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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물

[ 양장 ] 배수아 컬렉션이동
리뷰 총점8.7 리뷰 15건 | 판매지수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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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7년 11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44g | 120*188*30mm
ISBN13 9788954648929
ISBN10 895464892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상품 이미지를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원본 이미지
배수아의 소설은 가난과 광기의 세계로 추락해 그 파멸의 힘으로
영원한 꿈이 된다. 잃어버린, 사랑했던 것들이 그 꿈 속에서 다시 떠오른다.
_강지희(문학평론가)

“이 비밀스러운 결속이 나는 기쁘다.”
―한국문학의 가장 낯선 존재,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배수아 신작 소설


한국문학에서 ‘배수아’라는 이름은 이국(異國)의 뉘앙스를 품고 있다. 이전 세대나 동시대 한국문학의 영향 혹은 수혜를 받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 그의 작품들, 서사보다는 이미지, 분위기, 그리고 목소리에 가까운 편편은 종종 ‘이것을 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게도 하였다. 그러나 이 낯선 존재가 펼쳐 보이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는, 지난 24년, 열세 권의 장편과 여덟 권의 소설집을 통해 꾸준히 마니아층을 형성해왔다. 그 세계에 번역가라는 새로운 푯말 하나를 더 꽂으며 배수아는 자신의 이름만큼 이국적인 새 이름들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페르난두 페소아, 로베르트 발저, W. G. 제발트, 막스 피카르트, 사데크 헤디야트, 토마스 베른하르트… “소설가보다는 번역가 아이덴티티로서 『악스트』에 참여하게 된 것 같다”는 그의 말에 따르면, 격월간지 『악스트』의 편집위원으로서 해외문학을 담당하게 된 경위 역시 비슷한 맥락임을 알 수 있다.

번역가 배수아를 통해 해외문학의 지평이 넓어진 것이 반가운 만큼 작가 배수아의 소설을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2010년 『올빼미의 없음』(창비) 이후 7년 만의 소설집 『뱀과 물』을 펴낸다. 2016년 경기문화재단 지원사업의 결과로 출간된 소설집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테오리아)이 있으나, 단 두 편의 단편만으로는 긴 기다림이 해소되기엔 아쉬움이 컸다.

* 표지에 쓰인 체코 사진작가 프란티셰크 드르티콜의 작품은 작가가 직접 고른 것으로, 배수아 작가는 “사진을 보는 순간 불안, 불균형, 불길, 부조화, 부조리, 어둠, 카오스, 암시, 예언, 몸, 유령 그리고 무의식과 에로티즘 등의 어휘가 동시에 소용돌이쳤다”면서 “사진은 책에 실린 글의 일부이자 글을 완성하는 이미지”라고 말했다.(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
얼이에 대해서
1979
노인 울라(Noin Ula)에서
도둑 자매
뱀과 물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

해설 | 강지희(문학평론가)_영원한 샤먼의 노래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미 일어났다고 알려진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보다 신비롭다. 그것은 동시에 두 세계를 살기 때문이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비순차적인 시간을 몽상하는 어떤 자의식이 있고, 우리는 그것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 「뱀과 물」중에서

“네 안에는 아주 늙은 네가 살고 있을지도 몰라. 늙은 그녀가 너무 이른 시기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라. 만약 그녀가 미친 닭처럼 순식간에 훨훨 날아가버리면 너는 평생 그녀를 쫓아다녀야 하는 거야. 아니면 그녀가 너를 쫓아다니겠지. 운이 좋아서 그런 불행만 일어나지 않으면, 넌 훌륭한 우체국 직원이 될 거다.”
--- 「뱀과 물」중에서

