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1년 07월 25일 |
---|---|
쪽수, 무게, 크기 | 111쪽 | 281g | 158*207*20mm |
ISBN13 | 9788954615501 |
ISBN10 | 8954615503 |
발행일 | 2011년 07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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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11쪽 | 281g | 158*207*20mm |
ISBN13 | 9788954615501 |
ISBN10 | 8954615503 |
제1부 수박씨를 뱉을 땐 수박씨를 뱉을 땐 상어 잠수함과 고래 귤 사슴뿔 숙제 민들레 꽃씨 해바라기씨 달팽이 똘배나무 저녁별 밤에 우는 매미 칠점무당벌레 제2부 제비가 돌아왔다 제비가 돌아왔다 호박벌 굴뚝새 제비꽃 나팔꽃 어떡하지? 땅콩 저수지 배꼽 연못 염생이 할아버지 노루 꼬리 약속 양떼구름 제3부 느티나무에서 매미가 더 세게 우는 이유 느티나무에서 매미가 더 세게 우는 이유 거짓말 개 밥그릇 물그릇 아빠 안경 탱자나무 울타리 두꺼비형 벌 받는 시간 뭉게구름 민들레꽃 살구꽃 연꽃 나비 산비둘기 제4부 딸기야, 미안해 딸기야, 미안해 반달곰 시험 보는 날 팽나무가 쓰러졌다 꾀 많은 파리 도둑괭이 냥이가 집을 나갔어요 모내기 노루 달맞이꽃 연필 소나무에 내린 눈 포도 해설|이안 |
문득 시가 읽고 싶어졌다. 책장을 서성이며 이런 저런 시집을 뒤적거리며 고르고 있는데 내 마음에 착 와 감기는 시집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동시를 모아놓은 책장에 시선이 갔고 이 책을 꺼내들었다. 마치 서점처럼 그 자리에 서서 동시를 읽고, 그림이 귀엽다며 혼자 감탄 하면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동시를 읽으면 늘 유년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뭔가 아련했다. 아이의 눈으로(혹은 가정 하에) 사물을 보고 느끼는 시선이 좋았다. 어떻게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고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에 동시집을 읽고 흉내를 내면서 한 번 써봤다면 과연 싱그럽고 순수한 마음이 드러날지 너무 궁금해진다.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아줌마인 현재의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져서 그런가보다.
역시나 이 동시집을 읽는 동안 괜히 내가 순수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을 꾸역꾸역 끄집어내어 동시에 대입해 보면서 나는 이러지 못했음을 깨닫고도 전혀 괴롭지 않았다. 대리만족을 하게 되었고 어디선가 이런 마음들이 계속 솟아나고 있을 거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마음과 어른의 마음에서 피어난 시심이 독자들에게 많이 전달되길 바랐다.
