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0년 03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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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2쪽 | 417g | 148*210*20mm |
ISBN13 | 9788954610414 |
ISBN10 | 8954610412 |
발행일 | 2010년 03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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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2쪽 | 417g | 148*210*20mm |
ISBN13 | 9788954610414 |
ISBN10 | 8954610412 |
1장 2장 3장 4장 미시마 유키오, 그 인간과 문학(사예키 쇼이치) 『가면의 고백』에 대하여(후쿠다 쓰네아리) 해설 ㅣ 가면을 쓴 작가의 고백(허호) 옮긴이의 말 미시마 유키오 연보 |
3번째 가면의 고백이다. 다른 번역에 어쩌다보니 3권째 읽은 가면의 고백.
매번 소설이라기 보다는 주인공이 작가님인 것 같은 생각으로 읽은 것같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매번 그런 느낌을 받는 소설이다. 금각사보다 가면의 고백을 먼저 읽은 것이 행운이었던 것같다. 금각사를 먼저 읽었다면 가면의 고백을 읽지 않았을 테니.. 소설은 커피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것같다. 대다수의 독자들이 좋아하는 혹은 선호하는 책을 싫어하는 사람도 혹은 그 반대도 존재 할 테니.. 리뷰는 참고만 하시고 개인의 취향에 맞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마치 내가 가면의 고백은 좋아하지만 금각사는 안 좋아하는 것처럼
제목이 주는 힘은 분명 있다. 그것은 읽는 사람에게,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소설을 읽기 전부터 아주 큰 선입견을 주게 된다. 제목은 소재이거나 주제 의식이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 "고백"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것은 분명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을 지닌 채 독서를 하게 만들어주었다.
소설은 장편이지만 요즘의 그리 긴 이야기책은 아니다. 짧은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짙은 속내가 담겨있다. 1인칭 소설이 주는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1인칭 소설은 '나'와 '작가'를 하나로 느끼게 만들어, 마치 그의 일기나 그의 감춰어진 이야기를 엿보는 듯한 그런 매력이 있는 듯하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은 처음 접하게 된 듯하다. 오래전 그의 다른 소설 "금각사"를 어디선가 본 듯은 한데 ... 읽은 기억은 없다.
소설 속 '나'는 병약한 도련님 같은 이미지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소설을 쓰던 그 시점까지 자신이 느껴왔던 성의 정체성에 대한 고백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판 연도로 보면 1949년인데 그 무렵에 '동성애자'일 수 있다는 고백은 그 당시 일본은 그러함을 받아들여질만한 사회였을까? 그로 인한 약간의 충격도 있었다. 사실에 기인한 것이든 아니든 내가 가진 성적 판타지는 이러한 것임을 소설로 적어낸다는 것이 ... 현재 내가 가진 정신과 많은 차이를 보여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제목인 '가면'이란 의미는 자신의 내재된 성질을 다름이 아닌 틀림 그래서 고쳐야 할 것으로 인식하며 자신의 속과는 다른 것을 삶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말하는 듯하다. 강인하게 보이고 근육질의 남자에게 자신을 이입시키고 싶어하고 그런 남자를 사랑한다고 느끼며, 매혹적이었던 기사가 여성인 잔다르크임을 알게 되고는 흥미를 잃게 되는 ... 그런 어린 시절을 지나 "어떤 육체적 욕망도 거의 품지 않은 채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미화하는 '가면'. 그래서 '나'는 자신이 지닌 욕망의 모습이 치유될 수도 있다는 '가면'을 쓰고 친구의 여동생에게 다가가고, 그녀와의 키스를 통해 이성에 대한 혹은 '그녀'에 대한 육체적 욕망을 느끼지 못하고는 그녀에게서 떨어진다.
'나'는 또 한 편으로 죽음에 대한 '가면'을 쓰고 있다. 전쟁의 막바지에서 징병이 되어 군인이 된다면 전쟁터 어느 곳에서 처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막상 신체검사를 받을 때는 자신의 병을 부풀려 군인이 되는 것을 스스로 막아보려 애쓴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친구의 여동생 '소노코'와의 만남을 계속 이어간다. 소노코는 남편 이외의 '남자'를 만난다는 것에 대해 짙은 번민을 보이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도 이성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어떤 욕망도 불륜도 여전히 느끼지 못한다.
소설 "가면의 고백"은 난해한 소설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은 뒤쪽에 실린 여러 편의 해설들과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고백'에 대한 의미를 말하고, 작가 자신의 거의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라는 말도 건네준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 작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게 동성애 성향을 털어놓은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의미를 주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탐미주의라는 꼬리표를 어디선가 본 듯하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문장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너무 아름다워 글을 읽어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의 문장들을 다시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청명한 하늘에 햇살이 쨍하는 느낌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만으로도 책을 읽는 설렘을 던져주었다. 고등학생 시절 읽은 아름다운 단편 소설들이 떠오를 만큼, 요즘은 쉽게 만나기 힘든 그런 문장들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붕에서 눈이 녹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아침 햇빛이 뚝뚝 녹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신발이 끌고 온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콘크리트 위 가짜 진창에, 차례차례 환성을 지르며 햇빛이 몸을 던져 추락사하는 것이었다. 그중 한 빛은 멋모르고 내 목덜미에도 몸을 던졌다 ......"
