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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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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5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506g | 130*190*30mm
ISBN13 9788952761590
ISBN10 895276159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스무 살 때는 알 수 없었던 여행의 의미
도서3팀 정현경 (초중고학습서 담당 / pencil@yes24.com)
2011-11-09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언젠가부터 집으로든 회사로든 내 이름 앞으로 배달되는 모든 물건은 예고된 것들 투성이였다. 내 손으로 직접 주문한 물건들, 어제 엄마가 보냈다던 밑반찬, 그리고 때가 되면 매달 빼먹지도 않고 속속 도착하는 각종 고지서들. 예상 가능한 그 수많은 배달물들 사이에서 이 책은 예상치 못한 친구의 소포라는 형태로 내 손에 쥐어졌다. "니가 읽으면 참 공감할 문장들" 이라는 메모와 함께.

스무 살 때는 알 수 없었던 여행의 의미.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남긴 메모처럼, 책은 표지에 적힌 짧은 문구만으로도 이미 섣부른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는 말하자면 최소한으로 쓰면서 최대한 구경해야 했던 대학 시절의 배낭여행과는 조금 다른, 누군가는 격하게 공감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를, 그런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1년 반 전부터 서울을 떠나 동해안의 시골 마을에 집을 짓고 개와 닭을 키우며 살고 있던 저자는 어느 날 식물 비슷하게 변해버린 스스로를 발견한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다 보니 스스로가 기계인지 사람인지도 헷갈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중증의 게으름과 동력 상실, 무감각의 합체쯤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 퇴행현상을 그녀는 '인지적인 병신' 비슷한 상태라 지칭한다. 이런저런 일을 해야지 생각하고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하고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게 되었다. 최악은 바로 그 부분이다. 이른바 인지적인 병신에 이어 감각적인 병신마저 되어간다는 것.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매일 같은 시각에 출근을 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았듯 내일 역시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고, 어지간해서는 광기에 휩쓸리거나 획기적인 생활의 변화 같은 것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나 역시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두고선, 막상 출국날짜가 다가오자 여행 계획도 전혀 세우지 않은 채 '귀찮아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고 있었다. 타인의 여행 에세이인가, 나의 일기장인가. 쏟아지는 문장 하나하나가 다 내 이야기 같아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결국 별다른 계획도 없이 출국해 여행지에서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나는 뒤늦게 '조금만 더 빨리 읽었더라면' 하는 후회로 몸부림쳐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비용을 아껴보고자 난생처음 호텔이 아닌 민박집으로 숙소를 잡았다. 하지만 홈페이지에서 본 사진과 비슷한 부분을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방 구조, 옆방에서 나누는 대화에 언제라도 끼어들 수 있는 수준의 방음을 자랑하는 얇은 벽, 그리고 '방 바로 옆에 화장실이 붙어 있는1인실'이라는 그럴듯한 민박집 주인의 설명과 달리 샤워하러 갈 때마다 이미 다른 누군가가 사용 중이라 굳게 닫힌 화장실 문과 마주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거의 도망치듯 민박집을 빠져나와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다 어느 카페에서 펼쳐든 이 책에서 마침내 다음 문장을 발견했을 때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행에서 내가 바라는 사치 두 가지. 공유하지 않는 화장실. 그리고 맛있는 저녁식사."

누군가에게는 사치일 수도 있겠다. 호텔방에서 혼자 유유자적하는 것보다는 조금은 불편할 지라도 민박집에서 세계각국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묘미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업무상 수많은 거래처와 통화할 일이 많은 나에게는 낯선 곳에서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절실했고, 한 끼 사먹을 돈을 아끼기 위해 저녁에 민박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끓여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 나오는 어느 문장처럼 "내 나이쯤 되고 보면 화려한 사교 생활이나 국제적인 우정보다는 혼자 쓰는 화장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이번 여행 내내 나는 혼자 쓰는 화장실이 너무도 절실했다.

