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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6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46g | 133*200*20mm
ISBN13 9788954646079
ISBN10 8954646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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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입동」중에서

보드라운 뺨과 맑은 침을 가진 찬성과 달리 할머니는 늙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늙는다는 건 육체가 점점 액체화되는 걸 뜻했다. 탄력을 잃고 물컹해진 몸 밖으로 땀과 고름, 침과 눈물, 피가 연신 새어나오는 걸 의미했다. 할머니는 집에 늙은 개를 들여 그 과정을 나날이 실감하고 싶지 않았다. ---「노찬성과 에반」중에서

이수는 자기 근황도 그런 식으로 돌았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누군가의 불륜, 누군가의 이혼, 누군가의 몰락을 얘기할 때 이수도 그런 식의 관심을 비친 적 있었다. ---「건너편」중에서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침묵의 미래」중에서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풍경의 쓸모」중에서

나는 늘 당신의 그런 영민함이랄까 재치에 반했지만 한편으론 당신이 무언가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할 때마다 묘한 반발심을 느꼈다. 어느 땐 그게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처럼 보여서. ---「가리는 손」중에서

위안이 된 건 아니었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거나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예의’였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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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어느 한 순간에 붙들린 채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김애란은 수록작 가운데 한 편을 표제작으로 삼는 통상적인 관행 대신, 이번 소설집에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풍경의 쓸모」)는 문장에서 비롯됐을 그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안’〔內〕을 골똘히 들여다보도록 한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입동」)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서버린 누군가의 얼어붙은 내면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소설집 처음에 자리한 단편의 제목은 ‘입동(立冬)’이다. 사고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부서진 일상을 따라가며 우리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자리에 우리를 위치시키게 될지 모른다. 하나는 싱그럽고 맑은 아이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옥죄이는 듯한 슬픔을 느끼는 ‘부부’의 자리, 다른 하나는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그들을 ‘꽃매’로 때리는 ‘이웃’의 자리. 그리고 불가해한 고통을 겪은 타인을 대할 때, 실상 우리의 모습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되리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다가도, 그 고통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을 때는 고개 돌려 외면해버리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그렇지만 소설은 이 외면을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소설집을 닫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을 잃은 후 ‘시리(Siri)’에게 ‘고통에 대해’ ‘인간에 대해’ 묻던 ‘나’가 끝까지 붙들고 있던 질문은, ‘나를 남겨두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남겨질 사람은 생각하지 않은 채, 계곡에 빠진 제자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 물속에 뛰어들 수 있느냐는 것. 그 아득한 질문에 골몰해 있는 ‘나’는 제자 ‘지용’의 누나에게 편지를 받은 후에야 줄곧 외면하려고 했던 어떤 ‘눈’과 마주한다. 계곡물에 잠기며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을 지용의 눈과 말이다. 그 마주침 이후 ‘나’는 이전과 조금 다른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게 되지 않았을까.

무언가를 잃은 뒤 어찌할 바 모른 채,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어디로 갈 수 있느냐고 묻는 건 『바깥은 여름』 속 인물들이 나누어 가진 질문이기도 하다. 병에 걸린 강아지를 잃고 혼자 남겨진 아이의 모습에서(「노찬성과 에반」), 한 시절을 함께한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 여자의 모습에서(「건너편」) 우리가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그 이후 그들이 어디로 가게 될지 쉽사리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지용이 죽기 전 움켜잡은 게 차가운 물이 아닌 사람의 온기였던 것처럼, 차가운 구(球) 안에 갇힌 사람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시차’는 그간 익숙하게 여겨오던 생각이 깨어질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작품 「가리는 손」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여기서 시차는 잘 안다고 여겼던 인물과 우리 사이에서 생겨난다. 십대 무리와 노인과의 실랑이 끝에 노인이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의 목격자인 ‘나’의 아들 ‘재이’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로, “아무래도 그런 애들이 울분이 좀 많겠죠”라는 부당한 편견에 둘러싸인다. 그러나 김애란은 그런 편견들 틈에서 때묻지 않은 깨끗한 자리로 아이를 이동시키는 대신, 또다른 편견으로 ‘어린아이’를, ‘소수자’를, ‘타인’을 옭아맸을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천진하다고만 생각한 아이에게서 뜻밖의 얼굴을 발견한 순간 터져나온 ‘나’의 탄식 앞에서, 우리는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하며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해온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연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니 『바깥은 여름』은, 잘 안다고 생각한 인물에서부터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밀쳐둔 인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명료한 단어가 아닌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고자 한 안간힘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출연한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작가가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소설집 편편에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배어 있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대다수의 작품들이 최근 삼사 년간 집중적으로 쓰였다는 사실, 그러니까 어느 때보다 벌어진 ‘안과 밖의 시차’를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던 바로 그 시기에 쓰였다는 사실은, 김애란이 그 시기를 비켜가지 않고 그 안에서 천천히 걸어나가려 했던 다짐을 내비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의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들었을 때 느끼게 되는 친밀감과 반가움, 김애란은 등장 이후 줄곧 우리에게 그 각별한 체험을 선사했다. 이곳이 비록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가파른 절벽 위라고 하더라도, 그 언어가 화자(話者)가 한 사람밖에 남지 않은 소수언어처럼 타인에게 가닿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 막막한 상황을 껴안은 채 써내려간 일곱 편의 단편이 『바깥은 여름』 안에 담겨 있다.

