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학교에 나와 독서토론을 계속한 아이들이 있다고?
그 무섭다는 중2 아이들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고?
설마, 『파우스트』를 제대로 읽은 학생이 있겠어?
『파리대왕』을 읽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할 말이 생겼다고?
성적이 계급을 결정한다더니 『멋진 신세계』를 읽고 생각을 바꿨다고?
『10대를 위한 행복한 독서토론』에서 이 놀라운 청소년들의 토론 과정을 확인하시라.
졸업한 제자들이 선생님을 찾아왔다.
“선생님, 저희 토론 계속하고 싶어요!”
초등학교 독서반에서 권일한 선생님과 토론했던 제자들은 졸업 후 중학생이 되어 선생님을 찾아왔다. 독서토론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권일한 선생님과 아이들은 주말마다 독서토론을 이어갔고 그 생생한 과정, 선생님의 피드백, 아이들의 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등을 엮어 이 책 『10대를 위한 행복한 독서토론』을 펴냈다.
성인들도 어려워하는 고전부터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는 비문학까지 혼자서 읽기엔 버거운 책들이지만, 여럿이 토론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논술까지 써내는 청소년 제자들이 참으로 놀랍다. 물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7년 넘게 주말마다 졸업한 제자들과 만나 두 시간씩 독서토론을 하고 이를 책으로 펴낸 저자 권일한 선생님이 더 놀랍다.
성공담과 실패담,
20년 독서토론 노하우 공유
본격적으로 토론 이야기에 앞서 저자 권일한은 20여 년의 독서토론 내공을 쌓은 교사답게 독서토론을 풍성하게 이끌기 위한 조언과 자신의 실패 사례를 아낌없이 공유한다. 초등과 중등 독서토론에서 다르게 적용해야 할 부분, 이렇게 했더니 실패했다는 뼈아픈 교훈, 독서반에서 다룬 책 55종 목록은 현장에서 독서토론을 오래 지도한 교사가 줄 수 있는 유용한 팁이다.
찬반토론을 할 때는 상대방 주장과 설명을 더욱 잘 들어야 한다. 찬반토론을 하는 까닭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쳤는지 확인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찬반토론이 인격과의 만남이 아니라 이겨야 하는 게임이 돼버렸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듣지 않고 결과만 따지면 찬반토론에서 이긴다고 해도 실패나 다름없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이건 함께 토론한 상대방의 의견이건 듣지 않는 토론은 실패이다.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나와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이다. (32쪽)
대화법을 배워두어도 도움이 된다.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듣는 사람들이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묻는 능력을 갖추면 토론을 잘 이끌 수 있다. 또한 학생이 감정에 북받쳐 말할 때 다른 이야기를 할지, 끝까지 말하도록 덤벼들지 파악하는 능력을 갖춰도 도움이 된다. (34쪽)
따분한 책, 감동 없던 책이
인생책이 되기까지
제1부에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인생책으로 뽑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과 편견에 맞서는 용기를 갖게 한 『앵무새 죽이기』로 토론한 내용을 담았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혼자서 읽고 온 아이들은 별 감동한 기색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도 없다고 한다. 선생님과 좋은 문장을 나누고, 책 주인공의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는 토론 과정을 거치자 아이들은 비로소 책의 가치를 발견했다. 주인공의 가치관과 현대인의 가치관을 비교해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글까지 써냈다. 아이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했던 권일한 선생님도 인간을 존귀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아이들을 보며 토론 시간을 뿌듯하게 돌아봤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없다고 한다. 학생들은 문장을 읽을 줄 모른다. 책에서 줄거리만 읽으면 다 읽은 줄 안다. 그러면 문장이 보이지 않는다. 교과서에 밑줄 긋고 뜻을 받아쓰며 외우는 교육을 받으면 문장의 가치를 잘 모른다. 감동한 책이라고 해도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작가가 의도를 담아 쓴 문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54쪽)
책 속 원주민과 백인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토론했다. 둘째 시간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활동이다. 땅, 사냥, 금주법, 교육, 일하는 목적, 돈, 물건, 죽음에 대해 원주민과 백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각자 찾아 적고 함께 나누었다. (59쪽)
인생의 진짜 가치는 어디에서 올까? 무엇이 인간을 존귀하게 만들까? 학생들도 소유 방식으로는 진정한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고 인정한다. 무작정 공부만 하기에 앞서 왜 사는지 고민한다. 더 공부하고 잠이라도 잘 시간에 친구들 안 읽는 책 읽고 토론하며 글 쓰는 까닭은 우리 안에 가치를 찾고 싶은 존재방식이 여전히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67쪽)
하지만 우린 그들의 경험만을 바탕으로 한 판단에 갇혀 더 이상 어떤 경험도, 판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언젠간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알아내려 노력하는 학교 안에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이론의 틀에만 박혀 공부하는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교육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71쪽 토론 후 중2 이가진 학생이 쓴 글 중에서)
선생님, 공부는 우리가 빼앗긴 모든 것보다
가치 있을까요?