그렇다고 이 시집에 쓰인 시들이 모두 기분 좋거나 아련한 추억만 떠올리게 만드는 건 아니다. 때 묻지 않은 혹은 있는 그대로 보거나 거기에 무조건적인 아이의 시선이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를 읽으면서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언뜻언뜻 어른의 시선으로 보이는 시들이 보였다. 그런 시가 나쁘다 좋다가 아닌, 어른이 동심의 마음으로 쓴 시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미국 메이저리그/야구 경기를 보는데/콧수염을 기른 감독이’라는 부분에서 어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아이라고 해서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초조해서 해바라기씨를 자꾸 까먹는 감독을 보면서 까맣게 익은 마당의 해바라기씨도 초조한가보다며 말하고 있는 시가 그랬다. 야구 경기를 보면서 마당의 해바라기씨가 초조한가보다고 감정이입을 한 적이 내게 있었을까? 갑자기 내 주변 사물들이 살아 움직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현실 도피를 위해 소설을 읽는다고 말하면서도 동시를 읽는 순간 잠시 나를 잊었다. 하지만 그런 잊음이 현실 도피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과거를 반추하게 되어 뭔가 좀 더 아련한 기분이다.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고 하면 너무 오글거릴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의 나를 마주할 수 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
수박씨를 뱉을 땐
수박을 먹고
수박씨를 뱉을 땐
침처럼 드럽게
퉤, 하고 뱉지 말자
수박을 먹고
수박씨를 뱉을 땐
달고
시원하게
풋, 하고 뱉자
2013년 5월 30일(목), 어린이책 작가들은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여름밤, 어린이를 노래하다’라는 이름으로 낭독극장을 열었다. 시인은 초대 손님으로 나와 자신의 동시를 낭독했다.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서시, 바로 「수박씨를 뱉을 땐」을 낭독했다. 배추머리 아저씨가 차렷 자세 진지한 표정으로 퉤, 풋, 하며 시를 낭독하자 웃음이 터졌다. 웃음을 주는 동시인 셈이다. 위와 같이 웃음이 바로 튀어나오는 시도 있지만 대부분은 슬며시 웃게 만드는 시들이다. 시인이 동시를 쓰고 있다는 조짐은 네 번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년)에서부터 나타났다. 그러고는 마침내 동시집을 엮기에 이르렀다. 동시집은 어른 시를 오래 쓴 시인답게 어린이만 독자로 상정하지 않은 듯하다. “서쪽 하늘에 / 저녁 일찍 / 별 하나 떴다 // 깜깜한 저녁이 / 어떻게 오나 보려고 / 집집마다 불이 /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저녁별」), 「노루꼬리약속」 같은 뛰어난 시편들은 어른이 더 공감할 시편들이다.
거짓말
우리 집 개, 돌이가
고삐를 풀고
집을 나갔다가
사흘 만에 돌아와 죽었다
누구한테 맞았나?
밖에서 나쁜 걸 먹었나?
아빠는 이제 개똥을 치우지 않아 좋다 하고
엄마는 시끄럽게 짖는 소리 듣지 않아 좋다 하고
나는 개밥 당번을 하지 않아 좋다
다 거짓말이다
어린이가 작품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작품들도 있다. 실상 동시 읽는 재미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시편들이다. 이를테면 “저수지가 얼마나 깊은가 보려고 / 저수지 한가운데 / 돌멩이를 던졌는데요 // 돌멩이가 날아가 / 물에 쏘옥, 들어간 곳에 / 저수지 배꼽이 생겼어요 // 점심때도 잊고 노는 / 우리들처럼 / 배가 고픈지 // 저수지 배꼽 아래 / 꼬르륵 소리도 들렸어요”(「저수지 배꼽」), “비 온 다음 날 / 엉금엉금 두꺼비가 기어 나와 / 마당 한가운데에서 나랑 딱 만났다 // 두꺼비와 나는 / 누가 먼저 길 비켜 주나 / 내기했다 // 그런데 두꺼비 얼굴을 찬찬히 보니 / 울퉁불퉁한 게 / 여드름 많은 / 우리 형처럼 생겼다 // 헤이, 형이라면 내가 지지 뭐 / 두꺼비 앞에서 / 내가 길을 비켜 주었다(「두꺼비형」), “폐교가 된 / 산골 학교에 / 아침 일찍 / 노루가 등교했다 // 텅 빈 운동장 / 울타리에 / 머루만 까맣게 익어 // 아무도 보지 않아도 / 그걸 따 먹을까 말까 / 망설이는 // 아무래도 / 노루는 / 혼자 5학년”(「노루」) 같은 시들이 그렇다.
삼 학년 때인가, 처음으로 샤프펜슬을 갖게 되었다. 머리를 누를 때마다 경쾌한 음을 내며 가느다란 심이 나오면 환호성이 절로 나오곤 했다. 공책과의 미끈한 마찰음에, 늘씬하게 써지는 글자에 익숙해질수록 연필과 멀어졌는데, 그 무렵에 만난 동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전과 자투리 공간에 실린 동시였다. 몽당연필 깎다가 손을 벤 아이는 홧김에 버렸으나 이내 다시 줍게 되었다는 짧은 내용이었다.
