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저/ 문학동네
2017년 11월 13일
"한 편의 따뜻한 시가 우리의 슬픔과 아픔을 치유한다."

1. 들어가며
'모든 글의 만남은 아름다워야 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듯이,
한 편의 따뜻한 시 또한 우리의 슬픔을,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
마음의 위로는 어떤 지식이나 정보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감동 시키는 시를 통해서 가능하다. 예전에는 시가 어렵고 이해할 수 없었으나, 요즘에는 시를 읽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안정이 된다. 시를 읽으면서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내 감정을 어루만진다. 마치 명상을 하듯, 요가를 하듯,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고 치유의 시간이다.
내 마음을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 주는 시를 만났다. 예전에 그의 시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이라는 시집을 한 번 읽긴 했다. 박준 시인은 시를 사실적으로 나도 이해할 수 있게 써서 미음에 와닿았다. 시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시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바로 시를 읽는 방법이라고 말해주는 시인 중 한 사람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도 어렵지 않고 공감가는 문장들이 많아서 좋아하는데 박준 시인의 시도 나에게 그러했다.그의 시는 참 솔직하고 담백하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소중함, 아름다움, 소소한 행복을 찾고자 한다. 미사여구와 화려한 문장이 아닌 그만의 솔직하고 투박하고 문장으로 쓰여진 시는 그 솔직함과 진솔함이 더해져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다.
이번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에는 62편의 주옥같은 시가 있다. 62편의 시들 속에는 시인의 모습과 삶이 투영되어 있다. 그 시들을 가만히 읽다보면, 그의 삶과 인생이 보인다. 그의 삶 또한 그의 시만큼 소박하고 진솔하다. 나는 그의 시들이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또한 나는 그의 시들 속에서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을 발견해서 좋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집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의 시속에 곧 사람들의 모습이 있으니깐 말이다.
2. 책 속으로
박준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촌스럽더라도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바램과 의도대로 그의 시는 촌스럽고 소박한지도 모르겠다. 그는 '작고 소외된 것들'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해왔다. 그렇게 한지 4년, 이제 그는 막 삼십대에 접어들었다. 시로 인생을 논하고 사랑을 노래하기엔 아직은 그가 젊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젊은 나이에도 성장에 대해, 죽음에 대한 사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에서도 작고 소외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들이 작고 소외되었지만, 그 자체로 존재 자치가 있고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시인의 눈으로 보면 소중하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시인은 그 일상과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전해준다. 시인이 전하는 메시지가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우리의 슬픔과 아픔을 치유한다.
62편의 시들 모두 다 너무 울림이 있고 좋지만 그 중에서 내 마음을 많이 울린 시들이 있어서 몇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집의 표제 시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를 읽었다. 이름을 지어서 며칠은 먹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시를 읽으며 한참을 생각했다. 이 시 속의 화자는 자주 아픈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느끼기엔 당신의 이름이 마치 나에겐 약과 같아서 그 이름인 약을 며칠을 먹어서 당신이라는 사랑의 힘으로 몸이 아픈 것이 낫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시인이 쓴 이 문장에는'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담겨 있다.
“나는 매일 병을 얻었지만 이마가 더럽혀질 만큼 깊지는 않았다 신열도 오래되면 적막이 되었다”(「용산 가는 길」),
“빛을 쐬면서 열흘에 이틀은 아프고 팔 일은 앓았다. 두 번 쯤 울고 여덟 번쯤 누울 자리를 봐두었다.”(「2:8」)
“눈을 감고 앓다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떨고 있는 듯했습니다”(「눈을 감고」),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꾀병」)
등과 같이 시집에는 병의 기록이 무수하다. 그렇게 시 속의 화자는 나약하고 보살펴줘야 하는 존재이다.
범박한 일상 속에서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눈썹」)니다가 문득 고독한 자아를 마주하고 세계에 눈을 뜨며 얻은 일종의 성장통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신이 이 세계에 대해 알게 되고 깨닫게 되면서 아픔과 고통이 동반된다. 그러나 그 아픔을 극복하고 나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면에서 이러한 자신의 병을 ‘꾀병’이라 말하는 것은 자신보다 이 세계가 더 아프리라는 인식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는 시이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것도 대단하다며 칭찬을 받고 그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그리고 시 속에서 '당신'은 지금 현재 슬픈 상황에 있다. 그래서 그 당신은 눈물을 흘리고 있고 슬퍼하고 있다. 당신과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 있고 그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과 당신의 슬픔을 생각할 때 시의 화자인 '나'는 이를 악물어야 한다. 그런 시인의 고통과 슬픔이 느껴진다.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과,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면 이를 악물고 버티어야 하는 것이다.

아픈 ‘나’의 이마를 짚어주는 손이 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라고 웃으며 말하는 ‘미인’이다. 미인은 김치를 자르던 가위를 씻어 귀를 뒤덮은 내 이야기들을 자르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발을 하는 것 같다. 시집 곳곳에서 출몰하는 미인은 '나'와 세계를 연결하고, 죽음과 삶의 매개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인은 때로는 시적 화자의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단순히 이 '미인'은 연인으로 한정하지는 말자. 그 미인은 시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인의 열망, 이상향, 목표 등 추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 미인은 끊임없이 자기 성장을 하려고 하며 이 과정 속에서 성장통을 앓고 있는 시적 화자에게 힘이 되어주고, 그를 지탱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3. 나가며
"좋은 시란 그런 말 안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에서 나온다"
시 속에는 시인의 삶과 삶 속에서 성장이 있다. 시인 또한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간다. 어쩌면 시인이 느끼는 감정도 생각도 우리와 비슷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과 느낌이 글로서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좋지 않은 세상도 밝게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기도 하고 진솔하게 솔직하게 보기도 한다. 비록 문장의 길이는 짦지만, 그 속엔 삶의 깨달음이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를 읽는다.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기 위해서, 시인이 주는 메시지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말이다.
시인이 던지는 따뜻한 한 마디, 한 문장이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된다.
시인이 던지는 따뜻한 손과 애정이 우리를 위로한다. '넌 혼자가 아니야' 라고
시인이 전해주는 따뜻한 말이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는 약이 되고, 그 약을 며칠 먹으면
우리의 아픔도, 슬픔도 모두다 치유될 것만 같다.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
내가 살아 있어서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저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이 세상에도 두엇쯤 당신이 있다. 만나면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