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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리뷰 총점8.7 리뷰 6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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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262g | 120*178*20mm
ISBN13 9788932318486
ISBN10 8932318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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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것과 경험한 것, 배운 것, 느낀 것 사이에는 늘 이해할 수 없는 틈이 있었다. 아무도 그 차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여자인 것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 p.12

여성으로서 이 장르의 팬이 된다는 것은 시련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운명을 함께할 여성 캐릭터를 찾는 것은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운 한국 언론 기사를 읽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신원 미상의 시체 또는 언제 죽거나 구출될지 알 수 없는 감금된 여자 대신, 그저 남성 캐릭터의 연인이나 아내 역할에 감정이입을 해도 죽기는 매한가지다. 여성이 탐정(형사)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경우는 다를까? 그녀에게 다행히 죽음은 찾아오지 않더라도 납치되거나 강간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매력적인 연인이 알고 보니 범인이거나 범인의 사주를 받은 인물이라는 설정도 드물지 않다. --- p.29

떠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있다. 대도시가 아닌 곳에 거주하는 여성을 남성 작가들이 그릴 때, 남자 주인공의 눈에 비친, 떠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의 모습에서 내가 느끼는 거북한 감정은 어쩌면 나 자신의 모습이 그 안에 투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도시가 아닌 곳, 선진국이 아닌 곳의 여자들, 억압받는 여자들이 갖는 애처롭고 청승맞은 소망. 누군가(남자)의 호의에 기대지 않고는 벌어질 수 없는 탈출의 소망.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다가 가슴이 답답해진 것은 그 안에 등장하는 하인숙이라는 여성 때문이었다. --- p.45

여자가 주인공이면서 사건을 지배하는 악당 캐릭터인 픽션을 보기 드문 나머지, 나는 여기에서조차 나랑 같은 성별인 사람이 저렇게 굴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여자인 내가 『나를 찾아서』를 즐겼다고 해서 에이미의 행동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남자인 시청자가 [덱스터]를 즐겼다고 해서 덱스터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듯이. 여성을 대표하는 단 한 명의 여성은 있을 수 없다. --- p.60

제가 처음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비혼 사십 대 여성 선배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저와 제 주변인들은 서로의 역할 모델이 되어주면서 이전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이 나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 세대의 동성 역할 모델을 찾고 영감을 얻는 일도 멋지지만, 저는 여러분이 서로의 역할 모델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함께 더, 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 p.86

그때가 1990년대 중반이었는데도 이미 아버지의 인맥으로 IT 회사에서 여름방학 인턴십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아니면 부모님이 계시는 북미나 남미, 유럽의 어딘가에서 방학을 보내는 친구들도 많았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는 없었다. 아니, 있었을 것이다. 나처럼. 하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대체로 ‘그런 사람’이 당신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다. 당신들 중에 ‘그런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 p.113~114

성급한 일반화 하나. 인간은 다들 그냥 부모님과 다른 것을 원하는 게 전부인 시기를 겪는 것 같다. 진보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진보적인 언행을 우스워하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보수적인 언행을 혐오하고 뭐 그런 일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부모와 닮아간다지. 그 결과 우리는 이런(!) 인간이 되는데도, 부모님은 좋은 것만 해주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살았다.
--- p.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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