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는 다양한 생존 노력이 모여 공존의 기쁨을 알려 주는 곳이다. 생명들은 상조 작용synergism을 하면서 서로 힘이 되고, 제 삶과 죽음이 남을 키우는 에너지가 되면서 선순환한다. 보답을 따지지 않고, 도움을 강요하지 않지만, 결국 긍정이 긍정을 낳는 시스템이다. 생물들은 남과 다름을 알아내고,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고, 저마다 길을 찾아 함께 살아가면서, 다양하고 풍요로운 방향으로 발전해 나간다. 이들이 보여주는 협력은 직접적인 피드백이 아니라 열심히 살면서 누군가를 돕게 되고,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돕게 되는 순환적 협력이다. --- p.6
치타의 몸은 포식 동물치고는 약점이 적지 않다. 먹이를 발톱으로 채고 이빨로 물어뜯어야 하는 고양잇과 동물이지만, 몸집에 비해 얼굴이 작고 이빨 크기도 작다. 이것이 치타의 커다란 약점이다. 어찌 보면 일종의 장애를 가진 육식동물인 셈이다. 턱이 약하고 강한 이빨이 없는 치타로서는 싸우는 데 한계가 있다. 이빨로 공격해도 상대에게 별로 치명타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치타는 다른 고양잇과 동물보다 덜 사납다. 이렇게 치타는 약점이 많지만 허장성세로 자신을 그럴 듯하게 꾸미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경쟁에서 뒤질 게 빤한 약점을 땜질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헛되이 쓰지도 않는다. 치타가 관심을 쏟은 것은 자신이 남과 무엇이 다른지 파악하고, 그 다른 부분을 대폭 강화하는 일이었다. 치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사는 곳, 함께 사는 동물과 경쟁자들, 자신의 위상과 한계점, 그리고 강점 등에 대한 깨달음과 정확한 판단이었다. 그러다 보니 독특한 달리기 법을 터득했고, 그것이 곧 생존 전략이 되었다. --- p.12
어린 기러기는 알에서 깬 지 몇 달 만에 부모와 함께 이주한다. 줄기러기 새끼는 한 해 내내 어미 아비와 더불어 지낸다. 어리지만 하늘 높이 치솟아 매서운 바람 속에서 먼 거리를 날아야 한다. 혼자서는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아찔하고 가슴이 울렁거리는 일이다. 그러나 곁에 가족이 있기에 두려움을 떨치고 함께 비행에 나선다. 어린 기러기들은 날아가면서 또래끼리 쉴 새 없이 종알대며 서로 힘을 북돋는다. (…) 무리는 병들거나 다쳤거나 힘이 모자란 기러기를 배려할 줄 안다. 힘이 떨어진 새는 비행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처질 때가 있는데, 이때 기러기 무리는 이런 새를 혼자 날게 하지 않는다. 적어도 두 마리의 다른 새가 지친 새 곁에서 함께 난다. 이렇게 보살펴서 지친 새가 기운을 차리면 다시 무리에 섞여 함께 날아간다 --- p.67
목마름과 더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도망치듯 다짜고짜 달렸다면 낙타는 사막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낙타는 달리기 능력이 있지만 달리지 않는다. 느긋하게 여유를 즐길 형편은 아니지만 빨리 달리는 것은 그에게 낭비다. 달리면 열이 난다. 외부의 열도 주체하기 힘든 판에 스스로 열을 만들어 내면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나. 낙타는 부글부글 끓는 마음만으로도 몸이 축난다는 것을 아는 동물인 듯하다. 낙타는 헤픈 행동을 삼간다.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가 총총걸음을 치거나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는 것은 에너지와 물을 아끼기 위해서다. 더위 속에서 급격한 체온 증가가 일어나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진다. 체온 조절을 위해 땀을 많이 흘리면 탈수 증세가 생길 수 있다. --- p.89
일본원숭이는 평온하게 조직을 유지하면서 종족 번영을 이어 간다. 남다른 조직 운영 비결을 깨우치고 실천한 덕분이다. 계급제도를 유지하되, 각 개체 사이에 적대적인 경쟁 관계 대신에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일본원숭이들은 놀이 삼아 동무 삼아 서로 애정을 다지면서 협력을 즐긴다. 그래서 폭력과 공포, 죽음의 어둠을 벗고 '사랑의 공동체 이루기'라는 이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일본원숭이 무리는 알파메일, 즉 우두머리 수컷이 지배한다. 그러나 수컷 사이의 힘겨루기에서 이긴 새로운 대장 수컷이 벌이는 유아 살해가 없다. (…) 언뜻 보기에 강력한 우두머리가 살벌하게 조직을 지배하면 그 기세에 눌려 순탄하게 위계질서가 잡힐 것 같지만, 거짓 평화가 숨죽인 채 잠시 펼쳐질 뿐이다. 권불십년이라 부하 수컷들이 힘을 기른 다음 여차하면 싸움 걸 기회를 노리고, 승자는 언젠가 또 바뀐다. --- p.109
코끼리는 우제류나 기제류와는 좀 다른 유형의 발굽을 가진 동물이다. 지방에 쌓인 탄성 섬유가 발가락의 무게를 지탱하고 지방질이 몸무게를 분산시킨다. 따라서 발가락에 가해질 수 있는 엄청난 몸무게의 부담이 덜하다. 발의 구조가 관절과 근육을 보호하는 것이다. 비대한 몸통에다 다리가 기둥처럼 굵다랗지만 사뿐히 걷는 듯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걸을 때마다 쿵쿵거리면 소리도 크게 나고 뼈에 무리가 갈 것이다. 코끼리는 앞발 디딘 곳을 뒷발로 다시 디딜 만큼 조심성이 있고 치밀한 편이다. 또 딱딱한 땅을 골라서 걸을 때가 많지만, 질퍽한 땅에서도 잘 빠지지 않고 발자국을 크게 남기지 않는다. 코끼리는 느긋하게 움직이는 동물이다. 걷는 속도는 평균 시속 6.8킬로미터 정도인데, 빨리 걸으면 10킬로미터쯤 된다. 펄쩍 뛰거나 솟구칠 수는 없지만 달릴 수는 있다. 사냥 위협에 놓이면 시속 40킬로미터로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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