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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 이야기 1
중고도서

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 이야기 1

: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 피맛골

권영택 글 / 김건 그림 | 책먹는아이 | 2008년 12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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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466g | 190*236*20mm
ISBN13 9788995980460
ISBN10 899598046X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확인 중
인증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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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피맛골의 유래와 그에 얽힌 이야기
지체높은 양반들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굽히거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려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통행한 데서 비롯된, 오늘날 종로통의 뒷골목인 피맛골의 유래와 양반집 마님이 시작한, 손님과 대면하지 않고 방문을 사이에 두고 술을 팔았다는 ‘내외술집’ 이야기를 다뤘다.

조선시대 최고의 장작 상인, 최순영
당시 서민들에게는 유일했다고 할 수 있는 연료인 땔감나무 시장을 휘어잡고 있던 최순영이 최대의 라이벌인 브라이상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이야기. 더불어 오늘날의 커피였던 ‘양탕국’ 관련 이야기와 고종 황제 독살 사건,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 등을 다루고 있다.

시체를 내보내던 문, 광희문(시구문)
돌림병인 콜레라가 발생하면 광희문 밖에 ‘피막’을 지어 놓고 그 곳에 환자를 버려 둔 이야기와 그 곳에서 살아 있는 어린 환자를 데려다 이학학당에 입학시킨 선교사 스크랜튼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고대수를 아시나요?
키가 무척 크고 얼굴 생김새가 흉측하기 이를 데 없어 온갖 구박과 천대 속에서 자라야 했던 고대수라는 여인이 자신을 유일하게 인간답게 대우해 준 은인인,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을 돕다 사형에 처해진 이야기.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은 남이 장군
27세의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오늘날의 국방부 장관)에 오르는 등 뛰어난 무신이었던 남이 장군이 간신 유자광의 모함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야기를 다뤘다.

바위도 많고 사연도 많은 인왕산
중종 임금과 왕비의 애틋한 사연을 담고 있는 인왕산 치마바위 이야기, 붙임바위에 얽힌 젊은 부부 이야기를 다뤘다.

비운의 왕자, 안왕
조선 고종과 궁녀 이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안왕이 고종의 정부인인 명성황후가 내린 인삼탕을 먹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다뤘다.

잿골이 재동으로 불리게 된 사연
어린 단종 임금을 몰아내고 세조를 임금으로 추대하기 위해 한명회 일파가 단종 측근들을 살해하고 그들이 흘린 피를 재로 덮었다고 해서 유래된 잿골. 일제가 한글로 된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재동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다뤘다.

부를 가져다 주는 재동 백송
풍양 조씨, 안동 김씨, 흥선대원군이 아들 고종을 임금으로 앉히기 위해 벌인 처절한 몸부림,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 박규수 이야기 등 재동 백송이 있는 집에 사는 사람이 영화를 누리면 누릴수록 밑동이 하얗게 변했다는 이야기를 다뤘다.

죄인들의 아지트였던 청계천
전과자인 꼭지떼들이 모여 살았다는 청계천. 그들이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폈던 정책적 배려 이야기와 부패한 관리를 끓는 물에 넣는 형벌을 집행했던 혜정교 그리고 그 집행이 사실은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이었으나, 이 형벌에 처해진 사람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했다는 이야기를 다뤘다.


‘알쏭달쏭 역사 확대경’에서 다룬 역사 상식들

피맛골
‘말을 피하다’에서 유래된 피맛골은 종로통의 뒷골목이다. 지체높은 양반들을 만나면 고개를 숙이거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려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서민들이 많이 다니던 길답게 옛날부터 저렴한 가격의 음식점과 주점들이 번성하였다. 가격이 저렴하고 푸짐한 분위기는 아직 옛날 그대로이지만, 재개발 계획이 잡혀 있어 이제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처지에 놓여 있다.

육조거리
육조거리란 광화문 앞에서 황토현(현재의 세종로 네거리)에 이르는 큰길로, 오늘날의 세종로의 전신이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 좌우에 의정부를 비롯하여 6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기타 중요 관아들을 배치하여 이 앞거리를 ‘육조거리’라고 불렀다.

종로
종로라는 이름은 1395년(조선 태조 3년), 종각이 세워진 것을 계기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초기에는 종로를 큰 시가지라는 뜻으로 ‘대시가’라고 부르다가, 세종 때는 ‘운종가’라고 불렀다. 운종가는 지금의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로 4가까지를 이르던 이름이다.

