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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부를 허하다

: 부자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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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1년 05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148*210*30mm
ISBN13 9788962170375
ISBN10 896217037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부(富)는 신의 가르침에 위배되는가?

『종교, 부를 허하다』는 부의 추구와 부자에 대한 각 종교의 입장을 정리한 책이다. 영혼을 채우는 종교가 물질을 추구하는 '부(富)'를 바라보는 시각, 종교적으로 바람직한 부자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부자란 종교를 떠나 누구나 소망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가 부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부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것조차 꺼린다. 그 이유는 '타인에게 베풀어라'는 종교의 공통된 가르침 때문이다. 나눔의 미덕을 강조하는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히 '종교는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절대자는 종교를 제대로 믿으면 그 결과로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암시적인 표현들을 많이 쓰고 있다. 흔히 '무소유'로 대표되는 불교도 재물을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즐거움을 폄하하거나 멸시하지 않고 인정하는 가르침을 포함한다. 기독교의 성경 역시 부자나 재물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하는데, 그 고찰 속에는 영적인 부자와 물질적인 부자를 나누지 않고 상호 연관 속에 언급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이슬람교, 유교 의 가르침 속에서 그동안 외면해왔던 부자관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절대자는 가난을 권장하고 부를 금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이끄는 글_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부자와 바람직한 빈부관|한동철

Ⅰ.불교와 부자
재물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안양규
부자에 대한 불교적 이해|김종명
소욕지족의 부자론|김옥암

Ⅱ.기독교와 부자
부자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정기철
성경에 기초한 행복한 부자학|박정윤

Ⅲ.유교와 부자
도덕과 이익 그리고 부귀|임헌규
유교인생학과 나눔의 경영윤리|서경요

Ⅳ.이슬람과 부자|이주화

맺는 글_영적 풍요로움을 누린 부자|김혜숙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소개
김옥암 : 안동대 경제학과 교수
김종명 : 금강불교대학 교수
김혜숙 : 백석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박정윤 : 영남대 경영학부 교수
서경요 :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안양규 :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이주화 :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사무총장
임헌규 : 강남대 철학과 교수
정기철 : 호남 신학대 교수
한동철 :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누구나 선망하는 부와 부자, 종교는 과연 어떻게 볼까

-종교는 '부자 창조의 역할'과 '부자 억제의 역할'을 동시에 추구
-종교적 삶을 통해 훌륭한 부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이끌어


‘물질을 추구하는 부자와 영혼을 깨우는 종교는 과연 양립이 가능한가?’
‘불교, 기독교, 유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가 바라보는 부와 부자는?’

이 책은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시도로, 부의 추구와 부자에 대한 각 종교의 입장, 종교적으로 바람직한 부자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한국은 이 세상 종교들 중에서 다수가 포괄적으로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그만큼 다양한 종교적 가치관이 한국인들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부자는 믿는 종교를 떠나 이 땅의 거의 모든 국민들이 소망하는 대상이다. 부자는 정신적으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물질적으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사회적으로는 자신의 일을 통해 인정을 받는 사람이다. 전 국민의 2~3% 정도인 대한민국의 부자들은 거의 대부분 다양한 종교를 믿는 신앙생황을 하고 있다.

이들 부자들은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 더 큰 꿈을 꾸다가 유리벽에 가로막히고 마는 자신을 발견한다. 또 자신이 이룩한 꿈이 더 큰 꿈을 위한 발판이라고 자랑하다가 착각해서 절대자에게 도전하는 우를 범하고 나면 산산이 부서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게 나약한 육체로는 더 이상 올라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느껴야만 절대자에게 의지한다. 그 과정에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종교인들을 통해 회복이란 처방을 받고나면 이제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누구나 다가오는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대여금고에 쌓아두었던 금괴뭉치도 더 이상 죽음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부자는 죽음의 그림자가 조금씩 다가오면 올수록 불안을 더 크게 느끼는 존재이기도 하다. 물질이 죽음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자에게 귀의한다. 부자가 자신의 헛된 생각을 억제할 수 있는 계기는 종교가 만들어준다.

