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1년 03월 31일 |
---|---|
쪽수, 무게, 크기 | 339쪽 | 548g | 153*224*30mm |
ISBN13 | 9788950929855 |
ISBN10 | 8950929856 |
발행일 | 2011년 03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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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9쪽 | 548g | 153*224*30mm |
ISBN13 | 9788950929855 |
ISBN10 | 8950929856 |
프롤로그 _ 거대한 방 서문 _ 깊이가 필요한 시대, 천천히 느끼고 제대로 생각하는 법 Part 1. 스마트한 우리는 왜 항상 초조하고 불안하고 분주한가 Chapter 01. 참을 수 없는 디지털의 분주함 Chapter 02. 스크린 마법에 빠진 사람들 Chapter 03. 세상과 단절하는 순간 얻게 되는 것들 Chapter 04. 당신은 지금 영원히 접속되었습니다 Part 2. 일곱 철학자, 월든 숲에 가다 Chapter 05. 가끔은 세상과 거리를 두라 _플라톤이 발견한 거리의 아름다움 Chapter 06. 마음의 거리를 확보하라 _세네카가 발견한 내적 거리 Chapter 07. 손에 책을 들게 하라 _구텐베르크의 자기 성찰 Chapter 08. 오래된 도구를 사랑하라 _느린 도구의 매력에 빠진 셰익스피어 Chapter 09. 삶의 질서를 창조하라 _벤저민 프랭클린의 긍정 습관 Chapter 10. 나만의 월든 존을 만들라 _소로와 숲 속 안식처 Chapter 11. 마음의 온도를 낮추라 _맥루한과 행복의 온도 Part 3. 속도에서 깊이로 Chapter 12. 깊이 있는 삶을 위한 일곱 가지 철학 Chapter 13. 생각이 탄생하는 곳, 디스커넥토피아 에필로그 _ 다시, 거대한 방 옮긴이의 글 _ 2000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 주 더 읽어보기 |
산업혁명 이후 기계문명의 발달은 인류에게 보다 편안한 삶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엔 모두 직접 몸으로 했던 집안 일부터 산업영역의 일까지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는 곳이 없다.
최근엔 스마트폰의 등장과 IoT의 발전은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회사일이나 학교의 과제나 모든 일을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을 정도의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여유로워졌을까? 모두가 행복하다고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보다 육체적으로는 편해졌을지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힘들게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의 울림소리나 진동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정신적인 쉼의 시간을 없애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크린이 나쁘다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사실 스크린은 매우 좋다. 문제는 균형의 상실,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 스크린을 향한 충동이 야기하는 마음 상태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과 함께, 스크린 안에서 살고 있다.” - P. 308.
<속도에서 깊이로 ?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는 제목 그대로 속도에 목표를 두고 살아왔고,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만족, 그리고 행복을 위해서 스스로에게 깊이를 줘야만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의 철학자 7명 - 플라톤, 세네카, 구텐베르크, 셰익스피어, 벤저민 프랭클린, 데이비트 소로, 마셜 매클루언 ? 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에서 조금 더 빠르게 빠르게만 찾다가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보다는 주위의 눈과 평판에 휘둘려서 좌절하는 상황에 처한 현대인들에게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찾아 마음의 여유를 가짐으로써 내적인 상황과 외적 상황의 균형을 맞추어 갈 것을 말한다.
그것이 좋은 여행지일 필요도, 외딴 시골같은 곳일 필요도 없으며, 순간순간 자신의 내면을 채울 수 있는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첨단기기를 부정할 필요도 버릴 필요도 없으며, 삶을 위해 최대한 이용하라고도 말한다.
“이 책은 동경과 갈망에 관한 책이다. 마음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조용하고 널찍한 공간에 대한 동경 말이다. 예전에는 그런 곳이 어디에나 있었고 또 어떻게 가는지도 잘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점차 그런 곳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 P. 15.
“기술과 철학은 훌륭한 삶을 위한 도구도 오랜 시간 동안 유용하게 쓰여 왔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매일 수천 년 전에 발명된 네트워크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사상에도 유통기한은 없다.” - P. 117.
“기술에 이끌려 다닐 것인지 의식을 통제함으로써 삶 자체를 통제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다.” - P. 279.
첨단 기계로 인해 편해진만큼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의 삶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겉으론 편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 순간도 일을 내려놓지 못하는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다.
퇴근 이후에도 계속 울려대는 대화창의 알림 소리와 벨 또는 진동소리에 온 몸의 에너지를 빨리는 것 같지 않는가
누구도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 나 스스로가 나를 돌봐야만 한다.