제2부에서는 『죽은 시인의 사회』와 『학교의 슬픔』, 『수레바퀴 아래서』, 『그리스인 조르바』로 토론한 과정이 각각 펼쳐진다. 꿈, 현실, 교육, 사회에 대한 아이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읽은 아이들은 우리나라 대입제도와 교육 구조를 비판했고,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은 전교1등 학생은 성적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전했다. 책마다 내용 파악, 독서토론, 글쓰기, 글 고치기 이렇게 4주 과정을 거치는데, 권일한 선생님이 어떤 질문으로 어떻게 대화를 이끄는지 생생하게 배울 수 있다. 또한 독서토론 이후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 혼자 읽기가 아닌 더불어 읽기가 왜 필요한가를 느끼게 된다.
키팅이 과연 무엇을 가르쳤는지 이야기하고 키팅에게 배울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세 명 중 두 명꼴로 ‘대학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학생들이 키팅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키팅이 무엇을 가르쳤을까 이야기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책을 읽고 감동해 눈물 흘리기도 했지만 냉정하게 다시 살펴보니 키팅은 잠깐의 추억만 남겨주고 쓸쓸하게 학교를 떠났다. (124쪽)
제3부에서는 『파리대왕』, 『멋진 신세계』, 『기억 전달자』로 우리 시대를 분석하고 현실을 비판했던 토론을 다룬다. 『파리대왕』에는 상징적인 내용이 많아 읽기 어렵다. 상징을 이해해야 글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다. 이에 권일한 선생님은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책에 등장하는 것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파악하는 시간을 먼저 갖는다. 이어서 저자 윌리엄 골딩이 왜 이 책을 썼을지, 등장인물 중에 누가 마음에 드는지, 주변 인물 중에 닮은 사람이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지, 국가 권력과 국민의 관계가 어떠한지’ 토론하는 아이들을 보면 사회를 고민하게 하는 토론의 힘을 깨닫게 된다.
학생들이 자기만의 눈으로 『파리대왕』을 읽는 걸 보고 놀랐다. 우리 교육이 학생들을 토론의 장으로 이끈다면 학생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파리대왕』과는 먼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여전히 무인도에 도착한 아이들 수준인 것 같아 답답했다. (168쪽)
멋진 미래를 만들려면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살펴야 한다. 고기를 던져주는 잭과 구조를 위해 함께 땀을 흘리자고 요청하는 랠프 중에 누구를 지도자로 뽑는지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짐승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현실을 회피하면 안 된다. 사이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어려움에 맞서면 세상은 점점 멋지게 변할 것이다. 골딩이 왜 『파리대왕』을 썼는지, 유토피아를 만들 거라던 인간의 본성이 왜 『파리대왕』에 재물을 바치는 짓을 하는지 생각하며 글을 썼다. (170쪽)
『파우스트』를 제대로 읽은 학생이 있느냐고?
여기, 『파우스트』를 논하는 10대들이 있다!
