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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뮤지컬 미니 에디션 1월호
작은 출판사 응원 프로젝트 <중쇄를 찍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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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7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244g | 128*188*20mm
ISBN13 9788932918686
ISBN10 893291868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동화 같은 분위기에서 출발하여 중반에는 블랙 코미디로 마지막에는 으스스한 괴담이 되는, 그러나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으로 끝을 맺는 독특한 소설,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시』의 새로운 판본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계속 말을 거는 주인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손님, 이 두 사람이 펼치는 숨 막히는 심리를 다룬 이 소설은 출간 이후 39쇄를 거듭하며 현재에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멜리 노통브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성공을 거두며 세계적으로 1천6백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다. 『느빌 백작의 범죄』(2015), 『추남, 미녀Riquet a la houppe』(2016), 『자기 마음을 때려라Frappe-toi le coeur』(2017) 해마다 소설을 출간하고 있다.

저자 소개 (2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어느 날 오후 4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노부부의 일상은 악몽으로 변한다


이야기는 은퇴한 노부부가 꿈에 그리던 자신들만의 집을 갖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제 그들은 호젓한 시골, 아담한 집에서 혼잡한 세상을 잊고 행복한 꿈에 잠기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위에 단 하나뿐인 이웃이 찾아온다. 그들은 그가 의사 출신이라는 사실에 고마워하며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러나 그 이웃은 매일 같은 시각에 찾아와 두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 반가운 이웃은 조금씩 귀찮은 불청객이 되고 점점 그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자신들만의 집에서 누리던 평화와 안식을 깨뜨리는 존재가 되며 급기야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어느 날 그를 향해 다시는 방문하지 말아 달라는 경고를 하게 되지만 그날 이후 주인공은 이유를 알지 못할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평소처럼 불면의 밤에 주인공은 우연히 이웃집 남자가 자살하려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를 구해 낸다. 그러나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해 준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그를 아무도 모르게 죽인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그의 불면증을 낫게 하진 않았고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심연과 같은 질문의 늪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사회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 인생의 뒤안길에 서지만, 이웃집 남자의 출현으로 그의 내면에 존재하던 확신들이 모두 흔들리게 된다. 인생 자체에 대해, 인간 자체에 대한 본연적인 질문을 하게 되고 자신이 지켜왔던 다른 사람에 대한 예절이 얼마나 덧없는 환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결국 소설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시작되는 것이다. 계속되는 불멸의 밤과 함께.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귀찮은 이웃,
그의 고집스러운 침묵에 서서히 미쳐 가는 주인


우리에게 이웃은 어떤 존재인가? 현대인들에게 이웃이란 타인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웃은 매일같이 주인공의 집에 같은 시각에 찾아와 말없이 두 시간 동안을 앉아 있다 간다. 그는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이웃이 하는 말이라곤 묻는 말에 [예, 아니오]로 대답하는 것이며 그 이상의 관계를 맺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는 하지 않는다.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듯한 침묵만을 고수할 뿐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침묵하는 사람에게 [말걸기]에 서서히 지쳐가면서 서서히 자기 자신 속으로 침몰해 간다. 결국 그에게는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물음표만 남게 되는 것이다. 타자를 통한 자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는 고전적인 주제가 특이한 설정, 간결한 대화, 흥미진진한 전개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진정한 인간관계, 침묵의 문제 등 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소설의 스토리는 단순하며 전반적인 어조나 문체 또한 가볍고 경쾌하다. 사회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목숨만을 유지하고 있을 때 이것을 죽은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살해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이러한 어둡고 심각한 상황에 대한 묘사 또한 유머러스하게 표현되고 있다. 가볍고 밝은 소설의 밑바닥에 사변적이고 심오한 철학이 도도하게 흐르며, 이 소설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예사롭지 않은 소설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회원리뷰 (4건) 리뷰 총점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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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오후 네시의 침입자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하* | 2021.01.08 | 추천10 | 댓글2 리뷰제목
소설의 원제인 Les Catilinaires 는 프랑스어로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 / In Catilinam]편들을 가리키며 보통 명사화하여 [논박], [야유]등을 뜻하기도 한다.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를 이름으로만 듣다가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접했다.  일전에 읽은 [눈표범]의 작가 실뱅 떼송의 글을 읽어가면서 나랑 비슷한 연배라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 아멜리 노통브 역시 비;
리뷰제목