│작가의 말│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김애란

회원리뷰 (199건) 리뷰 총점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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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바깥은 여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하* | 2023.01.1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김애란 작가님의 <바깥은 여름>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서 언제나 지인들에게 꼭 선물하는 책이에요. 단편소설 모음집인데,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것으로는 노찬성과 에반도 너무 좋고요... 아무튼, 소설을 읽고 싶은데 무엇을 읽을지 선택할지 어렵다 하시는 분들에게는 제가 꼭 추천하는 책입니다. 정말 많이 추천합니다!!;
리뷰제목

 

김애란 작가님의 <바깥은 여름>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서 언제나 지인들에게 꼭 선물하는 책이에요. 단편소설 모음집인데,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것으로는 노찬성과 에반도 너무 좋고요... 아무튼, 소설을 읽고 싶은데 무엇을 읽을지 선택할지 어렵다 하시는 분들에게는 제가 꼭 추천하는 책입니다. 정말 많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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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리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x****7 | 2022.10.1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김애란 작가님의 바깥은 여름 리뷰입니다.김애란 작가님의 다른 책인 침이 고인다를 읽고 쓰신 작품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에 구입하게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원래 단편소설은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인물에게 정이 들기도 전에 스토리가 끝 맺어져 몰입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인데, ’침이 고인다‘와 ‘바깥은 여름’ 모두 단편 모음집임에도 충분히 몰두하며 읽을 수 있었어요.;
리뷰제목
김애란 작가님의 바깥은 여름 리뷰입니다.

김애란 작가님의 다른 책인 침이 고인다를 읽고 쓰신 작품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에 구입하게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원래 단편소설은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인물에게 정이 들기도 전에 스토리가 끝 맺어져 몰입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인데, ’침이 고인다‘와 ‘바깥은 여름’ 모두 단편 모음집임에도 충분히 몰두하며 읽을 수 있었어요. 뒷이야기가 궁금한 스토리도 있었지만 오히려 단편이기에 더욱 여운이 남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는 글에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아내어 유독 마음이 가요. 글을 읽으면서 안쓰러움과 답답함, 그리고 가슴 따듯해지는 애정을 느끼는 건 결국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지않을까 싶네요. 김애란 작가님의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바깥은 여름이라 위험해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동***상 | 2022.10.0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나 도서관 갈 건데 뭐 좋은 책 없어?” 날마다 통화해서 안부를 챙기는 여동생에게 물었다. 여동생은 가끔씩은 소설도 읽은 게 좋지 않냐면서 <바깥은 여름>을 추천했다. 나보다 오래 깊이 있게 소설을 읽어 온 여동생의 추천이라 별 고민 없이 빌려 왔다. 여름 원피스를 입는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제목이 왜 바깥은 여름인지가 궁금해지게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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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도서관 갈 건데 뭐 좋은 책 없어?”

날마다 통화해서 안부를 챙기는 여동생에게 물었다. 여동생은 가끔씩은 소설도 읽은 게 좋지 않냐면서 <바깥은 여름>을 추천했다. 나보다 오래 깊이 있게 소설을 읽어 온 여동생의 추천이라 별 고민 없이 빌려 왔다. 여름 원피스를 입는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제목이 왜 바깥은 여름인지가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여름의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면서 기대하는 마음이 된다.

 

저자 김애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소설집<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있다. 수상 경력이 화려하게 책날개에 이어지고 있는데, 그 수상 경력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마음이 더 간다.

책은 모두 7편의 단편 소설들이 실려 있다. 처음 시작은 입동이라는 제목의 소설이다. 입동?? 겨울의 시작. 원피스를 입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여인을 따라 나도 문안으로 들어가 본다.

 

-미진아.

그만하라는 뜻으로 지그시 아내의 팔뚝을 잡았다. 그러자 아내는 화를 내는 건지 이해를 구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서글픈 비명을 질렀다.

-다 엉망이 돼버렸잖아.

