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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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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1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68g | 148*210*30mm
ISBN13 9788982814167
ISBN10 8982814167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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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존재의 부름에 응답하며 한없이 망설이는 문체 『바이올렛』은 시선의 감옥에 갇힌 우리 안의 그녀에게 자유를 선사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녀로 인해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 자체,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하나의 답변이다. -신수정(문학평론가)

저자소개

♣ 신경숙 |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스물두 살 되던 해인 1985년 중편 「겨울우화」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방』 등 한국문학의 주요 작품들을 잇달아 출간하며 신경숙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인간 내면을 향한 깊이 있는 시선, 상징과 은유가 풍부한 울림이 큰 문체, 정교하고 감동적인 서사로 작품세계를 넓혀온 그는 『리진』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출간했다. 31개국에 판권이 팔린 밀리언셀러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의 문학전문 출판사인 크노프사에서 출간되어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닷컴이 선정한 올해의 책 베스트 10(문학 부문)에 선정되었고, 각국 언론의 호평 속에 이례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작가의 또다른 책으로는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 『감자 먹는 사람들』 『딸기밭』 『종소리』,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짧은 소설을 모은 『J이야기』,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자거라, 네 슬픔아』, 일본 작가 쓰시마 유코와의 서간집인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등이 있다. 팔 년 만에 출간되는 여섯번째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은 세계로부터 단절된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풍경들을 소통시키기 위한 일곱 편의 순례기로, 익명의 인간관계 사이에서 새롭 단발견해낸 삶의 의미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특유의 예민한 시선과 마음을 흔드는 문체로, 소외된 존재 일곱마지막으로 조우절된 삶의 신비는 절Y소설극점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빛들을 포착해내어 이 시대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바닥 모를 생의 불가해성을 탐색한다.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외딴방』이 프랑스의 비평가와 문학기자 들이 선정하는 리나페르쉬 상(Prix de laperrCu)을 수상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미나리 군락지 2. 꽃을 돌볼 여종업원 구함 3. 낡은 셔츠에 대한 기억 4. 수애 5. 생일 6. 이게 바이올렛이란 말이오? 7. 사무친 눈 8.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9. 그가 그녀의 몸 속에서 10. 지난 여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11. 귀를 기울이면 12. 쉿! 13. 수녀 14. 바닷가에 갔었어 15. 어두워지기 전에 16. 해설 : 다시, 씌어지는 이야기 - 신수정(문학평론가) 17. 작가후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violet 식물, 제비꽃, 보랏빛, 신경질적인 사람, 수줍어하는 사람
violin 바이올린, 바이올린 연주자
violence 격렬, 맹렬, 폭력, 난폭
violator 위배자, 방해자, 모독자, 능욕자
--- p.184
이제 일어났니?
그 남자는 가만 웃는 것도 같았다. 마치 그녀가 잠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는 그 환영을 외면하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고, 그래서 그 남자는 잠시 사라진 듯 했다. 그러나 사라진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먼저 창가의 의자로 가 앉아 있었을까? 다시 든 잠..... 눈을 뜨자마자 그 남자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을 때야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아예 일어나 앉았다. 왜 그 남자가? 허둥거리며 그녀가 의자로 몸을 옮겼을 때 그녀는 의자가 아아닌 그 남자의 무릎에 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p.165
이상도 하지. 조금도 두렵지 않았어. 바닷물은 부드럽디 부드러웠어. 막힘 없이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렁이면 탁자 위로 물이 튀어올라 손등과 발등을 간질이곤 했어, 어느 땐 파도가 허리를 감싸고 목덜미를 껴안곤 했지. 귓속으로 눈 속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도 같았단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어.바닷물은 그렇게 단단하고 아름다운 책상 위에 나를 태우고 아주 먼 곳으로 데려가는 중이었어.
--- p.245
여름이 지나도록 아무일도 없었던 그녀의 심연에 그를 향한 욕망은 한 순간에 시작되었다. 아무 연대감도 없는 그 남자에게로의 이끌림은, 가끔 한밤중에 잠이 깨었을 때, 그녀 가슴을 훑고 지나가던 참담함. 그 불안을 막아주던 식물들의 위로, 칠혹같은 밤중에도 뿌리들은 흙 속에서 키를 키우겠지 싶어 허리가 짜부라질 것 같은 피로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 화원으로 달려오게 만들던 그 위로까지도 뛰어넘어 지금 그녀를 길게 울게 하고 있다.
--- p.227
어떤 통로도 없이 그를 향해 점점 부풀어만 가는 욕망은 그녀로 하여금 모든 일에 방심케 했다. 그녀의 그 남자에게로의 이끌림이 지난 여름부터가 아니라 수천 년 전부터 똬리를 틀고 있다가 터져나온 것만 같이. 추억이 되지 못하고 파륵파릇한 슬픔으로 전이된 욕망. 그녀는 그욕망을 껴안고 귓볼이 붉어진 채 어둠 속의 화원 안에서 길게 울고 있다.
--- p.227
슬픔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또렷한 기억이 그녀에겐 있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기도 전에 다가온 그애의 돌연한 멸시를 갚아주기 위해서는, 죽을 수밖에 없다. 내 죽음만이 그애의 마음을 돌이켜놓을 것이다. 언젠가 죽어야 한다면 지금 여기서 죽으리라. 그녀는 그 푸른 영상 속의 야생 미나리 군락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여기서 어느 날이든 죽으리라. 너의 마음을 돌이켜 놓기 위해서라면, 돌이켜 놓을 수만 있다면 난 죽으리라. 매일매일을 그 생각으로 버티었다.
--- p.271
새벽에 산에 들어가보니 물이 넘쳤다. 신발을 벗어 양손에 들고 물을 건너고 또 건너보았다. 그렇게 한없이 가다가는 어디 내가 모를 낯선 곳에 이를 것도 같았다. 흥분이 되면서도 두려움이 일었다. 물 속의 길을 맨발로 되돌아오는 동안 찰박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여러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엇나감으로, 부재로, 권태로, 혹은 어쩔 수 없음으로 만날 수 없게 되었거나 만나도 어색하게 되어버린 사람들. 지금은 이리 되었다. 그러하나......
--- p.309. 작가후기 중에서
사전의 얇은 종잇장을 일일이 넘기던 그녀의 시선이 바이올렛 근처에서 헤매다닌다.