어린 시절도 일생 동안 지속될 너울거림을 불현듯 멈추었다. 어린 시절. 그것은 막 덤벼들기 직전의 야수와 같았다고 여교사는 생각했다. 모든 비명이 터지기 직전, 입들은 가장 적막했다. 시간과 공기는 맑은 술처럼 여교사의 갈비뼈 사이에 고여 있었다. 염세적인 사람은 일생에 걸친 일기를 쓴다. 그가 어린 시절에 대해서 쓰고 있는 동안은 어린 시절을 잊는다. 갖지 않는다. 사라진다.
--- 「뱀과 물」중에서

키 큰 소녀의 얼굴은 수면에 비친 키 큰 소녀 자신의 그림자와 같아서, 오랫동안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문득 아주 또렷한 모종의 의지와 표정이 떠오르지만, 그 찰나가 지나고 나면, 또다시 가벼운 바람이 불고, 또다시 아이가 울고, 또다시 버스가 지나가며, 또다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그리하여 점차 빠른 속도로 흐릿하게 와해되는 듯하다고, 교사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소녀의 얼굴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선뿐 아니라 어떤 물리적인 행위가 필요할 것만 같았다. 예를 들자면 뺨을 새끼손가락 끝으로 짧게 쓸어보는 것 같은.
--- 「1979」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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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나를 상상하는 놀이였다.”
―어린 시절이라는 악몽에 대하여


아홉번째 소설집에서 배수아는 어린 시절(소녀 시절)로 독자를 이끈다. 작품 속 어린 시절은 ‘비밀스러운 결속’(38쪽)과 환상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여리고 순수한 것과는 동떨어진 일들. 부모의 부재, 그들을 찾아 떠나는 길, 무거운 가방, 눈이 내리거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들. 일곱 살이 되면 더는 남자아이 행세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소중한 존재를 지킬 힘이 여전히 나에게는 없다. 그리고 죽음에 눈을 뜬다. 그러므로 무구한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뒤 혼탁해지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것. 아련한 마음으로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는 것은 망상에 다름없다는 것. 그 망상 속 어린아이는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일 뿐이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
_94쪽, 「1979」에서

그러므로 작가가 말하는 어린 시절이란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어린 시절-성장-성년’의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내가 자라서 지금의 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린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존재가 아니며, 그사이에 순차적 단계는 없다. 작품집 첫머리에 자리한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니는 어떤 꿈을 꾸었나」(이하 「눈 속에서」)의 ‘나’가 머물던 유원지. 그 한가운데 자리한 것은 거대한 대관람차이다. “지구 자체, 혹은 그 이상으로 커다란 어떤 것”이자 “올라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는 그 대관람차”가 “사실은 대관람차가 아니라, 시간의 실체를 실어나르는 바늘 없는 시계”라는 것은 그러므로 중요한 지표이다. 배수아의 시계에는 바늘이 없으며, 독자는 1분 1초라는 질서의 세계가 아닌 ‘시간의 실체’를 비틀어 펼친 몽상적 세계의 완전히 새로운 문법으로 작품에 미끄러져 들어갈 수밖에 없다.

현재의 나는 정말 존재하는 실체인가? 어린 시절 나의 상상 속 인물은 아닌가? 미래가 이미 도래하지 않은 것이 확실한가? 삶에서 겪은 모든 일들이 정말 일어났던 일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만일 그것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모든 기억이 이토록 생생할 리가 없다”(188쪽)는 믿음은 어떤가.

우리는 배고픔도, 갈증도, 더위도 잊었다. 바다는 모든 것의 경계 너머에 있는 먼 세상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파도의 흰 거품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처형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는 어느덧 늙고, 네이팜탄에 불타고, 유방암을 앓고, 초록 개구리에게 먹혔으며, 이 모두를 원한이나 공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 누구도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던 태양이 어느덧 살짝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_168쪽, 「도둑 자매」에서

