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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 그책 | 2017년 04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6 리뷰 8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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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254g | 127*195*20mm
ISBN13 9791187928140
ISBN10 1187928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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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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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차창 너머에 시선이 갈 때가 있고, 그 너머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한 시절의 고단함이 풍경과 함께 스쳐간다. 괴로울 때가 떠오르지만 굳이 그 슬픔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기쁨이 생각나는 장소와 마찬가지로 슬픔이 떠오르는 장소도 있기 마련이고 지나간 슬픔도 소중함으로, 또 그 슬픈 길의 벽과 벽 사이 또한 머지않은 시간 내에 쓰러지고 메워지며 이어질 것임으로.
---「길 위의 시간」중에서

모스크바는 영화제 때문에 들렀다. 대형극장의 1500석의 넓은 객석을 채우고 내 영화를 상영하는 즐거움을 맛봤고 내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조금 멋있는 말을 하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러시아가 만들어온 문학과 영화의 열매들은 나에게 뿌리가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은 거짓말일 수 없다. 내 근간 어딘가에는 체호프의 소설들이 떠돌고 모스 필름이 만들었던 화려했던 러시아 영화의 이미지들이 각인되어 있고 그들은 내가 만드는 이야기와 영화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결과로 가지고 온 이 열매가 또 누군가의 뿌리가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역시나 멋 부린 말이라 반성의 마음이 들지만 돌고 도는 인연을 따라 벨라루시에서 온 시계가 다시 자신이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아니더라도 내 다음의 열매라도 어떤 이의 뿌리가 되는 멋진 일이 생기면 좋을 일이다.
---「벨라루시의 손목시계」중에서

나는 그즈음 사람을 읽어내는 사람들의 피곤함을 떠올리곤 했었다. 어느 나이가 되면 나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과 별개로 타인에 대한 장단점을 보는 눈이 생긴다. 타인을 읽고 판단하고 경계한다. 냉철한 시야가 냉소적인 인간을 만든다. 히라키 또한 사람을 읽는다. 하지만 그는 경계가 아닌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을 읽었다. 한 사람의 편안한 기분을 위해서.
---「사람을 읽는다는 것」중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만드나요, 라는 물음에 나는 대답할 자격이 없다.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방법을 모르기에 매일매일 형체 없는 그들을 쫓으며 운이 닿기를 바란다. 증강현실 속 포켓몬스터보다 약간 더 잡기 힘든 존재들이다. 하지만 포켓몬스터보다 약간은 더 말이 되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그들을 잡기 위해서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해당 앱을 항상 켜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앱을 사람들은 보통 ‘강박’이라고 부른다.
---「등장인물」중에서

며칠이 지나고 당신은 짧은 투병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눈이 안 좋다고 했는데 염증이 곧 머릿속으로 들어갔다고 했었지요. 갑작스런 입원에 놀라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당신은 큰 몸을 침대 위에 뉘인 채 생글생글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어요. 나이 먹고 연애하자니 염치없는 일만 생긴다며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당신 옆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장성한 당신 자제분들 눈치에 슬며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어요.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비오는 창밖을 내다봤어요. 다음 날 당신의 임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는 당신의 영정 사진에 국화 한 송이를 놓았습니다.
---「약속」중에서

?여긴 좀…… 비밀스럽군.
?네, 차장님. 체리가 정말 맛있어요.

J는 체리를 오물거렸다.

?차장님도 비밀스러운 분이잖아요.
?그런가. 그래도 이렇게 화려한 느낌은 아니지……
?은밀하고 신사다우시죠. 제가 차장님 비밀은 하나 알지만요.
?뭔가, 비밀이?
?알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자신은 없어요.

J는 미소 지었다. 그는 뒤늦게 J의 손끝 하나가 자신의 손목에 닿아 있는 것을 느꼈다. 그가 J의 눈길을 피하지 않을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광화문에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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