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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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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0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12g | 133*200*20mm
ISBN13 9788954648523
ISBN10 8954648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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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이름, 학력, 직업, 가족 뿐만 아니라 성별까지 속인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거짓말투성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한 여자. 남편의 행세를 하다가 사라진 그를 소설가 '나'가 찾는다. 그러나 비밀없는 자가 과연 있을까? 틈을 헤집는 정한아 소설가의 싸늘한 신작. - 문학 MD 김유리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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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사랑을 갈구하듯 내 옷을 움켜쥐었다. 나는 아이의 손에서 내 옷자락을 빼내었고, 허공에서 버둥거리는 아이의 손을 텅 빈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이 짓뭉개진 진흙 같았고, 두통이 끊이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시작도 못한 소설이 새하얀 백지로 뭉치째 쌓여 있었다.--- p.101

아버지와 엄마. 나는 그들과 한집에서 이십 년간 함께 살았지만 두 사람의 진짜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 평범하게 걷고 있는 길 위의 풍경처럼 그들의 결혼생활도 그랬다.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 p.133

이유미는 그 요란스러운 청혼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윤노인의 재산이 탐이 났는지도 모르고, 혼자 살아가는 삶에 외로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를 정말로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이마저도 추측일 뿐이다. 결혼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개입된다. 사랑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자체가 결혼의 동인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결혼한다.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낯선 사람과 함께 평생 살아가는 일조차 감수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p.148

거실로 나왔을 때, 엄마는 새하얀 요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엄마는 남편과 집과 재산, 최신형 홈시어터를 잃어버렸고, 이제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초로의 여인이 되어 내 집 거실에 누워 있었다. 솔직히 엄마에게 이와 같은 영감을 받을 줄은 몰랐다. 내게 지적인 멘토, 스승은 언제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평생에 걸쳐 인간을 의심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구약의 세계관을 따랐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자기 삶을 위험하게 몰아가거나 경계의 도마 위에 올리지 않았다. 진정한 회의주의자는 엄마였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였다.--- p.187

우리는 좀더 노력해볼 수도 있었다. 시간을 두고 흩어진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볼 수도 있었다. 나중에는 모든 것이 인생의 과정이었다고 추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 모든 삶의 가능성을 단번에 잘라내고, 차라리 민둥산처럼 헐벗는 쪽을 택했다. 삶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것 말고는 처음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다시 시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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