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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 첫눈 | 2018년 02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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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2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52g | 140*195*20mm
ISBN13 9791195538287
ISBN10 1195538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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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누군가는 에세이, 누군가는 시처럼 살아간다
도서1팀 김도훈 (문학 담당 / eyefamily@yes24.com)
2018-03-06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찬사"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냐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는 게 삶이라는 〈여행스케치〉 노래가 생각납니다. 혼자이면서도 혼자이지 않은 삶. 온전히 나만의 삶일 수도 없고, 숱한 다른 사람들의 흔적이 모여 삶의 영역을 이루는, 그게 우리네 삶이지요.

『숨』은 그 언저리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버스기사, 오피스텔 경비원, 편의점 사장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지나치기 쉬운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스쳐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그들을 스쳐간 내 이야기 같기도 하죠. 그들의 삶은 소설인지 현실인지 착각할 만큼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숨 쉬는 모든 순간, 숨 쉬는 모든 존재는 특별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주인공이 되기엔 평범했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만들며 그들 삶에 공감하게 하는 책. 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보면 묘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그는 그를 똑바로 봐주지 않는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무생물을 대하듯 스쳐가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들에겐 하루에 한 번이지만 그에겐 수천 수백 번이었다. 경비원이 지켜야 할 것은 어쩌면 집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마음을 지키려고 경비 일을 한다니 말이 안 되지. 상처받는 일을 하면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딱딱해진다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야. 그런데 내가 경비원이 되고 싶었던가. 하긴 예전에 다니던 회사도 그냥 다녀야 하니까 다녔지. 그땐 다들 그랬으니까. 그래도 예전에는 사는 게 그럭저럭 재밌을 때도 많았던 것 같은데.
---「예전에는 경비원이 아니었을」중에서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데 이유는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원래 사람은 다른 사람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하잖아. (중략) 까만 눈망울을 굴리는 꼬마 아이를 평생 기억할 아빠와 엄마처럼 나도 널 기억할 거야. 너도 그렇겠지만. 안녕. 잘 지내. 어제는 꽃구경을 갔다가 네 생각이 났어. 그리고 오늘은 그냥 네 생각이 났어.
---「비눗방울과 꼬마아이」중에서

너에게 쓰는 편지는 언제나 두서가 없다
그 두서없음이
너를 향한 내 마음의 전부였다
---「편지」중에서

아낀다, 라는 단어는 어쩐지
우표를 쓰다듬는 사람의 미소를 닮았다

아무 날도 아닌, 누구도 아닌, 어떤 것도 아닌
나는 그걸 잊을 수 있을까
---「기념우표」중에서

서로의 궤도가 다름에도, 나는 삶의 곳곳에서 그의 향기를 느낀다. 이를테면 길에서 간간이 마주치는 은단의 향으로. 흔해빠진 은단이 어째서 그의 향기로 기억되는지 알 수 없다. 추측하건대 독특하지만 흔한 향기가 그와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특별했던 사람들처럼, 그 역시 특별하지만 평범하고 싶어 했으니까.
---「은단과 담배」중에서

다시 노트에 시간이 쌓인다
펜은 밤새 움직이지 않을 예정이다
불쌍한 손가락만 펜을 들고 벌을 선다
---「노트」중에서

조용히 잠든 밤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이따금 그가 떠오른다. 아마 그는 사막같이 쓸쓸한 밤거리를 홀로 걷다가 말하는 여우를 만났을 것이다.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여우는 말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채색의 얼굴로.
---「초콜릿 장식」중에서

시련이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찾아온다니까 살아만 있으면 감당할 수 있을 게 뻔했다.
---「옥상에서」중에서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까요?
아니. 조금씩 무뎌질 뿐 시간이 지나고 아팠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 내성이 생긴다는 말도 거짓말이야. 나이를 많이 먹어도 나쁜 일을 겪게 되면 똑같이 아프고 괴로워. 때로는 흉터가 덧나서 더 아프기도 하고. 그런 건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거야. 다만 잊어버린 척 하고 사는 거지. (중략)
음… 아마 너는 앞으로도 잊고 싶은 것들을 잊지 못할 거고, 몇 개의 이름을 더 기억하며 살게 될 거야. 가끔은 손바닥 위에 쌓아올린 모래성을 보다가 울게 될 거야. 손 틈으로 새어나가는 모래를 보는 건 우울한 일이거든.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너는 지금보다 아주 조금은 나아질 거야.
---「모래성」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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