또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편편에 ‘쌍’으로 등장하는 소녀들이다. 연작처럼 읽히는 「눈 속에서」와 「노인 울라에서」의 ‘나’와 ‘눈먼 소녀’. 「눈 속에서」는 유원지에서 아버지가 사라졌음을 발견한 ‘내’가 스키타이족의 무덤으로 떠나기까지의 이야기이고, 「노인 울라에서」는 ‘내’가 거인 아버지를 찾아 가장 북쪽에 있는 역인 노인 울라에 도착하면서부터 벌어지는 이야기다. 「눈 속에서」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읽어준 책은 빨치산 소녀 ‘눈(snow) 아이’가 등장하는 『눈 아이』이며, ‘나’는 이름을 묻는 경찰관에게 자신의 이름이 ‘눈 아이’라 대답한다. 미아 센터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리는 ‘나=눈 아이’, 뒷모습이 얼핏 아버지와 닮은 남자가 리본을 맨 ‘눈먼 소녀’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을 목격한다. 리본을 맨 눈먼 소녀는 「노인 울라에서」에 또다시 등장하며 이 소녀의 이름이 ‘눈 아이’이다. 눈먼 소녀는 『눈 아이』 속 빨치산 소녀처럼 목이 꺾인 채 교수형을 당하고, 소녀의 리본을 내가 매달며 나와 눈먼 소녀는 비밀스러운 결속을 이어간다.

「얼이에 대해서」의 ‘나’와 ‘얼이’도 한 쌍이다. 나의 여동생이 태어난 때 얼이는 유괴당해 죽는다. 나는 하나의 탄생에는 하나의 죽음이 필요함을 깨닫고, 자신이 원한 건 아니었지만 자신의 여동생이 태어나 얼이는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어른이 된 나는 어린 시절 모습에서 확대된 얼이를 한 번 만난다. 나는 얼이를 알아보지만 얼이는 나를 나로 알아보지 못한다. 다만 “미친년이 간다!”라고 매번 놀림당한 얼이 어머니와 똑 닮은 나를, 마을의 미친 여자인 나를 오래오래 바라볼 뿐이다.

「1979」의 키 큰 소녀와 작은 리우진도 있다. 반에서 가장 성숙한 ‘키 큰 소녀’에게 미묘한 성적 끌림을 느끼며 집착하는 남자 교사가 우연히 목격한 장면은, 이 소설집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아찔하고 몽환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아이들은 낡은 담벼락 앞에서 멈추어 서더니 각자의 손가락을 담벼락의 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교사는 거칠고 딱딱한 흙과 광물, 바스러진 뱀의 알과 곰팡이, 죽은 애벌레의 감촉을 손가락에 느꼈다. 마침내 구멍 깊숙한 곳에 숨어든 한낮의 꿈과 같이 미끈미끈한 온기에 손끝이 닿자, 교사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움찔거렸다. 잠시 후 손가락을 구멍에서 꺼낸 리우진이 이번에는 자신의 입속에 손가락을 넣어 붉은 사탕을 꺼냈다. 그러더니 그것을 키 큰 소녀의 입속에 넣었다. 키 큰 소녀는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으며, 손끝으로는 입가에 묻은 침과 설탕물을 닦아냈다. (…) 교사의 입속으로, 마치 어린 시절과도 같은 혼몽하고 은은한 단맛이 퍼졌다. 교사는 손끝으로 입가에 묻은 침과 설탕물을 닦아냈다.
_113~114쪽, 「1979」에서

“나이 많은 자매는 시간을 앞서 비추어진 거무스름한 거울이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인 「도둑 자매」에는 우연히 만나 언니와 동생이 된 자매가 등장한다. 소설집 도처에서 만나게 되는 손을 잡고 걷는 소녀들. 이렇듯 꼭 쥔 두 손으로 연결된 비밀스러운 결속은 소녀들의 걸음걸음마다 환상적인 이야기로 연결된다.