소설의 원제인 Les Catilinaires 는 프랑스어로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 / In Catilinam]편들을 가리키며 보통 명사화하여 [논박], [야유]등을 뜻하기도 한다.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를 이름으로만 듣다가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접했다.  일전에 읽은 [눈표범]의 작가 실뱅 떼송의 글을 읽어가면서 나랑 비슷한 연배라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 아멜리 노통브 역시 비슷한 연배이다.  공간은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 나는 이 멋진 사람들의 호흡과 생각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차츰 노통브의 소설들을 다 읽어갈 생각이다. 역자인 김남주 님의 매끄러운 번역은 또 하나의 반전이다. 번역은 반역이라고도 하고 문학의 손길이 아닌 기술적인 장인의 역할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그 말은 모순이고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다. 김남주님의 번역은 물흐르듯 매끄러워서 글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의 에세이 [나의 프랑스식 서재]에서 보았듯이 문학적인 충실성이야말로 역자가 지닌 기품있는 소양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의 첫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 첫문장의 의미는 맨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을 미리 말해둔다. 나는 이 말이 너무도 적격하고 명확하며 누구나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철학적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동화로 시작해서  스릴러로 진행되다가  블랙코미디로 착각할 수 있는 지점을 통과하게 되면 바로 위 첫문장으로 귀결된다. 길들여진 자아와  본능적인 자아가 자리 바꿈을 하며 타자를 대할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누구인지를 실질적으로 대면하게 된다는 점이 두렵지만 사실일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밀과 줄리에뜨는 50여년간 함께 살아온 부부다.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고 각자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아이도 갖질 않았다. 에밀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교사생활을 은퇴하고 사랑하는 부인과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목가적이면서 조용한 전원생활을 꿈꾸며 그들의 생각에 맞는 <우리 집>을 찾는데 성공한다. 노후에 조용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게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럴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자부하는 바인데 이 소설의 기본 전제는 오후 네시만 되면 문을 두드려대는 이웃남자의 침입으로 혼란을 겪는다. 베르나르댕이라는 거대한 몸집의 이 남자는 네시에 쳐들어와서 안락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여섯시에 그들의 집을 떠난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습관처럼... 문제는 에밀의 난해한 태도에 있다.  남의 집에 약속도 없이 들어와 거만하게 커피를 마시고 아무 말도 없이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하는 베르나르댕에게 뭐라도 말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에밀의 본능이 은근슬쩍 드러나게 되고 이런 생활이 반복지속되다보니 부인 줄리에뜨와도 이전과는 다르게 뭔가 모를 결속이 깨지게 된다.  고요한 연못에 돌맹이를 던졌더니 그곳의 주인인 개구리 두마리의 공간이 흐뜨러지며 바닥에 쌓인 온갖 흙더미들이 뿌옇게 올라오는 이미지를 상상해보면 이 소설의 줄거리가 대충 짐작이 갈 것 같다. 에밀의 사랑하는 제자인 클레르가 방문을 하는데  이제껏 보아왔던 그들에게 실망하며 돌아가는 장면도 작가가 던지는 냉혹한 진실이다.  

클레르 / Claire..  명확한 이란 뜻을 지닌 이름의 소유자는 실로 명료하고 확실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에 비해 평생동안 죽은 언어를 가르친 에밀의 실존은 생각속의 생각을 쌓아두고 추상적인 논박과 뒷담화를 늘어놓는 데 시간을 보낸다. 이웃남자 베르나르댕의 권태와 공허를 비난하지만 에밀 역시도 권태로운 일상에 급작스러운 침입이, 그런 무질서와 혼란을 즐기는 듯 보인다. 그러니까 문을 열어주었던 건 아닐 지... 베르나르댕의 부인은 살덩어리로 표현된다. 요즘 뜨는 넷프릭스의 [스위트홈]에 등장하는 욕망덩어리 괴물을 표현한 느낌이랄까. 어쩌면 이웃의 덩어리 부부는 에밀과 줄리에뜨 몸 속에서 떨어져나온 엽기적인 덩어리가 아닐까 하는 좀비스러운 상상도 해보았다.

사람은 자기 안에 정체되어 있는 커다란 덩어리를 갖고 있지. 삶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잃고 체념하는 순간 그게 밖으로 나오는 거야.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희생물일 뿐이야.