violet 식물, 제비꽃, 보랏빛, 신경질적인 사람, 수줍어하는 사람
violin 바이올린, 바이올린 연주자
violence 격렬, 맹렬, 폭력, 난폭
violator 위배자, 방해자, 모독자, 능욕자

사전을 들여다보던 그녀의 표정이 점점 곤혹스러워진다. 사전을 저만큼 밀어놓고 새 노트 앞에 단정하게 앉아 있던 그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등을 구부리고 이렇게 적는다.

지난 여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문장을 적어놓고 가만히 노트를 들여다보다 한 문장씩 이어쓴다.

지난 여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오로지 뜨거운 태양 속으로 어떤 영상이 한 컷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 영상은 화원의 어떤 여름꽃보다도 바로 내 곁에 있었다. 나는 그걸 글로 옮겨보고 싶었다가도 더위에 지쳐 그만둬버리곤 했다.
--- pp.184-185
붐비는 사람들 사이를 홀로 걸어가던 그녀가 여름 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는 물방울들을 흘깃 쳐다보았을 때다. 누군가 그녀의 팔을 붙잡는다. 다시 돌아온 걸까? 그 남자다.
"혼자 가는 것 같아 돌아왔소."
이때까지도 그녀는 그 남자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는 것 같다. 피로한 눈을 뜨고, 혼자 가는데 그가 왜 돌아왔는지 의아한 듯 그 남자를 보고 있다.
"맥주 한잔 더 하겠소?"
"아니요."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단박에 거절한 것이 미안해진 그녀가 좀 피곤하군요, 덧붙인다. 오늘은 일이 아주 많은 날이었어요, 라고.
"그러면 저기 잠깐만 앉았다 갑시다."
그 남자가 가리킨 저기는 분수대 옆 나무 벤치다. 한여름밤인데도 한몸인 듯 바싹 붙어 앉아있던 남녀 한 쌍이 막 일어나고 있다. 그 남자가 성큼 걸어가 벤치에 먼저 앉는다. 그냥 서 있는 그녀를 향해 그 남자가 이리 와 봐요, 손짓한다. 그녀자 멈칫거리자, 이리 와보라니까요, 다시 한번 말한다. 그녀, 그 남자곁으로 다가가 그 곁에 앉는다.