소설집에서 다소 이질적인 두 작품 「뱀과 물」과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에도 독특한 시간의 실체가 담겨 있다. 「뱀과 물」의 ‘김길라’를 보자. 어린 전학생 길라, 여교사 길라, 늙은 길라로 분열된 상태로, 서사는 겹겹의 꿈처럼 포개지고 엇갈리며 진행된다. 한낮에 교실에서 한 교사(김길라)가 백일몽을 꾸는 동안, 어린 전학생 길라가 학교에 왔다가 운동장에서 늙은 길라와 마주치고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미래가 자신의 과거를 죽이는 꿈, 순간과 영원의 포개짐과 엇갈림… 소설집 마지막에 놓인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는 세계 여성의 날에 ‘내’가 외국 여행지에서 할머니의 푸른 양철 가방을 들고 시낭독회에 참석하는 이야기이다. 부고에 쓰여 있는 할머니의 이름과 나의 이름이 같으며, 할머니의 여행가방이 내 손에 들려 있고, 바로 오늘이 할머니의 장례식 날이다. 나는 할머니와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할머니의 여행하는 삶을 이어받아 살고 있는 중이 아닌지.

“이제 꿈이 시작되는 건가요?”
―배수아라는 장르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언젠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앞으로 또 일어날 것이 분명한 일에 대해서 애도하는” 것이야말로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어떤 사람은 문학이 단지 진실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문학이 필연적으로 진실을 포함한다고 생각하죠. 저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로는 단지 꿈이에요. 저에게 문학은 필연적으로 애도를 포함해요”라고 배수아는 말한다.(『문학동네』 2013년 가을호, 차미령과의 대담에서) 꿈같은, 무한한, 자유로운, 그러므로 그 어떤 서사보다 매혹적인 ‘낯섦’을 선사하는 작가 배수아. 고정된 시공간을 끊임없이 탈주하는 꿈속의 꿈속의 꿈 같은 작품들 속에서 독자들은 이번에도, 저마다 다른 풍경을 발견할 것이다. 백 명의 독자에겐 백 명의 배수아, 천 명의 독자에겐 천 명의 배수아가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배수아라는 장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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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뱀과 물] 비밀스러운 결속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키* | 2021.02.0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유튜브 채널 <편집자 k>를 운영하는 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 님의 책 <문학책 만드는 법>을 읽고 구입한 책이다. <문학책 만드는 법>에 이 책의 표지 탄생 비하인드스토리가 실려 있는데, 편집자 님에 따르면 배수아 작가 님이 다른 건 전부 편집자 님 마음대로 하시되 이 사진을 꼭 표지로 써달라고 부탁하셔서 대체 어떤 사진인가 하고 봤더니 여성의 나체 사진이라 적;
리뷰제목


 

유튜브 채널 <편집자 k>를 운영하는 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 님의 책 <문학책 만드는 법>을 읽고 구입한 책이다. <문학책 만드는 법>에 이 책의 표지 탄생 비하인드스토리가 실려 있는데, 편집자 님에 따르면 배수아 작가 님이 다른 건 전부 편집자 님 마음대로 하시되 이 사진을 꼭 표지로 써달라고 부탁하셔서 대체 어떤 사진인가 하고 봤더니 여성의 나체 사진이라 적잖이 난감하셨다고. 어떻게 하면 배수아 작가 님의 의도를 만족하면서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당혹감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탄생한 표지가 바로 이것. "이 비밀스러운 결속이 나는 기쁘다."라는 문장을 책띠에 인쇄할 문구를 고른 이유도 나오는데, 이유를 몰라도 멋진 문장이지만 이유를 알고 나니 더 멋지게 느껴졌다(배수아 작가 님을 향한 편집자 님의 뿜뿜한 애정이 느껴졌다). 

