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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 시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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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 시인의 밥상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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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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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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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PC(Mac)
파일/용량 EPUB(DRM) | 42.12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7.4만자, 약 2.5만 단어, A4 약 47쪽?
ISBN13 979116040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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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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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도 그걸 만드는 사람의 성정을 닮아가는지 내 요리가 좀 진하고 단순하며 명쾌하다면(장점만 늘어놓자면 말이다), 시인의 요리는 부드럽고 미묘하고 순하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야 된장국에 김치 하나로 밥 먹는 즐거움을 알게 된 나는 시인의 된장국을 정말 좋아한다. 아마도 이것은 온유를 달라고 기도하는 나의 바람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거의 된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슴슴한(이 형용사 말고 다른 것은 생각을 못 해내겠다) 국물은 늘 하듯 멸치와 다시마 육수에 된장을 엷게 푼 것이고, 아욱은 서울의 슈퍼마켓에서 사던 것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어린 것이니, 같은 아욱국을 끓여도 시인의 것은 아주 다른 향기가 난다. 뭐랄까, 배 아픈 날 아침 엄마가 만져주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길 같은 것? --- pp.51~52

프라이팬 깊은 곳에서 섬진강 물결이 뒤집히듯 누런 누룽지들이 위로 올라왔다. 적당히 섞은 후 우리는 각자 자신의 공기에 그것을 떠서 남은 양념장에 취향껏 비벼 먹었다. 한입 넣은 순간 우리 모두의 입에서 “와우!”라고 할 수밖에 없는 탄성이 나왔다. 들기름을 머금은 누룽지는 바다의 굴 내음을 머금고 있었고 굴은 들기름으로 달구어진 구수한 누룽지를 머금고 있었다. --- p.114

“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 봄이면 야생 달래와 냉이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여름이면 천렵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가을이면 송이버섯 열 개로 친구들과 풍성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 p.124

“시인님, 오늘 강연 잘 들었습니다. 우리 이제 2년 있으면 선거권 나와요. 오늘 시인님을 보고 많이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결코 지역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투표 잘할 테니 이제 울지 마세요.” 학생의 말은 진지했다고 한다. 듣고 있던 학생들도 고요했다. 그러자 그의 말을 다 듣던 버들치 시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울기 시작했다. 경상도 학생들이 너무 고맙고 예뻐서였다. 그렇게 두 번의 울음으로 그 강연은 끝났다고 했다. 이 슬픈 말을 들으며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세상에 그 학생들은 버들치를, 그가 두 번이나 엉엉 운 강연을 잊을 수 있을까? 아마 평생 못 잊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진심의 힘이었을 것이다. 어떤 시보다 명징한 언어인 진심 말이다. --- p.130

그날 밤, 달이 떴다. 달 옆에 목성도 떴다. 우리는 백 여사가 숯불에 구워주는 닭구이를 먹으며 덜덜 떨며 달맞이를 했다. 달의 뒷면을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안다. 이곳에서 이 좋은 친구들은 내 뒷면을 안다는 것을. 보지는 못했겠지만 어여삐 여겨준다는 것을. 이것이 우정이라고 나는 그날 달을 보며 문득 생각했고, 찬 대기 속에서 그들과 소주잔을 부딪쳤다. 쉰이 넘으며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날마다 더 절감하는 나는 생각했다. 충분하다, 참으로 충분하다고. --- p.155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나 밤늦게 사랑하는 친구가 문득 나를 방문할 때 작은 바구니를 들고 정원으로 나간다. 그리고 한 접시 분량의 어린 머위나 민들레, 부추나 깻잎을 뜯어 간단히 세 가지 양념으로 요리를 한다. 그러면 나의 밥상도 풍성해지고 가끔은 친구와의 술자리가 가볍고 기뻐진다.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 그것이 무엇이든 뿌리째 뽑지 않고 덜어내 먹을 수 있다는 기쁨과 고마움, 그것은 분명 채식의 즐거움이다. --- p.231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름다운 관계’라는 제목부터 좀 의아했는데 여기서 몸을 뒤트는 것은 소나무가 아니라 바위인 것이다. 더운 내 등으로 찬 소름이 지나갔다. 태고부터 거기 있어온 바위가 잘못 내려앉은 그 어린 소나무를 위해…… 인 것이다. 어린 소나무가 불굴의 의지로 바위를 뚫은 것이 아니라 늙은 것이 어린 것을 위해 필사의 힘을 다해 생명을 키워내는 이야기로 시인은 이 관계를 읽었던 것이다. 아직도 무언가를 극복하고 뚫고 그런 것에 감탄하고 있던 나에 비해 그는 이미 내어주고 죽어주고 갈라짐을 견디는 바위에 주목했던 것이다. --- p.294

지난여름이 용광로처럼 뜨겁지 않았다면 오늘 부는 이 가을바람이 그리 고맙지 않았으리라. 우리들의 청춘이 불구덩이처럼 힘겹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밥상은 한갓 놀이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시인은 밥상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 작은 밥상에서 시를 썼었다. 고픈 배를 찻잔으로 대신하면서 말이다. 결핍을 경험하지 못한 채움에는 기쁨이 없겠지. 마지막은 ‘작가의 밥상’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을 내 시골집으로 초대했으니까.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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