하지만 익숙한 일상을 남겨두고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낯선 곳을 향해 열 몇시간이나 날아가 여행을 하는 건 누가 떠밀어서도 아니고 오로지 스스로 자처한 일이다. 그러니 그 여행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해서 화를 내며 여행을 망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게다가 나는 이미 일상 속에서 너무 많은 화를 내며 살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화내지 않기.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한마디는, 그리하여 모든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여행의 룰이라고 할 수 있다.

매 끼니를 저렴한 맥도날드 햄버거로 때우기 일쑤였던 대학시절의 배낭여행과 사회인이 된 후에 떠나는 여행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금전적인 여유도 물론 달라졌거니와,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처음 배낭여행을 떠났던 때보다 모든 것에 능숙해지고 여유로워진 것이다. 부지런히 움직여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매 순간이 새롭고 낯설었던,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한 달 내내 생활이 아니라 그야말로 여행 그 자체였던' 스무 살의 여행 만큼이나, 가끔씩 게으름도 피우고 짧은 여행기간 동안 자주 가는 단골 카페도 생기는, 조금은 느슨한 서른 살의 여행 역시 소중하다는 말이다.

타인의 여행기를 읽는 이유는 각기 다를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관련정보를 얻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떠날 수 없어 글을 통해 대리 경험을 하고자 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여행이 아닌, 얼굴도 모르는 다른 누군가의 여행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을 확률은 얼마나 낮은가. 무릇 여행이란 것이 그렇다. '좋은 여행'이란 그 자체로 모호하고 주관적인, 따라서 자신이 아닌 남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개념이기에 그대의 여행과 나의 여행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같은 곳을 여행해도 스무 살의 나와 서른 살이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모든 여행기는 존재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

"모르는 게 더 나았을까?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다는 것을?"
아름다운 핀란드의 바닷가 마을, 자작나무 숲 속 통나무 오두막, 파란 호수 속에 축조된 오래된 성에서 열리는 오페라까지. 마침내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가고 저자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여행을 떠났던 몇 주의 시간 동안 두고 간 일상이 변할 리는 없다. 그래서 다시 식물화의 위험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미세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혹은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그 때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기를 잘 했다고. 그것은 떠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그리고 이전의 나도 미래의 나도 아닌 지금의 나만이 알 수 있는 여행의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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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험난했던 그 여행에서 지금도 잊지 못할 것은 지구 위를 진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 가로지르고, 북상하고, 남하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던 순간이었다.
그리운 쾌감이다. 생활 반경 20㎞를 벗어나지 않고 뱅글뱅글 맴도는 일상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광활한 공간적 경험, 또한 소중한 시간과 맞바꾼 성취감이기도 했다. 비행기를, 버스와 기차를, 배를, 말을, 당나귀를, 오토바이를, 자전거를, 그리고 두 발로 걷고 걸어 너른 땅을 가로질러 마침내 목적했던 바로 그 땅에 도달했다는 느낌, 그것이 좋았다. 여행다운 여행. 그때 그 여행은 정말 그랬다.
‘먼 곳에 가봐야겠다. 나라 하나가 아니라 여럿. 국가보다 큰 지역을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 정도로 많이. 그렇게 하고 싶어졌어. 아주 오랜만에.’
--- p.16~17
여행과 생활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전자는 후자에 이르러서는 사라지고 마는 낯섦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동력의 유무다.
이스탄불에서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에 매우 능숙해졌음을 깨달았다. 편안함이기도 하고 권태이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여러모로 지금과 정반대였던 대학 시절의 유럽 여행, 두 달 내내 생활이 아니라 그야말로 여행 그 자체였던 그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여행이 즐거움이 아니라 완수해야 하는 과업이고 전투이며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툴고 불안하던 여름날의 첫 번째 여행.
