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처럼 권마다 다른 빛을 내는 노인경 작가의 일곱 번째 그림책
엉뚱한 공상부터 무겁고 진지한 사색까지, 노인경 작가는 평소에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그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멋진 그림책으로 탄생했다. ‘책을 늦게, 지저분하게 읽는’ 작가 자신의 독서 습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책청소부 소소로 2012 볼로냐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으며,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로 2013 브라티슬라바 국제원화전시회(BIB) 황금사과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고슴도치 엑스가 2015 화이트 레이븐에 선정되는 등 노인경 작가는 명실상부 우리 그림책의 차세대 대표 주자이자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작가이다. 그녀가 1년여 동안 준비한 일곱 번째 그림책 나는 봉지가 출간되었다.
힘들고 지친 당신에게 드립니다
작가가 이번에 주목한 소재는 일회용 비닐 봉지다. 한 아이와 엄마가 장을 보고 노란 봉지에 물건을 담아 집으로 온다. 노란 봉지는 다른 봉지들과 함께 다용도실 한 켠에 놓여진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겨지고 돌돌 말리고??????. 다용도실 한 켠에 있는 봉지들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쓸모도 없고, 쓰레기나 담을 거라고 모두 한숨 섞인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그때 바깥 세상을 궁금해 하던 노란 봉지는 바람을 가득 담고 하늘로 날아올라 여행을 시작한다.
노란 봉지는 세상을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혼자 철봉에 매달려 놀고 있는 아이, 봉지와 부딪치자 엉뚱하게 ‘메롱’을 날리는 학생,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할머니들, 신나게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아이들,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를 뒤지던 유기견, 왈칵 눈물을 흘릴 듯 힘들고 지친 아가씨, 공원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아저씨까지.
시련도 있었다. 복잡한 골목길을 지나다 안테나에 걸리기도 하고, 소나기를 맞고 바닥에 떨어져 짓밟히거나 거센 바람에 정신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해가 뜨고 새로운 바람이 불 때면 봉지는 훌훌 털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온 봉지는 친구에게 봉지 가득 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우리에게 들려주듯이.
노란 봉지가 만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바로 ‘우리’다. 노란 봉지는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장난도 치고, 함께 어울리고 이야기도 나눈다. 또 힘들어 하는 이를 안아 주거나 그들이 기댈 수 있게 어깨를 내어 준다.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한낱 봉지가 주는 위로가 이렇게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우연히라도 길을 가다 이 노랑 봉지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12색 물감과 8절 도화지로 표현한 충만한 행복감
맑은 하늘, 눈부신 햇살, 시원한 바람, 갑작스런 소나기, 불타는 노을???. 나는 봉지에는 초여름의 아름다운 날들이 담겨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휘잉, 바람에 실려 노란 봉지와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예상 외로 작가는 이 봉지의 여행에 많은 꾸밈을 넣지 않았다. 그녀가 사용한 것은 그저 기본 12색 물감과 8절 도화지가 전부였다. 그녀는 낮에는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자는 시간을 틈타 틈틈이 봉지를 따라 날고 꿈꾸며 200여 장이 넘는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 중 64점의 그림을 나는 봉지에 담았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그녀에게 휴식이자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었던 만큼, 봉지와의 여행이 그녀에게 무한한 자유로움을 선물한 만큼, 작가가 느낀 충만한 행복감과 여유로움이 그림책 안에 오롯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는 봉지를 만나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이런 행복감이 전해지기를, 봉지와의 여유로운 한때를 통해 진솔한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