십 년을 기다리다 인공수정으로 어렵게 얻은 아이를 어린이집 차에 잃었다. 부부는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오랫동안 이사를 다녔고, 이 집은 대출을 끼고 사서 아내가 혼자 리모델링을 한 집이었다. 아이를 잃고 아내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힘들어해서 시어머니가 집에 와서 집안 일과 아들과 며느리를 챙기고 있었다. 이 부분은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식탁 앞 벽에 복분자 진액이 폭발하여 얼룩을 남기는 부분이다. 무심한 것인지 실수인지 모르지만 아들이 없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추석 선물이라면서 복분자를 보내왔다. 남편은 아내가 신경 쓰지 않게 치우려고 두었는데 그것이 벌써 2달 전이었다. 시어머니는 밤에 목이 말라 음료수인 줄 알고 열이었다가 그 음료수가 폭발하여 집안 곳곳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남긴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아내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 사건에서 화를 내고 말을 한다. 시어머니는 당황하고 무안해서 바로 다음날 내려가시고 집에는 또다시 아내와 남편만이 남았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아들의 기억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어쩌면 아내의 다 엉망이 돼버렸잖아라는 대사도 아이를 잃고 하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집을 사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꾸미고 아이와 남편과 함께 완벽한 집을 꿈꾸었던 아내에게 아들의 죽음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들의 죽음을 감정적으로 표현하거나 대사를 통해 표현하지 않는다. 에둘러서 아내의 행동이나 남편의 상황을 표현한다. 그것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와 그들의 고통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무심한 사람들과 일상적인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무심결에 저지르는 폭력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대체로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을 향해 모르고 그랬다는 말을 많이 한다. 타인의 상처와 슬픔에 모른다는 것은 죄이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지 당당하게 드러내서 말하며 상처를 줄 일이 아니다. 소설을 통해 뉴스 속의 이야기가 실감되고 체험되는 경험을 한다. 마치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를 내가 가까이서 보는 것처럼 아픔이 느껴진다. 소설은 이런 힘이 있구나. 느끼게 되는 뛰어난 소설이었다.

 

스스로에게 조금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변명했다. 찬성은 ‘구경이나 해볼 마음’으로 휴게소 전자용품 매장에 들렀다 액세서리 용품 진열대 앞에 한참 머물렀다. 그러곤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한 보호필름을 만지며 자기도 모르게 “사흘......” 하고 중얼댔다. 그러니까 사흘 정도는...... 에반이 기다려주지 않을까 하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찬성은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찬성을 돌보기 위해 휴게소에서 일을 하신다. 어린 찬성은 부모님의 사랑이나 돌봄을 거의 느껴보지 못한 채 혼자 외롭다. 가정 형편상 휴대폰도 없고, 그로 인해 친구들과 대화도 잘되지 않는다. 그런 찬성이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다가 버려진 개 에반을 집으로 데려온다. 그 에반을 통해 찬성은 돌봄과 마음을 나누는 것들을 배워가고 에반의 형 노릇을 하던 어느 날 에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자신의 용돈을 털어 동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다. 에반은 나이가 많고 암이 걸려서 고통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의사는 에반의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으로 안락사를 이야기하고 그 비용을 위해 찬성은 난생처음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통해 안락사 비용 10만을 만들었다. 10만이 주머니에 들어오자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았고, 돈을 쓰고 싶은 유혹이 시달리던 찬성은 에반을 데라고 동물 병원에 가지만 상중이라 일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이후로 조금씩 돈을 쓰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오늘은 자신의 중고 휴대폰에 액정보호 필름을 붙이는 장면이다. 그러면서도 사흘이면 에반이 버텨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의 마음이라기보다는 돈에 대한 우리 모두의 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쓰면 안 되나? 이게 조금 더 급하니까... 아니면 이게 꼭 하고 싶은데... 이런 망설임들과 유혹들에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실수하게 되는가?

찬성은 아픈 에반이 눈앞에 아른거리면서도 처음 가져보는 휴대폰의 편리함과 자신의 것에 대한 욕망이 더 크게 일어났다. 하루하루를 잘 먹지도 못하고 고통 가운데 견디는 에반을 보면서도.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은 이렇게 이기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아무리 사랑해도 내가 우선인 것이다. 나의 욕구, 나의 희망, 내 필요, 내 아픔... 인간은 원래 그런 족속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아픔에 무디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생각과 마음을 매일 연습하고 배워야 한다. 내가 만약 찬성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해 봐도 쉽지 않다. 이후 에반은 찬성의 도움으로 안락사 할 수 있었을까?

 

이후로도 쉽지 않은 단편들이 이어진다. 문장은 날카롭기도 때론 주인공처럼 무기력하게도 이어진다. 공시생 연인의 이야기, 사라지는 말들을 모아 전시한 박물관 이야기, 시간강사의 이야기, 다문화 아이의 숨은 폭력성과 남편을 잃은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언어의 박물관 같은 이야기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가에 대한 경외심마저 들었다. 공시생 연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딸아이가 겹쳐지기도 했다. 인문학을 읽으면 자신의 감정을 깨닫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게 된다는 말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짧게 이어지는 단편들에서 그 주인공들이 강렬한 생명력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와 머릿속에서 자꾸만 튀어나왔다. 여름날 휴게소 모퉁이를 걷고 있는 찬성이와 에반이 보이는 것 같았고, 언어를 시연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함께 있어도 혼자 있어도 외로운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소설을 왜 읽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소설이 허구일 뿐이라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깊이 공감하는 마음과 시선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데다가 짧기까지 하니 읽어 볼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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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408건) 한줄평 총점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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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아***줘 | 2023.01.18
구매 평점5점
18년 인생.. 제 인생 책입니다.. 눈물 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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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 | 2023.01.16
구매 평점5점
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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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 | 20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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