제4부에서는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파우스트』로 토론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역시나 첫 시간에 모인 학생들은 일곱 명이 읽어 오지 못했고, 끝까지 읽은 세 명도 중간 이후부터는 그냥 글자만 읽었다고 고백했다. 보통 한 책을 4주 토론하지만 『파우스트』는 5주를 해야 했다. 권일한 선생님은 이렇게 읽기 어려운 고전은 쟁점을 내세워 찬반토론을 하라고 조언한다. 논제에 따라 토론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책 내용을 이해해 가기 때문이다. 권일한 선생님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첫 시간에 파우스트가 한 일을 함께 찾아가며 줄거리를 요약한 후 다음 시간까지 책을 다시 읽어오도록 지도했다. 둘째 시간에 파우스트와 메피스토를 비교하고 셋째 시간엔 팀을 나눠 발제문을 썼다. 넷째 시간에 드디어 토론을 시작했다. “메피스토의 유혹은 파우스트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논제로 찬성 측과 반대 측을 나눠 교차쟁점 찬반토론을 진행한 과정은 굉장히 흥미롭다. 주장과 반론, 재반론을 펼치는 토론 수업을 읽다 보면 정말 청소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대단하기까지 하다. 책에서 실제로 아이들이 썼던 발제문과 선생님의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다. 쟁점 토론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현장 교사와 학부모, 학생 독자에게 현실감 넘치는 조언이 가득하다. 『파우스트』라는 고전을 소화하기 어려웠던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찬성 측 최종변론을 들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나는 동현이가 다음에 나올 가진이의 글처럼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말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글은 내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동현이와 가진이는 같은 편이다. 가진이가 쓴 최종변론을 동현이에게 참고하라고 주었지만 동현이는 자기가 쓴 글을 읽었다. 가진이는 남학생이 자기 의견을 하나도 반영하지 않았지만 감탄하며 대단하다고 반응했다. 논술을 쓸 때 대부분 본론 내용을 요약해서 결론을 쓴다. 이미 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면 식상해지기 때문에 그러지 말라고 해도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찬성 측 최종변론은 모험이다. 이 모험이 탁월한 내용을 낳았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242쪽)
토론을 마치고 학생들이 많이 아쉬워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한 자신의 논리가 얼마나 얄팍한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글을 쓸 때는 증거와 설명이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차분히 증거를 들어 설명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성장’과 ‘유혹’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므로 논제에서 다루는 낱말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도 실감했다. 아직 어설프지만 학생들도, 나도 많이 배웠다. (246쪽)
논술을 왜 써야 할까?
논술은 아이들을 가두는 입시 수단에 불과할까?
저자는 논술을 쓸 필요가 없는 초등학생이 논술학원에 다니고 논술을 꾸준히 써야 하는 고등학생은 잠깐 논술 쓰는 기술만을 배우는 현실을 슬퍼한다. 사고의 발달 과정에 따라 차근차근 접근하지 않고 갑자기 들이밀며 결과만 생각하는 논술은 진짜 논술이 아니다. 그럼에도 권일한 선생님은 논술을 배우고 자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럴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 『식탁 위의 세계사』, 『10대와 통하는 땅과 집 이야기』로 토론 후 논술문을 작성한 사례가 펼쳐지는 제5부에서 그 까닭을 들을 수 있다. 이어지는 제6부에서는 책 서너 권을 읽고 한 가지 주제로 통합하여 글을 쓰는 통합논술 쓰기를 연습한다. 대한민국 독서토론논술대회에 대비해 진행한 논술 훈련 과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여러 권을 하나의 주제로 묶는 훈련을 통해 아이들은 숲을 보는 안목을 기르게 된다. 통합논술을 위한 대상도서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어떤 주제를 제시할 것인지, 논술문을 작성하며 생각을 확장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 권일한 선생님의 보석 같은 조언들이 이어진다.
초등학생 자녀가 책, 특히 동화책을 많이 읽으면 부모들이 좋아한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어서 계속 소설을 읽으면 책 그만 읽고 공부하라고 한다. 소설가 될 것도 아니면서 시간 낭비한다고 꾸중한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해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다른 길을 찾아보라 한다. 자기소개서와 논술을 따로 연습시키면서도 책을 읽는 건 말린다. 문학과 논술이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56쪽)
“상을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하지 않다. 전국에서 모여든 아이가 상을 노리겠지만 너희는 다른 목적으로 가야 한다. 생각이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가 귀하다. 토론하면서 눈이 열릴 거다. 독서논술 쓰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다!”라고 말한다. 대회가 끝나고 돌아올 때 학생들은 늘 토론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논술을 어떻게 썼는지 말한다. 상을 받을 수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무얼 얼마나 느꼈는지 말한다. 이번 장에서는 2014~2016년까지 열린 제13회, 14회, 15회 대한민국 독서토론.논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통합논술을 쓴 과정을 소개한다. 통합논술을 쓰는 기술보다 전체를 바라보는 눈에 집중하길 바란다. (3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