서울 성곽
서울 성곽은 조선 왕조의 도읍지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도성으로,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과 연결되어 있다. 도성 북쪽에 우뚝 솟은 북악산은 서울 성곽이 지나는 네 산 가운데 주인 되는 산으로, 조선 왕조가 개국하면서 정궁인 경복궁의 주산으로 삼았다. 그리고 네 개의 산 능선의 조금 낮아진 곳에 4대문과 4소문을 만들어 외부와의 교통로로 삼았다.

을미사변
1895년 8월 20일, 일본 공사 미우라의 지휘 아래 일본 깡패인 낭인들과 훈련대가 경복궁에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이다.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나라의 요동 반도와 타이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의 세력이 급격히 커지자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요동 반도를 청에 반환하도록 일본에 압력을 가했다. 일본은 이에 굴복하고 요동 반도를 청에 반환했다. 일본이 삼국의 압력에 굴복하자 조선에서는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일본의 세력을 막기 위해 러시아에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에 명성황후만 제거하면 모든 것이 일본의 뜻대로 이루어지리라 생각한 일본은 미우라를 조선에 파견하여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미국, 독일 등에서 이 사건을 문제삼고 나오자 일본 정부는 미우라를 본국으로 불러 재판을 받게 했다. 그러나 그 재판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었다. 미우라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석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죽음은 결국 일본이 조선을 제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관파천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고종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친러파인 이범진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 당시 친미파였던 이완용 등과 모의하여 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이를 아관(러시아 공사관)파천(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을 피함)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친일 정권이 무너지고 친미, 친러파 인물들로 내각이 구성되었으며, 갑오, 을미 개혁은 중단되었다. 고종은 1897년 2월 20일, 1년 만에 덕수궁으로 환궁했다.

4대문
정북 : 숙청문, 숙정문(북문, 북대문)
정남 : 숭례문(남대문)
정동 : 흥인문, 흥인지문(동대문)
정서 :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숭례문은 조선 왕조 도성의 정문으로, 서울 성곽 여덟 개 문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규모가 커 도성의 얼굴 역할을 하였다. 숭례문 현판은 양녕대군의 글씨로 전해진다. 이 현판은 다른 도성문과는 달리 가로가 아닌 세로로 되어 있다.
흥인문, 흥인지문(동대문)-성문 중에서 유일하게 성 밖으로 옹성을 쌓았다. 이 일대가 도성 내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라 땅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고종 때 다시 지으면서 ‘한자(지)’ 자를 보강하여 ‘흥인지문’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돈의문(서대문) -1915년에 전차 궤도 복선화 때문에 철거되었다. 돈의문은 을미사변을 겪은 성문이기도 하다. 1895년 8월 20일,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있었는데, 이 날 새벽 일제 낭인들은 공덕리 아소정에서 숨어서 이동한 흥선대원군과 이 돈의문 앞에서 만나 합류하여 파루 종이 울리고 대문이 열리자 곧바로 경복궁을 침범하였던 것이다.
숙청문, 숙정문(북문, 북대문)-태종 13년(1413) 이래 경복궁의 좌청룡 지맥을 보존하여야 한다는 풍수지리사상에 의해 문이 닫혀 있어야 했다. 문이 열리는 때는 주로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행하는 시기뿐이었다.
창의문, 장의문(자하문, 북소문)-실질적인 도성의 북문 역할을 한 문이다. 광해군 14년(1623) 3월 12일 밤, 홍제원에 집결한 인조반정군은 세검정을 거쳐 이 창의문을 통하여 창덕궁을 장악함으로써 인조 정권을 만들었다. 창의문은 도성 4소문 중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다른 문루를 복원하는 데 고증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4소문
서북 : 창의문, 장의문(자하문, 북소문)
서남 : 소덕문, 소의문(서소문)
동남 : 광희문(수구문, 실질적인 도성의 남소문)
동북 : 홍화문, 혜화문(동소문)
홍화문, 혜화문(동소문)-도성의 동북쪽에 위치하여 함경도 등 북방과 직결되는 관문 구실을 하였다. 성종 때 창경궁을 조성하면서 그 정문을 홍화문이라 하여 이 성문 이름과 혼동을 일으키자, 중종 때 혜화문으로 고쳐불렀다.
소덕문, 소의문(서소문)-도성의 서남쪽에 위치하여 강화, 인천 방향과 서북방으로 직결되는 관문 구실을 하였다. 1914년경 도로 확장으로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소의문은 도성 안 백성들이 세상을 떠나 서쪽 방향으로 운구할 때 이용되는 문이었다. 또한 문 밖에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시전인 칠패시전이 있어 상업 활동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광희문(수구문, 실질적인 도성의 남소문)-서쪽의 서소문과 함께 도성 내의 장례 행렬이 동쪽으로 지날 때 통과하는 문이었다. 광희문은 실질적인 도성의 남소문 역할을 하였다. 8개의 성문에 해당되지 않는 남소문은 남산과 광희문 중간에 새로 개설된 소문으로, 일제 때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가 이 문을 통해 도망갔고, 병자호란 때에는 인조 임금 역시 이 문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옮겼다고 한다.

