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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로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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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마음산책 짧은 소설이동
김숨 저 / 임수진 그림 | 마음산책 | 2017년 12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15건 | 판매지수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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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top10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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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2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410g | 128*185*20mm
ISBN13 9788960903432
ISBN10 896090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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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던 지난 봄과 여름 산책길에서 만난 비둘기는 아직 살아 있을까요?
인간인 내게 새의 얼굴도 늙는다는 걸 가르쳐준 비둘기에게,
나와 찰나로라도 눈빛을 나누었던 모든 존재에게,
자복하는 마음으로,
---「작가의 말」중에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는 것은, 파도에서 파도로 가는 것만큼 아슬아슬하고 황홀한 일일 것입니다.
--- p.39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얼굴보다 섬세한 얼굴이 또 있을까요.
당신 얼굴에 손을 담그고 싶습니다.
--- p.50

남자는 손가락을 붓 삼아, 물을 먹 삼아, 유리창을 종이 삼아 글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한낮의 눈부신 빛이 유리창으로 들이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물을 엄지손가락에 묻혀 글자를 썼습니다. 쓰자마자 허공으로 증발해버리는 글자를요. 처음에는 남자가 의미 없는 낙서를 하는 줄 알았는데 똑같은 글자를 반복해서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아홉 획으로 이루어진 글자라는 것도요.
--- p.66

영원이라는 것은 혹 순간과 순간 사이에 갈피처럼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그것을 펴 담은 접시의 무늬가 비쳐 보일 정도로 얇은 복어회, 그 복어회보다 얇은 순간들 사이에요.
--- p.74

그런데 당신은 당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걸까요.
그리고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걸까요.
--- p.76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옮아가는 기분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간절히 갈망하는 다른 생은 어쩌면 한 발짝 너머에 있는 게 아닐까요.
--- p.85

내 안에 고여드는 감정이 혹시 행복이라는 감정이 아닐까요. 행복은 ‘탁월한 행위’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지요. 그러니까 행복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여름 저녁 바짝 마른 수건을 걷을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붉은 자두를 씻을 때, 연둣빛 새순이 돋은 나무를 바라볼 때, 어느 집 부엌에선가 밥 뜸 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골목길을 걸을 때, 몰랑몰랑하고 따뜻한 백설기를 먹을 때…….
탁월한 행위는 장식 없는 소박한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행위라는 표현마저 거추장한 장식이 되어버리는 행위요.
--- p.96~97

‘우리가 삶을 믿으면 삶은 보다 높은 삶으로 보답한다.’
그 문장을 나는 어디서 읽었을까요.
삶도 계단처럼 단계가 있는 걸까요.
그런데 높다는 건 뭘까요.
높은 삶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낮은 삶 또한.
오직 삶만이 있는 게 아닐까요.
--- p.122~123

둥지 속 알을 품고 잠든 새의 깃털 속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세상 그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곳이요.
--- p.154

최초의 존재들은 한결같이 망각된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내 첫 번째 개가 실은 두 번째 개였다는 걸 깨닫고 나서.
--- p.171

참새가 날아가고, 나는 참새가 애벌레를 쪼아 먹던 자리를 가만히 손으로 짚어보았습니다.
삶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저절로 중얼거려졌습니다. 참새의 삶이라는 말이요.
--- p.220

그의 고백처럼, 어떤 고백은 선율 없이 부르는 노래처럼 들립니다.
--- p.244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가고 있는 중인가요?
나도 가고 있는 중이에요.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인가요?
나도 나에게로.
--- p.252~253

빛 속으로 걸어 나가며 빛뿐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남남인 당신과 나를 가를 수 있는 것은, 틈새를 통과하며 회칼처럼 가늘고 얇게 벼려진 한 줄기 빛뿐입니다.
--- p.264

통유리 너머 능들과 나무들, 새들, 인간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이 장엄미사곡이라서가 아닐까요.
경주 고유의 풍경이기도 한 저 풍경의 화룡점정은 결국 인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고, 날아가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고, 땀구멍보다 작은 곤충들에게도 이름을 지어주는 인간이라는 존재 말이에요.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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