당연하던 그 시대에도 불합리한 차별을 귀기울여 듣고 문제를 해결해준 관리인은 존재했고, 업무 파트너로 평등하게 대해주던 백인남자 직원들도 있었다. 많은 흑인들이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연설에 고무되어 거리로 뛰쳐 나왔고,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을 믿었고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이 있었다. 어떤 종류의 불평등일지라도 당사자들 만이 아닌 구성원 전체의 노력과 인식 개선이 있어야 함을 이 책의 군데군데서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