중종반정
연산군 12년(1506), 성희안, 박원종 등 훈구파 세력(나라에 세운 공을 명분으로 오랜 기간 정치에 관여하며 권력을 행사하던 신하들)들이 폭정을 이유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그의 아우 중종을 임금으로 세운 사건을 말한다.
연산군은 1498년 무오사화를 일으켜 신진관료집단인 사림파를 제거하고, 1504년에는 갑자사화를 일으켜 훈구파들도 철저하게 숙청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연산군 비호 세력의 지나친 독주는 지배층 내부의 불만을 야기시켰고, 특히 연산군은 방종한 생활로 인해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되었다.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박원종, 성희안 등이 모의하여 임사홍, 신수근 등 연산군의 측근들을 제거하고 궁중에 들어가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의 허락을 받아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을 등극시켰다. 성희안, 박원종 등은 훗날 개혁 정치를 추진하던 조광조도 모함하여 유배시키고, 끝내는 죽게 하였다.

갑신정변
1884년 12월 4일,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등의 개화당이 조선의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일으킨 혁명이다. 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일본식 군대 제도의 도입과 민씨 정권에 반항하여 구식 군대가 일으킨 군란)을 계기로 당시 조선에서는 개화당이 명성황후 세력인 수구파와 사사건건 대립하였다. 개화당은 일본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도 개혁을 추진하여 근대 국가를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홍영식이 우정국 총판으로 임명되자, 이들은 우정국의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정변을 일으켰다. 개화당은 새 정부를 구성하고 개혁 정치를 추진하였으나 청국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신미양요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기 직전에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 호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대동강을 거슬러올라와 소란을 피우자, 평양 군민들이 이를 불태워 버린 사건이 있었다. 후에 이 사실을 안 미국은 1871년, 그들의 아시아 함대를 동원하여 강화도에 침입하여 왔다. 한때 광성진을 점령한 미군은 조선 군민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물러갔다. 이를 신미양요라고 한다.
흥선대원군은 두 차례에 걸친 서양의 침입을 막아 내면서 천주교 탄압을 계속하였고,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척화비의 내용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을 때 싸우지 않음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창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강화도 조약
고종 13년(1876)에 강화부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으로, 정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이다. 조선과 국교 관계를 맺기를 희망한 일본은 조선이 이를 거부하자, 운요 호를 수도의 관문인 강화도로 출동시켜 연안 포대의 포격을 유발하였다. 이 사건을 기회로 일본은 군사력을 동원한 강력한 교섭을 펴, 마침내 강화 연무당에서 12조로 된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약의 체결로 조선은 개항 정책을 취하게 되어 점차 세계 무대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나, 불평등조약이었기에 일본의 식민주의적 침략의 시발점이 되었다.

청계천
원래 이름은 개천(열 개, 내천)으로, 서울이 조선 왕조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도성 안을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구분하는 상징적인 경계선으로 작용했다. 청계천은 하천의 범람, 위생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할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간편한 방법은 ‘복개(뚜껑을 덮음)’였다. 여러 차례 복개 공사 계획이 있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1958년 5월 25일에 본격적인 복개 공사가 시작되어 1961년 12월에 완공하였다. 그 후 오늘날 마장철교까지의 복개 공사는 1978년에 완성되었다. 또한 복개도로 위에 새로이 고가도로가 만들어졌는데, 1967년 8월 15일에 착공하여 1971년 8월 15일에 완성하였다. 그 후 2003년 7월 1일 청계천 복원 공사에 착공, 2005년 10월에 완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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