스스로가 어떻게든 작은 여유를 만들어 잠시라도 자신의 정신을 쉬도록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남은 삶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행이든 잠이든, 아니면 잠시 잠깐의 멍때리기이든.
“인간의 맥시멀리즘적 성향을 일깨우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어 왔다. 그와 동시에 인간은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새로운 기술이 선사하는 미래로 건너갈 수 있게 해주는 다리가 아닐까.” - P. 218.
“첨단 기술 덕분에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세상 구석구석에는 다양한 방이 있다. 모든 방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하지만 훌륭한 삶은 결국 어떤 방에서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결심의 문제다. 검지를 관자놀이에 대고 톡톡 두드려 보라. 답은 전부 그 안에 있다.” - P. 328.
카카오톡, 밴드알림, 전화, 문자, 이메일광고, 웹사이트신문등 하루에 이런것들은 끊임없이 내 주변에서 나를 주목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에 잠시 눈을 돌리는 순간, 난 그만 집중하던 일에서 빠져나와 주목하라는 것에 눈을 돌린다. 다시 집중하던 일을 들어갈려니 쉽지 않다. 그렇다고 주목하라고 하던것도 아주 얕은 집중만 보인채..다른 스크린이 나를 주목하라고 한다.. 이런 일은 하루에도 몇번이나 반목된다.
이런 스크린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인간은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떤 악영향이 있을까?
깊이가 없는 삶 또한 스크린에 중독되어 타인의 관심을 받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삶은 우리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타인과 조화하며 자신을 깊이 알아가는 균형적인 삶이 우리가 바라는 삶이다.
작가는 이런 스크린에 둘러싸인 삶에서 자신을 깊게 들여다볼수 있는 해답으로 7명의 철학자의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7명의 철학자의 삶을 무조건 따라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에 맞는 것을 선택하고 없다면 개발하라고 말하고 있다.
플라톤의 물리적 거리(산책,여행)를 두는 방법,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말한 내적거리(손으로 몰입하는 활동-편지,공예,요리)를 두는 방법, 인쇄술을 발명한 쿠텐베르크의 책을 통한 자기성찰의 방법, 세익스피어가 말한 테이블(수첩,종이에 쓰는 행위), 프랭클린의 긍정습관, 소로의 월든존, 맥루한의 개인 각자의 경험이 이책에서 소개하는 경험이다.
나도 혼자서 밤에 거실에서 책을 읽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런 시간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핸드폰을 꺼놓는다든지 더욱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을 도입해봐야겠다.
갈수록 혼자있는게 어색해지고 두려워지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지금은 내면의 깊이와 친해져야 할 때
도시의 끔찍한 교통 체증을 피해 워싱턴 근교의 작은 마을로 이사한 윌리엄 파워스라고 하는 남자는 어느 날, 보트를 타다가 실수로 물에 빠지고 말았다. 휴대전화가 고장난 것을 확인 하는 순간, 앞으로 하루 이틀 동안 재앙을 맞았다는 좌절감과 함께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그 누구도 지금의 나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휴대전화가 없는 혼자‘는, 진짜 혼자였다.
그는 이 고립의 순간을 경험한 후 자신의 ‘과도한 디지털 문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굳이 열어서 읽어야 할 메일도 없고, 클릭하거나 댓글 달 일도 없어지자, 의외로 마음이 평온해짐을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혁명으로 세상은 가까워졌지만 그 대신 우리 내면의 중요한 것, 바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을 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크린을 통한 네트워크 가 촘촘해 질수록 우리의 일상은 정신없이 바빠졌다. 그로 인해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잃고 말았다 바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깊이’ 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사고와 감정의 깊이, 인간관계의 깊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깊이가 사라지고 있다 충만 하고 의미 있는 삶의 핵심인 깊이가 사라져 간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19 페이지)
혹시,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떠올릴 수 있는가? 열에 아홉 명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지켜보거나 두드리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오랫동안 스크린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림자와 빛이 겹쳐 흡사 좀비를 닮았다. 내 스마트폰 속에 들어 있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다양한 유무선 기술의 애플리케이션들은 혼자 있는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준다.
하지만 공짜는 없다. 대신 내게서 ‘생각하는 시간’을 빼앗아가고 있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하루 종일 ‘바쁘게’ 살아갈 뿐, 정작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렇다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바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켠다. 혹 잠깐이라도 생각에 빠지면 ‘쓸데없이 멍~ 때린다’고 핀잔을 듣는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잠깐의 침묵에도 우리는 쉽게 외로워지고 불안해진다. 그리고 곧 스마트폰을 켠다.