그 시절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나는 빠르고 아주 능숙해졌다. 반복과 경험, 훈련이란 그런 것이다. 같은 것을 여러 번 해본 사람답게, 신속하고 유연해졌다.
예전과는 달리 이젠 어려운 일이 하나도 없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 것, 행인을 붙잡고 다짜고짜 길을 묻는 것, 물건값을 흥정하는 것, 뭘 하든 누워서 떡 먹기였다. 더 이상 부끄럼을 타지 않았고, 눈치는 어느새 9단이 됐으며 무엇보다도 이제는 사소한 일로 낭비할 시간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스무 살 적 유럽에는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나와 친구는 기차 자리 하나 예약하는 것조차 난감했다.
“가위 바위 보를 해 진 사람이 물어보는 걸로 하자.”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뭔가 묻는 것이 창피한 나머지 저런 짓까지 서슴지 않았다. 상상해 보라. 다 큰 대학생 두 명이 길 한복판에 마주 보고 서서 심각한 얼굴로 가위,바위,보!
--- p.66~67
“큰 방이 두 개 있는데, 모두 도미토리예요. 그래도 괜찮다면.”
벨을 누르자 키가 작은 소녀가 나와 말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꽤 컸다. 벽을 따라 빙 둘러가며 2층 침대가 놓여 있다. 커다란 사기 난로며 나무 옷장 등의 고전적인 가구 때문에 도미토리 특유의 수용소 같은 느낌이 덜했다. 부드러운 새벽 햇살이 창문에 드리운 오렌지색 무명 커튼을 투과해 분위기가 아늑했다.
남녀 공용의 도미토리다. 이불 밑으로 삐져나온 털투성이 다리들, 시트가 흘러내려 가슴이 다 드러난 여자들.
“저기 빈 침대에서 자요. 시트를 갈아줄게요.”
자신이 하는 일에 꽤 능숙한 아이였다. 눈 깜박할 사이에 침대의 시트를 갈고 베갯잇을 새로 씌웠다. 침대에 누운 내 어깨 위로 이불을 끌어 올리더니 귀에 대고 정확한 발음의 영어로 속삭인다.
“타월은 내일 아침 줄게요. 자, 이젠 어서 자요.”
과장이 아니고, 나는 그 애가 방에서 나가기도 전에 정신을 잃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청춘들이 한 방에 누워 드르렁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허탈감에 기절할 만도 했다.

15년을 돌고 돌아 마침내 닿은 곳이 다시 원점이라니.
--- p.100~101
줄리안은 전형적인 스위스 인이다. 몇 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지구 환경을 걱정하고,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그가 살고 있는 취리히는 살기 좋은 도시를 뽑는 조사에서 항상 세계 3위 안에 든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 유럽에서, 아니 이 세상에 그보다 더 좋은 주거 지역은 없다고 했다. 부모를 절대적으로 존경하는 착한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정말, 세계에서 최고로 멋진 곳이야.”
그의 취미는 독서와 여행, 스노보딩이다. 박물관과 미술관, 발레 공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열심히 읽지만 스티브 잡스가 누군지는 알지 못한다. 하루에 다섯 번쯤 챕스틱을 고쳐 바르고 햇볕을 많이 쬔 날에는 반드시 팩을 하고 나서야 잠자리에 든다. 건강에 나쁘다는 이유로 하얀 빵 대신 반드시 호밀 빵을 먹는다. 케이크를 사랑하고 맥주를 혐오한다.
나는 줄리안처럼 섬세하거나 예민하지 않다. 과학자가 되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1년에 한 번도 가지 않는다. 발레? 내 돈 주고 보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팔자로 걷고, 맥주와 닭튀김, 야구 중계 시청을 좋아한다.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티백 하나를 분리수거하기 위해 4개의 쓰레기통-차 찌꺼기, 종이, 실, 금속-을 필요로 하는 독일식 방식은 좀 지나치다고 느낀다.
“이런 게 바로 여행이지!”