"왜 사진은 찾으러 오지 않소?"
사진?
"인화해서 가방에 넣어놨으니 언제든지 오면 주겠소."
그후론 그 남자는 말이 없다. 움직임조차도 없다. 간혹 깊은 숨을 내쉴 뿐이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 그 남자는 공허해 보인다. 얼마나 지났을 까. 그만 가야겠어요, 일어서는 그녀의 손을 그 남자가 붙잡는다.
"당신, 사랑해도 되겠소?"
불쑥 묻는 그 남자의 목소리 속에 방금 전까지 쏴아, 하니 들리던 분수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뚝 끊기고 대신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가 끼어든다. 누구나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에도 억압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만이 내뱉는 능란한 말투. 앞뒤 맥락없는 그녀를 향한 그 남자의 말투에 반응을 보인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옆 벤치에 앉아 있던 남자와 여자들이다. 그녀가 뭐라고 대답할까 궁금한 모양이다.

그 남자는 그녀의 손을 놓고 벤치에서 일어난다.
"언제 바다에나 한번 같이 갑시다."
그 남자는 허리를 낮춰 그녀의 뺨에 입맞춤을 하더니 분수대를 지나 성큼성큼 걸어간다. 한순간의 일이다. 얼마동안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다. 밤거리의 사람들과 네온빛에 섞여 그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너무나 피로한 탓일까. 옆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신을 구경하고 있는 것도 그녀는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다만 지금, 그녀는 그 남자의 입술이 닿았던 뺨을 손바닥으로 훔쳐내고는 고개를 숙인 채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 pp.160-161
벌서 수애는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수애의 본성이라고 느끼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이미 여러 층위의 사람들을 만나본 사람이 갖는 불신이나 냉소 같은 게 수애의 작은 몸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산이에게는 수애가 지닌 힘처럼 느껴진다. 수애는 아니오, 라고 분명하게 말할 줄 안다. 그건 아니에요, 라고. 길다란 방 주인여자가 수도세와 전기세 용지를 들고 왔을 때 수애는 이건 아니에요, 라고 했다. 우린 낮에 거의 집에 없잖아요. 그런데 수도세를 주인댁하고 반씩 내는 거 이건 아니에요, 라고. 길다란 방 주인여자가 레크리에이션 사무실에는 수도꼭지가 없고 저 아가씨는 지금까지 그렇게 냈다고 하며 그녀를 가리키자 수애는 다시 말했다. 지금까지야 어찌됐든 그건 아니에요, 잘못된 일이에요. 길다란 방 주인여자는 야무진 아가씨네, 하면서 도로 내려가더니 이제 이 집에 사는 사람 머릿수대로 나눠서 수도세를 청구했다. 덕분에 지금껏 이 집 전체를 향해 청구된 전기요금의 반을 내던 그녀 몫이 삼분의 일로 축소되었다. 돈 문제에서 수애는 깔끔했다. 삼분의 일로 축소된 전기요금의 반을 수애가 냈다.
--- p.76-77
바람이 푸른 둑의 풀들을 잦히며 지나간다. 미나리가 바람에 스러진다. 남애는 곧 울 듯한 어린 그녀를 끌어안는다. 햇살에 따스해진 살갗들이 닿는 자리에 지금 산이라 지칭된 그녀가 평생을 지녀야 하는 고독이 끼어든다. 말랑한 입술들이 맞닿고 작은 손가락들이 엉키다가 풀어진다. 남애가 소스라치며 그녀의 등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일어서려는 걸 그녀가 깊이 끌어당겨 안는다.
--- p.22
미나라지가 내려다보이는 푸른 둑 위에 펼쳐놓았던 옷을 챙겨입는 두 여자아이의 마음은 서로 반대였다. 지금 산이라 지칭된 어린 그녀는 너를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거야. 였고 이제 그녀의 삶과 작별할 남애는 너하고의 묘지 위에서의 맹세는 이것으로 끝이야 였다. 마을의 큰 집 문간방으로 살람살이를 옮긴 그들 모녀. 가끔 그녀 어머니는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어린 그녀는 그 마을을 떠나게 될 때까지 거의 움직임이 없다. 하교길에 어느 밭둑 건너에 있는 묘지 위에 엎드려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그녀, 주인집 마당의 닭과 오리들을 멀거니 응시하고 있는 그녀. 미나리지가 바라다 보이는 둑 위에 오래도록 혼자 앉아 잇는 그녀가 간혹 눈에 띄었을 뿐.
--- p.27
간혹 내가 나쁜 사람이다,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속이 뒤틀려 있을 때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산만해지는 건 둘째 치고 나중에는 서성거리는 것조차 가능하지가 않아 가슴팍을 방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속상함이 다스려지지 않으니 몸이 자근자근 아픈 것이다. 나쁜 인간이란 마음에 그리움이 생길 수 없게 하는 인간이다. 머리는 터질 듯하고 어깻죽지가 저려오며 다리에 힘이 쭉 빠져버린다. 하루를 엎드려 있기도 하고 때로 일주일을 엎드려 있기도 한다. 가슴속에서 펑 소리가 날 때까지.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너무 멀리 나온 길을 이제 혼자 돌아가야 한다는 고독이 움틀 때까지. 내가 이런 인간이었구나, 내 속을 상하게 한 대상을 나 역시 가슴속에서 펑 소리가 날 때까지 상하게 하는 그런 인간이었구나, 를 깨닫는 건 덧없고 서글프다.
--- p.66
가슴속에서 펑 소리가 날 때까지.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너무 멀리 나온 길을 이제 혼자 돌아가야 한다는 고독이 움틀 때까지. 내가 이런 인간이었구나, 내 속을 상하게 한 대상을 나 역시 가슴속에서 펑 소리가 날 때까지 상하게 하는 그런 인간이었구나, 를 깨닫는 건 덧없고 서글프다.