 

책에는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마다 다른 제목이 붙어 있지만, 자세히 보면 겹치는 부분이 더러 보인다. 가령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의 아버지 없는 아이와 <노인 울라에서>에서 아버지를 찾는 아이는 동일 인물로 보인다. <뱀과 물>에서 전학 온 소녀와 <도둑 자매>에서 유괴를 당한 소녀 역시 겹쳐 보인다. 다른 듯 닮은 이야기, 겹치지만 묘하게 어긋나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모든 기억은 망상"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에요.", <1979>중에서) 

 

누구에게나 이것이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있겠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볼 수 없다. 각자가 믿고 있는 현실에는 각자의 편의나 이익에 따라 수정되고 삭제되고 편집되고 조작된 것들이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야기들 역시 진실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현실일 것이라고 믿으며 읽었다. 내 눈에는 기이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장면들도 누군가에게는 그 무엇보다 사실적이고 벗어나기 힘든 현실일 터. 망상과 망상 아닌 것은 대체 누가 구분할까. 나의 망상이 누군가에게는 현실이고, 나의 현실이 누군가에게는 터무니없는 망상일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집 속의 낯설고 기묘한 세계로부터 눈을 떼고 싶지 않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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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얼굴은 수면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와 같아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헌*가 | 2020.07.10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배수아 작가는 1993년에 등단해 이태 뒤인 1995년에 첫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고려원)를 냈다. 1980년대와는 확연히 다른 1990년대의 특징을 드러내거니와 우리나라 문단의 어느 줄기에도 닿지 않는 독특함으로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다. 사반세기가 흘러 다시 만난 배수아 작가는 여전히 젊고 강렬하다. 소설의 줄거리는 쉽게 요약되지 않고, 인물은 이 소설에서 저 소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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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는 1993년에 등단해 이태 뒤인 1995년에 첫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고려원)를 냈다. 1980년대와는 확연히 다른 1990년대의 특징을 드러내거니와 우리나라 문단의 어느 줄기에도 닿지 않는 독특함으로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다. 사반세기가 흘러 다시 만난 배수아 작가는 여전히 젊고 강렬하다. 소설의 줄거리는 쉽게 요약되지 않고, 인물은 이 소설에서 저 소설로 가로지르며 아온다.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유혹의 기운이 세다. 이번 소설집에서 내게 큰 유혹으로 다가온 이미지는 일곱 살까지는 남자아이로 살다가 생일이 지나면 비로소 제물의 공포에서 벗어나 여자아이로 살아갈 수 있는 ‘눈snow 아이’.

 

‘눈 아이’는 작품 속에 반복해서 나오고, 눈 아이는 아버지를 찾으러 스키타이족의 무덤으로 가거나(「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 가장 북쪽의 역 노인 울라로 찾아가며(「노인 울라Noin Ula에서」), 일곱 살까지 사내아이로 살던 나의 친구 얼이는 밤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네 시간 반을 달려야 갈 수 있는 반두로 떠난다(「얼이에 대해서」). 비단 눈 아이가 아니라도 소설집에는 비슷한 소녀의 이미지가 반복된다. 그렇다 보니 소설은 줄거리로 다가오지 않고 다만 꿈결같은 이미지로 그리고 문장으로 다가온다. 듣고 있으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악처럼 느껴진다. 매혹적인 문장 몇 옮긴다.

 

한 소녀가 입에서 껌을 꺼내 손바닥 위에서 돌돌 만 다음 가장 친한 다른 소녀의 입속에 넣어주었고, 그 소녀는 잠시 그 껌을 씹은 뒤 마찬가지 방식으로 세번째 소녀에게 껌을 넘겼다. 그렇게 소녀들은 하나의 껌을 돌려가며 씹었고, 낡고 오래된 담장의 뜨끈한 구멍속으로 손가락을 넣었으며, 물웅덩이가 나타날 때마다 손을 잡고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거무스름한 수면에 비친 자신들의 거무스름한 얼굴을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마지막 모퉁이에 도달한 소녀들은 손을 흔들고 각자의 집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때 소년들은 말없이 낮은 담장에 몸을 찰싹 붙인 채 보이지 않는 푸엥이를 관찰하는 척하면서,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소녀들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히미한 냄새에 집중했다. (88 - 89쪽, 「1979」)

 