줄리안의 말이 맞다. 여행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동행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중략)
우리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여자보다는 남자를 더 좋아한다는 것 정도다. 그렇게 닮은 데가 없는 두 사람이, 거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두 존재가, 비행기로 열 몇 시간 떨어진 곳에 각각 태어나 서로 아무 상관 없이 어른이 된 우리가, 폴란드의 고도 크라쿠프에서 다시 만나 1000년 된 성 앞 푸른 풀밭에서 스스로의 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생긴 얼굴을 들여다보며 오직 호의로만 가득 찬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경이로웠다. 100년 전이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이것이야말로 문명의 발전이 가져온 가장 좋은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 p.177~178
단조로운 숲길이 이어지더니 푸른 들판이 펼쳐진다. 풀을 뜯는 갈색 말들, 지붕이 빨간 나무집들, 하얀 펜스. 그림책에나 나올 법한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사람뿐이다. 어디에도, 아무도 없다. 이 거대한 초원 자체가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어디 적당한 곳에 차를 좀 세워 봐.”
운전하는 둘리틀에게 말했다. 이런 시골에 공중 화장실이 있을 리 없다.
온통 허허벌판이다. 드넓은 들판에 사람은 없다. 은밀하게 일을 보기에 적당한 환경이다. 덤불과 나무들로 아늑하게 그늘진 천연의 화장실이 어디쯤 있을까.
“뭐해? 빨리 아무 데나 으슥한 곳에 차를 좀 세워보라니까. 더 이상 못 참겠어.”
“세우기가 힘들어!”
핀란드에서 운전하는 또 다른 어려움은 갓길의 부재다. 어찌 된 일일까. 잠깐 세울 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한적한 길이지만 세울 곳을 찾기 위해 속도를 줄이다 보면 뒤에서 귀신처럼 다른 차가 나타났다. 아니면 버스정류장임을 알리는 표지가 세워져 있거나.
“지나다니는 사람 한 명 없는데, 설마 버스가 그렇게 쉽게 오겠어? 1시간에 1대쯤 다니는 버스일 거야. 급하다. 저기 정류장 표시 있는 곳에 그냥 세워 봐!”
내 말대로 둘리틀이 차를 세우려는 순간, 마술처럼 백미러에 버스가 1대 나타났다. 급히 액셀을 밟아 그곳을 떠날 수밖에.
“인적 없는 시골인데 잠깐 일을 볼 만한 곳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니,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더욱 놀라운 것은 모처럼 샛길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면 덤불 너머에 아담한 오두막이나 주택이 초소처럼 세워져 있었다. 신비롭다. 바깥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들어가 보면 여지없이 인가가 있다. 이것이 바로 핀란드의 집짓는 방식이다.
“하나 더 가서, 그래, 저 길, 저 길로 들어가 봐! 어서!”
“하지만 집이 있는데? 저쪽에, 농장 같은 집이 있어.”
“더 이상 못 참겠어. 농장이 있든 아파트가 있든, 이젠 못 참겠다고. 어서 들어가!”
어느 덤불 옆 샛길 가장자리에 마침내 차를 세웠다. 농장은 약 100m 이상 떨어져 있었다. 이런 거리에서 육안으로 뭔가를 식별하기란 불가능하다. 봐도 할 수 없다. 사정이 급해진 나는 총알처럼 덤불로 뛰어들었다.
“야, 야! 트럭 들어온다!”
단 몇 초도 마음 놓을 틈을 안 주는 동네였다. 둘리틀의 다급한 고함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거대한 덤프트럭이 좁은 길을 비집고 들어왔다. 완벽한 타이밍이다. 나는 바지춤을 움켜쥔 채 덤불 속으로 넙죽 엎드렸고 둘리틀이 팔을 쩍 벌린 채 내 앞을 막아섰다.
덤프트럭 운전사는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우리를 지나쳐 농장으로 향했다.
?“진짜, 지독한 나라로구만.”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탄식한 말이다.