--- p.66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이 작품에서 표제인 '바이올렛'은 다양한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사전의 정의대로 꽃의 일종이며, 보라색이라는 색깔을 나타내기도 하고, 수줍은 여인을 은유하기도 한다. 동시에 그것은 기표(signifiant)의 유사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폭력(violence)과 연결된다. 작가는 이런 다채로운 의미가 소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여러 삽화와 비유를 통해 긴밀하게 형상화해놓고 있다. 또한 바이올렛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비극적 운명의 여인 이오와 중첩됨으로써 그 내포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한복판, 그 익숙한 공간이 돌연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모습을 달리해가며 벌어지는 신화적 비극이 상연되는 무대로 탈바꿈한다. 따라서 바이올렛의 보랏빛은 수난의 핏자국이자 소외된 자, 억울린 자의 멍자국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동시에 처절하며, 애잔한 동시에 섬뜩하다.

단 한번의 눈길, 단 한번의 손길... 욕망의 생성과 바스라짐
『바이올렛』의 그녀, 오산이는 한순간 온몸을 덮쳐온 격렬한 욕망에 붙잡혀 도시 한복판을 걷는다. 걷고 떠돈다. 몸을 기울여도, 아무리 내몰아보려고 해도 그 욕망은 나가지 않는다. 포크레인에 그 욕망의 몸을 부숴버릴 때까지. 그리고 그녀는 이 거리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이 비범한 욕망의 오디세이 끝에서, 포크레인 묘지 안에서 그녀는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바이올렛』은 바스라진 욕망의 이야기이되, 그 모든 욕망의 좌절과 글쓰기의 욕망이 꼬리를 물고 다시 소설 속으로, 문학 속으로 들어오는 모든 글쓰기의 자전(自傳)이기도 하다.