 

바른 선을 위해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에밀의 사고가 결국은 베르나르댕을 살해하게 되고 에밀은 다시 동화적인 현실로 돌아온다. 줄리에뜨에게도 숨겨진 에밀의 살인은 결국 묵인되고 일년이 지난 이사 온 바로 다음의 해로 넘어간다.

 

오늘은 눈이 내린다. 1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그날처럼.  나는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본다.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라고 셰익스피어는 묻고 있다. 그 이상 위대한 질문이 어디 있으랴. 나의 흰색은 녹아 버렸고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두 달 전 여기 앉아 있었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런 삶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쳐 온 일개 교사라는 것을. 지금 나는 눈을 바라본다. 눈 역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는 눈이 규정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에밀은 알고 있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 살아가는 나날동안 인간은 자신을 잘 알고 간다. 그걸 애써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무서운 진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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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타인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도 괴롭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e******y | 2020.06.20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평범하게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 결혼하고 일한 후, 은퇴를 맞아 꿈에 그리던 전원으로 찾아든 65세 동갑내기 부부 에밀과 쥘리에트의 삶은 위태하리만큼 순조롭게 이어진다. 오로지 자연에 둘러싸여 매일이 만족스러운 이들은 부족함도 없고 걱정도 없다. 어느 날 4시, 누군가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기 전까지.  유유자적해야 할 은퇴기 이후의 삶에 광포가 몰아닥치며 섬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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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 결혼하고 일한 후, 은퇴를 맞아 꿈에 그리던 전원으로 찾아든 65세 동갑내기 부부 에밀과 쥘리에트의 삶은 위태하리만큼 순조롭게 이어진다. 오로지 자연에 둘러싸여 매일이 만족스러운 이들은 부족함도 없고 걱정도 없다. 어느 날 4시, 누군가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기 전까지.

 

 

유유자적해야 할 은퇴기 이후의 삶에 광포가 몰아닥치며 섬뜩한 괴기 소설로 읽히는가 하면 너무 몰염치하고 상식 밖이라 블랙코미디로 급변하기도 한다. 하루의 세밀한 일기인가 싶다가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엄중한 성찰기가 되기도 한다. 냇물 소리가 들리고 형형색색의 꽃이 피며 향기를 휘날리고 고즈넉하게 눈이 내려앉기도 하는 고요한 시골에 주요 등장인물은 단 네 명에 불과하지만, 추리소설을 읽어내려가는듯한 서스펜스에 극도로 몰입된다.

 

 

그만큼 소설이 현실로 환원되고 그들의 이야기가 내 곁의 이야기 또는 바로 나 자신의 그럴싸한 가능성으로 내비쳐진다. 타인과 나의 관계 그리고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영원히 나를 쫓아다니는 그림자이면서 풀지 못해 낑낑거려야 할 숙제이다. 올바른 해법과 정답이라고는 좀체 존재하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타인의 습격으로 삶이 휘청대는가하면 자신의 발견으로 삶이 녹아내린다.

 

 

'비계덩어리'로 표현될만한 거구의 이웃집 -단 하나뿐인 이웃집-남자 베르나르댕이 침입하면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날 으례껏 인사하러 온 줄 알았지만, 이웃이라고 소개한 뒤 아무런 말도 않고 6시가 될 때까지 돌아가지도 않는다. 예의로 건네는 질문마다 '그렇소'아니면'아니요'로 답하거나 대화를 이어보려는 모든 시도에 불쾌함을 표한다. 그러면서 매일 4시에 마치 꼭 치러야 할 일과이듯 스스럼없이 찾아와서는 무례함과 침묵 이외의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평생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쳐오며 '예의'에 젖어온 터라 주인공 에밀은 이 무례한 방문자를 막지 못한다. 당황-불편함-분노-맞서기 등을 시도하며 계속 이 침입자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4시 이전에 산책을 나가 집을 비워보기도 했다. 문을 열어주지 않자 문을 부술 것 같은 난동을 부려 이를 참지 못하여 결국 문을 열어 주고야 만다. 자신의 애제자 클로르가 찾아오면서 이 무뢰한에 대한 에밀 자신의 소극적 처세에 대한 분노가 극에 이르렀고, 드디어 문을 열어젖힌 뒤 욕을 퍼부어 쫓아버린다. 이렇게 이웃 남자의 그늘에 편입되면서 전원생활에서 누리던 행복은 점차 위협을 받는다. 4시가 다가올 때의 고통이 하루의 다른 시간에도- 특히 불면증으로 밤잠을 설치는 에밀의 경우 거의 하루 종일-스며들며 부부의 대화에는 논쟁이 오가기도 하고 의견 충돌로 대립각이 서기도 한다. 베르나르댕의 부인 베르다네트(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구이면서 먹는 것과 자는 것 이외의 다른 인간적 존재로서의 면면에서 배제된 인물)가 등장하면서 에밀-쥘리에트 부부는 베르다네트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연민을 갖게 되어 베르나르댕을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무시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가치에 도저히 맞지 않는 타인의 세력을 떨쳐버려야 함을 알면서도 더욱 깊이 휘말려드는 모순적 상황은 베르나르댕의 자살 사건으로 극에 치닫는다. 자살시도 상황에서 베르나르댕을 구해준 것은 바로 에밀이었고, 베르나르댕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며칠 동안 부부는 베르다네트를 극진히 돌본다. 이 불쌍한 '살덩어리'의 여인에 대한 동정은 정성과 관심으로 바뀌고, 이를 차단하려는 베르나르댕을 어느 모로 보나 자살하는 것이 합당한 인물로 여기게 된다. 에밀은 아무도 모르게 배르나르댕에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죽음을 갖다 주고, 부부는 베르다네트를 '둘도 없는 친구'로 삼아 자발적으로 돌본다.

