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웃음, 분노와 탄식이 교차하는 이 책은
분명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것이다. -《북리스트》
이것은 호프라는 돼지가 주인공인 책이고, 힐다라는 양이 주인공인 책이다. 수소 오피와 암탉 마멀레이드가 주인공이고 지난 수십 년간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모든 특별한 동물들이 주인공인 책이다. 그들은 우리 농장의 대문을 열고 들어와 그들의 회복력과 활기, 개성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학대받는 동물을 다 구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생추어리 농장에 들어온 모든 동물이 각각 다른 동물 수백만, 아니 수십억 마리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마다 우리는 그들과의 관계, 그리고 지구상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동물과의 관계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학대받은 동물들의 안식처 - 생추어리 농장
1986년, 가축수용장의 사체 더미에서 숨이 붙어 있는 양 한 마리를 구출한 일을 계기로 저자 진 바우어는 비영리조직 ‘생추어리 농장’을 설립하게 된다. 생추어리 농장은 가축수용장이나 도축장, 공장식 농장에서 쓰레기처럼 버려진 동물들을 구조해 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한편, 대중에게 동물의 ‘학대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알리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이 책에서 바우어는 공장식 농장의 충격적 실태를 낱낱이 폭로하고, 더불어 그 끔찍한 운명에서 탈출한 동물들이 생추어리 농장에서 어떻게 새 행복을 찾아가는지 따뜻하게 묘사한다.
공장식 농장들의 잔학 행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병이 들었거나 약하다는 이유로 아직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비교적 생소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버림받은 동물들의 안식처, 사랑과 치유의 공간, 생명의 기적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칭송받는 생추어리 농장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비인도적 동물 처우를 개선할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싸워왔고, 수천 마리의 동물을 구조해 건강하게 회복시켜주었다. 그러나 이는 전체 그림의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예사롭지 않은 동물들과의 감동적인 만남 이면에는 고기와 달걀, 유제품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동물보호운동을 21세기형 운동으로 진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우리 시대의 성 프란체스코’로도 불리는 바우어는 축산업계에서 학대받는 동물들을 위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완전채식주의자, 즉 비건(vegan)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자들에게 채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학대받은 동물에게서 나온 고기를 거부하고 좀 더 질 좋은 고기를 요구할 책임이 있다고 역설한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육식은 포기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말미에 실린 ‘독서 클럽을 위한 토론 포인트’, ‘저자와의 대화’ 등은 생각을 확장하고자 하는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게 유용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성 프란체스코, 진 바우어
생추어리 농장은 뉴욕 주 외곽의 전원 지역과 캘리포니아 북서쪽 올랜드, 이렇게 두 곳에 자리잡고 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 “식용 송아지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강제로 떨어져 고개도 돌릴 수 없는 좁은 크레이트에 갇혀 평생을 보낸다”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은 바우어는 그러나 자신이 커서 지금과 같은 활동가가 될 거라곤 생각 못 했다. 