저자는 <속도에서 깊이로>(21세기북스)를 통해 디지털 도구는 필요악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하고 감정적 사회적, 정신적인 갈증을 해소하며 자신을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로인해 인류는 스크린에 사로잡혔고, 디지털 기술은 마치 정치나 종교적 믿음에서나 볼 수 있는 헌신적이고 충성도가 높은 마니아층을 양산해냈기 때문이다. 언제나 연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디지털 맥시멀리스트’들에게 디지털 기술은 단지 새로운 도구가 아니라, 혁명적인 신념이고 삶의 목적이며 이 세상에서의 삶을 완벽하게 해주는 새로운 발견이자 삶의 해답이다.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삶에 유익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이퍼컨넥티드Hyper Connected 된 삶이 과연 우리가 바라던 삶인가?’ 질문해 봐야 한다.
“경고! 정보의 시대에 지식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3분에 한 번씩 다른 활동을 한다. 이메일이나 전화가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일단 흐트러지면 다시 업무에 복귀하는데 대략 30분이 걸린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시사평론가 고든 크로비츠가 칼럼에 쓴 내용이다. 한때 IT전도사였던 니콜라스 카(Nicholas G. Carr)는 어느 날 독서 시간을 채 30분도 넘기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책을 읽고 있어도 전혀 몰입을 할 수도 없었다. 예전의 독서 몰입도가 잠수부였다면, 지금은 서핑을 하는 서퍼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유를 각종 ‘스크린’ 때문이며,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라는 제목의 책에 고백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지 모른다. 구글의 회장이자 최고 경영자인 에릭 슈미트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2009년 봄 펜실베니아 대학 졸업 축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컴퓨터를 꺼라. 휴대전화도 꺼라. 그러면 주위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발을 떼는 손자, 손녀의 손을 잡아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순간은 없다.”
이 말은 진보를 반대하는 러다이트Luddite가 아니다. 현실에서 만나는 경험(스크린은 결코 제공하지 못하는)과 깊이 있는 생각을 강조한 말이다. 그렇다면 깊이 있는 생각을 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파워스는 그 답을 과거에서 찾았다. 과거로 돌아가 일곱 철학자들, 플라톤, 세네카, 구텐베르크, 셰익스피어, 플랭클린, 소로, 맥루한의 통찰을 빌렸다. 디지털 시대의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과거에서 찾는다니 어불성설같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명쾌하다. 21세기에 디지털 혁명이 있듯 철학자들이 살았던 과거에도 인쇄술, 철도와 전보와 같은 혁명의 시기는 있었다는 것이다. 혼돈과 혼란의 혁명기에도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통제하며 위대한 사상들을 창조해낸 그들의 깊이 있는 생각을 추적한 것이다.
플라톤은 분주한 도시와 군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물리적 거리’를 두는데 노력했다. 하루 몇시간씩 일부러 멀어지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내가 찾아낸 멋진 아이디어들도 대부분 인터넷 서비스가 거의 안되는 KTX 속이었다. 세네카는 편지를 쓰면서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의식적으로 내적 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내면을 돌보며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뜨개질, 요리, 자동차 엔진이나 자전거 손보기 등 손을 움직이는 일을 하며 몰입한다면 스마트폰과 자연히 멀어질 수 있다.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는 ‘책’이라는 내적 공간에 접속하는 도구를 만들어 자기성찰의 기회를 만들었고, 군중들의 내적 읽기를 가능하게 했다. 책을 읽어라. 마음껏 생각하고 상상하는데 책만한 것이 없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적을 수 있는 특별한 메모장이 있었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스스로 만든 ‘13가지 덕목’을 습관화하면서 하루를 분주하게 살면서 나름의 생활 질서를 만들어냈다. 소로는 월든 숲이라는 자신만의 은신처를 만들어 고독을 즐길 줄 알았고, 맥루한은 정보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관심을 둠으로/서 분주해지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저자는 생각이 탄생하는 곳은 ‘디스커넥토피아’라고 단언하며 일주일에 이틀 정도 모든 네트워크를 차단하는 ‘인터넷 안식일’을 제안한다.
깊이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해서 당장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끊고 소로처럼 월든 숲으로 들어가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수중에 스마트폰이 있고, 와이파이가 되는 인터넷 환경에서도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지금껏 외부의 환경과 친했다면, 이제 우리의 내면과 친해질 시간, 내가 만든 고독을 만끽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