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洪蘭坡, 1898. 4. 10 ~ 1941. 8. 30)
한국의 슈베르트라고도 불렸던 홍난파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음악평론가로 일제 강점기에 명성을 날렸다. 본명은 홍영후(洪永厚)이며, 아호가 난파(蘭坡)이다. 〈봉선화〉, 〈고향의 봄〉,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고향 생각〉등의 가곡과 〈오빠생각〉, 〈나뭇잎〉, 〈개구리〉 등의 동요를 작곡했다.
국악에 조예가 깊은 부친의 영향을 받아 수원에서 자라며 국악기를 배웠고, 서울로 올라온 후 서양음악을 접하게 된다. 1910년 중앙 기독교 청년회 중학부, 1912년 조선 정악 전습소 서양음악부 성악과, 1918년 일본 동경 우에노[上野] 음악학교 예과(預科), 1931년 미국의 셔우드 음악학교(Sherwood Conservatory of Music) 등을 거치며 음악공부를 한다. 뿐만 아니라 1919년 동경에서 예술 잡지인 <삼광> 창간, 1922년 음악잡지 《음악세계》 창간, 1925년 잡지 <음악계> 창간, 1938년 음악잡지《음악만필》 발행 등 음악 평론가로서의 활동도 지속한다.
그러나 1937년 수양 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후, <사상전향에 관한 논문>을 제출하고 친일 음악인이 되고 만다. 일제의 애국가요대회에서 <정의의 개가>, <공군의 가(歌)>를 발표하고, 친일 문학인인 이광수의 시에 곡을 붙여 <희망의 아침>을 발표한다. 한편 홍난파의 친일에는 자발성이 없다고 보고 그를 친일 음악인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1941년 8월 30일에 뇌결핵으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