노상방뇨 한 번 마음 놓고 못하는 곳이라니, 만만치 않다. 순찰 도는 경찰이나 경고 표지판 하나 없는데도 은밀한 욕구를 해결할 주인 없는 땅 한 조각 찾기 힘든 광활한 벌판이여.
핀란드의 인구는 겨우 500만 명이지만 그들이 이 나라에서 각각 둥지를 틀고 앉은 위치와 방식은 너무나도 절묘해 설령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한 명은 다른 한 명으로부터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핀들은 적은 인원으로 큰 땅을 사수하는 방법에 도통한 민족이다. 나머지들과 너무 멀리 떨어지면 언젠가는 바깥으로 통 튕겨 나가 다시는 궤도에 진입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당신이 혼자라고?
음.
핀란드에서, 그것은 아마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 p.308~309
핀란드적인 마을이다. 더 적당하게 설명할 길이 없다. 예쁘고, 한적하고, 커피냄새처럼 고요함이 떠돌았다. 소리가 없이 산뜻한 색채만 환히 빛나는, 세상의 근심걱정 바깥에 놓인 듯 태풍이 아무리 세차게 몰아쳐도 나뭇잎 하나 까딱하지 않을 듯한 그곳.
핀란드의 마을이 다른 유럽의 마을들과 구별되는 미학적 특징들은 너무나 미묘해, 그러니까 공기의 결, 햇살의 바삭거리는 정도, 건물들을 칠한 페인트의 채도처럼 아주 소소한 것들이라 그날 날씨가 어떠했는가, 몇 시에 방문했는가, 바로 직전에 들린 목적지가 어디였는가 등에 따라 쉽게 변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섬세한 아름다움이다. 마치 온도나 냄새처럼, 현장에서 그 존재를 선명하게 느낄 수는 있지만 말과 글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개성.
과묵한 핀들은 세상의 북쪽 끝 은밀한 곳에 이렇게 어여쁜 마을들을 차려놓고 외부에는 절대 소문내지 않은 채 자기들끼리만 재미보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는 게 더 나았을까?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다는 것을?” “글쎄.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지 뭐. 여기서 살려면 아마 엄청나게 돈이 들 거야. 집세도 그렇고 생활비도 그렇고, 뭐든 아주 비쌀걸.”
“맞아. 그리고 평화로운 것도 하루이틀이지, 계속해서 살면 심심할 걸. 100년이 지나도 옆집 사람 늙어죽는 것 말고는 어떤 사건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아.”
신포도가 맛없다고 주장하는 여우들처럼, 우리는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하얀 건물들이 많아서일까. 워낙 거리가 깨끗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극도로 쾌청한 날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포르보는 아주 하얗게 느껴졌다. 가로수의 초록빛 잎사귀에 노랗고 바삭한 햇살이 부딪혀 반짝거렸다.
그동안 우리 인생에서 이렇게 아름답다고 느낀 날들이 며칠이나 있었을까. 사실 많았지만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뿐일까. 숲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숲을 빠져나와야만 하는 것처럼, 행복했던 날들로부터 이렇게 멀어진 후에야, 너무 아득하게 지나와 후회조차 의미를 잃게 되는 시간이 되고서야 그때 그 순간이 얼마나 괜찮았는지 깨닫게 되는 것일까.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나를 스치자마자 과거로 변해 버리는 이 순간의 모든 것들을 충분히 맛보고 싶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핀란드의 포르보였다. 1346년 생겨난 포르보강 기슭의 작은 마을. 이곳의 상징이기도 한 검은 지붕의 빨간 목조 주택들이 강가를 따라 늘어서 있다. 발길 닿는 대로 거닐어 봤다.
마지막으로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부르릉, 차에 시동을 걸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부랴부랴 그곳을 떠났다.

누가 보면 이 어여쁜 마을에 일말의 미련도 없는 사람들처럼.