키 큰 소녀의 얼굴은 수면에 비친 키 큰 소녀 자신의 그림자와 같아서, 오랫동안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문득 아주 또렷한 모종의 의지와 표정이 떠오르지만, 그 찰나가 지나고 나면, 또다시 가벼운 바람이 불고, 또다시 아이가 울고, 또다시 버스가 지나가며, 또다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그리하여 점차 빠른 속도로 흐릿하게 와해되는 듯하다고, 교사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소녀의 얼굴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선뿐 아니라 어떤 물리적인 행위가 필요할 것만 같았다. 예를 들자면 뺨을 새끼손가락 끝으로 짧게 쓸어보는 것 같은. (100쪽, 「1979」)

 

잠시 후 손가락을 구멍에서 꺼낸 리우진이 이번에는 자신의 입속에 손가락을 넣어 붉은 사탕을 꺼냈다. 그러더니 그것을 키 큰 소녀의 입속에 넣었다. 키 큰 소녀는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으며, 손끝으로는 입가에 묻은 침과 설탕물을 닦아냈다. 키 큰 소녀는 입을 몇 번 오물거리다가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입속에 넣어, 더 작아지고 더 촉촉해진 붉은 사탕을 꺼내, 새처럼 벌린 리우진의 입속에 넣었다. 교사의 입속으로, 마치 어린 시절과도 같은 혼몽하고 은은한 단맛이 퍼졌다. 교사는 손끝으로 입가에 묻은 침과 설탕물을 닦아냈다. (113 - 114쪽,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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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뱀과 물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E**y | 2020.01.13 | 추천2 | 댓글1 리뷰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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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나서.

작년에 표제작이었던 <뱀과 물>을 읽고 메모를 남겼었다. 연작은 아니지만 연결고리가 있다는 이야기에 전작을 다 읽으면 조금 이해가 쉬울까 했는데,,,,, 쩜쩜쩜.

우선 밑줄만 옮겨봄.


*밑줄

<얼이에 대해서>

"내가 물었어요, 사람은 왜 죽는 거냐고. 그러니까 누나가 대답해줬어요, 한 명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는 거라고."


사람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항상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1979>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


<도둑 자매>

그 누구도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았다.


거울이 깨진 다음에는 원래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왜냐하면 거울이 한번 비춘 것이 다시 세상으로 반사되지 못하므로, 도둑도 없고, 거울도 없고, 따라서 나도 없고, 강아지도 없고, 그러니 그것은 정말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 이렇게 거울 속처럼 저절로 있다가, 언젠가 그레이하운드를 타러 가게 될 것이라고,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만일 그것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모든 기억이 이토록 생생할 리가 없다.


<뱀과 물>

이미 일어났다고 알려진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보다 신비롭다.


"(..) 소문은 그냥 꿈같은 거란다. 소문은 우리를 해치지 못해.

"꿈은 우리를 해치나요?"


"(...) 한 아이의 반들반들한 껍데기 아래에는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삶이 들어 있기도 하잖니."

나는 여승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마치 달걀처럼"


"네 안에는 아주 늙은 네가 살고 있을지도 몰라. 늙은 그녀가 너무 이른 시기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라. 만약 그녀가 미친 닭처럼 순식간에 훨훨 날아가버리면 너는 평생 그녀를 쫓아다녀야 하는 거야. 아니면 그녀가 너를 쫓아다니겠지. 운이 좋아서 그런 불행만 일어나지 않으면, 넌 훌륭한 우체국 직원이 될 거다."


여교사는 콜레라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고여 있는 것은 두려웠다. 가장 두려운 것은 고여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

그런데 여자들은 왜 여행을 떠나는 걸까요?


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물이 되는 것, 형체가 사라져버리는 일이었어요.


할머니는 여왕이 되었다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세상을 구원한 다음, 연기가 되었고, 마침내 대머리 독수리가 되었어요.


"놀랍게도, 우리의 경험이란, 사실 우리의 직관이 눈에 보이는 형체를 입고 나타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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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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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m******2 |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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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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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 | 20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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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권은 이걸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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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권 | 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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