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0년 06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149쪽 | 214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911229 |
ISBN10 | 8932911223 |
출간일 | 2010년 06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149쪽 | 214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911229 |
ISBN10 | 8932911223 |
'작가는 외부의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어느 작가의 오후』는 1987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12월의 오후에 외출을 한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외부 세계를 묘사한다. 첫눈이 내리는 것 외에 다른 사건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짧은 이야기 안에서 독자는 사건이 필요없는 자유로운 묘사와 그 묘사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감정에 보다 주목하게 된다. 작가가 산책길에 만난 사물들, 풍경들, 사람들을 묘사하면서 저자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한트케식 글쓰기인 정확한 관찰, 감정이 이입된 묘사, 시적 사유의 아름다움의 표본을 보여 준다. 페터 한트케는 『어느 작가의 오후』에서 '작가는 외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적용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존재와 꿈꾸는 세계를 보여준다. 12월(정확하게는 크리스마스이브)의 해 저문 오후, 그날의 작업을 마치고 난 어느 작가가 바라본 외부 세계는 절망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의 내면 풍경이기도 하다. '산책'이라는 말이 풍기는 편안함과는 다르게, 작가에게는 휴식과 같은 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산책은 전쟁과 같을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 안에서 작가는 비로소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
어느 작가의 오후 보이지 않는 세계의 구원자, 페터 한트케의 삶과 작품 (역자 해설) 페터 한트케 연보 |
그리 길지 않은 글이다. 그런데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다. 자박자박 소리를 내면서 따라 걸어야만 가 닿을 듯한 길이다. 막상 그러다가 작가에게 혼이 날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 작가라면 소리를 내면서 따라 걸어도 미처 못 느낄 것 같다. 누가 따라오는지, 왜 따라오는지, 멍한 눈빛만 보일 뿐 도리어 흠칫 물러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슬금슬금 뒤따라 가 본다.
작가는, 특히나 소설가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소설가가 될까. 아무 소설이나 쓰는 아무 소설가 말고, 그래도 남들에게 권할 만한 가치를 준다고 내가 믿게 되는 소설가를 떠올려 보자. 그들은 어쩌다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하나,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쓰게 되었다는 말은 어떤 한계를 드러내는 말이던가. 끝내 쓰고야 말 주제의 글이라거나, 기어코 써야 할 몫이라며 발표하는 글들은 어떤 글이었던가. 그런 작가로서의 사명감이나 본분이나 책임감 같은 것들, 독자로서는 어떻게 읽고 어떻게 평가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
길지 않은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작가가 보낸 어느 날 오후. 온몸으로 받아들인 감각과 감상들. 현실인지 환상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산책길. 그 모든 시간의 결을 글로 고스란히 옮겨 놓는 재주. 왜 쓰는지. 어쩌자고 쓰는지. 읽는 나는 무엇을 읽어 내려고 이토록 용을 쓰고 있는 것인지. 장차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그저 독자의 입장에서 읽는 다른 이의 의식 세계는 나의 어디에 무엇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쓰는 일이 어떤 이에게는 선천적인 본능 같은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안 쓸 수 없어서, 써야만 살 수 있어서 쓴다는 이들이다. 이런 사람이 작가가 된다면, 좋은 글을 써 준다면 당연히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겠지. 그렇다면 이 두 가지가 겹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떤 일이 생기나? 작가로서는 억지로 쓴 글, 독자로서는 읽을 필요가 없는 글이 나오는 것일 테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요즘 종종 생각해 보곤 한다. 이 작가의 경우에는? 글쎄, 섣불리 말하지를 못하겠다.
작가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수상 이전에 도서관에 신청해 두었던 것이라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읽었다. 밀로셰비치 장례식에서 추모 연설을 한 작가라는 것도 수상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아직은 망설이고 있다. 한 권 더 읽어 보나 어쩌나.
소설<어느 작가의 오후>, 작가의 내면이 본 흔들리는 풍경들
Written by. DdAm*
책<어느 작가의 오후>는 소설이라곤 하지만 소설이 아닌 에세이 같다. 책은 12월의 어느 날 오후, 한 작가가 그날의 글을 쓴 후 외출 후 그의 '마음'이 본 풍경들을 묘사한다.