--- p.318~319
둥근 식탁에 촛불을 켜고 마주앉았다.
“어쩐지 기도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긴데.”
무신론자에게도 종교적인 경외심이 밀려드는 순간이 있다. 지금이다. 무릎이라도 꿇고 싶어지는 순간.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고, 선물처럼 주어진 와인 한 병에 감사하고, 지금 여기 핀란드의 호숫가 오두막에 있는 것을 감사한다. 살아 있음이, 바로 이 순간이, 나를 둘러싼 모든 사물이 경건하게 느껴진다.
전부 소중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태양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아직도 빛으로 가득 차 어둡지 않은 하늘, 그 아래 거울처럼 고요히 놓여 있는 호수, 통나무집에서 풍기는 삼나무 냄새에 달착지근한 토마토소스 냄새가 섞여들어 훈훈한 공기, 벽난로에서 타닥거리며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
바로 앞에는 내가 만든 저녁밥이 놓여있고 옆에는 둘리틀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우연과 의지가 합쳐져 멀고 먼 북유럽, 어린 시절 동화에서 ‘수오미’라고 읽은 곳에 진짜로 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때에는 집을 떠나는 것이 두렵기만 했는데 이제 이런 이국에서 내 집인 양 편안히 앉아 따뜻한 음식을 먹으려 하다니. 감사 기도를 하고 싶다. 누구에게라도.
목소리마저 낮추게 된다. 오랫동안 나를 가두고 있던 시공간, 그곳에서 완벽하게 빠져나왔다는 안도감 때문에. 자칫 뭔가 하나 톡 쳐서 와장창 깨뜨렸다가는 이 모든 좋은 것들이 한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눈 깜박할 사이에 도로 본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돌아가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힘센 무언가가 뒤에서 억지로 잡아끌기라도 하듯 하늘 저편으로 푸른 빛이 사라져 갔다. 몇 시간 가지 않아 다시 해가 떠오를 것이다.
자작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펴 사우나를 한 후 선선한 바람 불어오는 호숫가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 p.345~346
한국으로 돌아온 지도 한참 시간이 지났다.
핀란드가 간절하게 그립거나 한 것은 아니다. 수오미는 그렇게 강렬한 매력을 발산하는 나라가 아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탈리아처럼, 타히티처럼, 뉴욕처럼, 도쿄처럼, 붉고 뜨겁고 왁자지껄하고 번쩍거리고 매끈하고 여러모로 끝내주는 그런 곳들과는 거리가 멀다.
핀란드는 지구의 북쪽 끝에 있다. 춥고 매우 조용하다. 여태 추우면서 조용하지 않은 곳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나.
그 나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 않은 소소한 것들, 설명하고 싶지만 불가능한 것들, 직접 가서 보지 않고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미묘한 몇 가지다. 글이나 사진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의 눈과 귀, 피부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특징들.
바싹 말라 보기보다 아주 쉽게 불이 붙고 놀랄 만큼 화력이 세던 자작나무 장작.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푸른 빛은 물론 잔잔한 정도 또한 하늘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던 호수와 물풀, 들꽃, 덤불.
하늘을 향해 똑바로 뻗은 채 가느다란 가지에 앙증맞은 초록 잎사귀를 가득 달고 있던 하얀 숲.
평화 속에 어쩐지 우울함이 느껴지는 도시의 인적 드문 거리.
언제 들어가도 붐비는 일이 절대 없던 슈퍼마켓.
한밤중에도 파르스름하게 빛나던 청색 하늘.
아무리 어려운 질문이라고 해도 술술 대답할 준비를 마친 듯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오던 젊은이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북쪽에서 날아들 메일 한 통, 조금 낯선
형상과 배열의 알파벳으로 발신인이 찍혀 있을 그 희고 바삭한 편지봉투를 기다리는 중이다.
첫눈 소식처럼 반갑지는 않을지라도.
--- p.363~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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