이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나는 마치 내 가슴을 설레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러 가기 몇 시간 전의 사람인양 떨기 시작했다. 작가의 문장인지 번역자의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 마치 내가 중학생이 되어 까만 교복을 입은 채 먼 발길에서도 발끝을 세워 애타했을 법한 소극적이고 소심한, 아직 어린아이의 모습이 더 많은 중학생의 내가 가슴 두근거리며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나는 중학생이던 시절, 성에 대해 눈을 뜨질 못하였다. 어쩌면 눈을 뜨질 못한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자리에서조차 외부로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중학교에서 시골 전학생인 나는 아이들이 돌려보는 '빨간 책'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를 받았다. 또래 아이들로부터 시골에서 왔음만큼 지녔을 "순수"를 보호받았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때와는 또 다른 시기에 성을 묵도하게 되겠지만 아마도 나이로 본다면 소년들은 중학생을 고비로 해서 어떤 형태로든 성을 마주치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나이쯤에 발현하는 호르몬의 작용으로 인한 것인지 성에 대한 호기심은 크기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참 무지한 중학생였던 것 같다. 성교육도 없던 시절이라 더욱이 무지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 성을 알아가게 되고 또 다른 방식으로의 간접 경험을 마치 직접 경험 인양 입에 먼저 올리는 아이들, 그중에서 분명 또래보다 훨씬 빠른 성장을 보이는 친구에 대한 경외심은 스스로에 대한 초라함보다 오히려 그 친구에 대한 신비에 가까웠는지 모르겠다. 소설 속 '나'가 마주하게 되는 성의 부분 부분들은 그래서 감추었거나 모르는 척 외면했던 내 청소년기의 성에 대한 이야기와도 비슷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곤란하고 겉으로는 잘 아는 척 떠벌리기는 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을 곧이곧대로 말해버리면 이상한 아이 취급을 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성의 호기심이 생겨나면서부터 자연스레 부모님에게서 멀어지게 되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으며 그런 시간을 통해 스스로가 익명으로 해보는 상상에 나를 빠뜨리곤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자주 혼자 있는 시간에는 깊이를 알지 못하는 어두운 곳으로 끝없이 들어가곤 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서투름 투성이의 하루를 살아가지만 미숙했던 그 시절의 알지 못할 그 성에 대한 두려움과 환상 때문에 나는 그때가 가끔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날들에 가끔 읽고 했던 아름다운 문장들에 심취하고 싶어졌는지 모르겠다. 국내 출간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은 그리 많지를 않다. 아름다운 문장에 빠져 허우적거릴 준비를 하고 그의 다른 소설들도 만나보고 싶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번째, “가면의 고백”은 일본의 심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전업작가로써 처음 발행한 책으로, 일본이 패전하고 약 4년후인 1949에 발간된 책이다.
“가면의 고백”은 반자전적인 소설이며 소설내의 서사가 대부분 사실에 기반한다는 것을
주변인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했다고 한다. 책이 발간된 해와 그의 연보 드리고 동양적인
정서를 생각해보면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자기파괴적인 심리묘사와 자가
정신분석에 가까울 정도의 치밀한 서사들이 당대의 일본 문학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 같다.
거짓말 같은 사실을 사실이 아닌 듯 거짓말 같이 쓴 소설이라고 할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모호하지만 픽션인지 사실인지는 소설의 중반부가 넘어가면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리고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혹은 이미 무너진 것 같은
주인공의 자아가 모순에 모순을 낳는 연상 그리고 부정을 부정하는 모순의 반복으로 끊임없이
그를 따라가 보려는 독자를 괴롭힌다. 의도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추리소설
같은 집요한 두뇌 회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요하는 집요함이 묻어 나는 소설인데, 이는 그처럼
집요한 사람들을 겨냥한 치밀한 플롯에서 나온 것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인간은 모두 자기만의 감춰진 비극이 적게는 하나에서 많게는 여러 개씩 가질 수
있는데 대부분 그 비극 앞에 자기만의 가면을 내세우고 가면 뒤에 꼭꼭 숨겨두어 생채기를
내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생채기로 인해 가면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가
어느 것이 진짜 얼굴이고 어느 것이 가면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는 체 말이다.
이러한 가면을 모두 벗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자각이 우리의 맨 얼굴을
확실히 기억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노력을 꾸려가는 것이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사는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