연필의 깎인 부분이 손때로 시커멓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볼썽사나워진 연필들은 긴장했다. 샤프펜슬의 등장으로 찬밥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 만난 동시는 함께 한 시간과 비례해서 형성된 애착과 마주하게 했다. 연필 쓸 일 없는 요즘도 내 책상 연필꽂이에 한 자루가 장승처럼 서 있는 까닭인지도.
참 오랜만에 동시집을 펼쳤다. 지금까지 내 손으로 구입한 세 번째 동시집은 송찬호 시인의 <저녁별>이다. 이 책을 펼치면서 문득 깨달았다. 어렸을 때 책을 펼치면 그림부터 찬찬히 감상했는데, 지금은 활자를 다 읽은 후 설렁설렁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을. 동시란 아이의 눈으로 봐야 감응할 수 있을 텐데, 안 되겠다. 보다 아이 같은 눈으로! 그렇게 해서 몇 편이 ‘시가 내게로 왔다.’
부끄럼 많은 민주는
늘 얼굴이 빨개서
우리는 딸기라 놀렸다
그런데 민주도 딸기를 먹다가
우리를 생각할까?
사이좋게 지내던 우리 얼굴 생각할까
딸기라 놀리던 우리 미운 얼굴 생각할까
- ‘딸기야, 미안해’ 부분
전학 와서 6개월 동안 사귀었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서울로 전학 가던 날이 어제인 듯 선명하게 건져진다. 자기네들은 아까워서 차마 사용할 수 없었던 향기 나는 수첩, 학용품이라기보다는 자그마한 인형에 가까운 것들로 채워진 상자를 받았다. 달력 뒷면으로 포장한 공책 몇 권도 받았다. 나랑 친하게 지내던 무리는 훌쩍이기까지. 학교 파하면 운동장에서 어슬렁거리다 빈 교실로 들어와 조용히 함께 놀던 친구들. 남자애 몇, 여자애 몇은 늘 그렇게 뭉쳐서 다툼 없이 지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농도 짙은 시간을 공유한 탓에 멤버 한 명의 부재와 무리에서 떨어지는 슬픔은 짐작보다 컸다. 그만큼 그들을 자주 생각나던 지난날들.
돌이가 죽고 나서
개 밥그릇과 물그릇
사이가 좋아졌다
돌이가 있을 땐
둘이 서로 부딪쳐 싸우느라
만날 깨지고 찌그러져 덜어져 있었는데
돌이가 없으니까
둘 다 빈 그릇 되어
개집 옆에 나란히 놓여 있다
사이좋게 나란히 엎어져 있다
- ‘개 밥그릇 물그릇’ 전문
헤어짐에 서툰 아이의 마음을 담은 또 다른 동시. 달그락거리며 힘차게 밥을 먹는 개의 모습이 그려진다. 바닥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먹다 놀라운 혀 놀림으로 물을 흡입하는 장면도. 요란한 식사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찌그러진 두 개의 빈 그릇으로 고요히 표현하고 있다. 사이가 좋아졌다는 말이 이토록 슬픈 뜻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파리도 학교에서
파리채 피하는
방법을 배웠나
- ‘꾀 많은 파리’ 부분
반면에 ‘꾀 많은 파리’처럼 시의 여운을 흥미롭게 처리하여 일상을 유쾌하게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작품도 많았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저녁별’은 아이의 무구한 눈을 통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경계 지을 수 없는 것들이,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 참 많다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찬란한 선물이다. 저녁별이 상징하는 것이다.
차분하게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슬픔의 정서와 나름대로 각자가 추구하는 즐거움을 찾아주는 시선이 요구되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저녁별 같은 책이다. 저녁별은 새벽별이 될 때까지 반짝일 것이다.
서쪽 하늘에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보려고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
- ‘저녁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