종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각 종교의 초기 경전들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면 어떤 종교이건 간에 절대자인 신은 부자를 배척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신은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절대자는 종교를 제대로 믿으면 그 결과로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암시적인 표현들을 더 많이 쓰고 있다. ‘나를 따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종교의 가르침은 정신적인 밝음이 물질의 환호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종교를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아주 신실하게 믿어왔던 부자들은 믿는 종교는 다를지라도 거의 비슷한 의견을 표명한다.

각 종교의 경전을 다시 읽어보자. 우리가 읽는 문장들 중에 직접적으로 ‘부자가 되지 말라’는 표현이 있는지를 찾아보자.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부자가 되지 말라는 충언은 종교 경전에는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부자에 대해 나쁘게 표현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베풀어라’는 공통된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라는 것이 종교의 기본적인 사명이다. ‘있는 것을 빈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이 무수하게 등장하는 말씀의 홍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는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각 종교의 부자관

출세간을 지향하는 불교와 부의 추구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진지한 수행자들에게는 무소유(無所有)와 소욕지족(小欲知足)이 요구되었고, 무아(無我)에 기초하여 무소유의 정신으로 자신의 소유물을 보시하는 것이 이상적인 수행자의 삶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불교는 재화를 즐기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불교는 재가자에게 소유의 즐거움(atthisukha), 사용의 즐거움(bhogasukha), 부채(負債) 없는 즐거움(ananasukha), 비방 없는 즐거움(anavajjasukha)이라는 네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 네 가지 즐거움은 분명히 재물과 관련된 것으로, 재물을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즐거움을 폄하하거나 멸시하지 아니하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의 축적은 반드시 정도(正道에 맞게 획득되고 축적되어야 하고, 획득된 재화는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베풀 수 있는 보시의 윤리를 강조하고, 이상적인 부자상도 제시했다.

기독교의 성경은 부자나 재물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하는데, 그 고찰 속에는 영적인 부자와 물질적인 부자를 나누지만, 나누지 않고 상호 연관 속에서 언급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 부자는 재물을 신앙정신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 문제는 결국 부자와 구원의 문제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재물의 바른 사용을 구원의 전제 조건이라고 말한다. 성경이 권고하는 중심내용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재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이지만, 재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자유자로 세운 사람이다. 자유란 죄에서부터의 자유만이 아닌 자기를 얽매고 묶는 물질로부터의 자유도 포함한다.

실천윤리에 가까운 유교는 부와 관련해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유교는 이재(利財) 혹은 부귀(富貴) 그 자체가 나쁘다고 보지는 않았다. 유교는 다만 이재나 부귀를 부당하게 혹은 과도하게 취하는 것을 비판할 따름이다. 따라서 도덕적 당위성에 입각하여 행위하는 군자는 오직 의(義)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이득(利得)을 보면 의(義)를 생각하라’고 하였다. 따라서 의리(義理)에 합당하는 이재와 부귀를 취하는 것은 당연히 옳다고 인정하고 있다. 인간 본성의 실현에 관심을 둔 유교는 재물을 인간 본성 실현의 수단으로 보고, 반대로 재물을 목적으로 간주하여 재물의 추구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였다.

이슬람교에서는 부의 주체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들의 모든 물질적 소유물은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은 단지 현세에서 그것을 한시적으로 소유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총, 즉 자신에게 위탁된 물질적 여유에 대해 감사드리고 이를 정의롭고 공정하게 사용함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과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이슬람교의 하디스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보다 500년 앞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슬람이 가난을 권장하고 부를 금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가난에 대해 인내하고 하나님의 길에서 선을 행하는 가난한 사람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부의 가치와 의미를 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부자보다 더 낫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신앙을 가진 부자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부를 이용하여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가 행한 자선의 의미는 보다 더 큰 것이다. 이슬람은 부의 분배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희사(Zakat)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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