 

 

이야기의 변곡점마다 나의 평범한 예견은 빗나간다. '설마 이런 종류의 인간이 있을라고? 무슨 딱한 사정이 있겠지', 이 역시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의무로 학습 받아온 결과이다. 자신의 불행과 분노를 타인에게 엎어 씌우려는 어처구니없는 무례함은 인간으로서의 품격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누구든 자신을 지킬 권리를 타고났기 때문에 자신의 안녕과 행복 추구를 가로막는 불순한 세력에 대해서 항거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라고 믿어왔다. 역시 기본적인 존재 요건 중 하나로서, 사람은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안다,라고 당연시해왔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 책의 상황과 전개 속에서 나의 이 모든 살면서 당연하다고 습득해 온 명제들이 하나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팔짱을 끼고 낙관적인듯 초월한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타인과 자신을 어디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쁜 것을 알았을 때 떠밀어내는 반응 (에밀이 베르나르댕을 문 앞에서 밀쳐내버린 것)과 그 악영향의 기운에 저도 모르게 포섭되어 관심을 가지게 되는 반응 (에밀이 베르나르댕의 집으로 자발적으로 찾아드는 것)이 공존한다.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외부세력에 대해 처음에는 '인간 된 예의'상 이해와 공감을 시도하며 자신이 피해를 당하면서도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을 정당화하려 한다. 적대적인 타인에게서 벗어난다는 것은 때로는 중력에서 탈피하는 것만큼 불가능할 수도 있는데, 이는 타인의 옭아메어오는 영향력에 비해 자신을 방어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좀 더 늦게 발동되기 때문이다. 온갖 고민 끝에 이 악의적인 타인(베르나르댕)을 배척한 후에도 자신의 인격에 결함이 발견된 양 당황스러워하다가 이 타인에 의해 억압당하는 또 다른 인물 ( 먹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당하는 베르다네트)을 발견하는 즉시, 자신의 그 타인에 대한 증오를 합당히 여기며 함께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 간의 연합전선을 형성한다. 그러면 그 '악한'은 더욱 악한 인간으로 그려지며 공동의 적이자 반드시 척결되어야 할 '악'으로 그려진다(에밀 -쥘리에트 부부는 베르나르댕을 베르다네트의 인생을 파괴하는 장본인으로 구정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베르다네트에게 자유를 안겨주려는 일에 뛰어든다). 급기야는 자신들 같은 '피해자'의 평온을 망가뜨리는 그 대상에 대해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라고 결정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게 그 악한에게도 더 낫다고 믿기에 이른다. 혹시 악한 스스로 이를 감행하지 못할까 봐 자기가 직접 나서 도와주는 적극성을 발휘한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의 깊은 곳에 숨어있던 지킬과 하이드 같은 이분법적 양상을 발견하며 스스로 놀라워하면서 혐오스러워하게 된다. 그토록 이해할 수 없었고 비인간적이고 파렴치하고 죽어 마땅한 적대자보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잘 모르겠다. 타인과의 관계는 세상 끝까지 나를 쫓아올 모양이다. 정나미 툭 떨어지는 '그들'과의 관계를 내 쪽에서 단칼에 끊어버렸을 때 쾌감을 느꼈지만, 또 다른 상황에서 또 다른 관계들이 들어서며 또 괴로워지므로 차라리 무인도로 향하는 게 나을까? 이 책으로 보다면 답은 '아니다'이다. 타인이 없는 곳에 바로 '나 자신'이 떡하니 들어서기 때문이다. 못마땅한 타인(들)과 엮이지는 게 괴로운 이유 중 하나는 '나 자신에 대한 뜻하지 않은 발견'을 하게 되기 때문, 그리고 이 발견은 나의 숨어 있던 모습이라서 대체적으로 당황스럽고 불편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타인에게서 증오하고 넌더리 냈던 요소들이 내 안에도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기라도 하면, 타인에 대한 혐오가 갑자기 자신을 향한다. 그릇된 것임을 아는데도 재빨리 나서서 수습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들이대며 소심한 쪽으로 기울게 된다. 나를 괴롭히는 그 몰염치한 작자보다 내가 윤리적으로 인격적으로 한 수 위라고 확신하며 나의 인내를 강요한다. 내가 허물어지는 동안, 지금껏 나와 동질 선상에서 일체감을 느껴왔던 대상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게 된다(에밀은 쥘리에트를 처음 만났던 유치원 때부터 가장 사랑하는 존재라 여겨왔는데, 베르나르댕을 둘러싼 여러 일들 앞에서 생전 처음으로 갈등하며 큰 소리로 다투기까지 한다). 세상에서 나는 혼자라는 자괴감에 빠진다. 반면, 혼자서는 쭈볏거리고 대들지 못했다가 공동의 피해자 전선이 결성되자 갑자기 과격해진다. 그 악한을 향해 나만의 주장과 상상을 극도로 밀어 부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퇴색한다. 나의 권리라고 당연시했던 행복과 평온은 되돌이킬 수 없이 변색해 버린다. 더욱 얄궂은 것은 피해자였던 내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면서 내 불행의 한가운데에 나타나게 된다. 부정적으로 판단되는 타인에 대해 선을 긋고 그 관계를 끊으려고 끙끙대는 이유는 어쩌면 나 자신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금까지 '나'라고 알고 있었던 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과 함께 다시금 잘 살아가는 방법을 새롭게 모색해야 하는 것은 비할 데 없이 거추장스럽고 피곤한 일 아니겠는가. 가장 무서운 사실은 '자기도 모르는 자기 자신이 있다'라는 것 아닐까.