그 여자, 오산이의 기억 밑바닥엔 어린 시절 미나리 군락지의 푸른 풍경이 있다. 그 풍경은 그러나 상처다. 등에 푸른 반점을 지닌 친구 남애로부터 거부당했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봉인되어 있다. 옹이진 상처는 끝끝내 그녀의 삶을 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적 부재, 늘 그녀를 혼자 두고 떠나버렸던 어머니. 이 상처의 기억들은 그녀를 식물처럼 살게 한다. 목덜미를 잡아채는 듯한 상처의 기억 때문에, 타인을 향해 쉬 손내밀지 못하는 그 여자의 꿈은 언제든지 글을 쓸 수 있는(그녀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하며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다독거린다) 넓은 탁자를 하나 갖는 거지만, 그 꿈은 멀리 있다. 출판사 오퍼레이터 면접에서도 거절당한다. 그녀는 세종문화회관 옆 화원에 "꽃을 돌볼 종업원"으로 취직한다.

여름의 어느 날, 이 꽃집에 잡지 화보에 실을 바이올렛을 찍으러 사진기자가 찾아오고 이후 그들은 밤거리에서 재회한다. 사진기자가 무심히 던진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알아? 당신 내 카메라 바라보느라 눈 내리깔고 있을 때, 이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눈썹도 있구나, 내내 생각했지. 내 마음 몰랐지요?"(156쪽)라는 말 한마디, 무심히 그녀의 팔뚝을 쓸어내린 그 남자의 손길에, 그때껏 침묵에 잠긴 채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녀의 내면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불길에 휩싸인다. 그때부터 줄곧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 남자. "그녀는 의자 위에서 몸을 약간 기울어지게 해본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나가지 않고 그녀 몸 속에서 함께 기울어진다. 물이 범람하듯 하룻밤 사이에 그녀의 의식 속으로 진입해버린 그 남자. 그 남자로 인해 허둥거리고 있는 그녀."(166쪽)

마치 수천 년 전부터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처럼 한꺼번에 솟아오르는 정염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되지 못한 채 그녀를 하염없이 서성이게 한다. 걷잡을 수 없이 그에게로 향하는 욕망에 얼굴이 붉어질 때면 슬그머니 꽃집을 빠져나가 그 남자의 회사가 바라다보이는 공터에 바이올렛 한 포기를 꾹꾹 눌러심고 돌아오는 그 여자에게 바이올렛은 이미 그녀의 분신이자 사무친 욕망의 대체물로도 여겨진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씨의 지적처럼 "제비꽃으로 널리 알려진 이 꽃의 이미지는 『바이올렛』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 구실을 한다. 그 남자가 찍은 사진 속에서 그녀와 바이올렛은 하나가 된다." 그렇게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그 남자를 제외한 그녀의 나머지 삶 전체는 정적이 되어버린다. "그 남자에게로의 이끌림은, 가끔 한밤중에 잠이 깨었을 때, 그녀 가슴을 훑고 지나가던 참담함, 그 불안을 막아주던 식물들의 위로까지도 뛰어넘어 지금 그녀를 길게 울게 하고 있다. 추억이 되지 못하고 파릇파릇한 슬픔으로 전이된 욕망. 그녀는 그 욕망을 껴안고 귓불이 붉어진 채 어둠 속의 화원 안에서 길게 울고 있다."(227쪽)

자신의 태생지, 치유받지 못한 상처의 장소를 찾아간 그녀는 추억의 부재만을 확인하고 돌아온다. 미나리 군락지도, 어린 시절 그녀를 밀어냈던 남애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다시 그녀가 가꾼 바이올렛 꽃밭을 찾은 그녀는 이미 시들어 말라비틀어진 꽃들에게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물을 주고는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그 남자를 찾지만 이미 그녀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그 남자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삶의 절벽까지 내몰린 절박함으로 그녀는 보란 듯이 엉뚱한 곳을 헤매다, 결국엔 또다른 욕망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생은 없다. 무참히 내동댕이쳐진 채 그녀는 어긋난 삶의 실마리를 더듬어본다.

