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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

시작시인선-024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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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210g | 128*188*20mm
ISBN13 9788960213395
ISBN10 89602133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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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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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

전깃줄을 타고 스물스물 오는 저녁이 있다 가본 적 없는 어느 골짜기로부터 혹은 아득한 어떤 상상의 동네로부터 저녁은 조곤조곤 당신의 목소리를 넘어 가로등이 켜지듯 마침내 둥글어지는 저녁은

괜찮다고 말해도 너는 자꾸만 안부를 물어오고 아무렇지 않으려고 아무 골목이나 걷기도 하는 시간, 정상입니다, 당신 건강은 이상이 없어요, 그렇지만 어디든 아픈 시간

이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니 누군가 말했지만 당신이에요, 당신이에요, 자꾸만 확인하고 싶던 때 절망하지 않으려면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들어가 양말을 벗고 바지를 반쯤만 걷어 올리고 찬물에 발을 씻어야지

일기를 쓰려고 공책을 펼치면 또 다른 어둠이 와서 첨벙거렸다 간혹 당신의 내일이 나의 여백 속으로 스밀 수도 있을까 궁금했지만 내 질문은 쓰러진 전신주의 전깃줄, 전깃줄을 밟고 스물스물 오는 저녁이 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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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라라 시인의 첫 시집은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기다림은 끝없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기다림이다. 기약할 수 없는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부르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떠나고 있다. 비가 되어, 물이 되어, 때늦은 목단과 노새와 석류가 되어, 악취와 개가 되어 “세 시 삼 분을 가리키”(「바깥에서」)는, “아픔이라고는 없는 배경” “슬픔이라는 단어는 배우지도 못한 종아리들”(「가족사진」)이 오종종종 서 있는 그곳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은 “나오는 길이 없는 숲”(「미간」)이고, “길을 찾는 사이 또 다른 길을 잃어버리”(「시간과 길의 벤다이어그램)는 곳이어서 끝내 “떠돌 수밖에 없는”(「고통a」) 고통의 장소이다.
최라라 시인은 그곳을 “거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곳은 그가 끝끝내 의미를 짚어내고자 하는 시의 지점이기도 하다. 길을 나섰던 그가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오고 있다. 스물스물 저녁이 오고 있다. 이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며 누군가 말하지만 그는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들어가 양말을 벗고 바지를 반쯤만 걷어 올리고 찬물에 발을 씻”는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웃”는다. 이러한 시인의 모습에서 더할 수 없는 뭉클함과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견강堅强한 시인의 깊은 시적 시선을 엿보게 된다.
-고영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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