 

 

이 책의 날카롭게 파고드는 문장들을 곱씹어 본다. 주인공 부부처럼 65세의 은퇴기에 이르러 지금까지 머물렀던 소란한 세상과 결별한 것도 아니고, 끔찍하게 지겹고 열받게 하는 악한이 내 주위 가까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 타인을 판단하며 나 자신을 못살게 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다른 사람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가끔씩 고민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이야기는 그저 '과장'은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가 갖는 위험은 물론이고,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골치 아픈 구석이 더 많다. 나의 속 모습을 어디까지 알고 있어야 할까? 타인을 구석구석들이 알고 싶지 않은 것 못지않게 나 자신에 대해 지금껏 알고 있는 것 이상은 알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타인을 미워하며 욕하는 것은 때로는 쾌감이 되고 나를 정당화시키는 방편이 되지기도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게 되고 역겨워지기라도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인생 전체가 실패'라고 절규라도 하게 된다면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ps> 이 책의 원제는 『 Les Catilinaires 』이다. 어느 날 오후 4시를 기점으로 주인공 에밀의 삶이 달라졌기 때문에 우리말 제목을 『오후 네 시』로 단것은 적절하다. 프랑스어로 'catilinaire'는 '적의 어린 연설, 통쾌한 야유'라는 뜻이다. 이 책은 이를 복수형 Les Catilinaires으로 쓰고 있는데, 이 책에 타인에 대한 적의에 찬 연설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통쾌한 야유가 가득하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타인에 대해 적의(야유)를 갖는 동시에 자신에 대해서도 적의(야유)를 갖는다는 사실을 돌이켜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복수형이 유독 잘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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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s****s | 2018.07.1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국내에 99년인가 2000년도에 출간되어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연극으로도 재탄생한 노통브의 걸작중 하나인 <오후 네시> 새 표지로 다시 재 단장하여 독자곁으로 다시 다가왔다고 들었는데 표지를 보니 너무나 깔끔하게 긴장감 넘치는 흰색 배경에 지켜보는 한 눈이 너무나 삼뜩하기만 합니다.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유명한 그녀의 작품은 무엇보다 사람의 심리묘사에 대한;
리뷰제목

