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쓸 때면 조금 다른 방식의 자기 검열이 일어난다. 산문을 쓸 때 ‘실제의 나’와 ‘글 쓰는 나’가 대립한다면, 소설을 쓸 때는 ‘글 쓰는 나’와 ‘상상하는 나’가 맞붙는다. 과연 저 사람을 죽여도 좋은가. 죽일 수 있는가. 지나치게 과격한 방식이 아닌가. 죽인다면 어떤 방식으로 죽여야 하는가. 총을 쏴서? 아니면 목을 졸라서? 글 쓰는 나는 상상하는 나에게 계속 묻는다. 상상하는 나는 무조건 쓰라고 말하지만, 글 쓰는 나는 자꾸만 멈칫하며 되묻는다.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이번에도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하는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때로는 상상하는 나를 지나치게 믿고 만 것 같아서, 후회가 든다. 돌이킬 수 없다. 손을 놓아야 한다. 평생 한 가지 이야기를 쓰고 있을 수는 없다. 같은 이야기를 새롭게 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똑같은 방식으로 한 번 더 하거나, 어쨌든 다시 써야 한다. --- p.중략) 이번에도 실패했다. 실패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는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을 썼고, 그럼에도 쓸 수 없는 것을 쓰지 못했다. 이번에 쓰지 못했던 것을 다음에 다시 쓰려고 할 것이다. 글쓰기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 p.59~60
나는 ‘대화를 상상하는 힘’이 개성을 만드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소설을 쓸 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모든 글쓰기에 적용되는 말이다. 대화를 상상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고, 두 사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고,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화를 상상하다 보면 점점 가상의 인물들이 늘어난다. 처음엔 두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다가 어느 날 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런 식으로 머릿속 가상의 인물이 점점 늘어난다. --- p.108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이 가언을 만드는 일과 표어를 찢어버리는 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글을 통해 끊임없이 어떤 명제를 만들거나 정의를 내리고 싶어 한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그 글로 자신이 온전하게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단언하듯 문장을 만들지만 그 문장이 얼마나 불안정하며 바보 같은 것인지도 알고 있다. 바보 같은 줄 알면서 계속 쓰고, 단언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하얀 눈 위의 구두 발자국’ 같은 문장을 끊임없이 찍어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속에서 흔들리며 글을 쓴다. --- p.123
종이 위의 문장들은, 일종의 평행 우주다. 종이 위의 문장들은 실재하는 현실과 무척 닮아 있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글을 쓰는 사람은 종이 위에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고, 가보지 못한 길을 상상할 수 있다. 픽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글이 그렇다. 우리는 글 속에다 새로운 우리를 창조할 수 있다. 우리는 글을 통해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인 척할 수 있다. 더 현명하거나 더 세련된 사람인 척할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나 그럴 수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더 나은 사람인 척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다. 글쓰기는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글쓰기는 혼자 해서 좋은 것이지만, 혼자 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다. 지금 수많은 블로그에서, SNS에서, 책에서, 글쓰기는 자기 합리화의 좋은 도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정확하게 글을 쓰고 싶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다. 말은 뱉으면 그만이지만, 글은 발표하기까지 수십 번 수백 번 고칠 수 있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고쳐낼 수 있다. 말에 비해 글은 훨씬 더 전략적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글쓰기 속에서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 p.137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써낸 소설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나는 여전히 인간의 언어야말로 인공지능이 복사하기 힘든 무엇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을 도식화할 수는 있다. 엘리자처럼 하나 마나 한 말들로 신뢰를 얻을 수도 있다. 대화의 패턴을 만들 수도 있고, 이야기와 플롯의 공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중얼거림은 절대 흉내 낼 수 없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은 것들, 말했지만 말하지 않은 것들, 중얼거리지만 들리지 않는 것들, 들리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말들 같은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것은 아닐까. --- p.272
책이란, 대화의 시작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죽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오래된 문장을 읽고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대화를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책이 묻고 내가 대답한다.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 책 속에 숨어 있다. 글쓰기는 가장 적극적으로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수많은 책들을 읽은 후 자신의 생각을 책에다 적는다.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내 이야기를 섞는 것이다. --- p.278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자주 우울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이렇게 비상식적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더 험해지고 거칠어져야만 버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거칠어지다가 우리는 중요한 걸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문득 돌아봤을 때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건 모래뿐이지 않을까. 뭔가 중요한 걸 꽉 움켜쥐고 이곳까지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쩌면 바스라지는 흙덩어리 같은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좀 더 창작에 몰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뭔가 만드는 사람들은, 그렇게 거칠어질 수 없다. 강해질 수는 있어도 험해지지는 않는다.
--- p.284~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