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도인 할아버지 윤하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를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형무소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은 생체실험,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가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불확실하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초간 시집은 그의 사후 하숙집 친구로 함께 지낸 정병욱이 자필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동생 윤일주와 함께 다른 작품들을 모아서 그의 뜻대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