국내에 99년인가 2000년도에 출간되어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연극으로도 재탄생한 노통브의 걸작중 하나인 <오후 네시> 새 표지로 다시 재 단장하여 독자곁으로 다시 다가왔다고 들었는데 표지를 보니 너무나 깔끔하게 긴장감 넘치는 흰색 배경에 지켜보는 한 눈이 너무나 삼뜩하기만 합니다.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유명한 그녀의 작품은 무엇보다 사람의 심리묘사에 대한 감정의 표현을 문체로 너무도 훌륭히 표현해 내는 것이 최고의 장점인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죽이기>를 통해서 만나고 나서 그 유명한 <적의 화장법> 그리고 <사랑의 파괴>를 읽었습니다. 그녀가 말해주는 이야기는 항상 예측을 뛰어넘는 놀라움이 있고, 다른 어떤 작가와도 다른 독특함이 느껴집니다. 이 <오후 네시>작품도 분명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전집 수준으로도 국내에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천재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이번 기회에 노통브의 매력과 그녀의 작품의 세계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네시만 되면 어김없이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베르나르댕이 노부부 집에 나타납니다. 오후 네시 마다 찾아오는 그러한 베르나르댕은 주인이 아무리 말을 걸어도 '네', '아니요'라는 식의 단답형만 하거나 때론 그마저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 1분 1초도 늦은 적이 없는  베르나르댕이었습니다.주인공 부부는 이 사람을 '고문자'라고 칭하며 괴로움에 미칠지경입니다. 이러한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한 이러한 이상한 행동들로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과연 어떤 점을 나타내려고 한 것일까라면서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슨 의도로 베르나르댕의 이런 행동을 나타낸것인지 생각한 끝에 현대인의 관계가 아닐까라고 결론을 짓었습니다. 피상적인 관계가 많은 현대의 사회에서 관계를 아예 맺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피상적인 관계를 넘어선 유대감을 가진 관계로 섣불리 나아가려 하지 않는사람들을 나타내려고 한 것은 아닐까라고 작가의 의중을 생각해 봅니다. 그만큼 요새 삭막한 분위기의 현대 사회를 비꼬며 해석하는 작가의 의중이 담겨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다가 부부는 매일 그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에 빠집니다. 점점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쩌지 못하고 자제력을 잃어가며 시간과의 싸움을 하는 이 노부부는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초대도 안한 이웃이 매일 똑같은 시간에 당연하다는 듯이 찾아와서는 그것도 두시간 씩이나 내 거실, 안락의자를 점거하고 유유자작 커피나 훌쩍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난 더 심하면 심했지 아마 미칠지경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이러함에 있어서 분명히 조용히 잘 지내던 이 노노부에게 이러한 베르나르댕의 행동은 스트레스를 주기에 충분함에 동의 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목숨을 끊으려고 하고, 목숨을 구해주고도 후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노부부는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후반부에 가면 나오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해방이라는 것을 연상시키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이 부분까지 가게 되면 곧 끝나겠구나 싶어집니다.  
이 도서 <오후 네시>를 다 읽고 났더니 역시 아멜리 노통브는 참 독특한 사고를 가진 작가 라는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작품에서도 단순한 플랫을 이용해 서서히 중압감에 몰아넣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는데, 역시나 이 책에서도 그녀의 이런 술수를 알면서도 나는 번번히 울화통이 치미고 격분하며, 결코 그녀의 팬이 아닌데도 그녀 책을 다 꾸준히 읽게 되었습니다. 그 만큼 참으로 독창력을 소유한 작가임이 분명합니다. 많이 길지 않고 짧은 소설이지만, 어떤 전개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속에서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결말에 이르게 하는 중독성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추리소설이나 빠른 전개를 원하시고 흡입력 있는 것을 찾는 분이시라면 추천하는 도서 <오후 네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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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5건)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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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놓을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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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 | 2021.03.20
구매 평점4점
프랑스 작품은 대체로 좀 이해하기가 어려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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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6 | 2021.01.25
구매 평점5점
아멜리 노통브 처음으로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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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 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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