그러다 대학 시절, 해방신학과 반전운동으로부터 영향받고, 소비자보호운동가 랠프 네이더의 강연도 듣고, 자신과 뜻이 통하는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차차 ‘생추어리 농장’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제대로 된 공간도 없이 록밴드의 콘서트 투어를 따라다니며 배지버거를 팔아 번 돈으로 농장의 운영비를 충당했지만, 취지에 공감한 후원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늘고 농장의 활약상이 널리 퍼져나가면서 다친 동물들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짜 농장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북미 최대 규모의 가축 구조 및 보호 네트워크의 중심축이 된 생추어리 농장은 학대받아 아픈 동물들을 치료하고, 동물보호 관련 법률 제정 운동을 펼치고, ‘노 다우너’ 캠페인 같은 시의적절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또한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방치된 가축들을 찾아내 구조하고, 농장을 직접 방문하는 개인이나 단체에게 본성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교육과 홍보용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개성만점 농장 식구들
사체 ?미에서 발견되어 생추어리 농장 최초의 동물 식구가 된 양 힐다를 비롯해 참견쟁이 암탉 마멀레이드, 탈수 증세로 죽어가던 순둥이 다우너 소 오피까지, 농장엔 드라마틱한 사연을 가진 개성만점 동물들이 가득하다. 사육장에 버려져 있다 구조된 마멀레이드는 ‘새대가리’라는 편견 가득한 표현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을 돌봐준 사람들을 다 기억한다. 한편, 곪은 다리로 가축수용장 문 뒤에서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던 암소 마야는 지극한 모성애를 보여줬다. 비록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돌봐주던 송아지들을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자 화를 못 참고 울어대던 마야는, 몇 년 후에도 그 서운함을 잊지 않고 있다가 송아지들을 보내버린 바우어를 만나자 화를 내며 돌진했다. 그 일 이후 바우어는 동물의 감정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게 되었고, 생추어리 농장에는 다른 보금자리로 누군가를 입양 보낼 시, 반드시 같은 종의 친구를 최소 한 마리 이상 함께 보낸다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돼지를 가득 싣고 도축장으로 가던 트럭 짐칸에서 떨어져 고속도로에서 구출된 트러플스는 평소 쾌활하다가도 쇠끼리 쾅쾅 부딪히는 소리만 들리면 못 견뎌 한다. 이송 트럭 짐칸의 철문 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트러플스와 같은 경험을 한 돼지들은 농장에 배달 트럭이 오기만 해도 허겁지겁 숨기 바쁘다. 동물의 경우에도 고통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임신한 상태로 입양되어 온 엄마 양 덕분에 생추어리 농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레이스는, 온순하고 사진발이 좋아 생추어리 농장의 팸플릿 모델로도 활동했다. 또,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자신의 새끼들과 떨어뜨려놓자 공격적으로 변했던 암퇘지 수지는, 결국 모성애를 인정해주는 농장주를 만나 새끼들과 이별하지 않고 함께 입양되어 갈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배우 킴 베이싱어와 함께 공익광고를 찍으며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타고난 방송체질 젖소 헨리, 180센티미터나 되는 도살장 울타리를 뛰어넘어 탈출한 ‘점프 지존’ 암소 신시 프리덤도 생추어리 농장을 대표하는 동물들이다. 신시 프리덤은 탈출 후 신시내티의 한 공원에서 2주 동안 숨어 지낸 덕에, 신시내티 명예시민 열쇠를 받은 최초의 동물이기도 하다. 한편, 이슬람이나 유대교 제례에 올릴 염소를 파는 가축시장에서 도망쳐 나온 염소 주프는, 상처가 심해 결국 다리 한쪽을 절단하고 의족을 달게 됐지만 여전히 발랄하고 생명력 넘친다. 그리고 학교의 부화 실험용 달걀에서 태어나, 다행히 어느 학부모에 의해 생추어리 농장에 오게 된 병아리 메이플라이는 할머니 암탉들을 보호하는 믿음직한 보디가드 수탉으로 성장했다.
인간이 선호하는 고기를 얻기 위해 시행한 품종교배의 부작용으로 자연적인 짝짓기 능력을 상실한 수컷 칠면조 치키는, 역시 품종교배의 부작용으로 연해진 암컷의 피부에 상처입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 암컷들과 격리 수용되어 독수공방 외로운 밤을 보내기도 한다. 또한 푸아그라 생산시설에서 구조된 오리 삼총사 버튼, 하퍼, 콜은 간을 키우기 위해 평생 사료를 강제주입당한 탓에, 먹는 방법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래서 구조 후 두 달 동안 일일이 사람 손으로 먹이를 먹여야 했고, 오리 삼총사가 마침내 스스로 먹을 수 있게 됐을 때, 그들을 돌봐주던 농장 직원은 귓가에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고 한다.