작가, 그에게 있어 '사건'은 '내면의 언어'들로 구성돼 있다. 외부적인, 그러니까 독자의 입장에서 사건이라 부를 만한 '진짜 사건'은 없다. 위태롭고 불안하며 흔들리는 풍경들은 바깥이 아닌 작가 '안'에 있다.
그래서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풍경의 묘사들에서 '뾰족함'이 느껴졌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풍경묘사가 아닌,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생경한 느낌…. 사실, 페터 한트케의 작품들에서 그러한 '낯섦'은 줄곧 느껴왔지만 내겐 <어느 작가의 오후>가 유달리 그러했다. 여느 작가들보다 '형식'을 중요시 여기는 그는 그래서 그것들을 파괴한다. 책 속 작가처럼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언어 그 자체에 대해 중점을 두는 그는 묘사에 있어서도 여지껏 보아왔던 것들과 '다름'을 명백히 보여준다.
모든 글들을 독백으로 볼 수 있었고, 이것이 1인극(희곡)으로 쓰인다면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할 것 같다. 결국, <어느 작가의 오후> 속 작가는 페터 한트케 자신이 아닐까(거의 명백하다고 본다)? 내면의 딜레마가 바라본 풍경들은 불안정하다. 비단 페터 한트케 그만에 국한된 것이 아닌, 작가들이라면 한 번 쯤 고충거리로 여겨졌을 법한 '내적 고뇌'들이 그려진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물들은 현실과 망상을 제대로 구분짓지 못한 채 걸어다닌다. 싸구려 음식점에도 들르고, 가판대에서 신문도 사지만 그의 흔들리는 내면은 육체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대중(독자)들을 상대로 하는 작가들은 그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 의식의 강박관념은 망상과 착각으로 이어진다. '재료보다는 구조(형식)가 중요한 것'이라 여겨왔던 작가는 모든 외부 요소들을 자유로이 놓아두고 관찰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아보인다. 자신에게 적대감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검은 옷을 '입히고', "당신의 문학을 기소합니다!"라는 통고의 행동을 짓게 '만든다'. 결국 그는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오고' 그의 묘사를 읽는 나도 머릿속에서 '소용돌이를 만난 기분'이었다.
사건이 없지만 엄청난 사건들이 작가의 망상 위에서 펼쳐지는데, 어쩌면 그 망상 혹은 상상들이 작가들의 원천(소재)거리들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묘사에 집중하기에 앞서, 작가들의 고충에 대한 연민이 더 짙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12월, 첫눈이 내린 것이 사건이라면 사건일 것이다(그저 우리들에겐 날씨일 뿐인데 말이다). 철저히 문어체로 구사된 된 '1인칭 묘사'들은,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담아 낸 묘사거리들이 선사해 낸 '힐링'이 아닌 '불편'을 건넸다.
결국, <어느 작가의 오후>는 페터 한트케의 자기고백의 에세이라 결론짓고 싶다. 짧은 시간 내의 일상을 펼쳐보이는 동안, 작가는 자신의 글이 만들어지는 머리와 가슴을 '지독하게' 엮어냈다. 비틀기의 달인인 만큼, 이 책의 '언어들' 덕분에 모든 잠자고 있던 감각들을 깨워야만 했다. 더 잘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한 시간들이,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오래 걸렸다.
책의 서문에서 인용된 요한 볼푸강 폰 괴테의 희곡『토르과토 타소』의「……모두가 있는 곳에서, 난 아무것도 아니다」는 탁월했다. 모든 외부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킨' 한 작가는 실질적인 외로움과 내면의 고독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정신'을 실현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그, 그리고 우리들 또한 '모두가 있는 곳'은 필요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존재이니 말이다.
'작가는 외부의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한 소설 "어느 작가의 오후"
독특한 시선으로 스치듯 지나치는 사물들을 묘사하고,
길모퉁이에선 환상을 보지만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페터 한트케는 이런 작가였구나...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럼에도 이 소설에 빠질 수 있었던 건
일상이 주는 묘한 평온함때문이었다.
작가 내부에 격렬한 파동이 일더라도
일상은 늘 같은 주파수로 파도를 타고 있기에.
이 일상이 뒤집어진다면 비로소 소설이 될테니까.
내 일상도 물론 내부적으론 소설이지만.
당신의 오후는 어땠나요?
"어느 작가의 오후"같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