"슬픔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또렷한 기억이 있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기도 전에 다가온 그애의 돌연한 멸시를 갚아주기 위해서는, 죽을 수밖에 없다, 내 죽음만이 그애의 마음을 돌이켜놓을 것이다, 언젠가 죽어야 한다면 지금 여기서 죽으리라. 그 푸른 영상 속의 야생 미나리 군락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여기서 어느 날이든 죽으리라, 너의 미음을 돌이켜놓기 위해서라면, 돌이켜놓을 수만 있다면 난 죽으리라."(271쪽)

혼신의 문학만이 줄 수 있는 가슴 먹먹한 감동
그 여자, 오산이를 따라가는 내내 독자의 마음은 아슬아슬하다. 조심조심 내려가 절망의 밑바닥에 발을 딛고야 말 때까지 위태롭게 이어지는 시간은 저릿하기까지 하다. 지금이라도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바로 우리 옆에 늘 존재하는 여자인 것만 같기에 그 애틋함은 더 간절해진다. 그러나 그녀 곁에 존재하는 또다른 그녀의 분신 수애나 건강한 낙원의 공간을 일구는 벙어리 화원 주인을 통해 작가는 삶의 환한 국면을 놓치지 않는다. 아마도 이들, 화원과 농원의 인물들은 늘 마지막 시선에서는 삶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신경숙 소설의 아름다운 현신일 터이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오늘 여기에 있는 나를 일깨우는 영화를 보거나 노래에 귀를 기울이거나 글을 따라 읽을 때면 새삼스럽게 역사의 지층 속에 사장된 익명의 존재들이 지녔을 슬픔이나 고독을 생각하게 된다. 뿌리깊은 소외와 단절을 겪으면서도 헤아릴 수 없는 거리와 도저한 시간을 헤치고 오늘 나를 방문해서 나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들 속에는 그들의 영혼이 스며 있다고 생각한다. 잊혀진 그들이 끊임없이 걸어오는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이끌어내 새로운 세계를 이루는 것이 영화이며 노래이며 소설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글쓰기는 결국 이미 사라진, 지금 있는, 앞으로 탄생할 미미한 존재들과의 쓸쓸한 조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깊은 밤중에 읽는 몇 줄의 아름다운 문장에 마음이 흔들리듯이 누군가 내 소설 속의 하찮은 존재로 인해 이 고독한 현실 속의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고 바스러진 과거를 껴안게 되고 타인에게 한 발짝 다가가고 싶은 충동으로 마음이 흔들린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소망스러운 일은 없겠다."

작가의 겸손한 소망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혼신의 힘으로 작품 속에 쏟아져 있음을 안다. 망설이고 더듬거리며 서서히 존재의 심연과 대면해가는 신경숙의 문체, 온몸으로 밀고 나간 단어 하나 하나의 밀도가 그 가슴 먹먹한 혼신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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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이.
이 여자에게 이름을 지어준 지가 꼭 일 년이 되었다. 오산이는 내 단편 「배드민턴 치는 여자」의 분신이다. 이 여자를 바로 다시 세상에 내보내려 했는데 다른 작품에 밀려 이제야 이루었다. 빚어지지 못한 채로 내 마음속에서 십여 년을 함께 산 셈이다. 오해 많은 세상에 이 여자를 내보내려 하니 미안해 죽겠다. 제대로 맛있는 것도 먹이지 못했고, 좋은 옷도 입히지 못했으며, 종내는 꿈과 욕망조차 바스라지게 했으니 이 여자의 어미나 되는 듯 마음이 쓰리다. 이 여자를 통과해가는 시선 속에서 이 여자가 새로 부활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 작가 후기에서
신경숙의 소설에선 처음부터 독자를 휘어잡아야 한다거나 도중에서 독자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나 잔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느릿느릿 사소하고 아름다운 것들,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한테까지 한눈을 팔며 소요(逍遙)하듯 따라가게 만든다. 짜임새 없이 마음가는 대로 쓴 것 같은데 읽고 나면 바로 그 점이 이 작가만의 구성의 묘였구나 싶어 못내 감탄을 하게 된다. 나에게 신경숙 문학의 매력은 식물이 주는 위안과도 같다.
--- 박완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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