동물이 아프면 결국 인간도 아프다
인체 내부의 근육과 조직, 내장, 뼈가 드러나도록 시체의 피부를 제거한 다음 다양한 포즈로 전시해놓은 ‘인체의 신비’전을 보러 간 바우어는 안내책자에서 그 전시회의 취지 중 하나가 우리 몸을 제대로 한번 공부해보는 것이라는 구절을 읽은 후, 자신이 지난 20여 년간 해온 일도 결국 ‘우리 몸을 제대로 공부’하도록 돕는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인체의 신비’전을 보며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동물이 얼마나 연약한지, 그리고 얼마나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인지 다시금 느꼈다. 공장식 축산업은 단순히 동물만이 아니라 사람도 파괴한다. 도살장 노동자로서 용감하게 공장식 농장의 학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던 버질 버틀러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미처 목을 따지 못해서 닭이 산 채로 끓는 물에 들어갈 때마다 너무나 괴로웠다. 닭들은 몸부림을 치고 탱크 벽에 마구 부딪히면서 천천히 죽어갔다. 나는 기를 쓰고 노력해, 거의 놓치지 않고 목을 따게 되었다. 기술은 좋아졌지만, 대가는 컸다. 죽이면 죽일수록 점차 괴로움이 사라졌다. 나는 무감각해진 것이다. 도축실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그 흥건한 피와 반복적인 살생에 노출되는데 사람이 멀쩡할 리 없다. 내가 가장 혐오한 건 내가 도살자라는 사실이었다.”
“어떤 동료들은 자기 가족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그곳에서 오래 일할수록 나도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인생이 ?의미해졌고,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남을 죽이고도 아무것도 못 느끼는데,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도 못 믿게 됐다.”
바우어는 어느 날, 알고 지내는 영화 제작자로부터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아파트 밀집 지역을 지나가다가 똑같이 생긴 집이 층층이 쌓여 있는 아파트를 올려다봤는데, 창문마다 전선이 삐져나와 각각 위성접시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마치 주민들에게 각종 텔레비전 광고와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주입시키는 정맥주사처럼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바우어는 우리가 생각보다 더 공장식 사육시설의 가축들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모두 케이지에 갇혀 살면서 인공 각성제에 마비된 채 살찌고 병들어가다가 결국 퇴출되는 신세인 것이다.
바우어는 생추어리 농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산업화된 농업에 조작되고 학대당한 동물들을 볼 때마다, 겉으로는 대단치 않아 보일지라도 생을 즐길 줄 아는 그들의 능력에 매번 놀라곤 한다. 농장의 동물들은 아무도 혼자 고립되어 있지 않다. 물론 아파서, 혹은 간혹 가다 동족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격리되는 동물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특이한 성격이라도 참아주고 같이 어울려 놀아주는 동료가 한둘은 꼭 있다. 농장의 동물들은 공기의 냄새를 맡고, 땅에서 뒹굴고, 코로 흙을 파고, 풀을 뽑고, 모래를 쪼고, 못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 그들은 우리 인간들이 잊어버린, 자연 세계와 교류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렇게 오랫동안 생산라인의 일부로 살아왔으면, 이제는 우리의 동물적 본성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각자 고립되어 지내면서 몸에 밴 습관과 고정관념에 얽매여 살아가느니, 활기차고 생기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꽉 붙잡아야 하지 않을까? 바우어는 그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동물이라고 말한다. 동물들은 우리에게 삶의 단순한 것들이 주는 즐거움과 현재를 누리는 기쁨을 가르쳐준다. 또한 우리가 세상의 일부임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피부 가죽만 벗겨내면 우리는 다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 책은 고통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은 그 동물들의 이야기이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바우어가 생추어리 농장의 대문과 자신의 마음을 동물들에게 활짝 열어준 것처럼, 이제 우리도 마음을 열고 그것이 이끄는 대로 한번 따라가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